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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박정배를 조장으로 한 무장대원들은 집들을 일일이 뒤지기 시작한다. 이미 이 집 안에 있던 마을사람들은 박정배가 바라보는 저 불덩이 속에서 재가 되고 있었다. 불덩이 속에서 휩싸인 사람들은 뭐가 그리 억울한지 한 많은 표정으로 불타 연기가 되고 있었다.
곽정갑은 박정배를 멍하니 보더니 이내 한 마디 말한다.
“꼭 그래야만 했습니까?”
“......”
“꼭 그래야만 했냐고 물었습니다.”
거듭된 곽정갑의 물음에도 박정배는 대답이 없었다. 그런 박정배의 반응에 곽정갑은 감정이 격해졌는지 자동적으로 몸이 움직여 박정배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외친다.
“꼭 그래야만 했습니까?!”
박정배는 그 말에 한숨을 푹 쉬며 곽정갑에게 대답한다.
“내 대답을 듣고 싶은 것이냐?”
“전 물었습니다. 저 무고한 사람들을 저렇게 잔혹하게 불태워 없애야만 했습니까? 어떻게...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는 것입니까?”
“아까 말했지. 넌 어리다고. 어른 일에 끼어들지 않는 것이 좋다고.”
“어른 일이라는 것이 인륜을 저버리는 것입니까?”
“이미 남자아이를 죽였다. 그리고 그 뒤에 어떻게 될 것 같냐?”
“굳이 그 아이의 시체를 곧이 묻어주고 떠나면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 넌 이해 못할 거야.”
“......”
곽정갑은 대답하지 못한 대신에 몸이 부들부들 떨었다. 박정배는 그런 곽정갑의 어깨를 잡으며 한 마디 말한다.
“어떤 이념이든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적들의 심장과 피를 갈아 마시는 것뿐만 아니야. 이런 운 안 좋은 사람들까지 희생될 수 있는 것이지.”
“그러고도 혁명을 이루고 싶은 것입니까?”
“정당화는 하지 않으마.”
“...... 당신은 미쳤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미치는 존재야. 이런 때일수록 말이야.”
“......”
곽정갑은 박정배를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박정배는 그런 곽정갑의 뒷모습을 보면서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그 때, 박정배를 향해 살갑게 다가오는 한 무장대원이 있었다.
“정말 조장님은 대단하십니다.”
박정배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아까 마을사람들을 학살할 때 보이는 그 광기가 담겨져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웃고 있었으며 그에게서 피 냄새가 풍겼다. 박정배는 바닥에 침을 탁 뱉고는 그에게 한 마디 말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정진용.”
“하하. 민중들을 살핀다는 조장님께서 그런 일을 벌이지 않았습니까?”
“이런 근본적인 사태에 네놈이 먼저 벌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명령을 내린 것은 조장님입니다. 조장님 역시 제 의견과 행동에 동조하지 않았습니까?”
박정배는 그 말에 이를 뿌드득 갈고는 허리춤에 권총을 뽑아 정진용의 이마를 정조준하고는 말한다.
“저 억울한 사람들에게 말동무가 필요한 것 같군.”
정진용은 그 말에 오히려 웃으며 박정배를 바라본다.
“흐흐흐. 조장님은 저를 못 쏠 것입니다. 조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런 때일수록 이런 일이 빈번하게 생길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 역시 그런 인간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거냐?”
“흐흐흐. 명령과 행동에 옮긴 것은 누구였습니까?”
박정배는 그 말에 이빨을 뿌드득 갈고는 이내 정진용의 이마에 정조준하던 권총을 다시 자신의 허리춤에 넣는다.
“나 역시 죽을 때 곱게 죽지는 않겠지만 너 역시 곱게 죽지는 못할 거다.”
정진용은 그 말에 오히려 위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이미 그런 일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꺼져. 너랑 이야기할 시간 따위는 없다.”
“흐흐. 다시 뵙겠습니다.”
정진용은 이내 박정배에게 인사를 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무장대원들은 사람들을 태우는 불구덩이를 보면서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 잡혔다. 여기 중 소수의 사람들은 엄청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 때, 집집마다 물자들을 수거하려던 무장대원들이 돌아와 박정배에게 보고한다.
“마을을 전부 뒤져서 우리들이 필요한 물자들을 들 수 있을 만큼 찾았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박정배는 뭐라 말 할 수 없는 그런 표정을 짓더니 무심한 어조로 그 질문에 대답한다.
“마을을 불태워서 평지로 만든다. 원래부터 여기는 마을이 아니라 평지였던 것이야.”
“예에...”
무장대원들은 그렇게 얼빠지게 대답하고는 마을들을 방화하러 간다. 그런 모습을 본 박정배는 속으로 생각한다.
‘난 죽을 때, 편히 죽지는 못하겠지.’
지금 박정배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것에 대해서 박정배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과 그 가족 역시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이 있는 만큼 박정배의 속은 그야말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무고한 이들의 원혼에 휩싸여 난 죽을 때도 편히 죽지 못할 거야. 분명히.’
어떻게 합리화를 하던 간에 자신은 이미 선을 넘었다. 아마 박정배는 이 뒤의 삶이 상당히 복잡하고, 또 불행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박정배는 무고한 사람들을 태우는 불길을 계속 지켜본다.
새벽에 박정배의 무장대원들이 무고한 학살을 벌이고 이제 해가 뜬 낮이 되었다. 이미 그 곳에는 박정배를 비롯한 무장대원들은 철수하고 남았다. 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군경과 토벌대들은 이 모습을 보자 씁쓸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흔적들을 본 한 경찰관은 뭐라 말을 못한다.
“마을사람들이 다 여기에 있었어.”
그 경찰관의 말에 동료 경찰관이 화난 얼굴로 그에게 말한다.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지?”
그 물음에 오히려 그 경찰관은 더더욱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우리가 더 심하게 하지 않냐?”
“그래도 넌 이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냐?”
“쯧. 경찰직도 못해 먹겠어. 이런 꼴을 지켜보는 것도 있지만 우리 측에 무고한 사람들이 학살당하는 것도. 지긋해.”
“아니. 그건 빨갱이들을 죽인 것뿐에 불과하지만 저건 무고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고도 네 녀석이 경찰이냐?”
“마음대로 생각해라. 우선 지금 할 일들은 저 희생된 사람들을 수습하는 것이 급우선이라고 생각하는군.”
“그 말 한 번 잘했군.”
곧 경찰관들이 수습을 하기 시작한다. 마을 풍경을 살펴보던 토벌대들 중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보고를 한다.
“마을 안에 있던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 말에 그 보고를 받는 30대 남성은 심심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래? 아쉽군.”
“......”
“쯧. 남아 있으면 빨갱이로 몰고 기분이나 풀 텐 데 말이야.”
함청박의 말에 보고를 올린 이는 소름이 돋았다. 함청박은 아쉬운지 마을 안을 살핀다. 사실 함청박을 포함한 동북청년대 토벌대 역시 무장대와 마찬가지로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는 편이었다.
함청박은 사람들을 죽일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 뭐라 말을 해야 할 지 자신이 살게 하는 가치를 느끼게 만들어 줬다. 사실 경찰들을 주축으로 함청박의 동북청년단이 포함된 토벌대들은 선거관리사무소가 설치한 마을을 중점으로 순찰하고 있었다.
물론 수상하다 싶은 마을 같은 경우는 토벌대가 앞서서 잿더미로 만들었다. 박정배의 무장대가 저지른 그 학살극처럼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토벌대 측이 꼬투리를 잡아서 몇 몇 인원들을 한해 잔학한 학살을 벌였다. 바로 빨갱이라는 명목으로 말이다.
현재 함청박의 손에는 피 냄새가 상당히 풍겼다. 그 피 냄새가 누구를 죽여서 풍기게 한 것인지는 따로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함청박에게 보고를 올린 사람 역시 속으로 그를 역겨워 했다. 자신 역시 빨갱이들을 상당히 미워하고 악으로 상정하여 학살에 한 몫을 하지만 저 함청박처럼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할 정도로 함청박은 매우 심했다.
‘휴우 어째서 우리들을 지휘하는 자식은 저런 자식이냐?’
자신 역시 무고한 이들을 죽인다는 것에 상당히 찝찝했다. 함청박의 명으로 한 마을의 사람들을 끌고 와 학살극을 벌였으니 말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죽창 끝에는 붉은 피들이 묻어 있었다. 아마 그 피들에는 무고한 사람들이 대다수 일 것이다. 빨갱이인지 아닌지 이념도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 중에는 이제 젖먹이인 아기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 아기를 함청박의 명에 의해 자신이 직접 찔러 죽였다.
‘나 역시 곱게 죽지는 못할 것 같아.’
아마 자신이 잠잘 때, 악몽으로 떠오를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자신은 선을 넘었다. 현재 저 함청박이 아쉬워하는 이유는 마을이 파괴되고 마을사람들이 죽어서 슬프다라는 그런 감정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느낄만한 학살극을 일으킬 대상들이 없다는 것이 더 적합할 지경이었다.
사건이 벌어지고 난 이 후의 제주도는 지금 한반도에서 일어난 혼란 사태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미친 사람들의 감정이 휘몰아치는 소용돌이로 뒤덮였다.
한편 같은 시각, 문경에서는 병윤을 포함한 문경의 유지들, 그리고 동협 그룹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문경에서 꽤나 지식인들이 포함된 일행들이 한 후보의 유세에 나서고 있었다. 바로 문경 을 지역에서 유일하게 출신이 유권자들과 대다수 같은 소작농인 장성환이었다.
장성환은 자신을 향해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목소리를 드높이며 말한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국회의원 후보 기호 2번 장성환이라고 합니다. 지금 저를 바라보고 저를 집중하는 여러분들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요즘 소문에 선거철이 상당히 유행이라고 합니다. 하하 그래서 저 역시 후보로 나서보고 있습니다. 비록 다른 후보들에 비해 저는 한미하다고 여길지 모르는 그런 후보입니다. 아마 지금 유권자 여러분들과 같은 처지인 사람입니다. 저 장성환은 여러분들과 같이 지주 밑에서 소작을 하던 사람입니다.”
순간 장성환을 소 닭 보듯 하는 사람들의 눈 속에서 조금 관심과 집중이 생겨났다. 장성환은 사람들의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자 연설을 시작한다.
“사실. 이제 해방된 지 겨우 3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금 해방 전에 비해 바뀐 것이 있습니까?”
그 물음에 사람들은 순간 수군거리다가 이내 장성환을 지켜본다. 아무래도 장성환의 말을 더 듣는 분위기로 돌아간 것 같았다.
“아마 해방 전에 비해 당신들이 받는 소작료가 줄여 들었다는 것 빼고는 없을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 말에 사람들 중 한 명이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며 장성환에게 말한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오?”
“그래서 저 장성환은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약속할 수 있습니다.”
“약속?”
“예. 약속입니다. 다른 후보들이 여러분들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일은 저만이 가능합니다.”
장성환은 곧 서류들을 꺼내며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이것이 보이십니까? 이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지금 이 지역의 땅 문서입니다. 지금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그 순간 사람들의 눈빛에는 더더욱 큰 관심과 집중이 생겨났다. 어느새 장성환의 모습을 일거수일투척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는 한 가지 약속할 수 있습니다. 이 서류의 내용에 뭐라고 되어 있냐면 제가 만약 국회의원이 된다면 이 땅문서의 주인이 저에게 이 서류들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러분들이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순간 사람들의 시선은 장성환에 집중하고, 또 침을 꿀꺽 삼키며 그를 바라본다.
“예. 그렇습니다. 전 실질적으로 여러분에게 땅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를 국회의원에 당선시키게 만든다면 여러분들에게 땅을 드리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당신들에게 땅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에는 곧 장성환에 대한 열렬한 관심이 보였다. 그런 분위기에 장성환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저는 말입니다. 지주 밑에서 소작한다는 것이 얼마만큼 힘든지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재는 소작료가 줄어서 형편이 나아졌다는 것을 알지만 소작농 신세라는 것이 얼마만큼 힘들고 고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전 그런 신세의 여러분들의 처지에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인생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그 가족들이 그 고생을 겪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지 행동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와아아아아!-
사람들의 환호성이 장성환 후보의 귓가에 들리기 시작한다. 장성환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외친다.
“여러분들. 여러분들에게 땅을 줄 수 있는 후보는 기호 2번 장성환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저는 기호 2번 장성환입니다.”
-장성환! 장성환! 장성환! 장성환!-
장성환에 대한 환호성이 마을 안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한 마을의 성공적인 유세를 끝마치고, 전용 헬기 안에 탑승한 장성환은 휴우 한숨을 내뱉는다. 그런 그에게 병윤이 말을 건다.
“상당히 잘하셨습니다. 장성환 후보님.”
장성환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며 병윤에게 한 마디 말한다.
“너까지 나에게 후보님이라고 말을 하는 거냐?”
“사적으로 아저씨라고 부르기에는 사람들 눈이 많지요. 물론 알 만한 사람들은 알지만 그렇다고 조심하는 것이 좋겠지요.”
“그래? 하여튼 다음엔 어떤 일이 있는 거냐?”
그 말에 사현방송국에서 파견한 한 방송관계자이자 기자인 유국종이 대답한다.
“사현방송국에서 후보들과 토론을 해야 합니다.”
장성환은 그 말에 올 때가 왔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아무래도 그 쪽의 방송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니 후보 넷이서 장성환 후보님을 박살내려고 똘똘 뭉친 것 같습니다.”
“쯧. 출신이 다른 것이 억울하군.”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현재 후보님의 경우는 막강한 지원자들이 있어서 후보님에게 상당한 위협을 느끼는 것이 정확합니다.”
장성환 후보는 그 말에 피식 웃고는 말한다.
“겨우 소작하던 사람인 나에게 위협감을?”
병윤은 그런 말을 하는 장성환 후보에게 한 마디 말한다.
“자신을 비하하는 행동과 말은 좋지 않습니다. 후보님.”
============================ 작품 후기 ============================
제주도는 지옥으로 변해가고, 장성환을 비롯한 주인공들은 속편하게 선거에 나서는 것 같습니다. 아마 주인공 세력이 제주도에 간섭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여순 사건이 일어나고 난 다음에 가능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