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490화 (49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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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최주평은 병주의 행동에 당황하더니 이내 한 마디 꺼내놓는다.

“녹음기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냥 말로만...”

병주는 피식 웃으면서 최주평에게 한 마디 대답한다.

“형님의 성격상 확실한 것 좋지 않습니까?”

최주평의 얼굴은 금세 바뀌면서 병주를 응시한다.

“너...”

“분명 말로만 말하면 형님은 저를 결코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형님의 성격상 자신의 보험이 되는 것이 없으니 말입니다.”

“......”

“그래서 전 확실하게 형님이 저를 믿을 수 있도록 준비해둔 것입니다.”

최주평은 한숨을 푹 쉬며 병주에게 말한다.

“너에게 정말 당할 수 없구나. 그래 네 말이 맞다. 구두로만 말하면 난 불안해서 못 사는 성격이지. 그 상대가 내 친밀한 형제는 물론 부모라도 말이지. 좋아. 이거 하나는 내거란 말인가?”

“예.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형님이 오해가 쌓인다면 얼마든지 이 걸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반면에 또 하나는 네 거고 말인가? 한 마디로 서로 터뜨릴 것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이군.”

“형님의 성격을 생각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편히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최주평은 그 말에 병주를 응시하다 이내 한 마디 묻는다.

“이게 뭐 네 녀석의 시험이라든가 그런 거 아니지?”

“형님. 형님은 제가 의형제에게 시험을 할 거라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면 이 아우 실망입니다.”

최주평은 그 말에 한숨을 내뱉으며 대답한다.

“내가 괜히 물어봤군. 알겠네. 일단 털어놓도록 하지.”

그제야 병주는 녹음기 두 개의 버튼을 누르고 킨다. 그리고 최주평의 말은 이제 시작 되었다.

“내가 제의를 받은 것은 작년의 일이야.”

“작년이라면 정확히 언제입니까?”

“그래. 정확히는 작년 그러니까 5월 28일 정도 될 거야. 정확한 시간도 말해주는 것도 낫겠나?”

“아무래도 확실히 해야 하니 그게 좋지 않습니까?”

“그래. 그 것이 좋겠지. 어디보자. 시간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정확히는 밤이었어. 사방이 깜깜했으니 당연한 것이었겠지.”

병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으로 넘어간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물음에 최주평은 자신이 제출한 자료의 명단 맨 위의 이름을 병주에게 가리키며 말한다.

“여기 ‘서견환’이라고 적혀 있는 것 보이지? 그 사람이 나에게 접근한 사람이야. 그리고 이 명단의 이름들은 전부 남로당원 그 자체이거나 포섭한 사람들이지.”

“그런 것을 구분할 생각은 없습니까?”

“없지. 다 적 세력원이니까 우리 쪽에서 보면 전부 한통속이라고 생각할 거야. 그러니까 굳이 무의미하게 구분할 필요는 없지.”

“흠... 그럼 이 명단 도중에 빠진 사람들은 있습니까?”

최주평은 그 말에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대답한다.

“빠진 사람들이라. 분명 있겠지. 작년 겨울에 휘몰아쳤던 숙군 있지 않은가? 그 숙군으로 인해 몇 명 사람들이 옷을 벗은 일 기억나지? 그 사람들 중에 이 명단에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겠지. 원래 이 명단 자체가 군 장교들이 남로당에 내통한 문서이니 말이야.”

병주는 그 말에 자료를 쭉 응시하다 최주평에게 말한다.

“휴우. 그런 셈이군요. 형님은 그럼 애초부터 그 사람들을 속이려고 포섭당한 척 한 것입니까?”

최주평은 진지하게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대답한다.

“맞아. 내가 그들에게 이끌려갈 이유가 뭐가 있겠어? 욕심이라 해봤자 이미 네 녀석이 있는데 뭐가 걱정인가? 더불어 셋째 형님도 연관이 있지만 그 형님 역시 전향했어. 즉 그 사람들과 원천적으로 엮일 수 없는 것이지. 물론 내 공을 위해서라는 욕심이 있을 수 있지만 이건 너에게 털어 놓았으니.”

“흠.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포섭당한 뒤 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믿음을 유지했습니까?”

최주평은 그 물음에 ‘으음’ 침음을 흘리다 이내 작동된 녹음기 두 대를 바라본다. 저 것 하나가 자신에게 구명줄이 될 거란 생각에 그는 병주를 바라보며 말한다.

“좋아. 여기서 한 가지 말하지. 정말로 너는 나를 믿으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이겠지? 또 무슨 일 생기면 구명해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이지?”

최주평의 말에 병주는 속으로 ‘또 불안한가?’라고 생각하고는 이내 확실히 또박또박 말한다.

“좋습니다. 형님에게 말하겠습니다. 이 길병주 이 일로 형님이 잘못된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형님 최주평을 돕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최주평은 싱긋 웃으며 병주에게 말한다.

“좋아. 이렇게 말한 이상 너에게도 약점이 생겼군.”

“하하. 형님을 믿으니까 내어드릴 수 있는 약점입니다.”

“넌 참 사람이 좋아. 그렇게 살다가는 언젠가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

병주는 싱긋 웃으면서 최주평에게 말한다.

“형님. 제가 그렇게 뒤통수를 맞을 성격입니까?”

병주가 그렇게 말하자 최주평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건 아니겠지. 뭐 하나 충고라고 생각하게. 이건 확실한 것이니 말이야. 일단 다시 시작하자고.”

병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적어도 포섭당한 뒤 한 보름이 지날 때쯤인가? 그 때 그 명단 맨 윗줄에 있는 서견환이라는 작자가 이렇게 부탁했지. ‘최 소령 현재 자네 지휘부대의 배치 상황과 그 옆 부대의 병력 배치상황에 대해 알려주게나.’ 이런 식으로 말하면서 평안도 경계에 위치한 군 병력들의 배치 상황에 대해서 물어봤지.”

“......”

“물론 심각한 것은 아니까 내 부대의 상황에 대해서 진실로 말했지만 옆 부대들의 상황은 거짓으로 말했으니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게.”

병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그 다음 또 없습니까?”

병주의 물음에 최주평은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국군 입장에서 본다면 급히 기존 작전을 변경해야할 만큼 심각한 사항이었다. 그렇게 최주평의 설명이 끝나자 병주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한다.

“설명은 여기까지가 다 입니까?”

최주평은 고개를 끄덕이며 병주에게 말한다.

“그래. 끝이야.”

병주는 그 대답에 미련을 잠시 찌푸리며 이내 한 마디 묻는다.

“그 정도의 정보를 얻으면서 받은 것이 이 명단입니까?”

“흠.”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으셨습니까? 애초에 이 명단 자체가 가짜들이 섞여 있다면?”

최주평은 그 말에 심각해지기 보다는 오히려 입술 한 쪽을 올리며 말한다.

“내가 그런 정보들을 주면서 이 명단을 가져온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되는가? 난 이 명단을 토대로 일일이 확인했지. 이건 진짜라고 볼 수 있어.”

병주는 ‘흐음’ 침음을 흘리며 명단의 내용들을 바라보며 최주평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항이 심각하신 것은 형님도 잘 아실 것입니다.”

최주평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병주에게 말한다.

“그래. 독단적인 결정에 의해 공을 세우려다가 너무 발을 담갔으니 말이야.”

“형님이 하실 선택은 딱 두 가지입니다.”

“두 가지?”

“첫 째, 형님의 이 사실을 윗 선과 흥정하는 것입니다.”

“...... 둘 째는?”

“둘째는 이 사실을 은폐시키는 대신 가상의 첩자를 만들어서 우리 둘이 정보를 캐고, 쓱싹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쓱싹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할텐데?”

“그래서 후자는 추천해드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자의 위험성은 만만치도 않을 거야.”

“그 쪽의 중재야 자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 동생이 있지 않습니까?”

최주평은 그 사실에 무언가 깨달으며 한 마디 말한다.

“그렇군. 자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보급 절차가 우려되겠군.”

“거기다 형님과 친하신 만주군 파벌들이 있으니 그들의 도움을 얻는다면 전자의 일이야 유야무야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대신 형님은 군에서 전역하실 것이고, 아마 군무원으로 살 것입니다.”

병주의 말에 최주평은 ‘으음’ 침음을 흘리며 한 마디 말한다.

“흐음.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한데?”

“아마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합당한 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후자는 어떻게 되는 건가?‘

“후자야 말로 제가 말리고 싶은 선택지입니다.”

“그 이유는?”

“분명 방법이야 많겠지만 만약 후자를 토대로 일을 치른다면 여기저기 허점이 생길 것입니다. 즉흥적으로 일을 치르기 때문입니다. 잘 되면 일은 은폐되니까 별 고생은 없겠지만 대신 언제 일이 들킬까 불안한 삶을 살 것입니다. 또 이 것을 추리하는 사람들도 생길 것입니다. 한 마디로 도박입니다.”

‘도박’이라는 단어에 최주평의 눈썹이 움찔거리더니 이내 병주에게 말한다.

“방법은 좋은 것 같은데. 도박이라. 진정으로 그렇게 말하는가?”

“전 허언을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형님.”

“전자를 선택한다면 나에게 불명예가 있을 거야.”

“예. 그야 물론 형님에게도 불명예가 생길 것입니다. 하지만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리고, 보고했다고 한다면 그런 불명예 정도는...”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후자를 선택한다면 우리 둘 완벽한 비밀을...”

“물론 그렇게 되겠지만 도박입니다. 잘못되다가는 우리 둘 다 끝장날 것입니다. 제 가족들도 이건 막아줄 수 없는 사항입니다.”

최주평은 그 말에 ‘으음’ 고심을 하다 이내 병주에게 말한다.

“전자를 선택하면 내가 군무원으로 갈 텐데 내 밑에서 일해도 괜찮겠지?”

병주는 싱긋 웃으면서 최주평에게 말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은 확실하게 처리해드리겠습니다.”

“좋아. 도박을 하다 패가망신할 수 없는 일이니. 확실한 것이 좋겠지.”

그렇게 최주평은 이 사실들을 병재를 통해 윗선에 고발하는 방식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 대화들을 담은 녹음기 두 개는 전부 녹음된 채로 있었고, 병주는 그걸 하나를 최주평에게 건네준다.

“다시 작동한다면 아까의 대화 내용 전부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중에 홀로 남을 때, 확인하시면 됩니다.”

최주평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녹음기를 건네받은 후 말한다.

“네가 그렇게 말했으니 이건 확실한 것이겠지. 좋아.”

병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최주평에게 말해준다.

“그럼. 전 형님만 믿고, 전자를 바탕으로 계획을 짜두겠습니다.”

최주평은 그 말에 비로서 안심한 표정을 지으며 병주에게 말한다.

“곤란할 때는 역시 너밖에 없는 것 같다. 알겠다. 난 그만 가보겠다. 일이 있어서 말이지.”

“예.”

그렇게 최주평은 방 밖으로 나갔고, 병주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속으로 생각한다.

‘형님에게 그런 일이 있을 줄이야. 나도 잘 몰랐군. 하지만 일이 발생했으니 이 것으로 형님에게 빚 하나를 갚아둘 수 있겠군.’

그렇게 생각한 병주는 이내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일처리를 계속한다.

한편, 방 밖으로 나간 최주평은 복도에 서 있는 한 청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최주평은 그를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자네는 여기 전속부관인 김장표 중위라고 했던가?”

김장표 중위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그렇습니다. 뭔가 문제라고 있습니까?”

그 말에 최주평은 흠칫 거리며 한 마디 묻는다.

“계속 방 밖에서 지금까지 이 복도에서 서 있었던가?”

“제 판단으로 여기에 서 있는 것입니다. 뭔가 문제가 있습니까?”

“아니야. 그 것보다...”

김장표 중위는 씩 웃으며 최주평에게 말한다.

“그 것보다 얼굴을 보아하니 사단장님과 이야기는 잘 통하신 모양입니다.”

이야기가 잘 통했다는 김장표 중위의 말에 최주평은 머뭇거린다.

“......”

최주평의 그런 모습을 알지 못하는지 김장표 중위는 계속해서 말한다.

“사단장님이 최 소령님과 의형제 사이인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최주평은 그 말에 눈에 스산한 살기를 품고, 김장표 중위를 바라보며 말한다.

“이 이야기를 들었나? 그래서 위층에 고발할 건가?”

김장표 중위는 그 말에 하하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또 자세한 대화내용은 듣지도 못했습니다. 적어도 최 소령님과는 차후에 같이 일할 상대이지 않습니까?”

차후에 같이 일할 상대라는 그의 말에서 최주평은 생각하다 이제 기억이 났는지 한 마디 묻는다.

“흠. 내가 다음에 전근 갈 육군본부 정보국에서의 일이겠군. 그래서?”

“하하.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냥 저를 잘 살펴봐주십사 인사를 드린 것입니다. 물론 사단장님 밑에서 일하는 것도 좋지만...”

김장표 중위는 그렇게 말을 흐리다가 이내 말고는 뒷통수를 긁적이며 말한다.

“하하. 그냥 이렇게 된 이상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최주평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면서 김장표 중위에게 한 마디 말한다.

“참. 싱거운 사람이군. 알았네. 같이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낫겠지.”

그렇게 최주평과 김장표는 같이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이 때까지만 하여도 잘 알지 못했지만 그 두 사람이 얼마만큼이나 질긴 인연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참으로 알지 못했다.

============================ 작품 후기 ============================

원 역사대로라면 그 분은 1949년에 남로당과 내통한 혐의로 군에서 잠시 짤리다가 이내 전쟁이 터지고, 다시 복귀하는 셈입니다.

그 것보다 추석 내내 시골집에 있어서 어제도 소설을 못써서 지금 이렇게 내어준 것에 대해 죄송스러운 말씀입니다. 독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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