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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1948년 6월 20일, 동협 그룹 본사 회장실에서 병윤은 서류들을 살펴본 뒤 이 서류들을 가지고 온 눈앞의 중년 남성을 보고 묻는다.
“요즘 ‘검은 매’의 판매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군요.”
그 말에 중년 남성이자 동협 기계 회사의 사장인 조범휴는 병윤을 바라보며 말한다.
“예. 지난달에 벌어진 중동전쟁과 또 가까운 시일 내에 벌어진 베를린 봉쇄 덕분에 효과적으로 공중을 다닐 수 있는 기체들의 수요량이 많이 증가했습니다. 특히나 중동전쟁이 ‘검은 매’의 홍보를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병윤은 그 말에 싱긋 웃으면서 조범휴에게 말한다.
“생각보다 효과적인 홍보군요. 저 쪽에서 잘 이용해주는 덕분에 우리 ‘검은 매’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군요.”
“특히 개조의 용이성과 압도적인 물자 운송량, 그리고 안정성, 고정익기와 맞먹는 성능까지 회장님이 이런 명품을 탄생시킨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병윤은 그 말에 피식 웃고, 손사레를 치며 조범휴에게 말한다.
“괜한 아부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주문 건수가 폭주하니 이 때가 기회입니다.”
“예. 회장님이 말씀하지 않으셔도 지금 밤낮 가리지 않고, 헬기들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각지의 나라에서 방문한 인사들이 여기로 찾아와 주문을 넣고 합니다.”
“흠. 좋군요. 방문한 손님들은 잘 대접하며 주문을 받도록 하십시오. 또. 경량 헬기의 양산화에 대해서 어떻게 진행하고 있습니까?”
조범휴는 그 말에 병윤을 바라보면서 한 마디 대답한다.
“일단 적재량에 대해서 조금 높이고, 기동성은 그대로 유지시키게끔 했습니다. 더군다나 크기를 반으로 줄이니까 그만큼 양산하기 힘들다는 점이 있습니다. 특히 문제점은 크기가 줄인 만큼 부품의 크기도 줄여야 하는데, 그게 힘들다는 점입니다.”
병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범휴에게 말한다.
“부품의 크기보다는 필요 없는 부품을 빼버리는 방향으로 가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니면 부품들의 성능을 한꺼번에 동작시키는 새로운 부품을 개발하는 식도 괜찮겠군요.”
“지금도 회장님이 비밀리에 개발한 헬기의 설계도면을 보고, 전체적인 윤곽을 잡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생산하기에는 시간이 조금 부족할 따름입니다.”
조범휴의 난처하다는 말투에 병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급박하게 출시하지 않아도 되니 천천히 하십시오.”
병윤의 말에도 불구하고, 조범휴의 난감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조범휴는 속으로 병윤을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한다.
‘끙. 천천히 해달라는 회장님의 지시가 우리에게는 시간을 잘라가며 조이는 일입니다.’
병윤은 그의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류의 내용에 집중하고 있었다. 곧 시간이 지나자 병윤은 자신이 들고 있던 도장으로 서류의 서명 란에 찍으며 결제한 뒤 그걸 다시 조범휴 사장에게 넘긴다. 조범휴는 결제한 서류들을 받고, 병윤에게 인사를 한 뒤 방 밖으로 나간다.
그렇게 홀로 남은 병윤은 코코아를 타면서 홀짝 마시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낼 때쯤, 누군가가 방 안을 찾아온다. 병윤은 여유롭게 자신의 시간을 즐기다 지금 바로 들어온 인원들을 보고, 영 골치라는 얼굴을 짓는다.
아이들이 이 방 안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지금 아이들을 막지 못해 곤란한 얼굴이라는 경호원들의 모습이 선하다. 왜냐하면 이 아이들 중에는 병윤의 유일한 여동생인 효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효혜는 자신의 막내 오빠 병윤을 보자 히히히 웃는다.
이제 효혜는 6살 정도 먹은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가 되었다. 자신의 오빠들 덕분에 가정이 유복해지자 처음에 동년배에 비해 작았던 몸집도 지금은 다른 아이들과 비슷할 정도의 성장세를 보였다.
“헤헤헤. 오빠. 또 친구들 데려왔어.”
효혜의 말에 병윤은 영 골치라는 얼굴을 지으며 한 마디 말한다.
“쓰읍! 여기는 아이들 놀이터가 아니란다.”
효혜는 그 말에 얼굴을 뾰로통하게 지으며 병윤에게 대답한다.
“흥. 요즘 따라 막내 오빠는 나랑 잘 안 놀아주잖아?!”
효혜의 말에 병윤은 당황한 표정을 짓고는 대답한다.
“저 그게. 효혜야. 난 요즘따라 일이 바빠서...”
“힝! 미워! 오빠 매번 놀아주겠다고 해놓고선...”
병윤은 그 말에 침음을 흘리고는 한숨을 푹 쉰다. 그리고는 아이들을 막고자 눈에 선한 경호원을 보고 한 마디 말한다.
“전 애들을 좀 데리고, 산책이나 갖다오겠습니다. 혹여 여기에 일이 온다면 비서실장에게 넘겨주십시오.”
경호원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한다.
“염려 마십시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병윤은 처량하다는 얼굴을 지으며 지금도 방을 어지럽히는 아이들을 데리고, 방 밖으로 나간다. 효혜 때문에 졸지에 아이들 보모 신세가 된 병윤이었다.
한편, 서울 요정 명월관의 어느 방 안, 양복과 한복을 입은 두 노인은 길쭉한 상을 기준으로 서로 바라보는 방향으로 양반 자세로 앉아 있었다. 두 노인의 측근들은 지금 이 두 사람이 뿜어내고 있는 기운에 긴장된 얼굴을 하고선 눈치만을 살핀다.
양복을 입은 노인, 즉 이 박사는 상대편에 있는 노인 김구에게 밝은 미소를 지은 뒤 말한다.
“동생. 우리는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이 조국을 탈환하고자 온갖 노력을 다 했지. 강대국의 바짓단을 잡고, 지원을 얻어가며 이 조국을 수탈해간 일제의 압제에 신음해가는 우리 민족들을 구하기 위해서 말이야.”
김구는 이 박사의 말에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정말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매번 이어지는 시련과 거대해지는 암담한 현실 속에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 맞는 말이야. 하지만 그런 일제의 압제도 3년 전에 이미 물러났지. 그러나 일은 끝나지 않았네.”
김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 박사를 바라본 뒤 말한다.
“형님의 말이 맞습니다.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내리는 가혹한 시련들은 한참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 맞는 말이야. 독립 한 후에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지. 하지만 나락 속에 나락이 있다고 말을 하고 싶군.”
이 박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씁쓸한 웃음을 김구에게 내보인다. 김구 역시 그 말에 동감을 느끼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난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마지막 도박을 하고 싶군. 동생이 나를 조금 도와주면 안 되겠나?”
이 박사의 말에 김구는 싱긋 웃으며 대답한다.
“제가 저 홀로 있다면 형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지만 저 역시 세력이 있는 몸입니다.”
김구의 말에 이 박사는 흠흠 기침을 하고는 대답한다.
“나도 자네의 입장을 잘 알겠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두 세력이 다투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야. 다른 세력들이 뻔히 눈을 돌리며 확장할 마음을 가지는 상황인데, 여기서 우리 둘이 다투다가는 그들에게 어부지리인 상황 밖에 더 되겠나?”
김구는 그 말에 자신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마신 뒤 생각에 잠겼고, 이 박사는 그런 김구의 모습을 보며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기다린다. 김구는 찻잔을 놓인 뒤 이 박사에게 한 마디 말한다.
“난 형님을 믿습니다. 형님을 잘 믿습니다. 그러나 확실하게 해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자리는 우리 두 명은 물론이고, 지금 우리 두 사람을 따르는 사람들의 눈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큰 그림을 위해 저 역시 양보는 하겠지만, 저 역시 세력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구는 그렇게 말하고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든다. 바로 녹음장치였다. 이 박사는 그 장치에 ‘으음’ 침음을 흘리고는 김구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건?”
“길씨 형제들 중 막내인 병윤에게 얻은 장치입니다. 여기서 들리는 대화들을 녹화해두는 장치입니다.”
“녹화? 으음... 정말로 자네는 확실히 해두고 싶군. 하지만 그 녹음장치에서 녹음된 테이프는...”
김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테이프는 여러 개 준비해 두었습니다.”
이 박사는 그 말에 침을 꿀꺽 삼키며 김구를 바라본다.
“좋아. 자네가 그런 결심을 한다면 나 역시 진심으로 자네를 상대할 수밖에 없겠군. 내가 자네를 초청한 이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이야.”
“형님의 비서가 나에게 큰 거래를 하자고 말을 하더군요.”
“그래. 맞아. 난 큰 거래를 하고 싶거든.”
이 박사의 말에 김구는 그를 응시하더니 흠흠 헛기침을 한다.
“제가 아는 형님은 욕심과 야망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 박사는 그 말에 허허 웃더니 강한 눈빛으로 김구를 보고는 말한다.
“그건 자네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형님은 저 아니 저를 포함한 세력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박사는 그 말에 자신 앞에 있는 찻잔을 들어 차를 마시며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조용히 김구를 쳐다보며 말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 나라의 일좌야. 그러나 그 일좌라 한들 마음대로 국정을 좌지우지 할 수 없는 법이지.”
“흠...”
“국무총리 직은 자네에게 주지.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직위는 나에게 주게나.”
김구는 그 말에 책상을 손가락으로 통통 튕기며 고민에 빠진다. 이 박사는 그런 김구의 모습에 한 마디 더 크게 말한다.
“자네가 큰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이번만큼만 양보해 주게나.”
이 박사의 말에 김구는 생각을 하더니 이 박사를 바라보며 대답한다.
“국무총리 직이라...”
“내가 생각하는 대통령의 직위보다는 못하지만 그에 걸맞은 자리야. 그리고 정부의 처음 내각 자리에 대해 양보할 마음이 있다네.”
김구는 그 말에 이 박사를 바라보고는 싱긋 웃으며 대답한다.
“형님 말씀대로 이번 것은 큰 그림이군요. 좋습니다.”
“그래. 이건 자네와 내가 동맹을 맺는 큰 그림이야. 적어도 자네와 나와 힘을 합한다면 누구도 무시못할 세력을 가질 거야.”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 서로 논의를 해봅시다. 형님과 저, 두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거대한 거래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 박사는 그 말에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좋아. 꽤 재밌는 거래가 되겠군.”
그렇게 두 사람은 의기투합한 표정을 지으며 곧바로 내각의 자리에 대해서 서로 의견을 나눈다. 얼핏 보면 김칫국을 마시는 형국이었지만 두 사람의 세력은 홀로 대권에 도전하기에 충분한 세력이었다.
그 때, 사회부 장관 자리를 놓고, 의견을 나누던 김구와 이 박사는 어느 특정한 사람을 그 자리에 임명하고는 생각에 잠긴다. 김구가 이 박사에게 먼저 말을 건다.
“보건국의 자리는 역시 그에게 맡길 생각이십니까?”
“그라면... 아. 길병재군 말이군.”
이 박사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생각에 잠긴 모양이었다. 그가 자신을 지지하는 큰 세력이기는 하지만 제주도의 일 때문에 거리가 조금 멀어졌다. 이 박사는 흠흠 거리며 김구에게 대답한다.
“자네는 이 보건국의 국장에 자리 앉힐만한 유능한 사람이 생각나는가?”
그 말에 김구는 생각을 하더니 이내 이 박사에게 대답한다.
“보건국의 자리를 그에게 맡기는 것은 경력, 능력, 그리고 인망에 대해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이...”
“그래. 적절한 연륜이겠군.”
“지금도 그는 우리나라의 현대적인 의학 체계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를 그 자리에 임명하는 것보다는...”
“그가 적절한 연륜을 갖추면 임명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인가? 그렇겠군. 그럼 이 사람은 어떤가?”
이 박사는 어떤 한 사람의 사진을 꺼내어 김구에게 넘겨준다. 김구는 이 사람의 얼굴을 보더니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 사람이라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김구가 본 사진에는 정필중의 얼굴이 찍혀 있었다. 현재 정필중은 동현 대학교 의학교수이기도 했다. 이 박사는 정필중에 대해 설명한다.
“연륜도 이 정도면 되었고, 실력 역시 그보다는 못하지만 다른 의사들에 비하면 충분한 명의이지. 더욱이 의학계에 발이 넓고, 또 보건의 행정에도 어느 정도 잘 알아. 그리고 특히 그가 만들어내고 있는 현대 의학 체계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지.”
“각 군정에서 의학 고문에 선정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이 박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맞아. 그만한 사람은 없을 거야. 그리고 또...”
이 박사는 김구에게 한 사람의 사진을 또 보이며 말한다. 김구는 사진에 찍힌 얼굴을 보고는 놀란다.
“이 사람은... 외국인 아닙니까?”
“맞아. 하지만 외국인 고문에 잘 맞은 사람이야.”
“흐음...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알다시피 동현 대학교가 개교하기 전에 재생치료병원의 예전 사무소장이지. 이름은 에드워드 시렌. 나이야 40대 중반의 사람이야. 그러나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의학 행정에 대해서 많은 경험을 가졌다는 거야.”
“의학 행정이라...”
“또 가장 좋은 점은 그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지. 즉 미국에 간섭이야 받겠지만 그건 다시 말하면 미국의 상당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지. 더욱이 그는 여기서 생활했던지라 우리나라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네.”
“사회부 외국인 고문에 적절한 사람이군요.”
“맞아. 미 본국에서도 그를 한국 전문가, 그리고 의학 행정 전문가로 초빙하려고 한다는 소식이 들었네. 하지만 그런 귀중한 인재를 다른 곳으로 빼돌릴 수는 없는 법이지.”
김구는 그 말에 공감을 했는지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그럼 사회부의 장관은 우촌(전진한의 호)으로 정하는 것입니까?”
“그래. 우촌으로 정하되 대신 그에게는 노동 부문에 대해 전담하게 하고, 보건에 대해서는 내가 추천해준 사람들에게 전력을 다하게끔 할 생각이야.”
“그런데 사회부 아래에 있는 보건국 이라면 우촌의 명을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보건국을 보건부로 따로 독립시킬 생각까지 할 정도였네. 그런데 우촌은 보건에 대해서 그들에게 맡기겠다는 입장이야. 그래서 보건국을 사회부 밑으로 편입시킨 거야.”
김구는 그 말에 흠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형님의 말은 잘 이해가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사회부는 내 사람으로 구성된 것 같군.”
“예. 그럼 가장 중요한 국방부는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김구의 물음에 이 박사는 피식 웃고는 오히려 되묻는다.
“자네는 누굴 정했으면 좋겠나?”
김구는 그 말에 상당한 고민에 빠진다. 국방에 관련해서 국군을 창설하는 문제에 대해선 별반 걱정이 없었다. 지금 광복군이 국군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명칭을 바꿔주기만 하면 되겠지만 국방부 장관은 생각 못했다.
============================ 작품 후기 ============================
이제 슬슬 정부 내각 구성에 들어가는 모양이군요. 원 역사에 비해서 이 이야기 속에는 김구와 이 박사의 사이는 소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두 사람 역시 찢어지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