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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동현대학교 어느 휴게실 안, 탁병준은 흠흠 거리며 병재를 진정시킨다.
“선생님. 진정 해주십시오. 그가 선생님이 말하는 그 박출환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지가 않습니다.”
병재는 그 말에 한숨을 푹 내쉬며 탁병준의 말처럼 마음을 진정시키고, 냉정을 찾은 뒤 탁병준을 향해 묻는다.
“일단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탁병준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그가 정말로 선생님이 말하신 박출환인지 뭔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확률은 높으니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으음...”
탁병준은 병재의 심각한 얼굴을 보면서 헛기침을 한 뒤 말을 가다듬어 말한다.
“제 친동생이 수도경찰청 고위 간부입니다. 제 동생을 통하여 그의 정체를 확인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탁병준의 친동생인 탁정준은 수도경찰청의 고위 간부였다. 물론 병재 역시 경찰 고위간부에 대해서 잘 알고는 있지만 이렇게 사적으로 부탁할 만한 사이는 아니었다. 탁정준 역시 탁병준을 치료해준 병재에 대해 고마워했기 때문에 이번 일에 자발적으로 나서서 행동하는 편이었다.
“만약 그가 제가 생각하는 박출환이 맞으면 반드시 생포해주십시오.”
탁병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병재에게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그 부탁 받아들이겠습니다. 선생님이 저에게 베푸신 은혜에 비하면 개미만한 일이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병재는 탁병준의 말에 하하 웃으면서 말한다.
“이건 저뿐만 아니라 제 가족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긴장을 해야겠군요.”
그 이후로도 병재와 탁병준은 이야기를 어느 정도 하다가 헤어진다. 병재는 탁병준을 배웅하고는 빠른 발걸음으로 대학교 인근에 설치된 공중전화로 향한다. 그리고는 재빨리 어딘가로 전화 연결을 시도한다.
-뚜르르 뚜르르 철컥!-
-예. 여기는 동협 그룹 회장 길병윤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송수화기 수신부분에서 병윤의 목소리가 들리자 병재는 다급한 목소리로 그에게 이야기를 한다.
“병윤아. 박출환의 행적을 찾아냈다.”
그 말을 하고난 뒤 몇 초간 대답이 없었다. 아무래도 병윤 역시 놀란 반응인가 보았다. 조금 있다가 병윤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온다.
-예에?! 그게 정말입니까? 큰 형님!-
“아직 확실치는 않아. 생구단의 단체장이 찾았는데 아직 정확하지는 않다고 했지. 그래서 말인데.”
-예. 큰 형님. 그 고씨 남매들을 그 쪽으로 보내겠습니다.-
“그래. 말을 하지 않아도 잘 알아듣는구나.”
-박출환 그 자식은 큰 형님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 원수가 되는 인간입니다. 큰 형님의 부탁이 없더라도 그 자식을 생포해와 피눈물을 뿌리게 만들 것입니다.-
“알겠다. 난 일이 있으니 이만 끊으마.”
-예. 형님.-
병윤과의 전화 연결이 끊어지자 병재는 송수화기를 다시 제자리로 놓으면서 휴우 크게 한 숨을 내쉰다. 작년에도 놓친 전적이 있던 지라 병재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 기다리자. 너무 조급해지지 말자. 병재야.’
병재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는 이내 자신의 일을 위해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한편, 병재에게 소식을 들은 병윤은 자신이 말한 고씨 남매를 긴급하게 불러낸다. 고경열, 고희수 남매는 갑작스러운 부름에 의아한 얼굴로 병윤을 쳐다본다.
“무슨 일이십니까? 회장님.”
고경열이 묻자 병윤은 진중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잘 들으십시오. 긴급 임무입니다.”
“긴급?”
“예. 작년에 놓친 박출환을 잘 아십니까?”
“으음...”
“아무래도 그의 행적이 밝혀진 것 같더군요.”
고경열은 병재를 바라보더니 한 마디 말한다.
“확실한 것입니까? 회장님?”
그 물음에 병윤은 손가락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대답한다.
“확실치가 않으니 부른 것입니다. 가서 확인하여 목표가 그 박출환이라면 당신들이 직접 생포했으면 합니다.”
고경열은 그 말에 끄응 침음을 흘리면서 병윤에게 말한다.
“한 마디로 헛수고할 가능성은 있다는 것이군요.”
병윤은 그 말에 책상 서랍 속에 무언가를 꺼내더니 고경열에게 건네준다.
“이건 임무를 수락하는 즉시 지급되는 돈입니다.”
고경열이 돈을 받아보니 거기에는 100만 원에 해당되는 금액이었다. 고경열은 휘익 휘파람을 불더니 병윤에게 대답한다.
“이 정도 금액이면 회장님이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군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개발된 경량형 헬기를 이용하십시오.”
“경량형 헬기라고요? 그거 개발했습니까?”
“지난달에 비밀리에 개발했습니다. 아직 양산하지 않는 상황이라서 얼마 없습니다.”
병윤이 말한 경량형 헬기는 신형 헬기 검은 매의 크기를 반으로 줄인 헬기였다. 그 크기만큼이나 적재량 부분에서 손해를 보았지만 기동성은 어느 정도 향상시켰다. 그런 귀중한 헬기를 주겠다는 병윤의 말에 고경열은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그걸 타고 이동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한 고경열과 고희수 남매는 금방 돈들을 챙기고, 병윤이 말한 임무를 수행하러 갔고, 방 안에 홀로 남은 병윤은 양손으로 깍지를 쥐면서 고민에 빠진다.
‘휴우 제발...’
병윤은 마음속으로 박출환에 대한 생각을 잊고자 책상 위에 있는 서류들을 하나씩 면밀하게 검토하기 시작한다.
같은 시각, 서울의 어느 한 주점 안에 자리를 잡은 두 사람은 국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있었다. 그 중 한 젊은 남성이 상대편의 남성에게 한 마디 말한다.
“저 접장님.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접장이라고 불리는 이는 그 물음에 퉁명스럽게 반응한다.
“뭐가?”
“아니. 그 정치세력의 감시만 하기에는 너무 따분하지 않나 싶어서 그렇습니다. 요즘은 노동자들의 선동도 그저 그렇고 말입니다.”
그 말에 접장이라고 불리는 인물은 피식 웃으며 그 남성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렇게 경찰의 더듬이에 걸려서 잡히던가?”
“으음.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것은 없지 않습니까?”
“지금 상층부에서 실시한 일이 뭐냐?”
“그거야. 콤 서클에 속한 장교들과 병사 소비에트에 속한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취합한 뒤 보고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 그런데 꼭 굳이 우리가 위험한 일에 끼어들어서야 되겠어?”
그 말에 젊은 남성 문광단은 답답하다는 얼굴로 대답한다.
“아니. 그렇게 보신주의 적으로 가다가는...”
“흥. 하던 일이나 집중해라. 괜히 이리저리 집적거렸다가는 우리는 물론 그 주위의 동료들까지 생고생한다.”
접장의 말 한 마디에 문광단은 끄응 침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문광단은 국밥 먹는 것에 집중하다가 이내 한 그릇을 비우자 접장에게 말한다.
“그런데 정 접장님. 이번에 우리가 만날 상대는 누구입니까?”
정 접장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며 문광단에게 한 마디 말한다.
“이제야 박 접장이 아닌 정 접장이라고 부르는군. 이번에 만날 상대는 4연대의 김지회 중위이다.”
“김지회 중위요?”
“그래. 콤 서클의 인원들 중 한 사람이야. 직접 본부에서 교육을 받아 광복군에 침투한 사람이지.”
“그런가요? 그러면 그 인원에 대해서 알 정보만 알고, 가면 될 일입니까?”
정 접장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한다.
“그렇지. 초임이라고 하더라도 장교의 신분이라서 꽤나 아는 것이 있을 거야. 그 인원에게 특별한 정보가 없는지 확인한 후 그 것들을 정리하여 상층부에 보내면 된다.”
“알겠습니다. 정 접장님.”
그렇게 정 접장과 문광단은 식사를 마치고, 주인아주머니에게 계산을 한 뒤 가게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그 순간 경찰복장을 갖춘 인원들이 가게 안으로 긴급히 들어간다.
정 접장과 문광단은 그 순간 얼굴을 굳힌다. 정 접장은 문광단에게 한 마디 말한다.
‘일단 조용히. 괜히 관심을 불러일으키다가는 우리만 손해다.’
그 때, 경찰들이 가게 안 주인아주머니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한 마디 묻는다.
“혹시 이 두 사람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은 없습니까?”
그 말에 주인아주머니는 눈이 침침했는지 사진에 얼굴을 가까이 하며 집중을 하더니 뭔가 스쳐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으음... 익숙하기는 헌데. 아. 그 이들은. 얼레?”
주인아주머니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머리를 긁적이고는 경찰에게 대답한다.
“아까까지만 하여도 그 두 사람이 여기서 식사를 했는데. 어디로 가버렸지?”
순간 경찰관의 얼굴은 굳어진다. 그리고 곧바로 가게 밖으로 뛰쳐나간다. 가게 밖을 나가 움직이던 정 접장과 문광단은 가게 밖으로 급히 뛰쳐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경찰관의 행동에 수군거린다.
“갑작스럽게 경찰관의 행동이 급해지네요.”
“나도 잘 모르겠군. 누군가 찾는 것 같다.”
두 사람은 괜히 경찰관에게 얽매이다가 좋을 것 없으니 빨리 경찰관에게서 멀어지려고 했다. 그렇게 경찰관에게서 등 뒤를 돌아 발걸음을 떼려고 할 시점이었다.
-삐이익! 삐이익!-
두 사람의 등 뒤에서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내 경찰관 두 명이 정 접장과 문광단을 향해 죽일 듯이 쫓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두 사람은 혼비백산하게 뛰기 시작한다.
도망치려는 두 사람과 그 둘을 쫓는 두 경찰관의 추격전은 한 무리가 지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지나가는 행인들도 갑작스러운 추격전에 두 무리를 막을 새 없이 옆으로 비켜간다. 그 때, 경찰관 중 한 명이 호루라기를 불며 외친다.
“거기 서라!”
정 접장과 문광단은 그 외침을 무시한 채 죽도록 뛰어간다. 골목으로 들어가고, 비좁은 구석으로 들어가고, 집 담을 넘으면서까지 추격전은 계속 되었다. 그러다가 이내 쫓기던 두 사람은 서로 눈빛 교환을 하더니 이내 찢어져 흩어진다. 그에 따라 경찰관 두 사람도 각각 한 사람씩을 맡아 추격하기 시작한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대낮의 추격전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한쪽의 경우는 마무리가 된지 오래였다. 문광단은 도망치다가 이내 골목길에 막혀 포위된 형국이었다. 경찰관은 권총을 뽑아 문광단에게 조준한 뒤 말한다.
“이 생쥐같은 자식. 도망칠 길은 없다.”
문광단은 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한 마디 외친다.
“갑자기 왜 이러시는 것입니까?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북로당의 첩자 조인 정무봉, 문광단 두 사람. 이 정도면 이유가 되겠지?”
문광단은 그 대답에 뿌드득 이를 갈았다. 이렇게 자신들을 집요하게 쫓는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흥. 정보 획득 수단을 말해주는 인간이 어디 있는가? 저항하지 말고 잡히시지. 어딘가 총상에 맞아서 병신 되기 싫으면 말이야.”
그 말에 문광단은 눈초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상황을 살피자 경찰관은 그의 그런 모습에 신경질을 났는지 문광단 옆으로 방아쇠를 당긴다.
-탕! 탕!-
문광단은 갑작스러운 총음에 바닥으로 엎드렸고, 경찰관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문광단을 향해 발로 걷어찬다.
-퍼억!-
“크윽!”
그러더니 이내 경찰관은 문광단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며 한 마디 말한다.
“장군이다. 이 자식아.”
머리에 느껴지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에 문광단의 얼굴에는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가득했다. 그렇게 문광단 쪽은 체포가 되었다.
한편, 정 접장을 추격하던 경찰관 쪽은 시간이 걸렸다. 정 접장이라는 녀석은 경성의 지리에 밝았는지 이리저리 길을 오고 갔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정 접장을 쫓던 경찰관이 드디어 그를 한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너무 긴 거리를 뛰어갔던 지라 두 사람 모두 헉헉 대며 호흡을 조절하고 있었다. 정 접장은 그런 경찰관을 보고 한 마디 말한다.
“왜 우리를 쫓는 거지?”
“상부의 지시.”
“제길...”
“얌전히 체포되어라. 혐의가 있으면 풀어주겠지만...”
“흥. 웃기는 소리. 얌전히 호랑이굴에 들어갈 성 싶으냐?!”
경찰관은 그 말에 흡 하고는 권총을 빼어들더니 정 접장에게 겨눈다.
“어딘가에 총상 맞고 끌려가고 싶지 않으면 움직이던지...”
정 접장은 그 말에 끄응 침음을 흘린다. 아무래도 경찰 쪽에서 자신들을 특정하게 목표를 잡고는 쫓아오는 것 같았다. 그 말은 자신의 위기나 마찬가지였다.
‘침착하자. 암만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정 접장은 순간 고개를 숙인다. 그런 그의 모습에 경찰관은 휴우 한숨을 내뱉으며 한 마디 말한다.
“그래. 혐의가 없으면 풀어주지...”
그 순간, 정 접장은 밑으로 고개와 몸을 숙이더니 이내 경찰관을 향해 갑작스럽게 돌진했고, 그대로 경찰관을 밀어 넘어뜨린다.
“욱!”
갑작스러운 충격에 경찰관은 넘어지고, 그에 따라 정 접장은 순식간에 경찰관이 쥐고 있던 권총을 빼앗은 뒤 바로 이 자리에 빠져 나갔다. 그렇게 정 접장의 움직임에 현혹되어 한 순간에 범인을 놓치게 된 경찰관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고, 한동안 정신 차리지 못하다가 이내 무전기를 꺼내 상부와 연락한다. 그렇게 정 접장의 추격은 계속 진행되었다.
============================ 작품 후기 ============================
젠장 겁나 덥군요. 소설 쓸 의욕이 잃어갑니다. 그래서 말인데. 갑작스럽게 2년 뒤로 훌쩍 시간을 떠넘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