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448화 (448/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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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1948년 4월 22일, 대구 미군정 사령부, 그 곳 안에 있는 웨드마이어 사령관은 지금 씁쓸한 얼굴을 지으며 자신이 들고 있는 서류들을 한 장씩 넘긴다. 보면 볼수록 사령관의 얼굴은 심각하게 지어지며 이내 서류의 끝자락을 넘기자 웨드마이어 사령관은 한숨을 푹 쉬며 한 마디 읊었다.

“쯧. 제주도의 사태가 이만큼이나 불거질 줄이야.”

웨드마이어 사령관의 심기가 안 좋은 것을 확인하자 그의 반대편에 앉아서 제주도에 관한 것을 보고하는 윌리엄 F.딘 군정장관의 표정 역시 긴장 속으로 빠져 있었다. 웨드마이어 사령관은 한창 생각하다 이내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딘 군정장관의 긴장한 얼굴을 보고선 한 마디 묻는다.

“현재 제주도에 있는 진압군들은 어떻게 일을 처리한다고 하던가?”

그 말에 딘 군정장관은 술술 설명하기 시작한다.

“일단 현재 제주도 지사인 유해진이 경찰과 민간 토벌대에게 명해 무장대를 토벌하려고 하고 있지만 문제점은...”

“문제점은 뭔가?”

“양 쪽에서 양민들을 학살하고 다닌다 합니다.”

“양 쪽에서?”

“예. 낮에는 경찰과 토벌대들이 사람들을 학살하고, 밤에는 무장대원들이 마을에 쳐들어가 사람들을 학살하러 간답니다.”

웨드마이어 사령관은 그 말에 얼굴이 자동적으로 굳어지면서 한 마디 말한다.

“끔찍하군.”

“더더욱 끔찍한 것은 이대로 사태를 방치하다가는 이 피해현황은 빠르게 증가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자네는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아무래도 제주도에 있는 군부대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겠지요.”

“군부대라면? 우리 미군을 뜻하는 건가?”

딘 군정장관은 그 물음에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한다.

“우리 미군 한 대대 역시 그 쪽에 파견하기로 되어 있지만 제주도에 한 개 연대 규모의 군부대가 있습니다.”

“그 토착군 군대 말인가?”

“예. 아무래도 그들이 이 일에 끌어들이게끔 하는 것이 옳겠지만 그 군부대의 연대장인 박효영 대령이 한사코 진압에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

“아무래도 그를 다른 연대장으로 교체하던가? 아니면 그를 압박하여 그 토착군이 토벌대에 합류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원인은 뭔가?”

“원인이라면?”

“그 토착군이 진압에 거부한다는 이유 말이야.”

“아무래도 제가 설명한 학살극 때문일 것입니다.”

“으음...”

웨드마이어 사령관은 골치가 아프다는 얼굴을 하고선 딘 군정장관을 쳐다보며 한 마디 말한다.

“그럼 그 학살극을 막던가 하면 되지 않겠나?”

딘 군정장관은 그 말에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내 얼굴이 굳어진다.

“휴우. 그 것이 경찰과 토벌대 쪽에서 말을 듣지 않습니다.”

“말을 듣지 않는다니?”

“일단 자기들 말로는 무장대의 봉기는 아무래도 그들을 지원하는 민중들의 지원이 있다고 파악하고는 산 중턱에 있는 민간인들을 절멸해야 무장대를 잡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으음...”

“거기다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이 아무래도 경성의 위정자들이 이 제주도 사태를 이용하여 뭔가 정치적인 이득을 얻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학살극을 벌이면서까지 말인가?”

“예. 아무래도 그런 셈입니다.”

“미쳤군. 그런 짓거리를 한다고 정치적인 이득을 얻는다고 한다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기는 일단 그 친구들을 말려야지 않겠나?”

“예.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딘 군정장관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 때, 웨드마이어 사령관이 딘 군정장관을 보면서 한 마디 말한다.

“그런데 군정장관.”

“예. 말씀하십시오. 사령관님.”

“만약 그 토착군이 진압에 나선다면 얼마만큼 도움이 되겠는가?”

“으음. 아무래도 무장 장비나 지원 장비의 경우는 우리 미국보다는 맞먹거나 어떤 부분에서는 더 좋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장비를 다루는 것은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에게는 체계적인 훈련이 부족하고, 그 체계를 간신히 구축한다고 합니다. 더더욱 문제가 있는 것은 사병들 사이에서는 좌파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겠지요.”

“으음. 박효영 연대장이 굳이 이 일을 거부한다는 것은 자신의 연대 내에 그런 문제점이 있다는 건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 번 알아보고 보고할까요?”

웨드마이어 사령관은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한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지. 그럼 토착군에서 꽤 전력을 발휘할만한 병력이 어디에 있는가?”

“아무래도 사령관님이 잘 알고 계시는 인물일 것입니다. 길병주 사단장이 지휘하고 있는 제 10 보병 사단이 정예 사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 그 친구 말이군. 그 쪽에 파견 간 고문관들이 극찬을 하는 것은 처음이더군.”

“예. 그 친구가 꽤나 영특한지라 새로운 전술과 전략, 그리고 훈련들을 행한다고 합니다.”

“현재는 그 우리 쪽에 유입된 그 헬리콥터 블랙 팔콘(검은 매)들을 이용하여 강습 훈련들을 행한다고 들었네.”

“아무래도 한반도 지형 상 그런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기야 한반도 경상도 북부와 강원도는 산악지대이니 그런 방향으로 훈련할 수밖에 없겠지. 그런데 그런 사단이 제주도에 파견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딘 군정장관은 그 말에 생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젓는다.

“우선적으로 광복군에 대한 지휘권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그래도 광복군 지휘부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건 그렇지만. 아마 그들은 체면상의 이유로 제주도에 주둔한 연대의 힘으로 진압하려고 할 것입니다.”

“미친...”

“제주도에 있는 연대 역시 상당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그럴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블랙 팔콘들도 들어왔고, 장갑차, 전차들도 소수 나마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 전력이 무장대를 진압하면 참으로 좋을 텐데 현재 무장대를 진압하고 있는 경찰과 그 민간 토벌대는 어떤가?”

“경찰의 전력이야 그 광복군에서 전차나 장갑차를 뺀 수준입니다. 민간 토벌대는 그냥 죽창을 다니고 돌아다닌다고 보면 됩니다.”

“한심하군.”

“아마 경찰의 전력상 그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아마 그 민간 토벌대이겠지요.”

“......”

그 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이내 한 장교가 안으로 들어와 딘 군정장관에게 긴급히 보고한다.

“큰일 났습니다. 제주도 현지 연대장 박효영이 무장대에게 평화협상을 요청하는 전단들을 뿌렸습니다.”

딘 군정장관은 그 말에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는 웨드마이어 사령관에게 말한다.

“더 들으시겠습니까?”

“아니야. 그만 나가보게.”

“예? 예...”

장교는 머쓱한 표정으로 방 밖으로 나간다. 곧 웨드마이어 사령관과 딘 군정장관은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나눈다.

“꽤나 상황은 가관으로 변했군.”

“예. 그 쪽 나름대로 이 사태를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입니다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진행한다는 것은...”

“그래. 맞는 말이야. 시기가 안 좋았지. 경찰 쪽에서 노발대발하는 것이 눈에 뻔히 보이겠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음 달 5일에 한국 위정자들과 경찰 관계자, 군 관계자들을 모아서 한 번 회의를 하여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좋겠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나가보게나.”

딘 군정장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 밖으로 나간다. 방 안에 홀로 남은 웨드아미어 사령관은 연신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본다.

“진짜 한국에 있는 것은 내 커리어에 치명적이겠군.”

한국에서 발생한 각지의 혼란 때문에 웨드마이어 사령관은 왜 이 자리를 한다고 했을까? 고민했다. 애초에 이렇게 일이 돌아간다면 차라리 받지 않을 걸이라고 생각했고 후회한다. 하지만 지금 후회한들 소용이 없었다.

같은 시각, 문경의 한 사현방송국 건물 안 현장에는 각 촬영기사들과 연출 제작 조들이 모여서 점검을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역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5월 10일 총선거 때문에 그렇다. 이미 예전에 이 곳에서 문경 을 지역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모여서 토론을 격하게 벌였었다.

바로 장성환 국회의원 후보를 포함한 다섯 명의 후보들이 나서서 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이 현장에서 뽐냈다. 그러나 그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난 것은 역시 장성환 국회의원 후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아마 이 현장을 준비하고 있는 연출 조의 사람들 전부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장성환 국회의원 후보 한 사람을 향해서 장장 네 명의 후보들이 동시에 그를 공격했지만 장성환은 오히려 능글거리고, 자료들을 준비하여 그들의 공격을 봉쇄하고는 때때로 반격까지 가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 2차전이 여기서 준비되고 있었다. 과연 장성환 국회의원 후보가 어떤 것을 보여줄지 자못 궁금할 실정이었다. 생방송 녹화시간이 다가오자 장성환 국회의원 후보를 포함한 5명의 후보들이 도착하고는 각자 대기실 안에 틀어 박혀 자기들의 보좌관을 불러 지금 준비한 자료들을 가지고 토론하고 있었다.

장성환 국회의원 후보의 대기실 안에는 꽤 긴장한 분위기들이 서려 있었다. 장성환의 보좌관에 임명된 청년 김정필은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재학 중인 유망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번 자료들을 자네가 한 번 검토해보니 어떤가?”

김정필은 생각을 하더니 장성환에게 대답한다.

“일단 후보님이 주신 자료들을 꽤나 양질의 자료인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군.”

“직접 조사한 것입니까?”

“그건 아냐. 자네도 잘 알 텐데? 내 뒤에 누가 후원하는지?”

“아. 그렇군요. 깜빡했습니다. 하하...”

“그런데 왜 자네는 나를 지원하는건가?”

“아무래도 후보님의 출신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후보님의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을 받았습니다. 저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나중에 정계 입문할 때 도움이 된다고 설득을 당했거든요.”

“호오?”

김정필은 마치 그 때의 일을 기억하면서 말한다.

“사실 제 집안의 경우는 어느 정도 먹고 사는 것에 문제는 없습니다만 정치 쪽의 일은 아무래도 꽤 인맥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유명정치가들의 연설을 들으면서 다녔습니다.”

“그런 자네를 병윤이가 포섭해서 데려왔다는 거군.”

“흠. 그 동협 그룹 회장과는 친밀한 관계인 것 같습니다.”

장성환은 그 말에 키득키득 웃으면서 김정필에게 말한다.

“친밀하지. 친밀하다 말고. 사실 내가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은 내 친우의 도움이 컸어. 내 친우가 그 동협 그룹 회장의 아버지이거든.”

“아...”

“우습지 않은가? 나 역시 예전에 소작을 하여 겨우 빠듯하게 아들을 먹여 살리던 인물이었지. 그런 내가 친구 덕에 이런 자리에 나설 수 있는 것이야.”

“그런 과거를 가진 사람치고는 후보님은 꽤나 아는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거야 내 친우의 도움으로 전력으로 공부한 것이 컸지. 동협 그룹 회장이 직접 나를 가르치기까지 했지.”

“......”

김정필은 장성환의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장성환이 이렇게 치고 나가는 비결에는 그런 사실이 있을 줄은 예상했지만 직접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후보님이 비밀로 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남들도 웬만큼 알고 있네. 자네에게 밝히는 사실은 밝히더라도 나와 그 친우에게 타격이 없는 일이지. 그러니 마음껏 밝혀도 된다네.”

“그렇군요. 그런데 솔직히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뭔가?”

“후보님의 최대 무기인 토지 문서 있지 않습니까?”

“그래.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제가 집안의 출신이 그런지라 소작농을 부리는 지주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주들이 이렇게 쉽게 후보님께 땅문서들을 넘겨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것입니까?”

“그걸 알면 자네가 다쳐. 그래도 듣겠는가?”

김정필은 그 말에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한다.

“다쳐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가진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라면 제 한 몸 부서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장성환은 그 말에 김정필을 한껏 노려보더니 이내 한숨을 내뱉으며 말한다.

“좋아. 대신 자네에게 한 가지 비밀을 요구하지. 내가 말한 사실은 총선거 전까지 절대 발설해서는 안 돼. 뭐 발설하더라도 그건 자네만 다치고 끝날 일이겠지만 말이야.”

장성환의 경고에 김정필은 침을 꿀꺽 삼킨다.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이 문경의 특징에 뭐가 있을까?”

“아무래도 문경새재라고 불릴 만큼 지형이 험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그러면 문제를 내지. 과연 이런 땅에서 지주 노릇을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아...”

“면적 대다수는 산지야. 산지의 특성상 농사하기 쉽지 않지.”

“그렇군요.”

김정필은 그렇게 계속해서 장성환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김정필은 아무래도 3김 중 하나입니다. 두 김이야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우리 한국 현대 역사상 거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아마 이 이야기 속에는 아주 나중에 정치에 나서려는 병주의 가장 큰 호적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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