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487화 (487/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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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1948년 10월 24일 오전 10시, 하나의 헬기가 어느 한 곳에서 착륙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린 병주와 참모들은 자신을 기다려주던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의 얼굴이 보이자 병주는 즉각적으로 경례를 한다.

“충성.”

그 말에 같은 계급장으로 보이는 40대 후반 중장년 남성이 따라 경례를 한 뒤 병주에게 말한다. 바로 이번 여순 사건으로 인해 큰 곤란에 처하게 된 사단장 백파 김학규였다.

“지원 병력을 보내달라고 하니 자네를 보네주었군.”

그 말에 병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학규에게 말한다.

“이번 사건 때문에 얼마나 고심이 크시겠습니까?”

김학규는 그 말에 한숨을 내쉬며 대답한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이런 행동을 하면 안 되는데 나에게 있어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그런데 자네들만 온 것인가?”

“그건 아닙니다. 지금 주둔지에 한 개 대대를 남겨두고 전부 이 곳으로 도착했습니다.”

병주의 말에 김학규의 얼굴은 근심에서 다행으로 바뀐다.

“그런가? 그럼. 잘 됐군. 일단 자세한 이야기는 회의장에서 하자고.”

병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예. 알겠습니다. 대 선배님.”

병주의 ‘대 선배’라는 호칭에 김학규의 얼굴은 꽤나 활짝 핀다. 그렇게 병주와 그 참모들은 제 13 보병사단의 사단본부로 간다. 지휘차량에 탑승하여 사단 본부 건물 안 회의장 자리에 앉은 김학규는 상석에 앉으면서 병주에게 자세한 것을 설명한다.

“현재 45연대를 맡고 있는 연대장 선동호가 구봉산을 중심으로 반 포위를 한 채로 반란군들을 압박하고 있네.”

그 말에 병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럼 때를 기다리다가 포위망을 좁히며 일망타진할 생각입니까?”

“물론 그러면 좋겠지만 그랬다가는 진압 측의 병력이 더 희생되지 않을까 걱정이야.”

병주는 그 말에 ‘으음’ 침음을 흘리더니 이내 입을 연다.

“그렇다고 이대로 시간만 보낼 수는 없으니 우리 제 10 강습산악사단 역시 적극적으로 작전을 협조하겠습니다.”

김학규 소장은 그 말에 내심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이내 회의장 책상 위에 지도를 펼쳐 놓는다. 어제 병주가 열은 사단 회의에서 봤던 그 지도와 똑같았지만 그 지도에는 현재 아군의 배치 상황과 적의 배치 상황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그런데 구봉산과 그 산의 서쪽 산 사이의 계곡에 방어시설이 적게 설치되어 있었다. 당연히 병주는 의문이 들었고, 이내 김학규 소장에게 묻는다.

“이 계곡에 이런 배치를 한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까?”

“맞아. 일부로 그랬지.”

병주는 이내 그 말에 눈치를 채며 김학규에게 한 마디 말한다.

“말하자면 사지인 셈이군요.”

“그래. 사지인 셈이야. 현재 고지에서 배치된 45연대의 포병 전력들과 그 위쪽 여수 시내에 수비 중인 47연대의 포병 전력들이 배치되어 한꺼번에 화력을 투사할 수 있는 지점이야.”

병주는 그 말에 생각을 하더니 지도에서 한 지점을 고른다. 바로 구봉산 남쪽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 길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법합니다.”

김학규 소장은 ‘잘도 눈치챘군’ 이렇게 생각한 후 대답한다.

“그래. 현재 포위 작전을 실시하고 있는 45연대의 선동호 연대장은 그 쪽 지역에 한 개 대대를 배치했어. 이 지점이 그 만큼 포격 지원을 받기 어려운 구석이거든 연대 내에 배치된 야포들 같은 경우 사정거리는 되겠지만 아무래도 47연대의 포병은 산을 넘어야 하니 조금 망설이는 경우가 있지 않나 싶군.”

김학규 소장의 말에 병주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군요. 그럼 우리는 이대로 포위 작전에 협조하는 것입니까?”

김학규는 그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한다.

“아니야. 정예 병력들이 도착하였으니 그럴 필요야 없겠지.”

김학규 소장은 병주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아차린 것 같았다.

“어제 사단 참모들과 회의를 하고 난 뒤에 작전을 결정하였는데. 들어보시겠습니까?”

병주의 말에 김학규 소장은 궁금증을 가지며 묻는다.

“그게 뭔가?”

병주는 싱긋 웃으면서 김학규 소장에게 한 마디 말한다.

“시간이 될 때, 45연대가 한 번 공격을 감행할 수 있습니까?”

김학규 소장은 그 말에 눈치를 채고, 병주에게 말한다.

“그렇군. 무슨 작전을 구상하는지 알겠어. 좋아. 시간을 말해보게나.”

“이 곳 여수 지역의 정확한 일몰 시간은 언제 됩니까?”

“흠. 정확히 일몰 시간은...”

김학규 소장은 이내 위관 급 계급을 달고 있는 장교에게 눈길을 주자 그 장교가 즉각적으로 대답한다.

“정확히는 오후 5시 43분입니다.”

“이렇게 말하는데 어떤가?”

“흠. 시간은 그 정도면 된 것 같습니다.”

“야밤에 급습할 생각인가?”

“그건 아닙니다. 정확히는 6시 20분쯤에 공격할 생각입니다.”

“흠... 그 정도 시간이면 일몰이 지나고, 하늘이 슬슬 검게 변하는 시점이 되겠군. 그 때 바로 포위망을 줄이면 되나?”

병주는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김학규에게 말한다.

“그 것보다는 반란군 주둔 지역에 포성이 들리게끔 하는 것이 좋습니다.”

“포성이라...”

김학규는 얼추 생각하더니 이내 병주를 바라보며 말한다.

“결론은 직접 내려가서 진압하겠다는 생각이군. 헬기 공습 작전인가? 포성을 쓰는 이유는 헬기 소리를 가리기 위함이군.”

“예. 반란군들이 헬기의 존재에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밤에 바로 작전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그렇게 된다면 헬기의 존재는 반란군 쪽에서 금방 눈치 챌 것입니다. 왜냐하면 밤중에도 헬기가 움직이려면 그 쪽에서 불을 켜야 되기 때문입니다.”

“흠. 그럼 그 때가 자네가 생각하기에 가장 적절한 순간이겠군. 알겠네. 그렇게 해주도록 하겠네. 그럼 작전시간은 오늘인가?”

“예. 급히 출동시킨 덕분인지 사단을 유지하기 위해 꽤 적은 보급을 들고 왔습니다. 물론 변수가 생겨 상태가 악화되면 헬기들을 동원하여 바로 장기 보급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쳇. 부럽군. 그런 장비들이 우리 사단 쪽에 있었다면 이런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은데 말이야.”

병주는 여기서 뭐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상대방의 기분이 상할까봐 말하지 못했다. 대신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김학규에게 말한다.

“편성 중이었기에 장비를 못 받은 측면이 있습니다. 아마 이번 사건이 종결되면 빨리 장비를 받게 해드리겠습니다.”

“으음... 내 못난 소리를 했군. 알겠네.”

김학규 소장이 그렇게 말하자 병주는 속으로 휴우 한숨을 쉰다. 그 때, 김학규 소장이 병주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 것보다 바로 헬기를 이용해서 45연대 쪽으로 가보는 것이 어떤가?”

“그렇게 되면 적들이 헬기의 존재를 눈치 챌 수 있습니다.”

“그렇군. 그럼 차를 준비시키겠네.”

그 때, 병주가 김학규 소장에게 한 마디 묻는다.

“아참 반란군들이 등지고 있는 바다 쪽 상황은 어떻습니까?”

그 말에 김학규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대답을 해준다.

“현재 여수 바로 동쪽인 진해항에 주둔 중이던 해군 함선들이 그 쪽 바다로 포위하고 있어.”

“으음. 그렇게 되면 다행인 것 같습니다.”

“현재까지는 적극적으로 포격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있어. 반란군 놈들도 일단 사람이지 않은가? 주동자들을 잡아 처벌해야지. 그 쪽에 끌려가 억지로 동참하고 있는 인원들까지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병주는 그 말에 한 마디 말한다.

“그럼 대신 적극적으로 본보기를 보일 셈이군요.”

김학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한 말투로 대답한다.

“그래. 맞아. 이번에 본보기를 보여 허튼 수작을 못 부리게 만들어야지. 이참에 군대에서 기생 중이던 빨갱이 놈들도 쫓아 보내 버리고 말이야. 처음에는 나 역시 빨갱이들에게는 같은 사람이라고 여기던 때가 있었지만 이번 것으로 확실히 알겠어. 그 교활한 족속들이 순박한 사람들에게 얼마만큼 해를 끼치는지 말이야.”

김학규는 자신의 사단 내에서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에 길길이 분한 모양이다. 하기야 그가 이 사단을 맡은 지는 불과 몇 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전에 남로당과 그 좌익 반란군 세력들이 같은 사상의 병사들을 끌어들이는 행태는 김학규 사단장이 부임하기 전에 이루어진 형태였다. 물론 그에게 어느 정도 책임이 있지 않나 싶지만 병주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이 사태를 진정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자신의 대선배인 김학규에게 인사를 한 뒤 바로 차량에 탑승하여 45연대의 선동호 연대장이 있는 구봉산 쪽으로 떠난다.

한편, 같은 시각 지창수는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회의장 자리에 앉아 참모 역할을 맡고 있던 사람들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제 적극적으로 활로를 펼치려고 했지만 이 것도 실패했고 하아...”

지창수는 암담한 얼굴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현재 자신들을 반 포위하고 있던 45연대 역시 포위망을 단단히 한 채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어제의 실패로 인해 45연대가 적극적으로 공격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문제는 이렇게 시간을 보낼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자신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지창수는 작전 참모를 맡고 있는 사람에게 시선을 주며 말한다.

“현재 바다에는 아직까지도 해군 놈들의 초계정이 돌아다니고 있는가?”

그 물음에 그 사람은 연신 불안한 얼굴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그렇습니다. 일단 그 쪽에서는 바다 쪽을 통해 우리들이 지원받을 수 없도록 봉쇄하고 있습니다.”

“제길. 그 쪽을 통해 상륙군들이 들이닥칠 수 있을텐데.”

지창수는 그렇게 말하면서 해안가에 배치해둔 병력들을 생각했다. 원래 계획은 봉기한 장소에서 바로 여수로 가 도시를 점령하고 기반을 만든 뒤 바로 지리산으로 진출하여 장기 게릴라 활동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반란이 일어나자마자 사단장 김학규가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금방 조치를 취해 45연대로 자신들 병력을 반 포위했다. 그 때문에 지창수는 해안가 바다를 통해 보급 및 탈출로를 모색하였는데 그렇게 되자 반란에 얼떨결에 동조했던 병력들이 빠져나가고 말았다. 물론 그 것을 통해 자신을 지원해주던 민간인들이 존재했지만 여수 바로 옆에 있는 진해 군항에서 초계정들을 동원하여 봉쇄를 해버리자 지창수는 어쩔 수 없이 병력들을 해안가에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에 대해선 해군에 존재할 지도 모르는 상륙군 때문에 그랬다. 물론 실질적으로 상륙을 전문으로 하는 해병대는 창설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해군에서는 국군 상층부에 해병대를 창설해달라는 요구를 해오기는 하지만 현재는 그런 상륙군들이 없었다. 그런 사정에 대해서 모르는 지창수에게 바다 쪽은 적 병력들이 들이닥칠 수 있는 경로이기도 했다.

‘으으. 방법이 없을까? 무슨 방법이...’

그 때, 작전 참모가 지창수에게 한 마디 말한다.

“일전에 거론 되었던 그 계곡 말인데. 그 쪽을 노려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지?”

“아까 사지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곳을 통하면 바로 여수 시내입니다.”

“그러니까 도박을 하자 이 말이지?”

작전 참모는 그 말에 자신도 불안한 얼굴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이대로 가다가 전부 잡히는 길밖에 없을 것입니다. 도박을 해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창수는 ‘으음’ 침음을 흘리며 말한다.

“일단 내일 새벽 5시에 저 계곡을 뚫기로 한다.”

그 말에 각 참모들은 결연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 얼굴들을 본 지창수는 다시 한 번 말한다.

“그리고 내일 작전을 위해 미리 장비들을 챙겨둬.”

-예!-

그렇게 반란군의 작전도 정해졌다.

같은 시각, 45연대의 본부 쪽에서는 고성이 오고 간다. 이 목소리 전부 다 연대장인 선동호 중령이 송수화기에 대고 지르는 목소리들이었다.

“그러니까 장애물들을 보수하고, 애들을 교체시켜. 아니 그게 아니라 예비대로 인원을 바꾸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

그 주위에 있는 장교와 병사들은 그런 분위기에 적응하였는지 꽤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실전 상황이었기에 그 건물 안 사람들의 얼굴은 전부 긴장된 상태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병주와 참모들이 그 곳에 방문한다.

선동호는 간신히 송수화기를 내려놓고는 이 건물 안에 들어온 병주의 모습을 보자마자 눈동자가 커진다.

“어... 어...”

병주는 싱긋 웃으면서 선동호 중령에게 말한다.

“잘 지냈나? 선 중령?”

선동호 중령은 꽤 울컥한 감정을 가지면서 예의를 잇지 않는다.

“충성!”

선동호가 경례를 하자 병주 역시 따라 경례를 한다. 선동호는 병주를 보자마자 한 마디 궁금해하며 묻는다.

“문경에 계셔야할 사람이 왜 여기에 오셨습니까?”

병주는 피식 웃으면서 선동호에게 대답한다.

“명령이야. 이 곳 반란사건에 진압하기 위해 지원해주라고 했거든.”

“병주 소장님이 오셨으니 이 군사반란도 빠른 시간 내에 끝나겠군요. 지금 이 곳에 온 것을 보니 이미 작전은 정한 것 같은데. 제가 들을 수 있겠습니까?”

병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선동호에게 작전을 말해준다. 선동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병주에게 말한다.

“휴우. 그 작전이라면 우리 쪽에서 원하는 작전인 셈이겠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오후 6시 20분에 최대한 시끄럽게 포를 쏴서 반란군 놈들의 혼을 빼도록 하겠습니다.”

병주는 그 말에 선동호의 등을 툭툭 쳐주며 말한다.

“그래.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반갑기도 하군.”

“하하. 제가 먼저 찾아가 뵈었어야 하는데, 요즘 일이 바쁘다 보니 그리고 지금은 이런 사태까지 오고. 하아...”

선동호는 암울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자신이 병주를 따라 병사로 돌아다닌 시절만 하더라도 광복이 되면 금방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광명이 올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고, 지금은 이런 사태가 오고 말았다. 그러나 선동호는 그런 생각을 그만두고, 일단은 이 군사반란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댓글들 중에는 발암 패턴이 있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구상할 때만 하더라도 지창수와 그 일당들이 지리산에 빠져나가는 것을 성공하도록 했지만 막상 이야기를 지어보니 그게 말이 안 되더군요. 결국 일망타진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지리산에 활동할 빨치산들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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