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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얼마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함청박을 포함한 동북청년단은 지금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박일렬은 퉁명스러운 어조로 자신의 단장에게 말한다.
“그냥 까마귀밥이 되게 놔두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함청박은 그 말에 박일렬을 바라보더니 한 마디 말한다.
“내가 좋아서 이런 구덩이를 파는 줄 알아? 말을 할 힘이 있다면 지금 빨리 삽을 들고 구덩이나 파시지?”
“네... 네...”
박일렬은 힘없이 대답하고는 다른 단원들을 따라 구덩이를 파낸다. 젊은 장정들이 힘을 썼는지 구덩이는 적당한 깊이로 파냈다. 그러자 함청박이 단원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시체들을 여기에 묻어.”
그 말에 단원들은 속으로 짜증이 나면서도 함청박의 명령에 따른다. 동북청년단은 상당히 권위적이었다. 그래서 하극상을 용서하지 않았다. 단원들이 힘을 써서 시체들을 구덩이에 묻는다. 그 시체들 속에는 아직 세상 볼 일이 많은 어린 아이들의 모습 역시 보였다.
하지만 그런 시체들을 쳐다보는 단원들은 무감각적으로 시체들을 던진다. 아마 속으로는 그런 어린아이들의 시체를 보고도 분개하고도 남았다. 어차피 커서 빨갱이 노릇을 할텐데 굳이 죽여도 상관없지 않냐고 말이다.
그렇게 시체들을 구덩이에 다 밀어 넣자, 함청박은 손수 플라스틱 등유통을 들더니 시체 위에 등유를 뿌린다. 그리고는 함청박은 담배를 하나 꺼내 피우더니 이내 그 담배를 아까 뿌린 등유 위에 놓는다.
등유는 작은 담배 불씨를 만나자 확 불을 올랐다. 그리고 등유에 절은 시체들은 곧 불에 타 올랐다. 시체 태우는 냄새가 함청박을 포함한 단원들의 콧속을 간지럽힌다.
“아 역시 시체 태우는 냄새는 좋구만.”
함청박은 시체를 태우는 냄새를 이렇게 평가한다. 박일렬을 포함한 광기에 휩싸인 단원들은 그 말에 좋다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몇 명 인원들은 저 모습을 보고는 씁쓸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속으로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 빨갱이니까 당연해. 빨갱이니까 당연하다고.’
빨갱이라는 단어로 자신을 합리화 나간다. 빨갱이라는 단어로 자신의 학살을 정당화해 나간다. 빨갱이라는 단어로 자신의 양심을 속인다. 그렇게 빨갱이라는 단어로 자신을 속여 나간다.
어느 정도 일을 끝내자 일을 일으킨 동북청년단은 이 지역에서 철수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오라리는 재만을 남긴 채 사라져간다.
이번 오라리 방화사건과 학살사건은 결국 함청박의 의도대로 일이 돌아갔다. 3일 간 이어진 휴전은 깨지고, 다시 무장대가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군은 이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진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제주도에서 벌어진 사태는 더더욱 나락으로 향한다.
1948년 5월 5일, 문경 동협 그룹 본사 회장 집무실에서 병윤은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한 중년 남성에게 서류를 건네면서 말한다.
“이게 아저씨의 지지율에 대한 자료입니다.”
그 말에 중년남성, 아니 5월 10일 총선에 나서는 국회의원 후보 장성환은 병윤이 건네준 서류의 내용들을 보면서 한 장 씩 한 장 씩 넘긴다. 장성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윤에게 시선을 두고 말한다.
“잘 조사해 주었구나.”
병윤은 그 말에 싱긋 웃으면서 장성환에게 말한다.
“원래 이 서류를 건네주는 것은 형칠이 녀석이 하던 일인데, 그 녀석이 원체 바빠서 어쩔 수 없이 제가 건네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군.”
“자료를 살펴보니 아저씨의 지지율은 5할 4푼입니다.”
“5할 4푼.”
“예. 그 정도면 이미 과반수를 넘긴 것입니다.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장성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렇기는 하지.”
“일단 아저씨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가 있으니 이만한 지지율을 보인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는데. 왜 이 정도밖에 오르질 못할까?”
그 말에 병윤의 입가의 웃음은 순간 사라지고는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 말을 하기 꺼리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장성환은 그런 병윤의 얼굴에 한숨을 쉬며 한 마디 말한다.
“너랑 나랑은 거의 같은 입장이야. 무슨 이유이기에 그렇게 표정을 짓는 건가?”
“으음... 하아... 그게. 조금 아저씨가 듣기에 상당히 분노할 만한 이유라서.”
“그 이유가 뭔데?”
“정 듣고 싶습니까?”
“들어야지. 그래야 원인을 알고, 대처해나갈 것이 아닌가?”
그 말에 병윤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말한다.
“알겠습니다.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래. 속 시원히 말해봐라.”
“으음. 사실 아저씨의 지지율 상승이 지지부진한 이유에는 역시나 한 가지 이유밖에 없습니다.”
“한 가지 이유? 그 것이 뭔데?”
“그건 아저씨의 출신 때문입니다.”
“출신이 뭐?”
“한 마디로 유권자들의 인식에는 국회의원 자리라는 것이 출신이 고귀한 사람들만이 설 수 있는 자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 오르려고 하는 아저씨는 한마디로 분수를 모르는 자라고 말합니다.”
“뭐라고?!”
장성환은 어이가 없었는지 아니면 분노가 치밀어 올랐는지 병윤의 말에 벌떡 일어섰다. 장성환은 어이없는 감정을 감추지 않고, 병윤에게 묻는다.
“왜 그딴 어이없는...”
“젊은 사람들이야 그런 이유를 가지는 사례가 적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일수록 그런 인식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빌어먹을...”
“휴우. 이번 건은 저도 상당히 어렵습니다.”
“으음. 상대방 후보들이 이런 이유로 나를 공격하면 큰 일이겠군.”
“지금 그 후보들이 그러고 있습니다.”
“으으으...”
장성환은 얼굴을 굳힌다. 어이없는 이유로 지금 자신의 발목을 잡히게 생겼다. 장성환은 병윤을 보더니 한 마디 묻는다.
“무슨 방법이라도 없는 건가?”
“이번 일에는 아무래도 정공법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정공법이라면?”
“국회의원 자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형칠이에게 연락을 해두겠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병윤은 곧 책상 위에 있는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들더니 어느 곳에 전화 연결을 시도한다.
-뚜르르... 뚜르르... 철컥!-
-예. 누구십니까? 전 사현방송국 사장인...-
“인사는 되었고.”
-이 목소리는 네 녀석이군.-
“그래 나다. 어떻게 되었어?”
-뭐가?-
“네가 말해준 것 있잖아? 그거 어떻게 되었냐고?”
-그 국회의원 자리가 어떤 것인지 홍보하는 자리를 말이냐?-
“그래. 잘 되어가고 있냐?”
-잘 되어가기는 하지. 방송사 일이야 사람들 흥미를 끌게 만드는 요소이지 않냐? 우선 객관적으로 설명을 하고는 있다. 뭐 살펴보면 상당히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래. 잘 되었군. 일단 총선까지는 계속 그런 방송을 보내.”
-그렇다면 방송에 후보들이 나서는 것은 그만해도 되겠군.-
“뭐 무슨 일이라도 있냐?”
-많지. 문경의 후보들이 연설 하는 모습들이 TV에 나오자 자기 지역에도 그런 방송을 해달라고 청탁을 해오는 편이 많아.-
“크크. 다들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청탁을 하겠지?”
-그거야 당연한 말인데.-
“하지만 청탁도 과하게 받으면 어떻게 뒷수습할지 모르는 일이야. 일단 뇌물같은 것은 받지 않았지?”
-날 뭐로 보냐? 이 자식아? 난 너처럼 뇌물 같은 거 주고 받는 그런 썩어빠진 인간 아니다.-
“닥쳐. 너도 나와 똑같아.”
-시끄럽고, 하여튼 잘 되어가고 있으니 걱정 마라. 끊어. 이 지긋지긋한 자식아.-
그 말을 끝으로 병윤의 귀에는 뚜뚜 소리만이 들렸다. 병윤은 살포시 송수화기를 다시 제 자리로 돌려놓고는 자리에 앉아 장성환에게 말한다.
“일은 잘 되어가고 있군요.”
“그래. 그 형칠이 녀석에게 당부한 일이 뭐야?”
“사람들의 심리를 살짝 건드려 주는 일입니다.”
“살짝 건드려 준다니?”
“뭐 보시면 알 것입니다.”
“으음. 그 표정을 보니 왠지 믿음직하기는 한데. 휴우...”
“영 불안하신 모양입니다?”
“그렇지. 네 아버지에게 당당하게 정치계에 나서겠다고 설쳤는데. 낙선되고 돌아가면 내 체면이 어떻게 될까?”
병윤은 그 말에 진지한 얼굴을 짓고는 장성환에게 말한다.
“아저씨. 칠전팔기라는 말을 아십니까?”
“실패를 해도 여러 번 도전하는 일을 뜻하지 않으냐? 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뭐지?”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것은 그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유리한 상황이겠지만 반드시 그러한 보장은 없습니다. 아마 아저씨는 그 자리에 여러번 도전하겠다는 생각을 가지셔야 되겠습니다.”
“으음... 이 말을 해주는 이유는 아무래도 이번에 떨어지더라도 낙심하지 말라는 말인가?”
병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도전한다는 것이 큰 의의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기는 하다만.”
“물론 앞으로의 실패보다는 지금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이기는 합니다만.”
장성환은 그 말에 웃으며 병윤에게 말한다.
“그래. 그 말이 정답이야.”
장성환의 얼굴은 밝아지며 이 후에도 병윤과 의견을 나누며 앞으로의 일을 대처해 나가기 시작한다.
같은 시각, 제주도 어느 한 건물에는 회의가 열렸다. 바로 최고수뇌회의라는 명목으로 미군정의 최고위 관계자 및 한국의 최고위 관계자들이 참여한 것이었다. 미군정 쪽에는 딘 군정장관과 맨스필드 중령이 참가했고, 한국 쪽에는 조병옥 경무부장, 안재홍 자문의원, 유해진 도지사, 박효영 15연대 연대장, 조효진 제주도 경찰지부 총감이 참가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참석하자 딘 군정장관이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는 한 마디 말한다.
“요즘 따라 제주도에서의 사태가 크게 불거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말에 조병옥 경무부장은 면목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하루 속히 빨리 일을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보고들 속에는 희생된 사람들 중에는 상당수의 무고한 양민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를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그 질문에는 조효준 총감이 대신 대답한다.
“그 사실에 대해서 사실 우리 쪽에서도 할 말이 많습니다. 사실 겉보기에는 무고한 양민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무장대가 지속적인 게릴라 활동을 할 수 있는 이유에는 양민들의 지속적인 도움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말은?”
“겉보기에는 무고한 양민이겠지만 속으로는 빨갱이를 돕는 같은 빨갱이로 보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는...”
그 말에 딘 군정장관은 조효준 총감의 말을 끊어버리고는 시선을 박효영 대령에게 두며 말한다.
“이 말이 사실이오?”
그 말에 박효영 대령은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한다.
“무장대가 설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양민들 전부가 무장대를 돕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쪽에서와 저 쪽에서 양민들을 학살하고 있습니다.”
“학살이라...”
그 때, 조병옥 경무부장은 벌떡 일어서서 박효영 대령을 손가락질하며 말한다.
“아니 듣자듣자 하니 이 빨갱이 자식이!”
조병옥의 말에 박효영 대령의 얼굴은 자동적으로 굳어진다.
“야 이 자식아! 강경진압을 하지 않다가는 저 무장대 세력들은 급속히 성장하는 암 덩어리처럼 될 것인데. 너 같은 인간이 어떻게 이 일을 책임지겠다는 건가!?”
그 말을 듣자 박효영 대령 역시 이제는 제 정신을 놓았다.
“시끄럽소! 그러면 경찰이라고 불리는 당신들이 사람들을 안전한 곳에 보호하기는커녕 우리들 말을 듣는 양민들까지 학살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닥쳐! 네 녀석. 이 일에 미적거리는 이유가 따로 있었어. 이 빨갱이 녀석.”
“흥. 강경책으로 될 일입니까?!”
두 사람의 감정에 딘 군정장관과 안재홍 자문의원은 머리가 아픈지 이마에 손을 대고 고개를 절레절레 돌린다.
‘이런 난장판이라니.’
딘 군정장관이 이 개판된 모습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면 안재홍 자문의원은 이 모습을 보고 이렇게 생각한다.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타국의 사람들에게 보이다니. 이 무슨 망발인가?!’
방 안에 선 경비원들이 두 사람의 말다툼을 가까스로 제지한다. 딘 군정장관은 조병옥 경무부장과 박효영 대령을 보고는 한 마디 소리친다.
“일단 두 사람은 나가서 머리를 식히고 있으시오! 지금 당장!”
딘 군정장관의 말에 조병옥과 박효영은 씩씩대며 방 밖을 나간다.
============================ 작품 후기 ============================
5월 5일 미군정청 군정장관 겸 주한미군 부사령관 윌리엄 F. 딘, 민정장관 안재홍, 경비대 총사령관 송호성 준장, 경무부장 조병옥, 제주도 군정장관 맨스필드 대령 등이 비행기편으로 제주도에 착륙했다. 5일 오전 12시부터 4.3 사건의 해결을 놓고 제주중학교 미군정청 회의실에서 열렸다. 참석자는 미군정장관 딘 장군, 민정장관 안재홍, 경비대 총사령관 송호성 준장, 경무부장 조병옥, 제주도 군정장관 맨스필드 대령, 제주도지사 유해진, 경비대 제9연대장 김익렬 중령, 제주도 경찰감찰청장 최천(崔天), 딘 장군 전용통역관 김씨(목사출신) 등 9명이었다.
회의의 주제는 4.3의 진압에 대한 것이었고, 최고수뇌회의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김익렬과 조병옥의 난투극이 발생한다. 회의에서 첫 번째로 발언하게 된 최천 경찰감찰청장은 4.3폭동은 국제공산주의자에 의한 사전에 조직 훈련‧계획된 폭동이며 군‧경 대병(大兵)을 투입하여 합동작전으로 철저하게 토벌할 것을 주장하고, 이어 발언한 김익렬 연대장은 무력 위압과 설득, 선무귀순 공작을 병용하는 작전을 건의하였다. 그러면서 김익렬은 직접적인 도화선은 밀무역자 혹은 남로당 공산주의자와 경찰 간의 마찰이나 자세한 경위를 알기 어렵다고 발언한다. 폭동자 수가 증가된 것은 빨치산이 우익 인사들을 학살했지만 경찰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초동의 대책과 작전에 실패한데서 기인된 것이며, 이 작전의 방해요소는 경찰의 기강문란이므로 전 제주도경찰을 자기의 지휘 하에 달라는 요구를 한다.
김익렬이 증거로 제출한 사진첩을 들여다보던 윌리엄 F. 딘 장관은 흥분하여 사진 자료들을 조병옥 경무부장에게 던져주며 조병옥에게 화를 낸다. 그런데 화가 난 조병옥이 김익렬을 공산주의자로 몰면서 회의장은 난장판이 된다. 조병옥은 연대장의 설명과 사진첩 등 증거물이 전부 허위조작된 것이며, 맨스필드 대령과 드루스 대위에게 제출한 자료는 경찰에 대한 중상모략이라고 극구 부인했다. 그러다가 김익렬을 손가락으로 지목하며 “저기 공산주의 청년이 한 사람 앉아 있소. 나는 오늘 처음으로 국제공산주의가 무서운 조직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았소. 헝가리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등지에서 그랬듯이 처음에는 민족주의를 앞세워 각지에서 폭동으로 정부를 전복하고 나중에는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 국제공산주의자들의 상투수단이요”라고 지적했다.
화가 난 김익렬은 “닥쳐라!”하고 고함을 질렀다. 딘 장군은 김익렬을 제지하며 연설 방해를 하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조병옥은 계속해서 김익렬을 가리키며 “민족주의의 가면을 쓴 청년들이 먼 외국에서만 있는 줄 알았더니 현재 우리나라에도 있소. 바로 저 연대장이 그런 청년이요. 우리 경찰의 조사에 의하면 저 청년의 아버지는 국제공산주의자이며 소련에서 교육을 받고 현재 이북에서 공산당 간부로 열렬히 활약하고 있소. 저 자는 자기 부친의 교화를 받고 공산주의자가 되었으며 자기 부친의 지령에 의하여 행동하고 있는 것이요”라며 공산주의자일지도 모른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딘 장군은 조병옥이 김익렬의 부친이 공산주의자라고 그럴싸하게 설명하자 깜짝 놀라며 의심에 찬 눈초리로 김익렬을 쳐다봤고, 맨스필드 대령도 의심하기 시작했다. 격분한 김익렬은 이성을 잃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단상에 뛰어올라 연설하는 조병옥에게 달려들었다.
유도 3단이던 김익렬 중령은 흥분한 나머지 주먹으로 조병옥을 끌어내 실랑이를 벌였고, 조병옥의 복부를 친 후 멱살을 잡고 내동댕이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조병옥은 김익렬의 표현에 의하면 '의외에도 힘이 장사였다. 당시 50세가 넘었는데도 쉽게 넘어지지 않아 단상에서 격투가 벌어졌다. 내가 손에 잡히는 대로 조 박사의 넥타이를 당기니까 그는 목을 졸리게 되었다.'고 한다. 넥타이로 목이 졸린 조병옥은 숨을 못 쉬고 비명을 지른다. 최천 제주경찰청장이 말리러 올라왔으나 김익렬의 발길질에 급소를 차여서 그도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딘 장군이 송호성 장군에게 싸움을 말리라고 고함을 질렀고, 맨스필드 대령과 안재홍이 달라붙어 김익렬과 조병옥을 떼놓으려 하였으나, 김익렬 역시 고함을 지르며 조병옥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당신이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을 하였다기에 애국자인 줄 알았더니 자기의 죄상이 드러나니까 무고한 나를 하필이면 공산주의자로 모느냐. 취소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하며 필사적으로 덤벼들었다.
송호성 장군은 일어서지도 않고 앉은 채로 “이 놈 연대장! 누구에게 폭행을 하느냐. 네 놈이 죽으려고 환장했느냐. 손을 놓고 말로 하라”하며 고함을 친다. 그러나 말릴 뜻은 없는 듯 입으로만 호령호령했다. 돌아가는 내용의 대강을 눈치챈 안재홍 민정장관은 손을 놓고 “연대장! 손을 놓으시오. 폭행을 멈추시오. 외국사람들이 우리를 야만인이라고 흉을 보니 어서 손을 놓고 말로 하시오”라며 제지했다. 유해진 지사가 단상에 달라붙어 다시 김익렬의 손을 떼어 놓으려고 하였으나 노령이라 역부족이었다.
김익렬과 조병옥의 몸싸움은 격화되었고, 5월 5일의 회의는 순식간에 회의장은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화가 난 딘 장군은 통역관 김모 씨를 불러 안재홍 민정장관과 송호성 장군이 지금 무어라 말하고 있느냐며 불러 물었다. 그런데 통역관이 딘 장군에게 안재홍 씨와 송 장군이 연대장에게 “너는 공산주의자이며 나쁜 놈”이라고 욕을 하고 있다고 통역하였다. 이성을 상실한 김익렬은 조병옥의 넥타이를 붙잡고 통역관에게 달려가 발길질로 음낭을 걷어 찼다. 놀란 딘 장군과 안재홍, 송호성은 회의실을 빠져나갔고, 통역관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딘 장군은 대기 경호 중이던 미군헌병을 불러들여 장내 질서를 정리하라고 명령했다. 수 명의 헌병들이 달려들더니 그 중 두 명의 헌병들이 양쪽에서 김익렬의 팔을 붙잡아 비틀고, 조병옥에게서 떼어놓고는 강제로 의자에 앉혀놓고는 두 팔을 결박하여 꼼짝 못하게 했다. 소란은 끝이 났고, 진압 회의는 결말을 보지 못한 채 종결되었다.
출처 위키백과에서의 윌리엄 F. 딘에 대한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