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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이 박사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쩔쩔매는 윤치영을 보더니 한 마디 말한다.
“자네 내 옆에서 지내다 보니까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모양이군?”
윤치영은 그 말에 이 박사를 향해 한 마디 말한다.
“저... 그게... 무슨 말씀인지...”
이 박사는 그 말에 답답하다는 얼굴을 내보이며 설명을 해준다.
“자 실질적으로 우리의 세력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윤치영의 얼굴은 순간 굳어진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윤치영은 침음을 흘리며 말한다.
“죄송합니다. 박사님.”
“자네뿐만이 아니야.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그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군. 한 번 내가 설명이라도 해줘야 하는가?”
이 박사의 말에 방 안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전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기실 모순적이게도 이 박사의 세력이 이만큼이나 성장한 배경에는 어떤 인물을 잡았던 것이 컸다. 바로 길병재를 포함한 길씨 형제들이었다.
의학, 군사, 경제 부문에서 일좌나 다름없는 위치에 자리 잡은 형제들은 각 자 지지하는 정치인들은 달랐지만 그들 하나하나가 이 한국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현재 이승만의 세력과 김구의 세력을 비롯한 우파 세력들이 남한에서 성장한 배경에는 각 군정의 영향력도 있지만 그들이 뒤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윤치영은 이 박사의 세력들 중 외적으로 도와주는 이들을 생각하자 침을 꿀꺽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
‘위험했군. 위험했어. 내가 어찌 이런 발언을 했는지 참으로...’
그런 이들을 함부로 내치다가는 자신만 다치게 된다. 비록 자신이 따르고 있는 이인 이 박사이지만 이 박사는 상당히 냉정했다. 그리고 냉정 한만큼 결정도 빨랐다. 아마 이 박사의 입장 중에서 윤치영과 그 길병재 둘 중에 하나 뽑으라고 한다면 백이면 백 그 길병재를 뽑을 것이 분명했다.
세계에서 인맥을 놓으라할 수 있고, 세계에 의료 혁명과도 같은 위업을 달성했으며 서구권의 정재계 쪽에 인맥이 있고, 전문직이라고 할 수 있는 의사들 대다수가 그의 인맥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에 반해 자신은 이 박사를 가까이서 보좌한다고 하겠지만 그 뿐이었다. 아마 이 박사에게 있어서 길병재를 더 필요로 했다.
길병재를 따르고 있는 세력들은 은근히 만만치 않았다. 그의 형제들도 있지만 그의 행적에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 역시 많았다. 재작년에 발생한 전국 각지의 콜레라 사태에서 그가 활약한 부분이 많았다. 특히 지위를 다 떠나서 한반도의 콜레라를 진압하겠다고 각종 행동을 한 그의 모습에서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길병재는 정치에 발을 담그지 않았다 일 뿐이지 만약 그가 정치계에 나선다고 한다면 만만치 않을만한 세력을 구성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런 길병재의 이 박사 지지에 많은 사람들이 이 박사 밑으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지금 한국 정치계에서 이 박사가 유력하게 나설 수 있는 이유에는 역시 길병재가 있었던 것이다.
그 때, 한 사람이 이 박사를 바라보며 한 마디 묻는다.
“그런데 그 길병재가 박사님께 무례하게 행동하신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박사는 그 말을 듣고, 그의 얼굴을 응시하며 대답한다.
“무례는 둘째치지. 그보다는 그가 ‘생구단’을 제주도 쪽으로 파견 보내는 것부터 해결해야겠지.”
윤치영이 이 박사를 바라보며 한 마디 묻는다.
“일단 동북청년단의 활동에 제약을 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걸 누가 몰라? 쯧. 이래서 머리 나쁜 인간들은 골치가 아파. 도구가 되겠다고 나에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다가 적당히 물어야지. 모조리 물어버리니 이 무슨 난감한 상황이야.”
이 박사의 말에는 동북청년단에 대한 애정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이 방에 앉아있는 사람들 역시 그의 말에 상당히 동조했다. 그건 이 박사의 비서실장이라고 할 수 있는 윤치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적당히 삶다가 버릴 개가 사고를 치니 난감하군.’
동북청년단이 일으킨 사건에 상당히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는 윤치영이었다. 반공을 한답시고, 자신들에게 방해가 되는 존재들을 때려 부수는 것이 좋았는데, 문제는 제주도에서의 일이 너무 과했다는 점이다. 윤치영은 이 박사를 바라보며 한 마디 묻는다.
“그런데 박사님. 만약 저 쪽에서 동북청년단의 처벌을 원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말에 이 박사는 냉혹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한다.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문 개들은 도살해야 하지 않나?”
그 대답에 윤치영은 고개를 끄덕인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후에도 길병재의 돌발 행동에 대한 대처를 강구하다가 이내는 그에 대한 욕질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서 나온 결론은 역시 그 무리한 동북청년단의 일원들을 토사구팽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1948년 5월 6일, 병윤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전화를 받았다.
“아 경무부장님이십니까?”
병윤에게 전화를 건 대상은 경무부장 조병옥이었다.
-지난 번 있었던 지원들은 잘 받았네. 경찰들이 자네 덕을 많이 보고 있다더군. 그런데 말이야. 자네 큰 형이 ‘생구단’을 그 쪽으로 파견 보낸다는 소식을 들었네.-
병윤은 그 말에 짐짓 생각하다가 이내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지난 번 큰 형이 말씀해주신 것을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내 진지하게 물어보는 것인데, 우리 경찰의 활동에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그 말에 병윤은 웃으면서 조병옥에게 대답한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제주도의 사태는 심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 경무부장님이 많이 곤욕을 치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으음... 자네도 그런 태도인가?-
“많이 서운하신 모양이군요. 하지만 전 진심으로 경찰 쪽을 매도할 생각 따위는 없습니다. 만약 경찰 쪽이 심했다고 생각하면 지원을 줄이거나 했겠지요.”
-그 말은 협박인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받으면 처음에는 선물로 생각하다가 이내 권리로 생각하는 편입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겠군. 미안하네.-
조병옥의 사과에 병윤은 흠흠 거리면서 대답한다.
“사실 경찰 쪽보다는 동북 청년단 쪽이 더 심하다는 의견이 들려서 그렇습니다. 경무부장님이 경찰 쪽을 잘 해주신다면 경무부장님이 앞으로 들으실 불쾌한 말들에 대해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 말은? 경찰 쪽은 우리가 알아서 하라는 말이고...-
“지난번에 형님에게 경무부장님이 심한 말을 들었다고 전달받았습니다.”
-으음... 그래. 일단 자네 말대로 제주도의 경찰 쪽이 내가 알아서 담당하지. 하지만 일이 잘 안 돌아간다면...-
“하하. 걱정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일이 잘못된다고 하더라도 경무부장님이 곤란하실 상황은 전혀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은 자네가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것과 동일한가?-
“제 형님 때문에 어느 정도 경무부장님의 입장도 바꿨으니 그에 대한 책임도 우리 형제들에게 있지 않겠습니까?”
-알겠네. 내 그리 알고 있겠네. 이만 끊지.-
“예. 그럼...”
조병옥과의 연락이 끊어졌고, 병윤은 송수화기를 다시 제자리로 갖다 놓는다. 그리고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는 한 여인을 바라본다. 바로 진세연이 비서실장에 등극하면서 지금은 비서단의 한 명으로 되어 있는 손채현이었다. 병윤은 손채현을 바라보면서 한 마디 말한다.
“아저씨의 보좌관으로 행동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에 손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병윤에게 대답한다.
“저 역시 제 인생의 방향을 잡을 만한 자유의지는 있지 않습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아저씨의 보좌관으로 가실 생각인지...”
“할아버지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물고기는 큰 곳에서 놀아야 성장한다고 말입니다. 전에 있던 제 일들은 후임에게 인수인계했습니다.”
병윤은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손 비서님. 당신의 사임을 허용하겠습니다.”
손채현은 그 말에 서운하다는 얼굴을 내보이며 병윤에게 말한다.
“여자를 순순히 내려놓는 것을 보니 당신은 정말로 이성에 대한 감정은 별로 없네요.”
“이 상황에 여자의 손목을 잡아서 매달리는 남자도 있는 반면에 미련 없이 여자를 떠나보내는 남자도 있기 마련입니다.”
“칫...”
손채현은 그렇게 소리를 내고는 아쉽다는 얼굴로 병윤을 바라보며 말한다.
“회장님이 정말 원하는 여인상이 누구인지 참으로 궁금하네요.”
그 말에 병윤은 씁쓸한 얼굴을 짓고는 대답한다.
“글쎄요. 원하는 여인상이라.”
병윤은 그렇게 말하고는 끝내 손채현에게 대답하지 않고, 화제를 돌린다.
“그리고 혹시 여기에 다시 일하고 싶다면 연락주십시오. 당신의 자리 정도는 만들어드릴 힘은 있으니 말입니다.”
“후. 회장님은 그럴 힘이 있겠지요.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손채현은 그렇게 이야기했고, 결국 그녀는 병윤의 추천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는 장성환의 보좌관에 임명되었다.
1948년 5월 10일, 어느 지옥도와 같은 한 곳만을 제외하고 한반도 전국에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각 마을 중앙 회관에는 선거구들이 있었으며 그 선거구에 원하는 후보들을 투표하고자 줄을 선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작년에 발급 받은 공민증을 제출하여 표를 가지고 투표를 한다. 그런 모습들이 전국 각지에 보인다.
그리고 그 모습은 문경 사현리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공동으로 사용되는 마을회관이 선거사무소가 되었고, 마을사람들 역시 완장을 찬 선거관리인의 안내에 따라 줄을 선다. 마을사람들이 공민증을 내면서 차례차례 표를 받아가며 투표할 시점에 길씨 가족들 역시 줄을 선다.
한국에서 유력한 위치에 놓인 길씨 가족들의 모습에 완장을 찬 선거관리인 역시 굽실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마을사람들이 투표하면서 드디어 가족들의 차례가 다가왔다.
형제들인 병재, 병주, 병윤은 표에 원하는 후보의 이름을 적어내었고, 선거구에 놓는다. 길남효, 김민숙 부부 역시 투표했고, 장녀인 길효순 역시 투표를 했다. 차녀 길효혜 만이 이 선거사무소에 놀러온 격이 되었다.
가족들이 볼 일을 보고, 회관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한 사람이 그 가족들을 부른다.
“이런 물어볼 것이 있네.”
순간 가족들의 고개가 말이 들리는 곳을 향하니 그 곳에는 이 마을의 촌장 격인 방씨가 서 있었다. 병윤은 흠흠 거리며 한 마디 묻는다.
“무슨 일이십니까?”
“내 궁금한 것이 있는데. 자네라면 답변해줄 수 있겠지?”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자네가 생각하기에 그 장성환이는 당선될 만한가?”
병윤은 그 물음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이내 뭔지 모를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장담을 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은?”
“길이는 대봐야 아는 것이고, 저 역시 아저씨에 대해서 전력으로 지원했지만 결과는 하늘만이 알 것입니다.”
방씨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한 마디로 결과를 점칠 수 없다는 것이겠군.”
“저 역시 확신할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대신 낙선된다고 하여도 그 이후의 일들을 잘 계획해두었으니 큰 문제점은 없을 것입니다.”
“으음. 그런 경우도 대비를 하는 건가?”
“노리는 자리가 큰 만큼 계획도 커야 됩니다.”
“알겠네. 휴우...”
방씨는 그렇게 말하고는 곧 다른 곳으로 향한다. 그 때, 병윤을 바라보며 그의 아버지인 길남효가 묻는다.
“그런데 네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아버지의 말에 병윤은 머쓱한 얼굴을 지으며 대답한다.
“저라도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쯧. 그래도 이럴 때에는 무조건 당선된다고 말을 해주면 덧이 나냐?”
병윤은 그 말에 희미하게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렇게 말하다가 안 되면...”
“쯧. 네 생각을 들어보니 잘 알겠다. 일단 집에 돌아가서 결과를 보자고.”
“예. 아버지.”
일단 선거 투표일인 만큼 동협 그룹의 직원들은 오늘에 한해서 쉬었다. 일에 치중하지 말고, 선거에 치중하라는 병윤의 배려 덕분이었다. 물론 그 것은 병재와 병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형제들의 집이기도 한 ‘우리 집’에서 오랜만에 형제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병재는 병윤을 바라보더니 한 마디 말한다.
“저번에 경무부장에게 전화를 받았다고 하더군.”
“예. 아무래도 그 쪽에서 벌여놓은 일이 있던 지라 어떻게 수습할지 난감한 상황이더군요.”
“그 쪽에서 ‘생구단’을 파견한 것에 대해서 불만 같은 것이 없었고?”
그 말에 병윤은 빙긋 웃으며 병재에게 대답을 해준다.
“적어도 형님이 내건 명목상 그들이 견제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 쪽에서 방해를 할 수 있겠지만 그러다가는 우리 쪽에서 오는 도움이 끊어지는 것을 감내해야 되겠지요.”
병재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면서 병윤에게 한 마디 말한다.
“무서운 녀석.”
병윤은 그 말에 싱긋 웃을 뿐이었다. 이내 병재는 병주를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그런데 네 후배라는 인간은 이제 어떻게 되었나?”
병주는 그 말에 씁쓸한 얼굴을 짓더니 한 마디 대답한다.
“아무래도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갈 모양입니다.”
“전근을? 허...”
“적어도 징계나 파면을 당하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흠. 그 것 참. 만약 군 쪽에서 누군가 이상한 이가 온다면 상당히 문제겠군.”
“일단 군 쪽에 제가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런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면 제가 알아서 행동할 것입니다. 다만 제주도의 시민들에 대해 유화적으로 행동했던 군 쪽이 강경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지요.”
그 말에 병재는 씁쓸한 얼굴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리고... 여차하면 제가 그 쪽으로 가볼 생각입니다.”
순간 터져 나온 병주의 폭탄선언에 병재와 병윤은 당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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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심으로 폭염 짜증납니다. 낮에 글을 쓸 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