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485화 (48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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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1948년 10월 10일, 강원도 산 속 어느 한 건물 안의 어느 방 안에서 박헌영은 양복을 벗고, 커피를 마시며 창가 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똑! 똑! 똑!-

문이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자 박헌영은 곧 자신이 찬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한 뒤 커피 잔을 원형 탁자 위로 내려놓고, 문 밖으로 소리를 낸다.

“문은 열려있으니 그냥 들어오게나.”

그 말이 들리자마자 문이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리고, 그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박헌영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현상이군. 잘 지냈나?”

그 말에 이현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헌영에게 인사한다.

“예. 잘 지내기야 합니다만...”

그렇게 말하는 이현상의 말끝은 박헌영의 귀엔 상황이 안 좋다는 것으로 들렸다. 박헌영은 흠흠 거리며 이현상에게 자리를 권한다.

“일단 앉아서 자세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지.”

이현상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박헌영 맞은 편 자리에 앉았고, 박헌영은 아까 마시고 있던 커피 잔을 다시 들어 한 모금 마신 뒤에 다시 내려놓고는 진지한 얼굴을 지으며 묻는다.

“내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로당의 상황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군.”

이현상은 그 말에 한숨을 푹 쉬며 박헌영에게 말한다.

“예. 지금 무척이나 힘듭니다. 현재 간신히 구축해놓았던 조직들도 경찰들에게 와해되거나 아니면 전향하는 식으로 하나 둘씩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

박헌영은 그 말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고, 이현상은 그런 그의 모습에 절박하다는 얼굴로 한 마디 말한다.

“현재 남로당의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박헌영은 그 물음에 이현상에게 묻는다.

“경찰들에게 와해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전향을 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이현상은 그 말에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속 시원히 털어놓는다.

“사실 시간이 갈수록 남한의 사회가 안정되어 가자 선동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어졌습니다. 더욱 큰 것은 여기에서 적극적으로 농지개혁을 하겠다는 분위기 때문인지 요즘 좌파 세력들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더불어 몽양도 살아있는 와중이니 남한의 좌파 세력들은 전부 몽양으로 가거나 아니면 일찌감치 전향했던 죽산(조봉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박헌영은 그 말에 얼굴을 찌푸린다. 요즘 북한에서 일을 하느라 남로당에 신경을 못 쓴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렇게 상황이 악화될 줄은 몰랐다. 박헌영은 한숨을 쉬며 이현상에게 말한다.

“요즘 나 역시 상황은 좋지 않아.”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북한 내부에도 파벌이 있는 것은 알고 있나?”

“......”

“현재 김일성이 나에게 한 가지를 주문했네.”

“주문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박헌영은 침을 꿀꺽 삼키며 이현상을 쳐다본 채로 또박또박 말한다.

“남한의 후방에 군사반란을 일으키게 해주어야겠어.”

그 말에 순간 이현상의 얼굴은 놀람으로 가득 찼고, 입은 떡하니 벌어진다. 너무 놀란 나머지 이현상은 콜록콜록 거리며 말한다.

“콜록... 그... 그게... 무슨 망발입니까?”

박헌영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도 괴롭다는 표정을 짓고, 말한다.

“사정이 그렇게 되었어. 파벌 싸움에서 난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다네. 이대로 가다가는 북한에서도 또 여기서도 환영을 받지 못할 거야.”

이현상은 박헌영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 것을 물어볼 때가 아니었다. 박헌영은 송구스럽다는 얼굴로 이현상에게 묻는다.

“그래서. 후방에서의 군사반란은 가능한가?”

이현상은 그 말에 어렵다는 얼굴을 지으면서 대답한다.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하나같이 다 도박입니다.”

“도박이라...”

박헌영은 씁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도박’이라는 단어를 중얼거린다.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곳이...”

가능성이 높다는 말에 박헌영은 눈이 번쩍 떠지며 이현상에게 묻는다.

“그... 그게 뭔가?! 어서 알려주게나.”

이현상은 박헌영이 이렇게 절박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흠흠 거리면서 천천히 방법을 설명해준다.

“현재 당수께서 이야기하신 조건들 중에 들어맞는 곳이 딱 한 곳 있습니다.”

“그 곳이 어딘가?”

“여수입니다.”

“여수?”

이현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한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요즘 아시다시피 남한의 그 ‘대한민국’이라는 정부가 전라도에 하나의 사단을 지금 편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그 사단을 구성하는 병사들 중에는 외부 군부대에서 온 인력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남로당의 하부세력들 중 하나가 많다는 것입니다.”

“하부세력이라면? 군에 심어둔 두 개의 조직 중 하나는 박살이 났을 텐데. 그러면 나머지 하나가 바로 그 ‘병사 소비에트’이겠군.”

“예. 그렇습니다. 광복군에서 국군으로 개편된 것은 둘째 치고, 그 쪽 병사들이 우리들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고 합니다.”

“으음...”

“거기다 제주도 사태 때문에 군과 경찰의 갈등이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자세한 상황이야 저는 모르지만 떠도는 소리를 들으면 군과 경찰은 날 안 좋을 때는 서로 총싸움을 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결국 군 쪽에서 경찰 쪽을 경시한다는 것이군.”

“특히 병사들이 많이 그러합니다. 이미 악질 친일 경찰들을 숙청했지만 그렇다고 새로 만든 경찰 조직이 그렇게 민심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제가 여수를 말한 이유는 제가 말씀드린 것들이 많기는 하지만 가까운 곳에 지리산이 있다는 것입니다.”

박헌영은 눈빛을 반짝이며 이현상에게 한 마디 말한다.

“지리산이라. 결론은 한 마디로 그 쪽에서 투쟁을 하겠다는 소리인가?”

“적어도 게릴라 활동을 하면서 시간을 벌고, 후방을 어지럽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왜 이런 시기에 터뜨려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박헌영은 흠흠 거리며 이현상에게 말한다.

“나 역시 그 것이 마음에 안 든다네. 하지만 어떻게 하겠나? 지금 터뜨리지 않으면 내가 죽고,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죽는데. 지금이라도 자네가 말한 방법을 실행하게나.”

이현상은 그 말에 한숨을 푹 쉬며 말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는 끝이 났다.

1948년 10월 12일, 여수에 주둔하고 있는 신생 보병 제 13사단 46연대의 어느 한 군부대 안 창고의 어두운 곳에서 한 사람이 작은 불빛을 키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 쪽지를 읽고 있었다. 그가 읽는 쪽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이제 때가 된 것 같네. 요즘 같은 어수선한 때에 지창수 지금의 자네처럼 인재가 필요하네. 내 이야기를 듣자하니 군과 경찰의 사이가 안 좋다고 들었네. 그래서 그 쪽에서 자네가 병사들을 선동하여 그 군부대 안에서 군사반란을 일으키도록 하게나. 물론 그 군사반란에 대한 방법이야 자네가 알아서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 그 이유에 대해선 자네가 이 부대 사정을 잘 아니까 그런 것이야. 만약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지리산 쪽에 장기적으로 게릴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두게나.

남로당 연락부장 노명선(이현상의 가명) 올림.-

지창수는 ‘으음’ 침음을 흘리며 결국 자신의 쪽지를 라이터 불을 키며 태워버린다. 그렇게 쪽지는 재가 되자 지창수는 군홧발로 밟아 재를 지져 흔적을 없앤다. 하지만 지창수는 상당히 고심이 되었다.

‘때가 왔다라. 쯧. 미치겠군.’

지창수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46연대 내에서 자신과 같은 입장을 밝힌 병사들은 많았고, 또 동조할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쉽게 군사 반란을 일으키지 못했다. 일단 이 13사단이 신생 사단이라는 이유 때문에 훈련을 받기 보다는 작업에 치중하는 일이 많았다.

‘휴우. 일단 지령은 지령이니까 일으켜야 하는데 말이지.’

지창수는 한창 고민하다가 이런 큰일에 자신이 멋대로 결정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일단 자신들의 심복들을 불어 모아서 일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 어느 한 비밀스러운 장소 안에서 지창수는 자신과 같은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지창수의 부름을 받고, 이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 마디 묻는다.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불렀습니까?”

그 물음에 지창수는 진지한 얼굴을 지으며 대답한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믿는가?”

그 말에 순간 부름을 받고 모인 사람들은 술렁술렁 거리다가 이내 조용해지며 지창수에게 대답한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전부 상사님의 은혜를 입고 왔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만 해주십시오.”

그 외 여러 사람들이 말했고, 지창수는 속으로 ‘다행이다’라고 여기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척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본론을 털어 놓는다.

“좋아. 그 전에...”

지창수는 눈빛을 두리번거리며 사람들을 바라보다 이내 무언가 걸리는 것이 없는지 금세 그 눈빛을 접고, 본론부터 말한다.

“상부에서 한 가지 지령이 떨어졌다.”

그 말에 순간 여기에 모인 사람들 전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지창수의 입을 기다린다. 지창수는 흠흠 거리다 이내 한 마디 말한다.

“여기서 군사반란을 도모하라고 하더군.”

순간 사람들의 얼굴은 놀람으로 가득했다. 군사반란이라니. 남한 사회에 불만이 많았던 사람들이고, 또 자신들이 좌파의 사람들이라는 것은 알지만 군사반란을 일으키다니. 지창수는 그런 병사들의 반응을 감지하며 한 마디 말한다.

“그래서 내가 자네들을 불러 모았네. 어떻게 하겠나?”

그 말에 한 사람이 지창수에게 대답한다.

“저야 지창수 상사님을 따르겠습니다만 여기를 제외한 다른 병사들을 어떻게 설득하시겠습니까?”

지창수는 그 말에 고심이 되는 표정을 짓다 일단 한 마디 대답한다.

“일단 시간제한은 별로 없었네. 그래서 계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겠지.”

그 말에 질문을 던진 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예. 알겠습니다.”

“그 외에 다른 염려스러운 것들은 없나?”

그 말에 한 사람이 손을 들어 질문한다.

“병사들이 봉기하는 것까지는 되었지만 일단 반란이 일어난 이상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한 보급부터 또 혹시나 모를 도주로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압할 군대는 어떻게 상대하실 계획입니까?”

“흠...”

지창수는 생각을 하다 이내 한 마디 대답한다.

“나도 생각한 바가 있지만 여기서 이야기를 나누며 더더욱 완벽한 계획을 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

그 말에 여기에 모인 사람들 모두 다 고개를 끄덕였고, 결국 지창수와 그 병사들은 군사반란에 대해 상세한 계획을 준비시킨다.

1948년 10월 15일, 지창수 상사는 한 명령서를 보고, 얼굴을 재차 구긴다. 그 명령서에는 46연대는 제주도 토벌을 위해 차출하겠다는 계획이 적혀 있었다. 출동날짜는 앞으로 나흘 뒤인 10월 19일이었다.

“곤란하군. 하필 이럴 때, 출동명령이 떨어지다니.”

지창수가 생각하기로는 너무 절묘한 것 같았다. 자신이 발 담그고 있는 이 군대 안에서 미리 자신들이 군사반란을 일으킬 것을 알아차려서 같은 편들을 반목시켜 제거하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그의 생각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창수의 생각은 달랐다.

‘그래. 잘 되었군. 저 쪽에서 이럴 생각이라면 우리 역시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일을 치러야겠어.’

지창수는 결국 결심했다는 표정을 지었고, 뚜벅뚜벅 어디론가 걸어 나간다. 그가 발걸음을 걸어 도착한 곳은 저번에 자신의 사람들을 불러 군사반란 계획을 세웠던 곳이었다. 그는 거기서 저번의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새벽 날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은 비몽사몽한 얼굴로 지창수가 있는 곳으로 도착했다. 지창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보며 한 마디 말한다.

“아무래도 때가 된 것 같아.”

그 말에 사람들은 순간 잠이 확 깼고, 지창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창수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결행 날짜는 10월 19일 날. 계획은 이미 세워두었던 때로 한다.”

사람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계획을 머릿속에 그려낸다. 그렇게 지창수의 군사반란은 때를 기다린다.

결행 날짜인 1948년 10월 19일 밤, 지창수와 같이 행동을 하겠다는 병사들은 지난 번 세워두었던 계획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선전 해설 반을 편성해 대대별로 파병 반대 선동을 하는 한편, 위병사령부 장악 조, 통신망 차단 조, 장교 처단 조, 무기고 점령 조 등으로 병력을 나누어 먼저 대대를 장악한 후 지창수가 비상나팔을 불어 전체 부대원을 연병장으로 집합시키기로 하였다.

그렇게 각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 나머지 사람들은 제주도 출동을 위한 환송식 때문에 술을 마시며 회식을 하고 있었다.

밤 10시 10분, 이미 연대 무기고와 상황실이 장악했고, 신호에 따라 비상나팔이 울렸다. 영문 모르는 사병들이 연병장에 집결할 때 장교들은 환송식에서 만취하여 잠들었거나 여전히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그렇게 영문도 모르는 병사들과 또 부사 관들이 하나둘씩 지창수의 사람들에 따라 연병장으로 집합하고 있을 때 연단 위에서 지창수가 진지한 얼굴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병사들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영문도 몰라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본다.

그 때, 연단에 선 지창수가 입을 열었다.

“애국병사 여러분! 우리는 동족 살상의 제주도 출동을 결사반대합니다.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이해가 안 가실 수도 있지만 저는 결심했습니다. 자신들만의 권력과 부를 위해 같은 동족들을 살상하고, 학살하고, 지옥을 만드는 저 매국노 무리들을 저는 결코 용납할 수 없고,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왜놈들 밑에서 굴욕의 시간을 겪고 있을 때, 호의호식하던 부일배 놈들은 전부 저 이 대통령 밑에서 계속 부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같은 동족들을 살상하라고 합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여러분 같이 움직입시다! 그리고 같이 싸웁시다.”

그 때, 지창수의 사람들 중 바람잡이로 나선 병사들이 한 목소리로 외친다.

-미제와 이승만 매국도당을 타도하자!-

그렇게 여순 반란사건은 시작되었다.

============================ 작품 후기 ============================

여순 반란사건이 시작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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