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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1948년 11월 10일, 병주는 다시 한 번 사단 파견 본부에 들어가서 참모들과 같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제주도 전역에 선전문들은 다 뿌린 것이 확실하지?”
사단 참모장 박현호 대령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3일 전부터 이번에 다 뿌려놓았습니다. 이제 다음 단계로 갈 차례입니다.”
“좋아. 그럼. 다음 단계를 실시하지. 구역별 현황에 대한 지도부터.”
그 말에 참모 곁에 서 있던 장교들이 즉시 움직이더니 테이블 위에 지도를 놓았다. 그 지도는 구역별로 되어 있었는데, 지도 위에 색칠한 부분으로 현재 상황을 그려놓았다. 박현호 대령은 지도를 바라보면서 병주에게 말한다.
“그런데 거점 식 점령으로 차근차근 주변을 포위시키겠다는 전략이 저들에게 먹히겠습니까?”
“저들 역시 머리가 없지 않는 이상 이런 식의 접근이 얼마만큼 위험한 일인지 뻔히 알 수 있는 일이야.”
“그렇기는 하지만 산 중턱에 이렇게 거점을 두어 수색 범위를 좁힌다는 것도 있지만 저들에게 거점이 각개격파 당하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병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이미 그에 대한 대책은 있지 않은가? 기동군을 맡은 중대 하나가 말이야.”
박현호 대령은 ‘기동군’이라는 단어에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은 눈치로 병주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런데 그 기동군이라는 부대를 정말 그 이에게 맡길 참입니까?”
“무슨 일이기에 그런가?”
“그는 실전 경험도 없는 애송이이지 않습니까?”
병주는 그 말에 싱긋 웃으면서 박현호 대령에게 대답한다.
“내 안목을 믿지 않은 것인가?”
“사단장님의 안목이야 충분히 믿을 수 있지만 그가 잘 해낼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뭐 그리 걱정하지 말게. 어차피 처음에 실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말이야. 적어도 우리가 파견 올 때까지 여기에서 비정규전을 치렀던 녀석인 만큼 충분히 믿을 수 있어.”
“으음...”
병주는 사단 직할부대 중 한 개의 중대를 기동군으로 만들었다. 전부 헬기를 통해 이동하는 부대였는데. 보통은 대기하다가 위험에 처한 부대가 있다면 즉시 이동하여 도와주는 일종의 예비대로 만들었다. 현재 그 기동군 중대의 중대장을 맡고 있는 이는 ‘한현수’ 중위로 원래 제주도 사태가 일어난 당시 부임했던 군 장교였다.
제주도 사태에서 여러 번 지휘관이 바뀌었지만 이렇게 파격적으로 ‘기동군’이라는 새로운 조직을 맡기기에는 처음일 정도였다. 물론 병주가 파격적인 행동을 많이 하지만 그 것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사람에 한했다. 하지만 그런 중요한 부대를 자신이 일면부지 없는 한 중위에게 맡긴다는 것이 박현호 대령은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그러다 박현호 대령은 병주에게 한 마디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적들이 빠져나갈 구멍은 어떻게 해두었습니까?”
그러자 병주는 두 개의 지점을 검지로 가리키며 설명한다.
“하나는 제주도 동쪽에 있는 성산항, 그리고 하나는 북동쪽 한동리에 있는 헬기 정비소. 이렇게 두 개지.”
박현호 대령은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경악한 얼굴로 병주에게 말한다.
“아니. 그 두 가지 전부 다 우리들에게 치명적인 곳이 아닙니까?”
“치명적인만큼 저들에게 상당히 달콤한 것이기도 하지.”
“하지만 잘못되다간 무장대 인원들이 전부 다 제주도에서 탈출할 수 있는 노릇입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 없이 일을 준비하는 사람 같은가? 일단 그 주위를 자세히 봐.”
그 말에 박현호 대령은 한동리와 그리고 성산항 사이에 있는 곳에 한 개 대대가 있는 것을 확인한다.
“이들은?”
“그 곳에 포병중대 하나를 배치시켜두었네. 물론 이들의 역할은 최악의 상황에 발휘하는 일일 것이고, 이들 대대는 조금 특별한 구석이 있지.”
“아. 기계화 보병 대대입니까?”
“잘 알고 있군.”
“휴우. 그 정도면 이게 달콤하기는 하지만 독이기도 하군요.”
그렇게 박현호 대령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럽게 한 장교가 병주에게 보고를 한다.
“현재 무장대 일원들이 두 방향을 향해 진격 중이라고 합니다.”
병주의 눈썰미는 금세 변한다.
“어딘가?”
“헬기들이 있는 한동리와 그리고 성산항입니다.”
병주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박현호 대령을 바라보며 말한다.
“어때?”
“휴우. 사단장님은 무슨 점집이라도 하십니까?”
“그런 속편한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나? 내가 머리를 싸매면서 고민한 배치야.”
“전 그냥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라고 말하면서 막 배치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쯧. 내 행동이 그랬나?”
그렇게 말한 병주는 고개를 통신장비를 운용하고 있는 통신병에게 말한다.
“기계화대대 쪽으로 연락주게.”
“예. 사단장님.”
통신병은 장비를 어느 정도 조작하며 통신 상대를 기계화대대 쪽으로 맞춘다.
-치지직 치직 아 여기는 깡통 일 깡통 일.-
그 말에 통신병은 마이크에 입을 대고 화답한다.
“여기는 하늘새. 하늘새. 깡통 대장 있는가?”
-여기는 깡통대장 무슨 일인가? 하늘새.-
상대방 목소리 톤이 바뀌었고, 그에 병주가 대신 마이크에 입을 대며 말한다.
“아 깡통대장인가? 하늘새 어미다. 현재 무장대원들이 상산항과 한동리를 향해 가고 있다고 한다.”
-그 말이 정말인가?-
“그래. 정말이다. 한 개 중대씩 보내어 두 방향으로 나눠진 무장대원들을 섬멸할 수 있도록 하라.”
-알아들었음.-
그렇게 기계화보병대대를 지휘하는 대대장과의 통신이 끝나자 병주는 다시 통신병에게 고개를 돌리며 어깨를 툭툭 치고는 말한다.
“잘하고 있어.”
“아닙니다. 사단장님.”
그렇게 한 차례 격려를 한 병주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간다. 그 후에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대처를 하면서 다시금 변화하고 있는 전장에 대해 토의하고 있는다.
같은 시각, 한동리를 향하고 있는 한 무장대원들은 갑작스러운 습격에 주변 바위를 찾아 엄폐하고 있었다. 박정배는 자신들을 포위하는 이들을 거울을 이용해 살펴보자 눈살을 찌푸린다.
“제길...”
옆에 있던 정진용이 박정배에게 한 마디 말한다.
“어떻게 합니까? 저 쪽에서 포위한 것 같은데 말입니다.”
“휴우. 한동리 쪽은 사지였군.”
“그 말은?”
“전부 죽을 각오를 해. 이건 함정이야.”
정진용의 얼굴은 그 말에 사색이 되었다. 그러나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기에 정진용 자신도 엄폐물을 찾아 몸을 숨긴다. 박정배는 씁쓸한 얼굴을 하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쯧. 어째 출동하기 전에 불길하다 했더니만 이런 일이 발생했군.’
박정배는 지금 자신을 포위하며 총격을 퍼붓고 있는 간간히 응사를 하지만 저 쪽의 화력이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그 때, 적병사 측에서 하나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햇빛에 반짝이며 보이는 하나의 무기, 그건 바로 미군에서 증여받은 대전차 무기 바주카포였다.
박정배는 그걸 보더니 입이 떡 벌어지며 자신의 조원들에게 말한다.
“어서 피해! 적 바주카!”
순간 무장대원들은 자신의 엄폐하던 곳에서 바짝 엎드린다. 바주카는 보통 보병이 휴대하고 있는 대전차 무기였다. 용도로는 적진지를 파괴하거나 아니면 전차를 저지, 반파, 완파 시키는 데 쓸 수 있지만 이렇게 엄폐물을 부수거나 폭발력을 이용해 적 병력들을 살상하는데 쓰이기도 했다.
-쓔우우웅! 콰아아앙!-
바주카에서 발사된 포탄은 결국 엄폐물 한 곳을 맞추고 말았고, 그 주위에 있었던 무장대원들은 폭발에 휘말려 끔찍하게 죽었다. 박정배는 그 폭발 속에서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손이 덜덜 떨리는 채로 자신을 진정시키기에 바빴다.
그 때, 멀리서 한 목소리가 들린다.
“어이 그만 항복하시지? 이미 포위되었으니 말이야.”
목소리가 들리자 박정배는 얼굴을 구기며 소리친다.
“개소리하지마.”
그 말을 주고받자 다시 한 번 총격전이 벌어졌다. 양 측에서 쏘는 화력전에서 무장대원들은 결코 우위를 점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지리적인 측면을 통해 이점을 얻어야 했지만 저 쪽이 지리적 이점을 먼저 차지했다. 결론은 자신들의 처지는 매우 불리했다.
저 쪽에서는 온갖 화력들을 투사할 수 있는 지형적 이점을 가지고 있는 반면 자신들은 가지고 있던 화력들도 대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박정배의 투지는 여기서 꺾이지 않는다. 옆에 있는 무장대원을 붙잡고 한 소리 말한다.
“어서 혈로를 찾아. 어서!”
“예. 예에! 예...”
그는 주위에 엄폐하면서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포탄과 수류탄이 떨어지는 이 난장판 속에서 그의 행동은 분명 용기 있다고 찬양받는 일이었다. 하늘이 그런 그의 의지에 감복했는지 한 가지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박정배를 붙잡고 한 곳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 쪽이 비어 보입니다.”
박정배는 그 쪽을 향해 눈을 작게 뜨며 그 쪽을 자세히 관찰한다.
“저 곳은 우리 본부 쪽으로 가는 곳이 아니냐?”
“어쩔 수 없습니다. 현재 저 쪽만이 살 길인 것 같습니다.”
박정배는 그 말에 입술을 깨물으며 말한다.
“제길. 알겠다. 여기에 있다가 모두 죽는 길밖에 안 되겠어. 모두들 저 쪽으로 돌파해. 어서!”
박정배가 외치자 각자 엄폐해서 대응을 하고 있던 무장대원들이 박정배가 향하는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움직이는 무장대원들을 향해 화력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경기관총에서 쏟아지는 총알에 하나 둘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고, 간간이 떨어지는 수류탄과 유탄에 생명 하나 둘씩 사라진다.
그런 지옥 같은 곳에서 박정배는 자신의 대원들을 이끌고, 무조건 살길을 찾아 뛰어갔다. 이런 곳에서 지체하고 있다간 모두들 몰살이었다.
‘으으으.’
박정배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부상당한 무장대원을 어깨동무 하면서까지 빠져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할 때가 있던가? 자신들이 향하고 있는 방향에서 병사들이 등장하더니 이내 경기관총을 설치한다. 그리고 그 양 쪽에 바주카를 운용하고 있는 병사들이 보였다.
“히익!”
“여기는 틀렸어.”
무장대원들의 절망어린 목소리가 박정배의 귓가에 들린다. 그 때, 전방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얼굴을 보아하니 한 장교의 얼굴인 것 같았다. 그는 박정배를 포함한 무장대원들을 보고 한 마디 말한다.
“이대로 몰살당할 건가? 아니면 항복할 건가?”
순간 자신들에게 쏟아지던 화력투사도 멈추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부상당해 신음소리를 내는 무장대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박정배는 이런 절박한 시기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무장대원들의 얼굴을 살핀다. 하나같이 절망과 체념에 가까운 얼굴이었다. 혁명을 위해 투지를 불사 지르는 그런 열정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한심한 얼굴이었다.
“제기랄...”
박정배는 결국 선택을 해야 했다. 사기가 와해된 무장대원들 가지고, 저 단단해 보이는 진지를 돌파하기에는 어려웠다. 그는 양손에 소총을 들고, 한 마디 외친다.
“항복. 항복하겠다.”
그 말에 진지에 있었던 장교가 웃으며 한 마디 말한다.
“잘 선택했다.”
“......”
그렇게 박정배의 무장대원들은 전부 투항했고, 포로로 잡혔다. 자신의 중대내 병력들이 박정배를 포함한 무장대원들을 포박할 시점, 그들에게 항복을 권유했던 중대장 한현수 중위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병사의 등 뒤에 맨 무전기의 송수화기를 들고, 어딘가로 연락한다.
-치직... 여기는 하늘새 하늘새. 무슨 일인가?-
그 말에 한현수 중위는 이렇게 대답한다.
“여기는 참새. 한동리로 향하는 무장대원들을 현시각부로 격멸시키고, 포로로 붙잡고 있다.”
-알겠다. 보고바람.-
한현수 중위는 그 말에 다시 송수화기를 제자리로 놓고, 전투의 현장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쯧. 언제 봐도 끔찍하군.”
현장에는 팔 잘리고, 다리가 잘리고, 내장을 드러낸 무장대원들 시신 혹은 부상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곳에는 땅에 총탄이 박힌 흔적들이 역력했다. 한현수 중위는 이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쉰다.
“언제까지 이런 모습을 봐야하는 건가?”
자신은 해방 전에 교사로 있었다가 해방 이후 들어온 광복군에 들어왔다. 그 후에는 장교로 가서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꽤 성과를 거둔 후 제주도로 처음 부임하였는데 그 때 하필이면 4.3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공산 게릴라 부대와의 싸움을 겪게 되었다.
현재는 제주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파견 온 제 10 강습산악사단의 사단장 길병주 소장의 파격적인 발탁에 의해 기동중대 중대장을 맡아 작전 중에 있었다. 그 때, 한 사람이 성큼성큼 다가와 한현수 중위에게 다가온다.
“자네가 그 기동군 중대장인가?”
한현수 중위의 눈에 이번에 같이 작전을 한 기계화보병 대대의 대대장의 얼굴이 보였다. 거의 같은 나이대로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계급은 계급이었기에 한현수 중위는 경례를 한후 대답한다.
“예. 그렇습니다. 기동군 중대중을 맡은 한현수 중위라고 합니다.”
그 말에 대대장은 한현수 중위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한다.
“잘 했네. 이번에 자네의 도움이 없었다면 꽤 큰 일 났을 거야.”
한현수 중위는 그 말에 한 마디 대답한다.
“우리 중대의 임무는 예비대로써의 임무 당연한 것입니다.”
============================ 작품 후기 ============================
원역사와 달리 빠른 시간내에 토벌을 당하는군요. 그보다 알고보니 이야기 시간상 이미 트루먼은 대통령이 된지 오래였습니다. 11월 2일이 대통령 선거날짜라고 되어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