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444화 (44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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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사실 병윤이 유지들에게 건네준 서류의 내용은 간단했다. 장성환 국회의원 후보가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된다면 자신의 토지들을 즉각적으로 소작농들에게 분배를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유지들이 장성환을 국회의원 당선 후원을 해준다는 의미와 똑같았다.

유지들은 이 서류를 보자마자 그걸 알아차렸기에 굳은 표정으로 서로를 향해 수군거리는 것이고 말이다. 그러나 그런 유지들의 행동을 이미 예상했는지 병윤의 표정은 상당히 평온했다. 병윤은 그들에게 이미 미끼를 던지고 건져 올리고 있었다. 저들이 빠져나갈 구멍은 찾기 힘들었다. 유지들 중 한 사람이 병윤을 보고 한 마디 말한다.

“아까 회장님께서 우리들에게 줄 대가는 돈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은 즉 우리들이 가진 토지의 가격을 제대로 쳐준다는 의미로 알면 되겠습니까?”

병윤은 그 말에 빙그레 웃으며 대답한다.

“예. 그런 뜻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당신들 중에는 이 미래 없는 사업에 투신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으로 알고 이렇게 제안을 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저는 여러분들이 이 사업에 미련 없이 발을 빼드리게 만들고 싶습니다.”

그 말에 아까 질문을 던졌던 유지는 으음 침음을 흘리더니 이내 병윤을 바라보며 한 마디 질문을 던진다.

“우리들을 생각해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합니다. 그러나 꼭 우리가 이 사람을 후원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다만 생각해보면 제가 여러분들에게 토지를 매입해서 동협 그룹의 이름으로 장성환 국회의원 후보자를 후원해도 상관이 없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이건 여러분들에게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유지들은 병윤의 대답에 수군거리면서 한 사람이 병윤을 바라보며 묻는다.

“기회라니 어떤 기회입니까?”

병윤은 그 물음에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적어도 자신들은 농민들을 위한다는 명분을 얻지 않겠습니까?”

명분이라는 말에 유지들은 수군거리다가 그들 중 한 명이 병윤에게 대답한다.

“흐음...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회장님이 후원하는 회원에게 큰 힘이 되는 동시에 우리들 역시 명예를 얻는다는 그 말씀이시군요.”

병윤은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 사람에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잘 이해하셔서 기쁩니다.”

유지들은 그 말에 다시 한 번 수군거린다. 자신들에게 해가 될 것은 없었다. 어차피 사실관계는 치환되지 않겠나 싶었다. 유지들은 곧 서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더니 이내 결론을 내렸고, 유지들 중 한 사람이 대표로 나서 병윤에게 말한다.

“좋습니다. 회장님이 우리들을 보살피는 것도 있고, 또 도와드리는 것이 많으니 우리들 역시 회장님의 은혜를 갚아나가는 것이 도리이겠지요. 이 서류의 내용을 따르고, 장성환 국회의원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의사를 밝히겠습니다.”

병윤은 그 말에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하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좋은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해나갈 것입니다. 이번에 제가 여러분들에게 빚을 지워드렸군요.”

병윤이 그렇게 말을 하자 유지들 역시 기쁜 표정들이었다. 일단 일은 잘 진행되었고, 그렇게 유지들은 이제 지주 신세를 그만두는 것으로 결정을 내린다.

시간이 조금 지나, 이 결정사항들은 문경의 중소지주였던 간씨 일가에도 전해졌다. 간병철은 침착한 얼굴로 송수화기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는 대답한다.

“흠 그렇게 이야기가 결정되었습니까?”

-그렇게 되었어. 이제 자네도 지주 신세를 털어야 되지 않겠나?-

“그거야 그렇지만 이렇게 빨리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까?”

-자네 지주 신세를 그만둔다는 것에 무지 아쉽다는 말투인 것 같군.-

“으음. 그거야...”

-흥. 자네 아들의 형편을 생각해봐. 이미 그 이는 동협 그룹의 중추가 되었어. 여전히 떵떵 거리며 지낼 수 있을 텐데 왜 이리 욕심을 부리는지 모르겠군.-

“아니. 하지만...”

-뭐 긴말할 것은 없지. 난 자네에게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이지. 선택을 강요하는 사람은 아니니 말이야.-

그 말에 간병철은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저 역시 이에 동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네. 오히려 우리는 자네 가문이 참으로 부럽다네.-

“...... 이야기는 그 것뿐입니까?”

-자네도 어차피 지주 신세를 털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게나. 나나 자네나 어차피 일찍 발을 뗀다고 생각하면 되네.-

그 것으로 전화의 내용은 끝이 났다. 간병철은 조용히 송수화기를 제자리에 갖다놓고는 휴우 크게 한숨을 내쉰다.

‘땅을 소작농들에게 분배를 한다라...’

이미 한반도가 일제에게서 해방이 되고 난 후부터 자신은 줄곧 지금까지 그런 예상을 했었지만 지금이 그 때 인줄은 정말로 몰랐다.

‘어차피 지주 인생은 시간이 갈수록 끝장날 수밖에 없다.’

경성에 아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토지개혁은 시간상의 문제일 뿐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고 했다. 그 사실을 지금까지 가슴 속에 새겨놓았던지라 간병철에게 있어서 아까 전화로 인한 충격은 별로 없었다.

-드르륵-

그 때, 한 여인이 문을 밀고 방 안에 들어오더니 간병철 앞에 앉아 고개를 조아리며 한 마디 말한다.

“부르셨습니까? 시아버지.”

간병철은 생각을 끝내고, 자신 앞에 앉은 한 여인을 살펴본다. 자신의 아들 간성호의 아내 조신혜였다.

“그래. 잘 왔다. 이야기는 들었겠지?”

“그 장성환 국회의원 후보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래...”

간병철은 씁쓸한 얼굴을 짓는다. 자신은 장성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옛날에 그는 자신의 집에서 소작을 하던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사람 인생이라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한낱 소작을 하던 이가 자신의 친우 덕분에 소작농 신세를 그만두고, 공부를 해서 이번에 국회의원 후보가 되니 말이다.

“아까 내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더군. 그들은 이제 지주 노릇을 그만둔다고 하였어.”

순간 조신혜의 얼굴에는 놀람으로 가득하며 간병철에게 되묻는다.

“예에?! 그게 참말입니까?”

“참말이지. 어차피 예상하고도 남은 일이야. 시간이 지나면 토지는 강매될 수밖에 없어. 이럴 바에야 이번 기회에 온전히 손을 털고, 내 아들이 추진하는 방향대로 가는 것도 나을지도 모르지.”

조신혜는 그 말에 입을 닫고, 조용히 생각을 거듭하며 시간을 소모한 후 자신의 시아버지 간병철에게 대답한다.

“제 지아비에게는 그렇게 말씀을 해놓겠습니다.”

조신혜의 대답에 간병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 말을 흘린다.

“그래. 그건 그렇고...”

간병철의 눈매는 상당히 날카로워지면서 조신혜의 얼굴을 노려본다.

“내 딸 성은이의 행방은 아직도 밝혀내지 못했나?”

조신혜는 그 말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이내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저 역시 잘 모릅니다. 저에게 편지조차 없는 아이입니다.”

조신혜의 대답에 간병철의 얼굴은 일그러지다가 이내 크게 한숨을 내뱉으며 한 마디 말한다.

“어차피. 잘 된 일일지도 모르지. 난 그 아이에게 좋은 아버지가 아니야. 그 아이의 인생은 그 아이가 결정하는 것이 좋을지도 몰라.”

간병철의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조신혜는 묵묵부답의 반응을 내보인다.

“......”

간병철은 그런 조신혜의 반응이 짜증났는지 한 마디 말한다.

“쯧. 안 되겠군. 내 자식대가 아니라면 내 손주 대에 한 번 이용해보는 수밖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며느리는 알겠는가?”

조신혜의 얼굴은 간병철의 말에 순간 섬뜩해진다. 이미 자신의 아이는 아들 하나, 딸 하나 이렇게 있었다. 그런데 간병철은 선언하는 것이다. 그 아이를 정략결혼을 시키겠다고 말이다.

“성은이가 그 쓰임을 다 하지 못하고, 집안을 나가버렸으니 이 일을 벌인 며느리가 책임져야 하지 않겠나?”

조신혜의 얼굴은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제 지아비는 허락하셨습니까?”

“그 녀석은 이미 동의하였지.”

간병철의 말에 조신혜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 말은 반쯤은 동의한다고 알고 있겠다. 이만 물러가 보거라.”

조신혜는 그 말에 간병철에게 고개를 조아리고는 이내 방 밖으로 나간다.

1948년 4월 6일, 제주도 남로당 무장대의 본부 건물 안에 있는 한 회의실 안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가득했다. 남로당 제주도 지부 총책임자이자 무장대의 사령관이라고 할 수 있는 김달삼은 한 가지 소식을 건네받고는 연신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이번 사건으로 경찰들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부대를 이쪽으로 투입한다고?”

전령으로 보이는 한 무장대원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현재 전라도에 주둔 중인 한 광복군 연대가 이 쪽으로 파견하기로 하고, 제주도에 주둔한 군부대와 경찰들이 우리 무장대원들을 수색하고 있습니다.”

“그거야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것보다 문제는 군경들이 그 헬기라는 것을 이용하는 바람에.”

헬기라는 단어에 김달삼은 한 쪽 눈을 치켜들며 묻는다.

“헬기?”

“작년 11월부터 배치되는 헬기들을 이용하여 정찰하고 다닌다 합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걱정이라도 되는 것이냐?”

“그 헬기라는 것이 하늘을 나는 기계라 하늘 위에서 정찰하고 다닙니다.”

“하늘 위에서 정찰을? 흐음...”

“그래서 현재 무장대원들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쯧.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겠군. 그 헬기라는 물건이 밤에도 유용한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우리 동무들의 생사가 위급할지 모르는 일인데. 그런 것도 못 알아오는 것인가? 동무. 제정신인가?”

김달삼의 말에 전령은 침음을 흘리고는 아무런 대답을 못했다. 그런 전령의 모습에 짜증이 난 김달삼은 손으로 휙휙 저으며 말한다.

“물러가봐.”

“예. 동무!”

전령이 부리나케 물러가자 김달삼은 한창 생각에 빠졌다. 3일 전에 행한 습격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곧바로 군경들이 대처를 하기 시작했다.

‘끄응. 헬기라. 하늘 위로 정찰을 하고 다닌다면 보통 큰일이 아니겠는걸.’

김달삼은 곧 토벌을 나온 군경에 대해 대처방법을 생각해낸다.

한편 같은시각, 제주도 해안지대에 위치한 한 건물에서 광복군 제주도 주둔 15연대의 연대장 박효영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지금 경찰복장을 갖춘 중년 남성과 양복을 입은 중년 남성에게 한 마디 말한다.

“산 중간에 있는 사람들을 해안에 소개하는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소개하고도 남는 사람들을 제거하라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경찰복장을 입은 중년 남성 조효준이 박효영을 설득한다.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 우선 해안지대에 소개를 했는데도 자리를 뜨지 않는 사람들은 곧바로 남로당 무장대를 지원하는 사람들로 봐도 무방하지 않겠습니까? 남로당 무장대가 이 곳에서 설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런 빨갱이들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약 이들을 처리하지 않고, 무장대만 친다고 한들 시간과 비용만 들고, 또 피해만 커질 뿐입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막 죽이겠다는 소리를 하시는 것입니까?!”

박효영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조효준의 얼굴은 변화가 없었다. 조효준은 오히려 박효영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할 뿐이다.

“아니 그러면 그대로 민간인들 속에 숨은 적들이 우리들을 공격할 때까지 놔두는 것입니까? 그리고 그들을 온전히 품어서 강제로 해안지대로 소개한다고 한들 민간인들 속에 숨인 적들이 잘만 가만히 있을 것이라고 당신은 생각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무장대를 격멸시켜야 합니다.”

“만약 그런 행위를 하다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세상에는 무고함 따위는 없습니다. 민중들은 순진무구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우리말에 따르지 않으면 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은 적들을 보살피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박효영은 그 말을 듣고, 조효준을 노려본다. 두 사람 간의 눈빛 사이에는 험악함이 오고 갔다. 그 때, 가만히 앉아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양복을 입은 중년남성이 두 사람 간에 끼어들며 말한다.

“무장대를 어떻게 토벌할지 또 어떻게 힘을 합칠지 의론을 해도 모자를 판에 지금 군경이 서로 다투어서야 되겠습니까?”

그 말에 두 사람의 험악한 눈빛은 그만두지만 서로를 업신여기는 눈빛은 여전했다. 그 때, 양복을 입은 한 중년남성이 박효영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우선 급한 것은 무장대를 잡아서 이 혼란을 끝내놓아야 됩니다. 그러니 박영효 연대장님. 이번에는 당신이 한 번 양보를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박효영의 얼굴에는 그 말을 듣자마자 붉어진다.

“아니. 그럼 나보고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는데 동조하라는 말입니까?”

“그들이 무고한지 안 무고한지는 당신이 어떻게 압니까? 그리고 5월 10일 총선거까지는 이제 한 달을 앞두고 있는데. 빨리 토벌하고, 혼란을 잠재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효영은 그 말에 입술을 씹는다. 박효영은 그 말에 휴우 한숨을 내뱉고는 두 사람에게 한 마디 말한다.

“제가 동의하는 것은 해안지대 소개뿐입니다. 다만 우리 연대는 금족구역 안에 있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말에 조효진이 벌떡 일어나더니 큰 소리로 박효영에게 외친다.

“뭐! 이 빨갱이 새끼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그 말에 박효영 대령 역시 노한 표정으로 조효진을 노려보더니 외친다.

“빨갱이라고? 지랄하지 마. 이 학살자 새끼야. 사람들을 도살하는 일에 나와 내 사람들을 끌어들이려고 하는가?! 그리고 감히 날 빨갱이 취급하다니. 진짜 죽고 싶어서 이러는 것이냐!?”

양복을 갖춘 사람은 두 사람 간에 터진 험악한 반응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한숨을 푹 내쉰다. 두 사람 간의 다툼은 자신의 제지에도 멈출지 몰랐고, 결국 그 두 사람을 머리를 식히라는 의미로 밖으로 내보냈다. 그 때, 그 사람의 비서가 한 마디 말한다.

“지사님. 동북청년회 사람들이 이번 일에 토벌대로 나서겠다고 합니다.”

“동북청년회?”

“예. 공산세력을 격멸하기 원하는 단체입니다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기는 만나봐야지.”

비서는 그 대답에 곧 동북청년회 관계자를 데리러 밖으로 나간다.

============================ 작품 후기 ============================

아 더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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