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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1948년 11월 6일, 본격적으로 제주도 북쪽 주둔지에 자리를 잡은 병주는 이 지역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던 중 병주의 말을 듣던 한 경찰복장을 갖춘 이가 심각한 얼굴로 말한다.
“정말 그렇게 할 생각입니까?”
병주는 빙긋 웃으면서 그에게 대답한다.
“왜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그렇게 일을 처리한다면 세월이...”
“여기서 한 번 강의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게릴라 세력들을 토벌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으음...”
경찰제복을 입은 사람은 얼굴을 찌푸리며 병주를 쳐다봤고, 병주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혀에 버터를 바른 듯 설명을 시작한다.
“게릴라 세력들의 가장 큰 강점이자 약점은 아무래도 자신들과 연계하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일단 들어보십시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심입니다. 저 쪽의 민심을 훔쳐야 저 쪽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 말에 경찰제복을 입은 사람이 대뜸 병주에게 소리친다.
“아니 그런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게 하다간!”
“그래서.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은 효과가 있었습니까? 조효준 경감님?”
제주도 지부 경찰국장인 조효준 경감은 그 말에 뭔가 반박을 해야했다.
“하지만 그런 자세를 취한다고 사태가 해결될 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병주는 그 말에 씩 웃으며 대답한다.
“효과야 그렇게 바꾸고 난 뒤 보여드릴 것입니다. 그 것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병주의 웃음에 조효준 경감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들을 지원해주는 아군이라고 소리를 들었는데, 병주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뭔가 자신들을 옥죄는 그런 저승사자 같은 분위기였다.
‘제길. 군에서 가장 발언권과 권력이 있는 사람이니 어쩌지 못하겠군.’
병주는 조효준 경감을 바라본 채 웃으며 말한다.
“아마 경감님도 마음에 드실 것입니다. 한 번 구경하는 것도 재밌지 않습니까?”
“으음...”
그렇게 병주는 몇 몇 인원들과 같이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편, 같은 시각 군인들은 소총을 겨누며 인원들을 포박해간다. 포박한 인원들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군인들에게 한 마디 항변한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그 때, 군인들 중 소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한다.
“무슨 짓이기는. 일이다.”
“일이 우리들을 잡아가는 일입니까?!”
그들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소대장으로 보이는 이는 눈도 깜짝 안 한다.
“흥. 잔말 말고 잡히시지? 뭐해! 포박해!”
-예!-
군인들은 소총을 겨누며 인원들은 차례차례 포박해갔고, 그들은 있는 힘껏 저항하고자 하였지만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무기를 든 군인들 앞에는 무리였다. 소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저항을 하다 잡히는 인원들을 보고 한 마디 말한다.
“쯧. 빨갱이 사냥 한다고 온갖 패악질을 한 녀석들. 빨갱이보다 더한 새끼들이야. 하여튼.”
‘빨갱이들보다 더한 새끼들’이라는 단어에 잡힌 인원들 중 몇 몇은 울컥했지만 이내 군인들의 포박에 감정은 수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제주도의 한 광장, 사람들은 오순도순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기에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 있는가?”
“글쎄. 이번에 파견 왔던 군부대에서 뭔가 발표를 한다고 하던데.”
“제발 헛짓거리 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하여간. 여기서의 일은 본토 놈들에게 들리지 않겠지. 매번 동북청년단 그 쓰레기 놈들 때문에 사는 것도 힘들다.”
“쉿! 조용해. 그 소리 들리면 잘못 하다 빨갱이로 몰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게 군중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한창 들릴 때, 병주와 사단 내 간부들은 단상에 서서 군중들을 바라보더니 이내 병주가 단상 위 연단에 설치된 마이크에 입을 대고 하나 발표한다.
“안녕하십니까? 제주도 국민 여러분.”
마이크에 증폭된 병주의 말에 군중들은 수군거림을 멈추고, 병주를 바라본다. 군중들의 마음속에는 제발 자신들에게 해가 가지 않는 내용을 발표했으면 했다. 그런 군중들의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병주는 입을 떼기 시작한다.
“작년 3월부터 촉발된 민심의 폭발은 어느덧 지금까지 나오면서 이런 참화를 빗었습니다.”
작년 3월의 일을 거론하자 병주의 뒤에 서 있던 조효준 경찰국장과 경찰간부들은 한 순간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러나 주위 군인들의 분위기 때문인지 행동에 나서지 못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병주의 말은 계속된다.
“우리 군경은 이번 게릴라 토벌에 앞서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습니다. 이 일은 앞으로도 게릴라 토벌에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순간 군중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토벌 전략의 변경에 군중들의 시선은 어느새 병주에게 집중되며 서로 자기들끼리 수군거린다.
“아니 무슨 소리야?”
“어떻게 바꿀 생각인지.”
병주는 그런 분위기를 감지했지만 일단 무시하고, 계속 발표를 한다.
“그 일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일단 일을 일으킨 장본인들은 아니지만 이런 광기의 분위기를 탄 채로 무고한 이들을 학살한 인원들부터 처리할까 합니다.”
‘무고한 인원들’이라는 단어에 군중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런 분위기에 병주는 박수를 쫙 친다. 그러자 오라에 묶인 사람들이 군인들의 손에 이끌려 단상 위로 올라간다. 그 인원들은 아직까지도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지 못했다. 병주는 이 인원들의 얼굴을 보고, 마이크에 입을 뗀다.
“이 인원들의 얼굴을 알고 계시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순간 군중들의 수군거림은 증폭된다.
“아니 저 놈들이 왜 붙잡혀 있어?”
“뭔가 잘못해서 붙들려나? 하여튼 저 놈들은...”
“그런데 뭔 일이지? 저 놈들은 군경 토벌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고 하지 않았나?”
“흥. 어찌되었던 간에 잘 되었네. 일단 들어보자고.”
군중들은 이 꼴이 된 동북청년단 단원들의 얼굴을 보자 고소해한다. 병주는 계속해서 마이크에 입을 대고 말한다.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사실은 이 인원들은 토벌대의 일원에서 상부의 지시는 받들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고한 인원들을 빨갱이로 몰고, 민간인들을 해쳤다는 것입니다.”
군중들은 그 말에 순간 주먹을 하늘 위로 높이 들고 병주의 말에 외친다.
-옳소! 옳소! 모든 말이 옳소!-
군중들의 지지를 받게 된 병주는 오라에 붙들린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들의 얼굴에는 두려움보다는 황당함이 더더욱 컸다. 그들 중에는 제주도 동북청년단의 지부장이기도 한 함청박의 얼굴이 있었다.
그 때, 조효준 경감이 벌떡 일어서더니 병주에게 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귀중한 토벌대의 간부들을 체포하다니?!”
그 말에 병주는 싸늘한 눈초리로 조효준 경감을 바라보며 말한다.
“조효준 경감님. 당신도 꽤나 많이 해먹은 것 같더군.”
조효준 경감은 그 말에 퍼뜩 인상을 찌푸리며 병주에게 소리친다.
“당신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알고 있어?!”
“그래서 당신을 위해 준비했지. 건물 안에 있는 전화로 한 번 그 뒤에 있는 사람에게 한 번 사정해봐. 이 일로 인해 내가 곤란에 처해있다고 도와달라고 말이지.”
병주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조효준 경감은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린다. 병주는 조효준 경감의 어깨를 꽉 쥐고는 분위기를 폭사시켜 말한다.
“네 놈이 적극적으로 민간인들을 학살을 주장했다는 근거는 없어. 대신 민간인들을 학살한 후 약탈한 재물들이 네 놈의 집안에 쏟아졌다는 정보가 있다. 그에 대한 처벌은 기대해도 좋아. 네 뒤에 있는 사람에게 한 번 사정해봐. 제발 도와달라고 말이지.”
병주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살기에 조효준 경감은 힘이 턱 빠지더니 이내 주저앉았다. 병주는 병사들에게 눈짓을 주더니 한 마디 말한다.
“일단 편하게 모셔. 일은 나중에 처리하지.”
-예!-
그러자 소총을 든 두 병사가 조효준 경감을 어깨동무한 뒤로 어딘가에 데려간다. 오라에 붙들린 동북청년단 단원들은 조효준 경감이 저렇게 힘없이 물러가자 이 분위기를 직감한다. 특히 함청박의 얼굴은 사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병주는 다시 한 번 연단에 서서 군중들에게 선언한다.
“우리 대한민국 국군은 여러분들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계시는 경찰 여러분들도 국민 여러분들에게 민폐를 끼친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건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무고한 인원들을 해친 여기에 선 인원들을 재판에 넘기자 합니다. 다시는 이런 무도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 없도록 엄중 감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군중들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수군거리기 시작하지만 병주의 분위기에 넘어간 지 오래였다. 병주를 처음 봤지만 어느새 병주의 분위기에 선동된 군중들은 병주의 얼굴에 집중한다.
그런데 바로 그 때였다.
“웃기지 마라! 지난번의 잘못들이 이 한 번으로 용서될까?! 싶냐?!”
군중들 속 한 사람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병주는 싱긋 웃으며 그런 목소리를 한 군중을 바라보더니 말한다.
“물론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전 진심으로 이렇게 연설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이런 무도한 사건들이 일어난 점에 대해서 제 10 강습산악사단의 사단장 길병주가 사죄를 드리겠습니다.”
병주는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무릎을 꿇고, 군중들에게 절을 한다. 이런 파격적인 병주의 행보에 군중들은 한차례 수군수군 거린다. 그리고 병주 뒤에 있던 사단의 간부들도 이런 일에는 예상치 못했는지 당황한 끼가 보였다. 병주는 한 번 절을 하더니 다시 일어서서 군중들에게 말한다.
“다시는 이런 잘못이 횡횡하지 않도록! 또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저라도 노력하겠습니다! 제주도에 있는 사건이 끝난다면 전 제 사비로 이 곳에 하나의 비석을 세우겠습니다. 여기에 있는 참상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내보이겠습니다. 공개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아픔을 겪은 사람들의 원혼을 어느 정도 풀어주고 가겠습니다! 이 일을 위해 전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고, 모든 외압이 쏟아지더라도 할 일은 하고 가겠습니다!”
병주의 그 간절한 외침이 군중들의 귀에 퍼져 나갔고, 군중들은 어느새 병주의 카리스마와 분위기에 홀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병주는 다시 한 번 말한다.
“이 곳에서 일을 벌인 남로당 무장대를 토벌한 후 전 위령제를 할 생각입니다. 이 곳에서 목숨을 잃어간 억울한 원혼들을 그나마 달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자 군중들은 눈물을 흘리며 외친다.
-와! 길병주! 길병주! 길병주!-
그렇게 병주의 발표는 군중들의 환호 속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1948년 11월 7일, 제주도 무장 봉기를 일으킨 남로당 제주도 무장대의 본부의 한 방에서 얼굴에 사색이 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 그 것이 정말이더냐?! 그 토벌대의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고?!”
무장대 제주도 지부 사령관이라고 할 수 있는 김달삼이 깜짝 놀라 전령에게 되묻는다. 전령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대답한다.
“예. 그렇습니다. 어제 일자로 민간인들에게 횡포를 일으킨 동북청년단원들을 재판에 넘겨 즉결처분시킨 뒤 본격적으로 민간인들의 유화 정책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김달삼은 그 말에 손을 부들부들 떨더니 한 마디 중얼거린다.
“크... 큰 일이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간부가 김달삼에게 물어본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김달삼은 그 물음에 대답을 해준다.
“우리들을 민간인에게 떼어놓고, 본격적으로 토벌시킨다는 것이야.”
그 말에 순간 전령의 말에 이해가 가지 않았던 간부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간다. 김달삼은 ‘끄응’ 침음을 흘리며 한 마디 말한다.
“제길. 무슨 방법이 없을까?”
그 물음에 한 간부가 김달삼에게 제안을 한다.
“저 쪽에서 민간인 유화책을 내놓는다면 그 유화책을 방해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제길. 그러니 문제라는 것이야. 우리가 그 것을 방해하면 방해할수록 고립되는 것은 우리야.”
김달삼이 그렇게 말하자 간부들의 얼굴은 더더욱 사색이 되어 간다. 그렇게 제주도의 상황은 병주가 파견된 시점에서 바뀌기 시작한다.
한편, 병주는 송수화기를 붙들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봐. 진짜 제정신인가!? 이런 사태를 일으키고도.-
“일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함입니다.”
-자네가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건가?! 왜 일을 이따위로 하는 거지!?-
“그 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다시 원상태로 복구시키고, 자네의 일에 집중하란 말이야!-
“이미 사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뭐?! 지금 뭐라고 했나?! 돌이킬 수 없다고!?-
“각하. 이번 일에 각하의 명성은 치솟아 오를 것입니다.”
-......-
그 순간 병주의 상대방의 목소리는 잠잠해진다. 이윽고 상대방은 잠잠해진 목소리로 병주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게 무슨 소리이지?-
“현재 이번 제주도의 사태를 보면서 느끼는 것인데. 여기에 근본적인 원인들이 있더군요. 이 사태를 일으킨 무장대의 잘못이 크기는 하지만 이에 맞서 토벌대에서 적절치 못한 사람들이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내 잘못이라는 것인가?-
“물론 각하께서는 그들의 거짓된 얼굴에 속지 않았습니까? 각하는 그저 그들이 정말로 빨갱이들만 토벌한 인원들로 보지 않았습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군. 이 일로 입을 씻어 달라는 건가? 이 일로 나에게 득이 되는 것은 뭐지?-
“여기에 개입한 각하의 흔적을 지우겠습니다.”
-......-
“그리고 빠르게 사태를 해결하고, 이 공덕을 각하께 돌리겠습니다.”
-한 마디로 자네의 조치가 내 결정에 따른 거다. 이 소리인가?-
“예. 그렇습니다. 어떻습니까?”
-자네. 사람 잘 설득하는군. 추진해봐. 하지만 성과가 없다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개인은 똑똑할 수 있어도 대중들은 선동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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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화까지는 제주도 사태와 그리고 트루먼의 대통령 당선까지의 일을 그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