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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1948년 2월 26일, 결국 소련과 북한에서 유엔한국임시위원회의 활동이 거부되고, 또 소련의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에 총선거는 남한 전역에서만 치러지게 되었다. 이번 일을 두고, 민족 통일을 부르짖었던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는데, 그 중에서는 김구 역시 포함되고 있었다.
“으음...”
김구는 TV화면에서 연신 나오는 내용을 보고는 자동적으로 얼굴이 굳어진다. 지금껏 한반도 전국을 다녀보며 활동했던 그로써는 이념 때문에 각기 다른 나라로 분단되는 것에 대해 씁쓸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예상한 바였고, 알고 있었던 일이었다. 또 주위의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분단은 기정사실화 된 일이었다. 하지만 김구의 얼굴은 당연히 밝지 못했다.
‘병윤의 말이 결국 사실대로 가는군.’
사실 이런 것을 날려준 사람이 바로 병윤이었다. 그러나 김구는 그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아직까지 희망이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말대로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병윤은 분단에 대비하여 일을 처리한다고 주장했지.’
자신의 주 지원자 중 하나였기에 김구에게는 병윤의 말을 무시하기 힘들지만 김구는 가슴에 따라 행동했다. 하지만 결과는 결국 이러했다. 김구에게는 자동적으로 한숨이 나온다.
‘결국 분단된 조국을 봉합하려면 전쟁 밖에 없는가?’
김구는 이미 중국 대륙에서 전쟁에 대해 철저히 알고 있었다. 일본군을 피해 동료들과 가족들을 이끌고 피난했을 때, 혼란한 사람들, 아수라장, 그리고 보기 힘든 지옥들. 그런 일을 직접 겪었기에 김구는 전쟁이라는 단어에 몸이 자동적으로 부들부들 떨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끔찍한 사태가 자신의 조국에 나타난다는 사실에 김구는 연신 식은땀이 흘렀다.
‘왜 이런 끔찍한 일이 이 한반도에 떨어지려고 하는 거지. 왜...’
김구가 저번에 병윤에게 왜 이 곳에서 전쟁이 터지냐고 말을 물으니, 그는 김일성의 의지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왜 그가 그런 생각을 품었냐고 물으니 병윤은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한다.
‘제가 그 것을 어떻게 알고 있겠습니까? 저 역시 그 사람 머릿속을 파헤치고 싶습니다. 전 세계에 지옥을 불러온 전쟁이 끝난 지 이제 2~3년도 채 안되었는데 말입니다.’
김구는 병윤과 이야기했던 회상을 끝내고, 천장에 가까운 벽에 달린 액자에 집중한다. 액자 안에는 태극기가 있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 한반도 땅에 저 국기는 불법이었고, 그렇다고 건다면 불량선인으로 낙인 찍혀서 고문을 받거나 죽임을 당했다. 그런 지옥 같은 시간이 무려 36년 동안 지옥이 되었다. 이제야 그 지옥 같은 삶이 벗어나 다시 일어나가려고 하는데 또 다시 비극을 상상하니 김구에게 있어서 가슴이 무척이나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김구는 곧장 책상 위에 놓인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들며 어딘가로 전화연결을 시도한다.
-뚜르르... 뚜르르... 철컥!-
-예. 누구십니까?-
김구는 흠흠 거리면서 송수화기에 엄숙하게 한 마디 말한다.
“날세.”
-이 목소리는 선생님 아니십니까?-
“흠. 이제 자네도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군.”
-이런 말을 들어보니 불만스러운 모양인 것 같습니다.-
“하아. 아니야. 오히려 그 것이 나에게 친숙하니까 호칭은 상관없지. 아까 TV나 라디오 소식을 들어봤나?”
-지금 제 지위에 있으면 당연히 그 것에 관심이 쏠리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렇다면 이야기가 더 빠르겠지. 자네는 어쩔 생각이야?”
-예? 그 무슨 소리입니까? 이 상황에서 제가 무엇을 행동해야 합니까?-
“내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네가 지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군. 정치 쪽은 그 쪽을 통해서 자네가 원하는 바를 이어나가려고 하지 않겠냐는 것이야.”
-선생님. 아주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일단 제 몸 건사하기도 힘듭니다. 저번에 제 친우 녀석과 가족들이 납치당할 뻔한 것에 대해서 수습을 하느라...-
“그래서 계속 문경에서 활동하고 다닐 건가?”
-그거야 당연한 일입니다만.-
“너무 그 쪽에서 틀어박히는 군.”
-선생님. 문경에서 주로 활동하지만 저 역시 한반도 곳곳을 살피고, 사업을 진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래. 분야가 틀리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막말로 제가 정치 분야에 나선다고 한들 제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자네라면 이 상황을 잘 알고 있을 거야. 현재 우리 한반도가 이념과 강대국 때문에 분단이 되고 있어! 그리고 자네가 예견한대로 한반도에 전쟁이 터질지 몰라! 그런데도 그리 무미건조한 대답은 뭔가?!”
-......-
“답답해 죽겠네. 답답해 죽겠어. 왜 몽양이 암살 위협까지 당하면서 나섰는지 알 수 있겠어. 대답을 해보게나. 이런 상황 속에서 병윤 네가 내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 건가?”
-저에게 너무 어려운 질문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답을 못하겠다는 건가?”
-휴우. 선생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기 싫지만...-
“말하게.”
-선생님. 현실은 냉혹한 법입니다.-
“그게 전부인가?”
-이런 상황에서 굳이 제가 할 말을 할 수가 없군요. 전 오히려 이 상황 속에서 내실에 주력하고, 저 쪽이 섣불리 전쟁을 할 수 없도록 준비하는 것이 가장 나은 일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결국 원론적인 이야기군.”
-힘이 되어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김구는 그 말에 한숨을 푹 쉬며 대답한다.
“아니야. 이 상황이 너무 답답해서 자네에게 전화를 주었어.”
-아닙니다. 그럼...-
“잠깐.”
-예에?-
“혹시 내 자네에게 묻는 말인데. 그 김일성에 대한 암살행각은 자네가 벌인 것인가?”
-저 역시 그 인간에 대해서 용서하기 힘들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결국 자네가 했다는 것이군. 이유가 뭔가?”
-제 친우와 그 가족들을 납치하려고 했습니다.-
“알겠네. 이만 끊지.”
그 것으로 김구는 전화를 끊었다. 그는 한숨을 푹 쉰다. 결국 답답한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1948년 3월 2일, 동현대학교가 정식으로 개국되었다. 의학, 공학을 중심적으로 가르친다는 내용 때문인지 동현대학교는 개국 전부터 화제를 불러왔다. 다만 사람들 인식 속에는 기술자들은 경원시되었기 때문에 동현 대학교에 입학하는 사람들의 부모들이 하는 소리가 있었다.
‘굳이 그런 곳을 가야 되는가?’
물론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는 이러했다.
‘적어도 이 곳에 입학하고 졸업하면 동협 그룹에 취업하게 된다.’
그 때문인지 입학한 사람들 대다수는 돈에 쪼들리는 상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인문학이나 행정학을 목표로 달려 나가던 학생들은 결국 가정의 현실 앞에 목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 중에 박태식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박태식은 대학교 정문을 바라보며 살펴본다.
‘여기가 바로 그 동현 대학교이군.’
박태식의 눈앞에는 거대한 건물들이 보였다. 얼마나 돈을 퍼부었으면 이렇게나 높고, 훌륭하게 지었는지 잘 모르는 일이었다. 자신은 원래 연세 학원이나 서울대학교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공부를 하여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자랑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공무원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는 꿈을 꿨다. 그러나 가난한 가정이 자신의 발목을 잡았다.
거기에 자신이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기에는 돈이 상당히 필요했다. 그리고 그 돈은 결코 가정에서 대주지 못했다. 지금 자신의 가족들은 지주 밑에서 겨우 풀질이나 하는 소작농이었다. 지금이야 광복이다 또 토지개혁이다 해서 자신의 가족이 받는 몫이 늘어났지만 그렇다고 살림이 확 피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박태식은 관리가 되겠다는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 영역은 온전히 부유한 집안의 몫이었다. 냉혹한 현실만이 박태식과 그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박태식은 수를 써야 했고, 그에 대한 결과가 바로 이 곳의 입학이었다.
입학비용 무료, 기숙사 제공, 그리고 생활하는데 드는 비용 지불하는 혜택이 있었다. 그래서 이 곳에는 내놓으라 하는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암만 기술자들이 천하다는 인식은 여기서 통하지 않았다. 박태식은 이 곳에 입학하면서 치른 시험들을 상상하자 치가 떨렸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 곳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병신이었지.’
이 곳의 입학시험은 수준을 달리했다. 어려운 수학이라든지 과학적 상식, 그리고 주어진 과제를 어떻게 풀이해 나가는가에 대한 답변들. 박태식은 그런 질문에 대해 억지로 생각하면서 일일이 써내려갔다.
그 결과는 합격이었지만 들리는 말에 의하면 치르는 사람들의 수준이 너무 낮아서 선착순으로 끊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박태식은 그 이야기에 상당히 공감했다. 아무래도 이 분야에 대해 경시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인 것 같았다.
그 때, 한 사람이 박태식의 등을 툭툭 치고 한 마디 말한다.
“어이. 여기서 서서 뭐해?”
그 말에 박태식은 어리둥절하면서 자신을 건드린 사람을 바라본다.
“왜 그러시는데 이러십니까?”
“아니. 그냥 가만히 서서 지켜보기에 궁금해서 건드렸어.”
박태식은 그 말에 어이가 없는지 그런 이에게 한 마디 말한다.
“허 참...”
“그래서 안 들어가고 계속 이렇게 있는 거냐?”
“그 것보다 왜 초면부터 반말이시오? 내가 그리 우습소?”
박태식의 말에 건드린 이는 피식 웃으면서 대답한다.
“뭘 말투부터 따지고 그러시나? 하여튼 여기에 입학하는 사람인가?”
“그렇소. 그럼 당신은 누구시오?”
그 말에 그는 자신을 엄지로 척 가리키며 대답한다.
“나?”
“그렇소.”
“나 이 대학의 관계자. 이 정도면 답변이 되겠지?”
박태식은 그 말에 한심스럽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본다. 결국 박태식은 그 이를 피하고자 다시 앞으로 걸어 나가지만 이내 박태식을 건드린 이는 졸래졸래 따라온다. 그 때, 박태식을 졸졸 따라오는 이는 한 마디 묻는다.
“이런 내 정신 좀 보게나. 아직까지 통성명을 못했군.”
“굳이 당신의 이름을 알고 싶지도 않소.”
“글쎄? 이 대학에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내 이름 정도는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 할걸?”
박태식은 그 말에 그렇게 말하는 그를 쳐다보며 외친다.
“전 끝까지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훗. 왜 이래? 나부터 소개하지. 난 송감연이라고 하지.”
이 대학의 관계자 감연은 박태식에게 소개를 올린다. 박태식은 태연하게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는 감연을 보고 무미건조하게 대답한다.
“이 대학에 입학하게 된 학생들 중 한 사람인 박태식이라고 하오. 이 정도면 대답이 되었소?”
“박태식이라... 그 정도면 답변이 되었지.”
“그런데 옷차림은 그렇게 정장을 입고, 수업에 진행하는 것이오?”
박태식이 감연의 옷차림을 보고 한 마디 묻자 감연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한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그 것보다 시간을 보니까 입학식에 가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 말에 박태식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감연을 보고 한 마디 말한다.
“그... 입학식이 열리는 건물은 어디이오?!”
그 물음에 감연은 손가락으로 건물을 표시해주었고, 이내 박태식은 부리나케 그 건물로 달려 나간다. 감연은 그런 박태식의 뒷모습을 보고는 한 마디 생각한다.
‘박태식이라. 그나마 입학하던 녀석들 중에는 싹이 보이던 학생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입학했던지라 감연은 그야말로 이 곳에 입학하는 사람들의 당락을 결정하기 위해 학교 관계자들이랑 죽을 똥을 쌌다. 그 많은 시험지들 중에서 박태식이 쓴 답변은 감연에게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시험 중에 이런 문제가 있었다.
-2진법, 12진법, 60진법 등 수많은 진법들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인간은 10진법을 바탕으로 수 체계를 정하였는가?-
이런 질문에 백지로 낸 사람들이 많았고, 억지로 생각해서 낸 사람들이 많았지만 가장 특이한 것은 박태식이 쓴 답변이었다.
-인간은 가장 익숙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존재이다. 그리고 인간의 손가락은 10개이다. 손가락으로 셈을 한 기록들이 많으니 손가락 10개는 의식적이나 무의식적으로 인간에게 10진법을 확립시켜주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
감연은 아마 그 답변 때문에 박태식을 기억했었다. 그러나 감연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 중 박태식은 그들 중 하나였기 때문에 특별히 그를 기억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이 대학에 온다는 사실 때문인지 감연은 기쁜 얼굴로 휘파람을 불면서 대학 부지 안을 걷는다.
박태식은 감연 때문에 시간을 소모해서 부랴부랴 입학식이 있는 곳에 도착을 한 뒤 좌석에 앉았다. 최신식 건물이라서 그런지 입학식을 하는 강당은 수 천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대학에 입학하기에 입학식도 나눠서 진행하는 편이었다. 곧 시간이 지나 박태식 주변의 좌석들도 사람들이 모였다. 다만 특이한 것은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는 젊은 여성들이 보였고, 그 수 역시 많았다.
지금까지 여성은 가정에 헌신하는 존재로 알고 있던 박태식으로는 꽤나 신선하기 그지없었다. 그 때, 어떤 한 여성이 박태식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도 여기에 입학하는 사람이에요?”
박태식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가족들에게 피해 없이 공부할 수 있는 장소라고 들어서 입학했습니다.”
그 말에 여성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저 역시 그러해요. 이왕 이렇게 된 것 통성명할까요?”
“제 이름은 박태식이라고 합니다. 당신은?”
“전 나윤미라고 해요.”
나윤미라고 불리는 여성은 안경을 쓴 정숙해 보이는 여인이었다. 미모는 어느 정도 받쳐주기 때문에 그녀에게 말을 거는 박태식으로써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그 때, 시간이 되자 좌석 앞에 있는 무대에 사람들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나윤미라는 여성은 박태식에게 한 마디 말한다.
“입학식이 시작하나봐야. 나중에 이야기해요.”
그 말에 박태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대 위의 사람들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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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너무 덥습니다. 소설을 쓰다가 더워서 그만두고, 쓰다가 더워서 그만두고를 반복하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