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472화 (47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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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1948년 7월 26일, 김성수와 김준연은 문경으로 방문했다. 그들의 눈에 보인 문경의 풍경은 꽤나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김성수는 하늘 찌를 듯 높이 세워진 고층 건물을 보고 감탄의 어조로 한 마디 말한다.

“외국에서 볼 수 있는 고층 건물이 여기서 보이다니.”

김성수는 문경의 거리를 걸으면서 그 곳의 경치를 구경한다. 상상외로 발전한 것 같았다. 행인들의 얼굴과 모습에도 활기가 어느 정도 넘치는 것 같았다. 인도와 도로는 구분이 되어 있고, 도로에는 차량들이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도로 한 구석에는 전깃줄 없는 노면전차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김성수는 이 곳의 발전이 무려 3년 만에 일어난 것에 대해 너무나 신기해했다.

“낭산.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뭐를 말인가?”

“이 지역의 모든 발전이 3년 만에 이루어진 것에 대해서 말이야.”

“그게 그들의 힘이야. 오죽했으면 중국에서 세 형제 중 막내를 가리켜 억 명을 먹여 살린다는 인재인 ‘억생재’라고 말을 했겠나? 과거에 여기는 문경세재라고 한 때의 교통로 역할을 했지. 그러나 한 편으로 그 뿐인 지역이었어. 그런 곳을 개발한 사람들이야. 이 도심 지역 가까이만 하더라도 무수한 공장지대를 볼 수 있어. 그리고 거기서 생산된 물건들은 한반도 전국에 널리 퍼지고, 때때로는 한창 내전 중인 중국까지 운송된다는 소식을 들었지.”

“우리와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규모인 것 같군. 이게 공업인가?”

“분야만 다를 뿐. 농업이 중요한 것은 변함없다네. 그 것보다 일단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여기에 압도되어 시간만 보내기만 할 뻔 했군.”

김성수는 흠흠 부끄럽다는 얼굴을 짓고는 이내 김준연을 데리고, 원래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김성수가 병윤과 만난 장소는 어느 한 정자였다. 김성수는 꽤 아담한 크기의 정자에 앉아있는 병윤을 바라보며 인사한다.

“구면이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에 화답하듯 병윤 역시 고개를 숙이며 김성수에게 인사한다.

“저 역시 귀한 손님을 뵈니 하늘에 감사해야겠습니다.”

병윤의 말에 김성수는 슬그머니 미소를 짓다 이내 거두며 정자를 두리번거리더니 병윤에게 한 마디 묻는다.

“이 정자는 무슨 정자입니까?”

병윤은 그 말에 조용히 정자 주변의 경치를 구경하다 김성수의 물음에 대답한다.

“이 곳 경치가 좋아서 세운 우리 가문만의 정자입니다. 이름은 황선정(煌宣亭)이라고 지었습니다.”

김성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정자 주변의 경치를 구경한다. 산 중턱에 지은 이 정자 주변은 나무와 또 계곡으로 둘러싸였다. 김성수의 눈에 자주 보이는 민둥산과는 달리 여기에는 이미 자연을 복원한 듯 보였다.

“꽤나 아름다운 경치인 것 같습니다. 물론 제 생가 주변에 있는 정자 역시 이 곳 못지않습니다. 언젠가 제가 그 곳에 초청할 테니 그 때 경치를 즐겼으면 합니다.”

병윤은 그 말에 싱긋 웃으며 대답한다.

“하하. 좋습니다. 여기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김성수는 그 말에 병윤을 응시하며 생각한다.

‘여기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자는 것인가?’

“하하. 여기의 경치가 좋고, 공기 또한 상쾌하니 좋은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병윤은 그 말에 싱긋 웃으며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한다.

“두 분 모두 식사 하셨습니까?”

“문경의 도심에서 가까운 요기는 하였지만 아직 본격적인 것을 즐기지 못했습니다.”

김성수의 말에 병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무전기를 꺼내 작동시키더니 이내 송신부분으로 한 마디 말한다.

“이 곳에 식사 못하신 분들이 계시니 이 쪽으로 대접할 준비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병윤은 다시 무전기를 끈다. 김성수와 김준연은 병윤의 행동에 대해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이내 묻는다.

“아까 그건?”

“아 조금 있다가 이 쪽으로 음식들이 올 것입니다. 그 때 동안에는 가벼운 이야기를 하면 좋겠군요.”

두 사람은 그 말에 의아한 얼굴을 지었지만 이내 병윤이 뭔가 준비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속으로 납득한다. 그 후에 병윤과 가까운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이내 병윤이 준비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정자 상공의 가까이에서 한 비행 물체가 등장하더니 이내 정자 가까이에 있는 평평한 곳에 착륙한다. 알고 보니 헬기였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헬기보다는 반 정도 크기를 줄인 것 같았다. 그런 헬기 안에서 사람들이 내리더니 이내 정자를 향해 무언가를 들고, 접근한다. 김성수가 살펴보니 그 것들은 아마 병윤이 말했던 음식들인 것 같았다.

정자 안에 상이 차려지고, 곧 향긋한 음식 냄새들이 정자 바깥을 향해 퍼진다. 병윤의 꽤나 과한 퍼포먼스에 김성수와 김준연은 속으로 생각한다.

‘꽤나 과장하는군. 하지만. 이 것 또한 자신감의 발로겠지.’

병윤은 싱긋 웃으며 두 사람에게 말한다.

“입맛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맛있게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문의 수행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내온 음식들은 꽤나 다양한 국가의 문화가 혼재되어 있는 것 같았다. 서양에서부터 동양까지 음식의 가짓수는 물론이고, 먹기 좋게 형태가 잡히고, 식욕을 자극하는 향기가 나온다. 하지만 손님의 입장에서 김성수와 김준연은 먼저 숟가락을 들 수가 없었고, 병윤이 먼저 한 숟갈 하자 따라서 두 사람은 천천히 식사를 한다.

그렇게 여유롭게 식사를 하는 와중에 이야기도 슬슬 본론으로 들어간다. 김준연이 병윤에게 묻는다.

“회장님은 농지 개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물음에 음식 한 숟가락 먹고, 입가심을 하던 병윤은 마저 입 주위를 닦고, 물로 입 안을 깨끗하게 한 뒤에 대답한다.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역시라는 생각이 든 김준연은 긴장한 얼굴로 다시 묻는다.

“여기에 손해 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여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개혁은 이득 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손해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손해 보는 사람들보다 이득 보는 사람들이 많다면 개혁은 설득력을 가지지 않겠습니까?”

“흠. 그렇기는 하지만. 전 회장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두 분의 귀에 한 가지 계획이 알려져 있을 것입니다.”

“그게 무슨...”

“이번에 임명된 농림부, 그리고 상공부에 합작해서 내놓은 계획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른바 ‘경공업 육성 계획’이라고 한 것입니다.”

김준연은 그 말에 당황한 표정으로 병윤에게 묻는다.

“경공업 육성 계획... 그건, 농지 개혁을 돌려 말한 것입니까?”

“원래 우리 동협 그룹의 ‘경공업 지원 대책’을 그대로 본 떠 수립한 계획입니다. 그리고 사실 그 계획에는 미국의 의중이 그대로 들어가 있습니다.”

김성수와 김준연은 순간 당황한다. ‘미국이 이 일에 관여되어있다니.’ 라는 생각이 두 사람의 머릿속을 지배한다. 그 소식을 듣자 두 사람은 농지 개혁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여기에 와서 꽤 무서운 사실들을 깨달았습니다.”

김준연의 한 마디에 병윤은 싱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이 한반도에 살고 있는 농민들이 그토록 원하는데 흐름이 그 쪽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제 가족들 역시 해방 전에는 지주 밑에서 소작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

그 때, 조용히 병윤을 응시한 김성수는 이내 어렵게 한 마디를 꺼낸다.

“내가 듣기로는 동협 그룹 측에서 적층 농업이라는 것을 연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병윤은 그 말에 대해 가볍게 대답한다.

“아 그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세상에 알려졌지만 세상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해명하기 조금 지친 몸이지만 잘못된 사실을 시정하는 것도 사람으로써의 도리.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김성수와 김준연은 긴장된 얼굴로 병윤의 얼굴을 바라보자 병윤은 그 둘에게 설명하기 시작한다.

“먼저 세상에 알려진 적층 농업은 우리 측에서는 ‘실내 농업 계획’이라고 말을 많이 합니다. 근본적으로 한반도는 일본, 그리고 멀게는 적도 지방보다 상당히 농사에 불리한 기후입니다. 적도 지방의 필리핀에서는 벼농사만 하더라도 무려 3기작이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의 기후로는 벼는 1년에 한 번, 그리고 다른 작물로 1년에 2모작은 겨우 가능하지요. 그 때문에 한반도의 농업 생산량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런 연구를 하는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셈입니까?”

김준연의 물음에 병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제가 원하는 실내 농업의 목표는 1년 내 4기작을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4기작?!”

김준연과 김성수는 동시에 놀라 소리친다. 병윤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선 한 마디 말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 것보다는 정상적으로 실내 농업이 진행되지 못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으음...”

김성수는 병윤의 말에 침음을 흘린다. 병윤은 안타까운 얼굴을 하며 계속해서 이야기해 나간다.

“지속적으로 연구 개발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일반 농토보다 10층짜리 건물을 짓고, 장비 설비까지 들여야 하니 꽤나 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한다면 작물의 생산성이야 이미 말을 할 수가 없겠지요.”

김성수는 계속해서 생각하더니 이내 묘한 미소를 짓고 병윤에게 말한다.

“흠. 그렇게 말을 한다면 뭐. 어쩔 수 없이 실내 농업에 대한 관심을 접어둘 수밖에 없겠군요. 그리고 농지 개혁에 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우리들 쪽에서는 찬성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김성수의 말에 순간 병윤의 눈빛이 달라진다. 그 때, 김준연이 병윤 모르게 김성수의 옷을 잡으며 작게 소곤거린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건가?”

김성수는 김준연의 말을 무시하고는 병윤에게 말한다.

“잠시 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것이 있는데 허락해주시겠습니까?”

병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선선히 허락한다.

“그렇게 하십시오.”

결국 김성수는 김준연을 데리고 정자에서 벗어난다.

정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거리, 김성수는 김준연을 이 곳으로 데려오자 김준연은 김성수에게 당황해하며 한 마디 말한다.

“아니. 자네 아까 그렇게 말한 이유가 무언가?”

김성수는 그 말에 싱긋 웃으면서 김준연에게 말한다.

“아까 이야기를 뭐로 들었는가?”

“그거야...”

“아무래도 저 길병윤 그 자의 이야기, 조금 거짓말인 것 같군.”

“거짓말? 그게 무슨 소리이지?”

“아까 적층 농업.”

“으음...”

김준연은 손으로 턱을 잡고 생각한다. 그 때, 김성수가 김준연에게 설명한다.

“저 쪽의 입장을 대입해서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자신들이 개발한 것에 대해서 곧바로 투입시키지 않을 것 같더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자신들이 만든 것이 정치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것을 거북하게 여긴다는 뜻이지.”

“거북하게 여긴다? 그 말은 이미 저기서 설명한 것을 완성했다는 뜻인가?”

“그렇지. 안 그러면 저렇게 설명할 리가 없다는 것이야.”

“...... 하아. 뭔 소리인지 잘 모르겠군. 그래 자네가 말하고 싶은 것은 뭔가?”

김성수는 그 말에 검지로 목을 툭툭 치며 생각하더니 이내 대답한다.

“농지개혁이 시대의 흐름이라면 그 흐름에 편승할 수밖에.”

“뭐어!? 그렇게 되면 지주층 의원들이 우리 당을 이탈할 텐데?”

“내가 해준 설명을 듣고도 이탈한다면 이탈하라고 그래.”

“으음. 자네가 말하고 싶은 것은 도대체 뭔가?”

“기업농.”

“기업농? 그 무슨 소리인가?”

“잘 생각해보게. 만약 농지개혁을 할 사람이라면 지주들에 집중된 토지는 어떻게 빼낼 생각인가?”

“그거야 농지 면적으로 계산해서...”

“그렇지. 그렇다면 우린 이 것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겠지.”

“그 말은?”

“아까 해답을 저 쪽에서 알려주었잖아. 실내 농업.”

“으음... 면적으로 농지 개혁을 해결하면... 하지만 농지 개혁을 추진하는 측은 바보가 아닐 텐데? 필시 그들은 경자유전(농업인과 농업법인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음을 의미)의 원칙을 들이밀 것 같은데.”

“실내 농업의 경우는 어떤 형태인가?”

“응. 어떤 형태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실내 농업도 경자유전의 원칙에 해당되지 않은가? 경자유전. 즉 농업법인.”

김준연은 그 말에 헉 하며 김성수가 말하는 바를 바로 생각한다.

“설마... 자네 지주들을 실내 농업 쪽으로 가자고 설득할 셈인가?”

“이제 타협점을 보자는 것이야. 실내 농업은 지주들에게도 살 길이 되는 셈이야. 자신들이 가진 농지 면적을 유상매수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지. 하지만 그 시대의 흐름을 거부하다가는 지주들은 모두 망하는 길밖에 될 수 없지. 그렇다면 흐름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게 자네가 말한 실내 농업이라는 건가?”

“그래. 면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높이로 해결하면 되지.”

“높이라...”

“지주들 밑에서 일하는 소작농들에게는 자기 땅 생겨서 좋고, 우리 지주들의 입장에서는 그대로 지위를 누릴 수 있고, 둘 다 좋지 않는가?”

“으음...”

“휴. 적어도 저 쪽에서 살 길을 마련해주니 다행인 것 같군. 하여튼 저기에서 농지 개혁을 밀어 붙이는 이유에는 역시 살 길을 만들고 행동하는 것 같아.”

“지주들의 불만을 미리 알고, 대처하는 방법을 강구했다는 건가?”

“그래야 자기들 뜻대로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은가? 역시 저 길씨 일가 쪽 상당히 무서운 상대로군. 흠. 저런 상대를 우리 편으로 만들면 좋겠는데. 쯧. 우리 딸들은 전부 시집을 갔군. 휴우. 저런 자를 사위로 만든다면 얼마나 좋을꼬?”

김성수의 말에 김준연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본다.

============================ 작품 후기 ============================

1등 사윗감 길병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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