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493화 (49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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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제주도의 어느 한 건물, 병주가 이끄는 제 10 강습산악사단의 본부는 여기에 두었다. 평소에는 별 볼일 없는 콘크리트 건물이라서 그런지 눈에 띄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병주는 별 상관없이 이 건물의 한 방에서 벽면에 지도들과 상황판들을 설치를 했고, 테이블에 지도를 깔아 본격적으로 참모들과 토론을 시도한다.

병주는 전임 군경 토벌대의 작전 성과에 대한 자료를 일일이 관찰하면서 지도상에 있는 것들을 대조해간다. 그 때, 사단 참모장 박현호 대령이 검지로 지도를 가리키며 설명을 해나간다.

“그러니까 상황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현재 전임 군경 토벌대의 경우가 주력했던 것들은 산 중턱에 있는 주민들을 해안가에 소개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 역시 주민들과 무장대 세력들을 유리시키는 데 주력을 했지만.”

병주는 씁쓸하게 웃으며 한 마디 말한다.

“그래. 무작정 생계와 기반을 버리고 떠나라 라고 말하는데 설득이 될 리 있겠는가?”

박현호 대령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그렇습니다. 현재도 산중턱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남로당 무장대를 돕는 민간인들이라고 여긴다는 경고가 유효한 상황입니다. 이를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병주는 그 말에 고민을 하다 이내 박현호 대령을 바라보며 말한다.

“이거 참 고심되는군.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들과 공산 게릴라 군들을 떼어놓는 것이 철칙이야.”

“예. 그 걸 잘 알고 있기에 전임 토벌대 역시 고민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놓고 초강경으로 나서니 이렇게 사건 처리가 지연되었을 것입니다.”

“흠...”

“우선적으로 사태 근본 해결을 위해 사단장님이 전에 실행에 옮기신 사항들에 대해서 전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유화책도 해결책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는 하지. 우리 쪽에 넘어가는 민간인들 중에 첩자들이 있을 것이 분명하니 말이야. 적어도 투항한 민간인들 중 한 두 사람이 난리를 쳐서 민심 수습에 곤란하게 만들 것이 분명해.”

“예. 아무래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럼 일일이 검문을 해서...”

“그래. 아무래도 그게 좋을 것 같아. 일단 검문의 경우 최소한의 기준만 잡게나.”

박현호 대령은 병주의 ‘최소한의 기준’이라는 말에 의아한 얼굴을 지으며 묻는다.

“최소한의 기준이라면?”

“적어도 몸에 무기를 소지하지 않을 것.”

“아. 그럴 수 있겠군요. 하지만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첩자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병주는 그 말에 씩 웃으며 박현호 대령에게 말한다.

“그거야 어차피 감수해야할 일이야. 하지만 군 기밀 정보가 소문에 흘릴 만큼 그렇게 보안이 단순한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또 그렇게 조치를 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쪽에 너무 친근히 대하는 주민들이 별로 없을 거야. 물론 있기는 하지만 첩자일 가능성이 높겠지.”

박현호 대령과 참모들은 병주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경계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래. 아마 게릴라들의 첩자들도 생각이 있다면 주민들에게서 떠도는 정보들을 획득하는 것을 주력으로 할 거야.”

“예. 아무래도 그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그래. 우리 작전에는 별로 걸릴 것이 없겠지. 기동이야 육상이 아닌 공중으로 하니 말이야.”

“맞습니다. 그럼 토벌에 관련해서는 헬기를 주력으로 이용하실 생각입니까?”

병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작전할 때만 그렇게 할 생각이야.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지.”

“중요한 요소라면?”

“그래. 무장대에 포섭된 민간인들을 어떻게 이용하는가?”

박현호 대령과 참모들의 얼굴은 순간 굳어갔고, 박현호 대령은 병주를 바라본 채 한 마디 묻는다.

“설마 그들을 포섭할 생각이십니까?”

병주는 그 말에 회심의 미소를 잡으며 한 마디 대답한다.

“사람이라는 것은 말이지. 자신과 그 가족들이 살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을 배신할 수 있어. 감정과 이념에 너무 치우치지 않는다면 말이야.”

어찌보면 섬뜩해 보이는 병주의 말에 박현호 대령은 침을 꿀꺽 삼킨다.

“그들 역시 그에 대해 대비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병주는 싱긋 웃으며 한 마디 말한다.

“적어도 그들에게 진정 포섭되지 않는 사람들을 전향시킬 수 있겠지. 살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주면 그 구멍으로 살 길을 도모하는 것이 생명이야.”

“......”

“물론 내 말이 상황에 틀릴 수 있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실행할 가치는 있지 않은가?”

그 말에 박현호 대령은 한숨을 내쉬며 병주에게 대답한다.

“그렇게 행동하다가 상층부에서 사단장님을 빨갱이로 몰까 두렵습니다. 비록 엄청난 악질이기는 했습니다만 동북청년단 인원들 일부를 처리한 것에 대해서 말들이 많습니다.”

병주는 그 말에 씁쓸히 웃으며 대답한다.

“어쩔 수가 없지.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일단 사단장님이 말씀하신대로 헬기나 비행기를 동원하여 제주도 각지에 선전문들을 뿌리겠습니다.”

병주는 그 말에 박수를 짝짝치며 말한다.

“그래. 그 것이 좋겠지. 심리전으로 가자고. 일단 사건부터 처리해야하니 말이야.”

그 말에 박현호 대령을 포함한 각 과의 참모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그렇게 제주도 사태의 해결을 위한 첫 번째 단계가 시작되었다.

-휭! 휭! 휭! 휭!-

헬기 양쪽에 달린 날개 안의 덕티드 팬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다. 그 후에 그 헬기는 곧바로 상공으로 이륙하더니 어느 한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지현국 병장은 헬기 조종실 안으로 한 마디 외친다.

“어이 목적지는 어디까지 왔냐?”

그러자 헬기 조종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 거의 다 와 갑니다. 그러니 준비를 해주십시오.”

지현국 병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고개를 자신의 분대원들에게 돌리며 명한다.

“뭐하냐? 준비하라잖아.”

그 말에 분대원들은 재빠르게 움직이며 이번 선전에 쓰일 선전문들의 위치를 투하지점에 옮기기 시작한다. 지현국 병장은 한 장의 선전문을 보고 피식 미소를 짓는다.

“하여튼 내용은 걸쭉이라니까.”

지현국 병장이 바라보고 있는 선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 종이를 보신 분은 잘 알겠지만 이건 하나의 생명보증서입니다. 만약 당신이 무장대의 일원이거나 아니면 그 무장대에 협력하고 있는 민간인이라고 할 때, 이 종이를 우리 군부대에 낸다면 당신의 생명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이 것을 누구나 다 보여주지 마시고,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보여주십시오. 우리 국군은 여러분들의 안전과 생명이 가장 중요합니다.

또 만약 이 종이를 보신 사람들이 사태에 아무런 관련이 없는 민간인들이시라면 가까운 통신시설에서 이 번호로 연락하여 여러분들의 안전을 보장받으십시오. 우리 국군은 국가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따르고, 행동하고 있는 여러분들의 생명을 보호할 것입니다.-

그 때, 지현국 병장의 귓가에 박한호 소대장이 소리친다.

“어이. 준비는 다 했나?”

그 말에 지현국 병장은 벌떡 일어서서 소대장에게 충성 구호를 외친다.

“충성. 이미 준비는 해두었습니다.”

박한호 소대장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조종사야. 위치는 어디쯤이냐?”

그 말에 헬기 조종실 안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 조금만 더 가시면 됩니다.”

“그 놈의 조금만 더는...”

그 때, 헬기 안 설치된 확성기에서 소리가 들린다.

-목적한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박한호 소위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휘하 소대원들에게 명령한다.

“투하해!”

그러자 소대원들은 레버를 하나 누른다. 그러자 폭탄 투입구가 열리면서 그 문 위에 있던 종이들이 하늘 밖으로 눈처럼 송이송이 내린다. 그렇게 박한호 소대장이 이끄는 헬기 한 대뿐만 아니라 사단에 배치된 여러 대의 헬기들이 선전 작전에 동원되었다.

한편, 한라산의 중턱 산기슭의 한 동굴 안에서 무장대 인원들이 작전 내용을 주고받고 있었다. 개중에는 이번 무장대에서 공을 많이 세운 박정배의 조도 있었다. 박정배는 자신의 조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있었고, 다른 조원들은 다음 작전을 위해 하나둘 정비를 해두고 있었다. 그 중에는 곽원갑의 얼굴도 눈에 비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한 사람이 다급한 얼굴을 하고선 동굴 안에 들어가 외친다.

“보고입니다! 보고!”

보고라는 말에 동굴 안의 무장대원들의 얼굴에는 그 사람의 얼굴에 집중된다. 그 시선의 집중에도 불구하고, 동굴 안에 들어온 인원은 제 일을 다 한다.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한 장의 종이를 들고, 소리친다.

“저 쪽에서 심리전을 걸고 있습니다.”

‘심리전’이라는 말에 박정배는 의아한 눈빛을 하며 그 인원에게 다가가 자세한 것을 묻는다.

“그 무슨 일이야? 그리고 그건 또 뭐고?”

그 말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생각했는지 종이를 든 사람은 그 종이를 박정배에게 넘겨준다. 박정배는 갑작스럽게 종이를 받고, 읽기 시작했고, 한 글자를 읽을 때마다 얼굴 표정이 변해간다.

“으음...”

거기에는 아까 지현국 병장이 읽었던 그 선전문과 유사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 때, 정진용이 박정배에게 한 마디 묻는다.

“조장. 무슨 일이시기에 그렇습니까?”

그 말에 박정배는 사색이 된 얼굴을 한 채 대답한다.

“큰일났다. 저 쪽에서 뭔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생각인가보다.”

그 말에 정진용은 아리송한 얼굴을 하고선 박정배가 가진 종이를 건네받고는 내용을 읽기 시작한다. 그러자 그 역시 박정배처럼 얼굴이 굳어져 간다.

“미친놈들. 하다 안 되니 이제는 회유책인가?”

정진용의 그 말에 동굴 안에 있던 사람들의 관심은 증폭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박정배와 정진용의 얼굴이 변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 관심을 끊고 정비를 하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게 곽원갑이었다.

박정배는 통신조원에게 한 마디 말한다.

“일단 이 사실을 어서 본부에 알려야 돼.”

“예. 그 쪽에 연락해보겠습니다.”

박정배는 ‘으음’ 고심을 하며 종이의 내용을 바라본다. 그 내용에는 그냥 자신들의 생명보장서 라고 적힌 단순한 심리싸움이었다. 그러나 박정배는 이를 달리 해석했다.

‘우리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민간인들을 따로 떼어놓을 속셈이군.’

박정배는 지금껏 활동할 수 있는 배경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 과정 속에서 자신들이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민심을 바탕으로 움직이기에 이렇게 활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 쪽에서 민심을 움켜잡는다면 자신들의 활동도 끝장나는 것이다.

‘젠장 지독한 민심 싸움이 될 거군.’

박정배는 아무래도 이 일이 꽤 험난한 상황이 될 거라 예측하고 있었다.

한편, 박정배 조가 들었던 소식처럼 무장대 본부에서도 헬기에서 뿌려진 선전문을 보고선 사단이 났다는 것을 감지했다. 김달삼은 선전문의 내용을 보면서 상당히 골치 아프다는 얼굴이었다.

“쯧. 이미 예상은 했지만 실행이 되었군.”

그 말에 참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상황을 지켜본 후에 우리 측 인원들을 감시하고, 보호하게.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하나 둘씩 저 쪽으로 넘어간다면 둑에 구멍 하나 낸 것과 같은 효과를 보게 될 거야.”

김달삼의 말에 참모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먼저 이런 선전문을 뿌리다니. 이번에 토벌대로 온 사람은 만만치가 않나 봅니다.”

김달삼은 한숨을 내뱉으며 말한다.

“그래. 민간인들에게 횡포나 부릴 줄 아는 경찰들이 온 것이 아니라 실전을 어느 정도 겪은 진짜 군인들이 왔어.”

“예... 일단 우리 쪽은 어떻게 할 방침입니까?”

“적어도 여기서 시간을 끄는 수밖에 없어. 이 곳은 제주도이니 탈출할 수단이 전무한 상황이야. 저 쪽에서 헬기를 대줄 수 있도록 하지 않는 이상 말이야.”

참모는 그 말에 눈을 번뜩이며 외친다.

“그 것입니다.”

그 말에 김달삼은 의아한 눈초리로 참모를 바라보며 묻는다.

“뭐가 그거야?”

“아까 사령관께서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헬기를 탈취하지 않는 이상이라고.”

김달삼은 그 말에 ‘설마’하는 표정으로 참모를 바라보며 말한다.

“으음... 저 쪽에서 머리가 있다면 헬기들을 어찌 취급할지 알고 있을텐데?”

“주민들의 협조를 얻기 힘들다면 외부와 연락을 해야합니다.”

“그래. 그건 알고 있지. 그래서 외부와의 연락과 지원을 얻기 위해 그 헬기들을 노획하자는 것인가?”

참모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달삼에게 대답한다.

“예. 그렇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 쪽이 고사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런 근본적인 사태를 해결해나가기 위해선 배나 헬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김달삼은 그 말에 한숨을 내뱉으며 참모에게 말한다.

“아까 말했잖아. 저 쪽에서 가만히 있겠냐고? 또 그 것들을 순순히 탈취해두도록 내버려둘 바보들인가?”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그 외의 방법이 있습니까?”

김달삼은 그 말에 못당하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결국 그는 참모의 말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 작품 후기 ============================

게릴라의 필수적인 요소로는 숨기위한 지형, 그리고 그 지형을 토대로 주변 주민들과의 협조, 그리고 보급, 그리고 외부로 도망갈 길과 협조가 필수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게릴라는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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