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440화 (44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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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현재 박태식이 결정한 곳은 전기전자공학과였다. 이 동현 대학교에는 수많은 과들이 있었지만 박태식이 왜 이 곳에 발을 들였냐면 역시 그 것은 그의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비롯된 일일 것이다.

박태식 자신을 가르쳐준 사람이 자신에게 이렇게 한 마디 말한 것이 머리에 박혔다. 그는 그 말을 떠올린다.

‘이제 세상은 전기가 지배할 것이다.’

전기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에 박태식은 묘한 웃음이 났다. 지배라는 과격한 단어도 그렇지만 그만큼 전기의 효용성이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리고 전기의 사용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어두운 밤을 밝힐 빛부터 기계를 돌릴 힘, 한 사람의 말이 천리 만방으로 간다는 라디오와 그 말에 더불어 영상까지 보여주는 TV, 음식을 안에 넣으면 차갑게 해주는 냉장고, 그 외 기타 등등 전기가 사용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리고 해방 후 늘어나기 시작한 태양광 지붕까지 말이다. 전기의 사용은 유행처럼 들붙었다. 부유한 이나 일본인 가정이라면 쓸 수 있는 전기를 한국인들이 접해보고 사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너도나도 전기를 쓰기 시작한다. 돈이 없으면 이웃끼리 돈을 모아서 쓰기도 하였다. 태양광 전지 하나면 다섯 가구가 전기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부잣집에서는 마당에 TV 한 대를 놓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기도 하였다. 박태식의 여동생들은 그런 TV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박태식은 전기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의 편리한 삶, 신비하기 그지없는 물건들. 자신으로써는 꼭 밝혀보고 싶은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대학에 교육을 받고 다니는 것 자체가 무료이고, 오히려 생활비를 준다고 하니 박태식은 마음걱정이 없었다. 그리고 아까 전에 들었던 대학 총장 봉필현의 연설은 박태식의 마음을 울렸다.

‘그래. 후회없이 배워보자.’

이미 환경은 갖춰져 있다. 가르치는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와 지식 탐구에 대한 의욕일 것이다. 박태식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건물 복도 벽에 붙여진 ‘전기전자공학과 신입생들은 이 쪽으로 오시오.’라는 내용이 적힌 벽보를 따라 어느 한 강의실 안에 들어갔다.

그 곳 안에는 책상들과 의자들이 있었고, 박태식은 염치 불구할 것도 없이 빈자리들 중 하나에 앉았다. 나윤미는 박태식 옆에서 앉아서 그를 향해 말한다.

“호호. 이렇게 있는 것 보니까 같은 과네요.”

박태식은 나윤미의 말에 ‘괜한 우연이군.’이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어떤 이는 우연이 모이면 필연이라고 말을 하는데, 박태식은 그 말을 잘 믿지 않았다. 우연은 우연일 뿐이다. 다만 처음 이 곳에 오고, 또 같이 다니고 배우는 입장인 만큼 조금 친해지면 상관이 없었다.

“아 예. 하하하.”

박태식은 그저 뒷머리를 긁적이며 나윤미에게 화답할 뿐이었다. 처음부터 너무 익숙한 것처럼 말을 붙일 정도의 친근감은 박태식에게 없었다. 박태식은 그저 나윤미의 질문에 대답할 뿐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는 동안에 강의실에 한 사람이 들어온다. 강의실 안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방의 앞문을 통해 당당히 걷는 그 젊은 남성을 지켜본다. 나이는 짐작하지 못하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그 남성이 자신들을 가르치기에는 상당히 어려보인다고 생각했지만 박태식은 달랐다.

‘저 사람은...’

자신이 처음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남성이었다. 대학 관계자라고 말을 들었는데, 아무래도 진짜인 것 같았다. 그 젊은 남성은 곧 칠판과 강단 사이에 서 더니 이내 몸을 돌려 좌석에 앉아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더니 능글거리는 얼굴로 말한다.

“흠. 이거 꽤 많네.”

박태식이 이름을 알기로는 송감연이라고 불리는 인물은 자신을 포함한 학생들을 향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무슨 말을 할지 뭔가 고민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 때, 박태식은 뭔가 생각한다.

‘송감연이라고... 설마...’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는 박태식은 그저 그런 이름으로 기억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저 남성이 설마 그 유명한 인물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의문은 저 젊은 남성이 말하면서 풀어주었다.

“반갑군. 나에 대해서 들어본 사람이 어느 정도 있을 것이라 믿지. 난 이 대학의 정교수인 송감연이라고 하지.”

순간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웅성웅성 대기 시작한다. 과학에 별반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송감연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지금 이 곳 대학에 온 이상 송감연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잡지 과학조선 정도는 읽어보는 사람들이 여기에 입학했기 때문이다.

그 잡지에서 소개된 송감연은 진정으로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의 인물이었다. 과학 관련 업적에서 수많은 행적을 남기고, 중국에서는 억 명을 먹여 살리는 인재라는 뜻인 억생재라는 칭호까지 있는 사람이었다. 무기는 물론, 기계, 화학, 전기전자, 생물, 농학, 과학 행정 체계 기타 등등 그는 무에서 유를 만들었던 사람이었다.

“송감연 박사라고...?!”

“우리를 가르치는 사람이...”

“대... 대박이야... 대박...”

“저 사람 우리랑 거의 같은 나이라고 들었는데...”

“나이 같으면 뭐해? 우리와는 이미 급 자체가 다른데...”

“저 사람 밑에서 배웠던 사람들이 수십, 수백, 수천 명이 된다는 말도 있던데...”

학생들의 수군거림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박태식 옆에 앉아있는 나윤미 역시 놀란 얼굴로 감연을 쳐다보더니 이내 박태식에게 말한다.

“정말로 송감연 박사인가봐요... 제 언니에게 간단하게 들었는데...”

“으음... 저도 대략적인 것을 알고는 있지만...”

박태식은 오늘 여러 번 충격 먹었다. 아까 있었던 연설도 그렇지만 지금 대문에서 대화를 했던 사람이 저 사람이라는 사실이 말이다. 그 때, 감연이 박태식의 얼굴을 보고 마치 장난감을 보는듯한 미소를 짓는다.

“어라. 너 이 전기전자공학과 소속이냐?”

친근하게 내뱉는 감연의 말에 박태식은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라는 감정이 나옴과 동시에 저런 경박해 보이는 인물이 그 유명한 인물과 동일인물인가? 라는 감정이 들기도 했다. 감연은 대답 없는 박태식을 보고 한 마디 말한다.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어. 얌마. 내 질문에 대답 안 함?”

“으음... 예... 그렇습니다.”

“오 그래. 잘 됐네.”

순간 강의실에 자리를 잡은 학생들의 눈빛이 박태식을 향해 집중한다. 두 사람 간에 뭔가 면식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자기들 머릿속에 두 사람의 관계를 유추해보는 동안에 감연은 박태식을 향해 질문해나간다.

“이야. 잘 됐네. 너 입학 시험지에 꽤 특이한 답을 썼더라. 그 10진법에 관련된 문제 말이야.”

그 말에 박태식은 순간 입학 시험지를 풀 때를 기억해나간다. 그 때, 문제를 읽는 동안 입학 시험지를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생각이 안 났다. 그냥 아무렇게 적고 다음 문제로 넘어가자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냥 인간 손가락 10개니까 그럴듯하게 적고 넘어간 기억이 남아있다. 그런데 저 감연이라는 교수가 그런 것을 잡아낼 줄은 몰랐다.

“저... 그게...”

“뭘 또 당황하고 그러냐? 그냥 흥미로웠을 뿐이야.”

“그... 그렇습니까?”

“그래. 그 것 뿐이야. 아참. 중요한 것을 알려줄 때가 왔지. 내 정신 좀 봐라. 여기 주목해봐. 주목.”

‘주목’이라는 단어에 순간 강의실에 앉아있는 학생들의 시선은 감연에게 집중했고, 감연은 귀찮다고 투덜거리며 옷 속에서 무슨 종이를 꺼내 내용을 읽기 시작한다.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있어서 전달하는데. 학기가 끝날 때마다 점수를 정산하는 것 잘 알지?”

자신의 말에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감연은 싱긋 웃고는 계속 말한다.

“그래. 잘 알고 있네. 가장 중요한 핵심은 절대 평가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지? 여기서는 경쟁이란 존재하지 않아. 턱걸이를 넘는가 안 넘는가가 중요할 뿐이지. 경쟁이라는 것이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렇다고 여기서 배운 인간에게 경쟁에 뒤쳐졌다고 꺼지라는 말을 하기에는 너무 냉혹하지 않냐? 그래서 우리는 절대평가로 간다. 그러나 이거 하나는 말해두지. 통과점수를 넘지 못하면 그 사람은 배울 의지가 없다고 간주하고, 쫓아 보내겠다.

왜냐하면 이 곳은 그저 학생들을 놀고먹기 위해 돈을 쏟아 붇는 곳이 아니거든. 물론 이 말을 흘려듣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 나 역시 잘 알고 있지. 여기서 배우는 과목들은 너희들이 생전 모르는 단어들과 공식들, 그리고 머리가 아파질만한 것들이 많아. 하지만 관심과 또 재미를 느낀다면 그 것만큼 보람찬 것이 없을 거야. 그리고 일정 점수를 넘겼다고 다 끝인가? 그래 끝이야. 끝이지. 계속해서 학기를 넘기며 배울 수 있어.

하지만 그렇게 말한다면 전부 다 통과점수만 넘기는데 신경 쓰겠지. 그래서 단계별로 나아간다. 평점제도라는 것이 있어. 통과점수 60점을 넘겼으면 그 사람은 당연히 ‘정’급이야. 그리고 70~80점 사이는 ‘병’급, 80~90점 사이는 ‘을’급, 90~95점 사이는 ‘갑’급, 95점에서 만점까지는 ‘최갑’급. 이해가 가지? 평점이 높을수록 그 사람은 차후 졸업했을 때, 유리해진다.

그리고 그 평점이라는 제도는 각 배우는 과목마다 적용된다. 점수의 체계는 시험과 수행, 태도가 있어. 태도는 그저 남들의 학습을 방해했을 때, 깎는다. 그 외에는 없다. 태도 점수는 기본적으로 다 10점씩 들어가니까 상관없다. 그래서 시험, 수행이 중요하지. 시험은 알다시피 중간 20점, 기말 20점 씩 들어간다. 여기서 중간고사에 100점을 맞았다한들 전체 정산점수에는 중간 20점이 들어가지. 기말 역시 마찬가지야. 그리고 수행, 수행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거다.

수행이라는 것은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들을 직접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이니 말이야. 그저 책의 내용만 달달 외운다고, 과학에 발을 들일 수 있을까? 과학에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가 중요하지. 그리고 수행의 점수는 50점이야. 거의 반을 차지하는 것이지. 통과점수 60점, 수행과 태도만 만점 받고, 시험에 신경 안 써도 통과할 수 있지. 내 말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그 말에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 때, 감연은 귀찮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도 잊어버릴 사람이 있으니 종이로 나눠주지. 어이.”

감연은 강의실에 들어올 때부터 가지고 나온 종이들을 박태식에게 건네준다. 박태식은 순간 당황하다가 이내 무언가를 깨닫고는 얼른 종이들을 옆 사람, 뒷 사람에게 넘겨준다. 그렇게 앉아있는 학생들 전원 종이를 받을 수 있었다. 그 종이에는 감연이 말했던 내용과 똑같이 적혀 있었다. 박태식은 이 종이의 내용을 보고도 순간 한 가지 생각을 한다.

‘아니 이럴 거면 그냥 종이를 나눠주지. 왜 설명을 하지?’

박태식이 그런 불만스러운 의문을 품을 때, 감연은 그런 의문을 풀어주는지 학생들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내가 안 말해주면 이 종이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서 아까 설명했다. 사람 아니 모든 동물들은 귀찮음을 가지고 있지. 내가 말을 안 했으면 이 종이는 그냥 똥 닦는 휴지로 쓸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 말에 학생들은 풋 하고 웃는다. 감연의 농담 아닌 농담에 웃은 것이다. 박태식은 ‘그런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저 감연의 눈을 보니 감연은 마치 이 일을 한 두 번 겪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 바로 기숙사에 대해서 말해주지.”

순간 학생들의 눈빛은 반짝이기 시작한다. 기숙사. 아마 많은 학생들이 이 대학을 입학하게 된 계기가 바로 돈에 구애받지 않고, 생활하고, 배울 수 있는 환경 때문일 것이다.

어느 대학교나 그러듯 그 곳에 입학하게 되면 돈을 요구했다. 현재 먹는 것조차 걱정해야할 사람들의 형편에 자신의 아이들을 대학교로 보내는 것은 사치나 다름없었다. 아니 가족의 생존도 장담할 수 없었다. 물론 대학교로 들어가 배우고, 위로 올라가겠다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가난 때문에 대학교에 가기 주저했다.

물론 그런 형편 때문에 대학교에는 장학금이라는 것이 있었지만 장학금으로 숙식을 해결해야 했기에 빠듯했다. 그리고 또한 장학금을 매번 탈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배움에 목마르면서 동시에 가난이라는 족쇄를 달고 있는 이들은 동현대학교라는 곳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배우는 것 공짜, 자는 것 공짜, 식비 공짜, 또 성과에 따라 생활비 지원까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입학한 사람들은 이 것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할 것이다. 자신이 위로 올라가 자신의 가족들을 보살피게 해주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기회 말이다.

강의실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눈빛이 열망 적으로 변하자 감연은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표정을 지으면서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 건물의 사무실에서 너희 학생들에 대한 인적사항들을 기록해두고 있을 것이야. 그리고 그 인적사항을 기본으로 기숙사의 호실까지 정해졌지. 남녀 혼숙은 불가야. 남자는 남자끼리 생활하고, 여자는 여자끼리 생활한다. 다만 그렇다고 하여도 남녀 두 사람이 만나서 사귀는 것까지 통제할 수 없지. 그리고 사이가 넘어서면 어쩔 수 없이 결혼하는 때가 오게 될 것이고. 그 때 되면 나에게 말해라. 기숙사 말고, 그 사람들에 한해서 지낼 수 있는 것을 알아보지.

난 그 돈만 밝히는 인간을 잘 알고 있거든. 한 마디로 나에게 배경이 있어. 배경이. 뭔 말 이해가지? 즉 부부로 맺어진 사람들에 대해 지원할 수 있는 권한이 나에게 있다고.”

학생들은 그 말에 순간 수군수군 거렸다. 이렇게 파격적으로 대우를 해주다니 학생들 눈동자에서는 이 대학에 대한 충성심이 생겼다. 그러나 그런 충성심에 찬물을 끼얹는 이가 바로 감연이었다.

“아. 그렇다고 너무 좋아하지는 마. 그럴만한 대우에는 이유가 있으니 말이야. 너희들은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낼 거야. 그리고 후회하게 되었지. 아 젠장. 그냥 아버지 옆에서 농사 거들고 도와줄 걸. 왜 이딴 곳에 와서 오만지랄을 다 떨고,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 라고 말이야. 난 거짓말 안 해. 이건 진심이자 현실이야. 너희들은 엄청 힘들 거야. 내 장담하지. 도중에 포기하고 싶으면 나에게 말해.”

그 말에 학생들의 얼굴에는 ‘미쳤냐? 이 좋은 기회를 두고, 여기서 포기하고 나가게.’ 라는 의지가 담겨져 있었다. 그러나 감연 역시 만만치 않았다.

“지금이야 알 수가 없겠지. 시간이 지나면 확실히 알 수가 있어. 너희들의 수척한 얼굴과 눈 밑이 검게 변한 모습들이 내 눈에 보이겠지. 순간 걸어 다니면서 말할 거야. 아 이 딴 데 왜 왔지?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라고 말이야. 하여튼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알려주지. 이해되었지?”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속으로는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이런 좋은 곳을 포기하는 사람이 바보이고, 멍청이였다. 박태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힘들다고 한들 내 동생들이 굶어서 우는 것보다 힘든 것이 있겠어?’

그리고 박태식은 이 곳에 생활하고 한 학기 내에 그 말에 대해서 필히 후회하게 되었다.

하여튼 감연의 전반적인 설명이 끝나고, 박태식을 포함한 학생들은 강의실 밖으로 나가 복도를 걸어간다. 그들이 갈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바로 전기전자공학과의 사무실이었다. 학생들의 숫자가 많고, 사무실은 그만큼 좁은지라 자연히 사무실의 출입구에 줄이 생기기 시작했고, 박태식은 그 줄에 섰다. 나윤미는 박태식의 뒤에 선 다음 물어본다.

“그... 기숙사는 어떤 곳일까요?”

순수하게 물어보는 그녀의 질문에 박태식은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한다.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지만 공짜라 하니 아마 한 방에 겨우 잘 수 있는 침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지 않겠습니까?”

나윤미는 박태식의 말에 자신 역시 상상이 간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박태식에게는 그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 아니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기숙사에서 지내는 것에 대해 무료로 해주는데 그 기숙사가 어느 고급 주택처럼 되어 있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도둑놈 같은 발상이었다.

나윤미와 대화를 하다 보니 줄은 하나씩 줄기 시작했고, 박태식은 곧 사무실에 들어가 등에 기대어 앉아 서류를 보고 있는 한 남성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박태식의 얼굴을 보더니 한 마디 말한다.

“이름은?”

“박태식입니다.”

“생년월일.”

“1929년 3월 17일입니다.”

“양력이냐? 아니면 음력이냐?”

“음력입니다.”

“그래?”

그는 서류 옆에 있는 달력을 보더니 이내 음력 3월 17일에 해당하는 양력을 찾고는 기입했다. 그리고는 박태식을 향해 말한다.

“공민증을 볼 수 있을까?”

그 말에 박태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자신의 낡은 지갑을 꺼내더니 그 지갑 속에 있는 공민증 플라스틱 카드를 남성에게 건넨다. 그 남성은 곧 박태식의 공민증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공민증을 박태식에게 돌려준다.

“확인되었어. 이건 자네의 수강표야. 처음이니 우리가 임의로 짰어. 하지만 다음 학기 때부터는 학과 수강에 대해서 자네가 알아서 짤 수 있고, 아니면 우리에게 부탁을 해. 그럼 알아서 짜주지.”

그 말에 박태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자네 기숙사의 호실이야. 받아.”

남성이 열쇠를 박태식에게 건네주었고, 박태식은 그 열쇠를 확인해보니 그 열쇠에는 ‘1209호’라고 적혀 있었다.

============================ 작품 후기 ============================

아 왠지 박태식 소설 같은 느낌이 드네요. 제길 빨리 대학 설명 넘어가고, 본편 진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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