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464화 (46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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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시간이 지나 눈을 감으며 가만히 고민하던 김구는 이내 슬며시 눈을 뜨며 마음을 정했다. 그는 곧바로 자신 앞에 대면해 양반 자세로 앉아 있는 이 박사를 바라보고는 진중하게 입을 연다.

“국방만큼은 국가의 안보에 상당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김구가 그렇게 운을 떼자 이 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묻는다.

“그래서. 자네는 국방부 장관에 누가 등극하면 좋겠는가?”

김구는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이 박사에게 소리친다.

“지청천. 현재 광복군 총사령관 직에서 근무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박사는 그 말에 흐음 생각을 하다가 김구의 말에 고민한다.

“지청천이라... 하기야 경력과 연륜을 생각하면 그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

이 박사의 말에 김구는 오히려 궁금한지 한 마디 물어본다.

“형님은 누구를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나? 솔직히 그 친우를 꼽고 싶군.”

“그 친우라면?”

이 박사는 김구를 응시한 모습으로 한쪽 입 꼬리를 올리며 피식 웃는다.

“현재 참모총장을 맡고 있는 이범석 장군.”

“아. 그런데 그 이는 형님의 사람이 아닙니까?”

김구가 그렇게 말하자 이 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래. 그래서 자네에게 한 번 양보를 해본 것이야.”

“으음...”

“또 자네의 얼굴을 보아하니 지청천은 자네의 사람이 아닌 것 같더군.”

김구는 그 말에 한숨을 푹 쉰다. 광복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대였다. 그래서 친밀도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 선정할 수밖에 없었다. 김구는 씁쓸한 얼굴을 지으며 이 박사에게 말한다.

“이번 것은 형님에게 양보를 해드릴 수밖에 없겠군요.”

이 박사는 그 말에 ‘호오?’ 눈가를 올리며 김구를 바라본다. 꽤 중요한 자리인데 순순히 양보해주는 김구의 모습에 이 박사는 속으로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국방부 자리와 맞먹는 동등한 내각장관의 자리를 넘겨야 한다는 불안감이 동시에 들었다.

“험험. 좋아. 국방부 장관 직에는 지청천 장군을 선정하고, 합참의장에는 이범석 장군을 임명하면 적절하겠군. 그리고 차관 직에는 김홍일 장군을 선정하면 되겠군.”

역시 군대에 관한 것은 광복군에 재직 중이던 사람들을 쓰는 것이 좋았다. 정통성, 그리고 현재 활동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파격적으로 사람을 쓰는 것은 자칫 안정된 조직을 흔들거리게 만들 수 있는 노릇이었다. 이 박사의 말에 김구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한다.

“그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공이 많으니 그렇게 승진하는 방향이 옳겠지요.”

“그래. 맞는 말이야. 대신 비어진 자리들에 대해 누구를 승진시킬지 참으로 고민이 되는군.”

이 박사의 말에 김구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광복군 승진, 자리 배치에 대해서 한껏 논의를 했다. 재직 중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우습기 그지없었지만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모습들을 살펴보면 정치적으로 또 조직적으로 합당했다. 그렇게 서로 신나게 이야기하던 두 사람은 한 사람에 대해 우뚝 멈춰 선다.

“으음. 이 사람을 천거한 사람이 자네였나?”

김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 박사에게 대답한다.

“그 때는 어쩔 수가 없었거든요. 조직의 크기는 날로 늘어 가는데, 그 조직을 이끌어갈 능력 있는 간부들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비록 적국이라 하지만 근대식 군대 교육을 받고, 몇 년 동안 근무했던 경력 있는 간부들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천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박사는 그 말에 지금 말하고 있는 상대를 머릿속에 생각하니 절로 침음이 흘러나온다.

“으음...”

그런 이 박사의 모습을 바라보는 김구는 한숨을 쉬며 묻는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있습니까?”

“이 친구는 다른 것들은 다 상관없지만 출신성분이 문제가 되는군.”

그 말에 김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역시 그런 말을 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 전 황가의 출신인 이 사람이 일본군에 몸을 담갔다는 말들이 나온다면 우리들에게 꽤나 곤란하게 되지 않나? 또 말 많은 자들은 나라를 팔아먹은 황가의 자손들이 군대의 중추에 다가선다고 하는 말들이 선하군.”

이 박사의 말에 김구는 할 말이 없어진다.

“하지만... 나 역시 이 사람을 그냥 물러서라고 말을 할 수가 없겠군. 과거야 어찌되었든 일단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의 능력이니 말이야. 그렇지만 출신이 출신인 만큼 주의를 줘야겠군.”

“주의라면?”

“그래. 황가에 무리하게 접촉을 하는 것은 금해야겠어. 공화국으로 가는 분위기를 또다시 왕국으로 만들겠다고 설치면 안 되니 말이야.”

김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안 그래도 저번에 그 자와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형님께서 그리 우려할만한 상황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박사는 그 말에 한쪽 입 꼬리를 올리며 말한다.

“사람은 말로 그럴 듯하게 상황을 넘길 수 있어. 사람 마음속은 모르는 법이지. 물론 지금 그런 짓을 하다가는 제 무덤을 제가 파는 것에 불과하니 말이야.”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을 어디로 임명하실 생각입니까?”

“아무래도 그 일은 광복군 내부에서 알아서 결정하는 방식이 좋겠군.”

그 말에 김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땅히 따를 뿐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창 국방부 창설 및 조직의 간부 선정 이야기에 열을 올린 뒤 끝낸다. 내각 구성에 대해 이야기가 길어지자 두 사람 모두 조금씩 체력이 달리는 것을 느낀다.

“동생. 조금 쉬었다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형님이 먼저 말씀을 꺼냈으니 저 역시 마땅히 따를 뿐입니다.”

“좋아.”

이 박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결국 자신들의 측근들을 이끌고, 이 방안에서 나가 다른 방으로 간다. 이 방 안에 남은 김구와 그의 측근들은 이제야 숨을 돌리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 지금까지 지속된 긴장감을 풀어댄다.

김구의 옆에 있었던 한 사람이 김구에게 물어본다.

“이 박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구는 그 말에 자동적으로 긴장된 얼굴을 지으며 대답한다.

“절대로 방심할 수는 없는 사람이야. 아무리 사적으로 형님 동생 한다고 말을 하지만 말이야.”

그 말에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한다.

“저 역시 공감합니다. 이 박사님은 이해득실이 강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김구는 그 말에 텁텁하다는 얼굴을 지으며 대답한다.

“그래. 맞아. 이 자리에 그들이 있었으면 적당하겠는데.”

“그들이라면?”

“길씨 형제들.”

“아... 그런데 그들은 정치에 발을 뗀 것 아닙니까?”

김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직접적으로 발을 가지 않았을 뿐이야. 간접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어.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들도 많지. 아마 그들이 여기에 있었다면 적어도 나와 형님은 조금 편하게 거래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군.”

그 말에 그는 조금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김구에게 묻는다.

“그런데 그들에 대한 말씀을 들어보니, 전적으로 믿는 것 같은데...”

김구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그렇게 보였던가? 나도 그들을 다 믿는 것 아냐.”

“요즘 따라 그들에게 접근하는 세력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몽양이 계속 그들을 물들일까봐 걱정입니다.”

김구는 그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한다.

“몽양이라도 그들의 마음을 돌리기는 힘들지. 아주 큰 폭탄이 없다면 말이야.”

“폭탄?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모르면 알 필요 없네.”

“으음... 알겠습니다.”

그렇게 김구와 그와의 대화가 끝났고, 곧 김구의 측근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편, 다른 방에서 편히 앉아 휴식을 취하던 이 박사와 측근들 역시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윤치영 비서실장이 이 박사를 바라보며 묻는다.

“그런데... 백범의 말을 들어보니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이 박사는 그 말에 훗 웃고는 윤치영을 바라보며 대답한다.

“동생이라 하지만 상당히 만만치 않아. 역시 유유상종인가?”

“그 말씀은...”

이 박사는 윤치영을 바라본 채로 히죽 웃으며 대답한다.

“그 녀석의 눈빛에는 상당한 권력 욕심이 들어 있어. 나와 마찬가지로 말이야. 대의로 포장했든 안했든 그 녀석 역시 열매까지 차지하려는 인간이나 마찬가지이지.”

“그러면 더욱 위험한 것 아닙니까?”

그 말에 이 박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한다.

“그런 녀석일수록 조종하기는 쉬워. 다만 까다로운 것은 역시 그이겠지.”

“그이라면? 아... 길병재 군을 말씀하십니까?”

“맞아. 그런 녀석은 상당히 고달파. 내 사정에 대해서 훤히 꿰뚫으면서 자기 멋대로 할 녀석이지. 판을 깔아놓은 상황에서 그 녀석은 자신과 맞지 않는다면 그 판을 엎어버릴 녀석이야.”

이 박사의 말에 윤치영 흠칫 긴장된 얼굴을 짓는다. 이 박사는 그런 윤치영을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흠. 그 녀석이 어느 정도 권력에 욕심이 있었다면... 애초에 이런 곤란한 상황까지 안 올 것이 뻔하지. 하지만. 역시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의 역할을 똑바로 잘 할 수 있는 사람 말이야.”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야.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지. 그러나 그의 경우는 사람이 많다한들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으음. 이 박사님은 그를 경계하면서도 상당히 높게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이 박사는 그 말에 큭큭 웃으면서 대답한다.

“과연 나만 그럴까? 사람 보는 눈이 없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도 그 이를 평가할 때, 과연 어떻게 평가할까?”

“으음...”

“자네가 생각했을 때, 그를 과연 치우고 뒷수습을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그 말에 윤치영은 한창 생각하더니 이내 어렵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일단 능력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저라도 상당히 어려울 것 같습니다. 또 그에게는 수틀리면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그만입니다.”

“맞아. 그를 원하는 나라들은 많아.”

“휴우. 참으로 모순적인 상황입니다. 저 역시 그를 거리를 두지만 막상 필요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그를 쓸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이제 막 이립(30세)에 들었다는 것이야. 아직도 성장할 여력이 충분히 남아 있지. 그리고 더 무서운 점은 그뿐만 아니야.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의 형제들도 있지.”

그 말에 윤치영은 침을 꿀꺽 삼킨다. 길병재 혼자만 하더라도 버겁기 그지없는데, 거기에 병주, 병윤까지 끼어든다면 상당히 골치가 아팠다. 서로 사이가 나쁘다면 별 상관없는 일이겠지만 서로 진출한 영역들이 달랐기에 서로 경쟁할 이유가 없었고, 또 상호보완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각자 진출한 영역에서 크나큰 세력을 구성했다. 병재야 미리 설명했으니 넘겨두고, 우선 병주만 보더라도 한 개 정규 사단을 움직이는 사단장이었다. 그리고 그의 군사적 능력에 대해서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지난 중일전쟁 때, 그가 활약한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들이 많았고, 또 훈련하는 모습을 들었을 때는 어떻게 그를 상대할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기에 광복군에 근무하고 있는 일선 장교들이 그와 인맥을 맺었다는 것이다. 또 그가 지휘한 사단에 대해서는 그가 만약 다른 마음을 품는다면 사단 내 병사들과 장교들이 그의 사병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장악이 되어 있었다. 거기에 최신식 무장들이 장비되고, 각종 훈련을 받은 정예사단 하나가 천부적인 군사적 능력으로 지휘하는 그의 모습을 떠올릴 때, 이 박사 역시 그를 다른 곳으로 돌릴까? 라는 말을 많이 했었다.

병주의 이야기야 여기서 그만두고, 가장 큰 문제는 병윤이었다. 이미 한반도의 경제는 그의 손아귀에 들었다고 볼 수 있었다. 지금껏 한반도에 많은 혼란들이 왔지만 지금까지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에는 병윤의 경우가 컸다. 그가 세운 동협 그룹이 한반도의 경제적 기반에 기여한 바는 뭐 말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경공업이야 그들이 양보한다고 해서 진출하지 않지만 중공업은 이미 완벽히 장악당하고도 남았다. 거기에 광복군의 군수지원기업은 그들이었다. 또 외국에 수출하여 얻는 돈들을 생각하면 이 박사 역시 고개를 숙이며 그들에게 돈을 지원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박사 역시 그들에게 받은 돈을 생각하면 절대 적대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박사의 급속한 세력 성장에는 병재의 몫이 컸지만 병윤의 자금지원도 어느 정도 있었다. 요즘은 각지에서 발생한 세계의 사태 때문에 꽤나 경제적 호황을 누린다고 들었다.

그 때, 이 박사는 자신이 찬 손목시계의 시간을 살펴보자 이내 시선을 측근들에게 돌리며 말한다.

“이제 슬슬 협상을 진행할 때가 온 것 같군. 일어들 나게나.”

그 말에 이 박사를 포함한 측근들이 천천히 일어나고는 다시 협상을 진행한 방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협상을 시작할 때처럼 그 자세, 그 분위기를 다시 내보인다. 이 박사는 김구의 얼굴을 바라보며 싱긋 웃는다.

“얼굴을 보아하니 꽤 잘 쉰 것 같군. 편안히 거래를 시작해볼까 하는데.”

김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저 역시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박사는 그 말에 큭큭 웃으면서 김구에게 말한다.

“좋아. 국방부에 관한 이야기는 끝냈으니. 이번에는 상공부야.”

상공부란 단어에 김구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난다. 이 박사 역시 그런 김구의 눈빛에 미리 예상했다는 얼굴을 지으며 말한다.

“국방부에 대해 크게 양보한 자네를 생각해서 상공부에 관해선 자네의 의견을 크게 넣도록 하지. 어떤가?”

그 말에 김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형님의 아량에 감격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 말을 들어보니. 이미 생각한 사람이 있겠군.”

김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 사람의 신상명세서의 자료를 이 박사에게 넘긴다. 그는 그 자료의 내용을 읽어보며 고개를 끄덕인 뒤 대답한다.

“이 자료의 내용에 상공부에 뽑힐 사람은 이 사람이 적절하겠군.”

이 박사가 바라보는 신상명세서의 이름에는 ‘김추용’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의 얼굴은 머리가 풍성한 중년 남성의 얼굴이었다. 특히 경력 란에서 상당히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정현 사업이라는 기업을 운영하면서 중국군정 경제 고문에 선정되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 박사는 그의 이름을 보고 생각에 잠긴다.

============================ 작품 후기 ============================

김추용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1부를 자세히 읽은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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