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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인생-451화 (45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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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제주도에서 휴전협상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문경 동현대학교 부지 안에 위치한 연구시설 내에서 감연은 자신의 앞에 있는 물건을 보면서 손은 기판에 놓인 버튼들을 따닥따닥 소리를 내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감연의 눈앞에 보이는 언어들의 향연, 보통 사람이었다면 뭐가 뭔지 몰라서 두 눈을 가만히 껌뻑일 수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따닥! 따닥!-

감연의 손놀림은 보통 사람이 보기 어려울 만큼 빨랐다. 금세 한 줄 한 줄 문장들을 채워나가더니 이내 그는 씩 미소를 짓고는 ‘엔터’라는 버튼을 한 번 딱 누르고는 아예 양팔을 위로 올라간다.

‘되었다.’

또 지겨운 컴퓨터 소프트웨어 하나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그 옆에서 감연이 일을 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한 사람이 감탄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한다.

“이야... 컴퓨터의 처리속도보다 자네가 일하는 것이 더 빠르군.”

그 말에 감연은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 시선 끝에는 커피 잔을 들고, 여유롭게 서 있는 한 30대 남성을 볼 수 있었다. 30대 남성의 장난스러운 얼굴을 보자 감연은 어깨를 들썩이고는 한 마디 말한다.

“리처드 파인만 조교수 형님이시군. 칭찬이야?”

그러다가 파인만 조교수는 감연이 막 완성시킨 프로그램의 모습을 보고는 호기심을 느꼈는지 다시 감연에게 시선을 두며 묻는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컴퓨터로 미적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

“미적분을?”

“원래 컴퓨터의 용도가 그런 거잖아.”

그 말에 파인만 조교수는 감탄한 얼굴로 감연을 쳐다보며 말한다.

“그건 그렇지만 컴퓨터로 미적분을 계산하게 만들다니.”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현재 존재하는 모든 미적분 문제를 풀 수 없을 거야. 사례를 보면서 조금씩 개량해나가야 하거든.”

그렇게 말한 감연은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을 실행시킨다. 이미 GUI가 적용된 컴퓨터 운영체제는 만들어졌기 때문에 지금은 그 운영체제를 바탕으로 온갖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다. 지금 감연이 짠 미적분 계산 프로그램 역시 그 운영체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하여튼 가이아(그리스 로마 신화의 태초 대지의 여신) 시스템을 바탕으로 만든 것인지 몰라도 작년 기계어나 어셈블러로 작성하던 때와는 달리 엄청 간단하게 보이는군. 시험해볼 수 있나?”

“아무렴.”

감연이 냉큼 자신의 자리를 파인만 조교수에게 넘겨주자 파인만 조교수는 의자에 앉아 오른 손에 마우스를 잡고 화면에 뜬 커서로 좌표 그래프로 보이는 아이콘을 향해 두 번 눌러 실행시킨다. 그러자 곧 프로그램이 뜨면서 복잡한 화면들이 뜬다. 파인만 조교수는 감연의 얼굴을 쳐다보며 한 마디 말한다.

“혹시 이거 어떻게 실행하는지 좀...”

그러자 감연은 간단하게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고, 리처드 파인만 조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가지 적분 문제를 가지고, 프로그램에 실행시킨다. 그러자 바로 결과가 뜬다.

“으음. 이거 그냥 머리로 계산하면 몇 십분은 그냥 걸리는데. 여기서는 바로 나오네?”

“흐흐. 어때?”

“아직 시험해보지 못한 것이 많아. 잠시만 있어봐.”

그렇게 말한 파인만 조교수의 얼굴은 한껏 장난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는 곧 즉석에서 자료를 가지고 오더니 그 자료에 나온 미적분문제들을 하나씩 하나씩 대입해나간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괴물인 것인지 파인만 조교수가 입력한 문제들의 답은 바로바로 나왔고, 그는 결국 오기가 생겼는지 난이도가 있는 문제들을 입력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몇 십 개를 프로그램을 이용해 시험하다가 이내 한 문제를 대입하는데 결국 오류가 떠버린다. 그러자 파인만 조교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감연에게 말한다.

“네가 만든 프로그램도 한계가 다 있네.”

“아까부터 말했잖아. 모든 문제를 풀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이지. 그래도 이번 것으로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알 수가 있군.”

오히려 감연의 여유로운 표정을 짓자 파인만 조교수는 졌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한 마디 말한다.

“일부로 골탕을 먹여도 너라는 인간은 그렇게 훌훌 넘어가 버리냐?”

“흥. 내 고향친우인 녀석을 만나보면 이 정도 장난은 그냥 웃어 넘기지.”

그 말에 파인만 조교수는 왠지 심술이 난 얼굴을 짓는다.

“끄응. 역시 세상은 넓어. 나만큼 남을 엿 먹이는 인간은 없는데. 그 것보다 더 심각한 인간이 있다니.”

“조교수 형님도 겪어보면 알 거야.”

“그나저나 이 것을 개량해서 미분방정식 같은 것을 풀 수 없나?”

“그거 시간 오래 걸릴 걸? 방정식이라는 것도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겨우 만들까말까 한 일인데.”

감연이 말하는 방정식은 단순한 1차, 2차 방정식이 아닌 고차에 다항 방정식을 의미했다. 그런 것을 이미 알고 있던 리처드 파인만 조교수는 싱긋 웃으면서 감연에게 한 마디 말한다.

“흠. 너도 못하는 것이 있네.”

“사람이라는 것이 다 잘할 수 없는 법. 하지만 나 역시 남들에 비해 잘난 구석은 여러 가지가 있지.”

“그 말을 들으니 내 귀가 썩는 것 같군.”

“썩어도 내 잘난 척은 더 듣고 싶지 않아?”

“그런데 이 컴퓨터 관련 연구를 끝마친 다음에 무엇을 한다고 했지?”

“초전도체에 관한 연구를 해봐야지.”

“초전도체? 흐음... 이미 발견은 되었지만 도대체 무엇에 쓰려고?”

“핵융합에 한 번 도전을 해보려고.”

“핵융합? 으음... 그런데 그런 거대한 규모의 실험을 하기위해선 엄청난 설비들이 필요할 텐데?”

“그 빌어먹을 불알친구가 어떻게든 해결해주겠지.”

“역시 친구 좋다는 것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군.”

그 말에 오히려 감연은 히죽 웃으면서 말한다.

“가격을 높게 불러서 그 녀석을 파산시키게 만들 거야.”

“얼마만큼의 가격을 잡을 생각인데?”

“대략 억 달러 이상을 불러 내야지.”

“억 달러? 미친...”

“그 정도는 되어야 핵융합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볼 수 있지 않나?”

“미국에서도 그런 돈은 지원을 안 해줄 것인데...”

“미국이야 대단한 나라니까 그런 곳은 제쳐두고. 하여튼 그 빌어먹을 녀석에게는 엿을 한 번 먹여야할 필요가 있지.”

파인만 조교수는 그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버린다. 억 달러 이상의 규모로 만들어지는 핵융합 프로젝트라. 자신 역시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계획에 참가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감연의 말에 흥미를 느꼈다.

“그런데 전체적인 계획 같은 것이 있는 거야?”

“일단 가장 중요한 점은 초전도체의 개발이겠지.”

“초전도체? 내가 듣기로는 작년에 네가 아인슈타인 박사에게 상온 초전도체를 만든다고 선언했던 기억을 들었는데...”

“상온 초전도체라는 것이 금방 뚝딱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 하지만 영하 80도에서 사용되는 초전도체는 이미 만들어봤어.”

“뭐?”

“왜 놀라? 그냥 심심해서 만들어본 것인데. 쯧. 상온 초전도체라는 물질은 역시 내가 생각해도 쉽지가 않아.”

“허. 그거 좀 볼 수 있어?”

감연은 그 말에 잠시 파인만 조교수의 얼굴을 보더니 한 마디 말한다.

“목표 도중에 만든 심심한 물건이니까 구경은 시켜줄게.”

그렇게 말한 감연은 곧 파인만 조교수를 데리고 자신의 연구실로 향한다.

복도를 통해 감연의 방 안에 온 파인만 조교수는 익숙한 시선으로 방 안을 훑어보고는 이내 감연을 쳐다본다.

“그 만들었다는 초전도체는 어디에 있는 거지?”

“워. 워. 잠시만.”

흥분한 파인만 조교수를 진정시킨 감연은 방 안에서 한 상자를 꺼내고는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그 상자 안에는 직육면체 모형의 금속 물질이 보였다. 감연은 방 안 책상 위에 있는 무슨 장치에 그 물질을 턱하니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장치의 한 구멍에 액체질소를 붓는다. 그리고 온도가 조금 떨어지자 감연은 그 물질 위에 자기 물질을 올려놓았다. 그렇게 되자 그 자기 물질들이 금속 물질 위에 둥둥 떴다. 바로 초전도체에서 보이는 현상이었다.

파인만 조교수는 그 현상을 끝까지 지켜보더니 이내 그 것에 현혹된 표정을 지으며 감연에게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이건 어떻게 만든 거야? 그리고 언제 만든 것이고? 무엇으로 만들었어?”

“하나씩만 질문하세요.”

“으음...”

“그냥 심심해서 한 번 만들어본 거야. 어느 정도 적합한 물질들을 후보로 조합하니 이런 물건들이 나온 것 뿐이라고.”

“혹시 이걸 만든 자료를 볼 수 있어?”

그 말에 감연은 책장에서 무언가를 찾더니 이내 자료 한 뭉텅이를 꺼내며 그걸 리처드 파인만 조교수에게 건네주자 파인만 조교수는 그 자료를 훑어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자료를 읽던 도중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영어로 작성한 것이 아니네.”

바로 자료에 써진 문장들은 전부 한글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말에 감연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파인만 조교수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거야 내 심심풀이로 연구해서 만들어본 거니까 당연한 거 아니겠어?”

“아무리 그렇지.”

“내가 미국에 가서 살 것 아닌데. 굳이 영어로 작성할 필요라도?”

“이런 걸 영어로 다시 작성해서 발표하면 명성을 얻을 수 있지 않나?”

“내가 왜?”

감연의 그 말에 파인만 조교수는 할 말이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기야. 그런 것들이 귀찮기는 하겠지만. 날 좀 신경써주면 안 되겠어?”

그 말에 감연은 피식 웃으면서 이내 책장에서 한 가지 자료를 꺼내 그에게 다시 건네준다. 파인만 조교수는 이 자료가 영어로 작성되었다는 사실을 알자 시선이 급히 감연에게 향한다.

“일부로 날 골탕먹이려고 한글로 된 자료를 내준 거야?”

“조교수 형도 장난 잘 치잖아.”

“그렇기는 하지만.”

감연은 씩 웃으면서 파인만 조교수에게 말한다.

“하여튼 이걸 보고, 감상이나 말해줘.”

그 말에 파인만 조교수는 대답하는 대신에 자료를 탐닉하기 시작하고, 한 글자라도 빼먹지 않기 위해 자료에 집중하는 그의 모습에 감연은 속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이 자료가 굳이 그렇게 대단한 자료인지 참...’

사실 감연에게 있어서 상온 초전도체는 자신이 계획한 핵융합 프로젝트에 필요한 조건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조건을 연구해나가는 중에 생긴 저 부산물이 파인만 조교수로 하여금 흥미를 불러 일으킬 줄은 몰랐다.

그 때, 책상 위에 한 서류를 보자 감연은 이내 이맛살을 찌푸리기 시작한다. 서류의 내용은 자신이 대학생들에게 가르쳐야할 강의 계획서였다.

‘연구하랴. 강의하랴 바쁘군.’

그러나 자신이 편하기 위해서라면 필요한 일이었다. 학생들을 가르쳐줘서 얼마든지 자신의 일을 남들에게 분담시켜야 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자신이 키운 사람들이 있지만 그래도 핵융합 프로젝트를 하기에는 인원이 부족했다.

감연은 한 시간 뒤에 강의해야하는 사실을 깨닫고는 한숨을 내쉰다.

“휴우...”

그 때, 그 한숨소리에 자료를 읽었던 파인만 조교수가 그에게 묻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한 시간 뒤에 애들을 가르쳐야 되어서 말이지.”

“애들? 아아. 여기 대학교였지. 참.”

파인만 조교수는 자신이 있는 곳을 기억하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감연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그래 잘해봐라. 뭐 하면 내가 대신해서 강의할까?”

“한국말 잘 알면 상관이야 없겠지만.”

그 말에 파인만 조교수는 큭큭 웃어대며 감연에게 말한다.

“학생들이 영어를 알고 있다면 그런 고생을 할 필요가 없을 텐데.”

“에이. 빌어먹을 운명.”

결국 감연은 떫은 감씹는 얼굴을 짓고는 파인만 조교수를 바라보며 말한다.

“또 필요한 것 있어?”

“강의에는 한 시간 남아있다며? 한 삼십 분만 같이 있자고.”

“그 삼십 분 동안 뭐하려고?”

“일단 그 핵융합 계획에 대해서 알려줘. 좀.”

“필요한 조건들이야 많지. 이미 설계도도 다 생각해놓았고, 어느 정도 설비 건설에 들어갈 시점이니 말이야. 그런데. 굳이 이렇게 물어보는 이유가...”

“아 나도 한 번 그 계획에 참가해보고 싶어서 말이지. 맨해튼 계획까지 해본 마당에 핵융합 계획이라니 꽤나 대담하지 않나 싶어서 말이지. 그런데 그 핵융합 계획이라는 것은 도대체 뭘 할 생각이야?”

“아 핵융합 발전소를 만들려고.”

“하기야 그냥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초전도체니 뭐니 이런 짓거리를 하지 않아도 되겠지. 나 역시 예상은 했는데...”

“그런데 뭐 찔리는 것이라도 있어?”

“굳이 그 핵융합 발전소라는 것이 필요한가? 싶어서.”

“사업가가 다 되셨군.”

“사업가적인 기질은 네가 더 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저번에 한 가지 물건을 발명했을 때, 그 발명품에 대해 네가 한 마디 말했잖아.”

“아 그거?”

“그래. 그거. 효능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든다고 말이야. 가성비가 떨어지는 물건 따위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말이지.”

“흠. 그 말을 들으니까 조금 그렇네. 나도 그 빌어먹을 자식의 사상에 전염이라도 된 것인지 모르겠군.”

“일단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만약 상온 초전도체가 만들어졌다면 다음에는 어떻게 할 거야?”

“설비를 만들어야지. 핵융합 발전을 일으킬 수 있는 설비를 말이지.”

“흐음.”

“그리고 그 자식에게 1억 달러 이상 청구하는 데에는 다 이런 설비를 만들기 위함이지.”

그렇게 말한 감연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희열감이 느껴졌다.

============================ 작품 후기 ============================

50년대 중후반에 핵융합 발전소,  60년대 중후반에는 핵융합 전지가 발명될 예정입니다. 이렇게 글을 쓰니까 폴아웃 시리즈가 생각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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