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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기계화보병 대대의 대대장은 한현수 중위의 그 말에 미소를 짓고는 어깨를 두들긴 후 한 마디 묻는다.
“그래. 이 다음부터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아무래도 필요한 곳에 다시 투입할 것 같습니다.”
대대장은 그 말에 한숨을 내뱉으며 말한다.
“정말 고생한다.”
고생한다는 그의 말에 한현수 중위는 속으로 기쁨이 흘러 넘치지만 이내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대대장에게 묻는다.
“그런데 이번에 포로로 잡은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할 생각입니까?‘
대대장은 그 말에 잠시 머뭇거리다 한현수 중위에게 대답한다.
“일단 모아두고, 한 번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지 검토해봐야지.”
“검토한다는 말씀은?”
“쯧. 자네가 알 것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뭐 알아도 상관은 없겠지. 우리 사단장님이 자기만의 규칙이 있다고 매번 말하지 않은가?”
그 말에 한현수 중위는 ‘아’하고 무언가를 떠올리며 말한다.
“그 규칙들 말씀하시는군요. 특히 민간인을 해치는 부하는 즉결처분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저번 동북청년단의 단원들 중 일부가 잡혀서 처형당했잖아. 그런 규칙에 의거해서 그런 거야.”
“그러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까?”
대대장은 그 말에 하하 웃으면서 한현수 중위에게 말한다.
“이것 보게나. 어차피 국제법상 이런 것은 문제가 없어. 민간인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 우리 군인들의 일이잖아. 자네 이런 일에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그 말에 한현수 중위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좌우로 급하게 고개를 젓는다.
“아니. 제가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전 그냥 이번에 여기에 부임한 사단장님이 신기할 뿐입니다. 진압 초기에 왔던 연대장 역시 그런 마음가짐이었지만 아쉽게 전출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런가? 이런...”
대대장은 자신이 찬 손목시계의 시간을 보더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한현수 중위에게 말한다.
“여기서 이야기할 시간은 지난 것 같군. 자네도 이만 가보게나. 우리 대대는 여기를 수습하고, 다음 명령을 기다려야 할 것 같으니 말이야.”
그 말에 한현수 중위는 대대장에게 충성 구호를 붙이며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혹시 지원 요청이 온다면 즉시 달려가겠습니다.”
“그래. 그래. 수고했네.”
그렇게 기계화 보병 대대의 대대장과 헤어진 한현수 중위는 자신의 중대원들을 이끌고, 헬기 대문 앞에서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에 고개 뒤를 돌아보며 전투의 현장을 바라본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에서 대대 병사들이 현장을 정리하고, 대대에 속한 군의관들로 하여금 부상자를 응급치료하고 있었다. 또 병사들을 이끌어 포로들을 정리하고, 차량에 태우는 모습들까지 보인다. 아무래도 자신이 생각한 최악의 경우는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다. 보통 포로를 잡으면 고문을 하거나 정보를 캐낼 것은 캐낸 뒤 처분하여 묻어버리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안도의 한숨을 쉰 한현수 중위는 그 모습을 눈에 새기고는 다시 고개를 전방으로 돌린 뒤 헬기 대문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중대장 통신병이 건네주는 수통의 물을 마시며 통신병에게 한 마디 말한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거냐?”
그 말에 통신병은 잠시 머뭇거리다 한현수 중위에게 대답한다.
“저야 모릅니다.”
“쯧. 모르면 되냐?”
통신병은 속으로 ‘왜 나에게 지랄이지?’이런 감정이 담긴 표정을 지었고, 한현수 중위는 한숨을 쉬며 말한다.
“에휴. 됐다. 명령 떨어지면 저 쪽에서 말하겠지.”
그 때 헬기조종실 안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중대장님. 어디로 갑니까?”
그 말에 한현수 중위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한다.
“일단 임시 보급소로 발길을 돌려. 거기서 재정비를 한 뒤에 명령이 떨어지면 긴급출동한다.”
“예. 알겠습니다.”
그 후 기동 중대를 태운 헬기 네 대가 이륙하며 상공 북동쪽을 향해 날아간다.
1948년 11월 13일, 본격적인 포위망 좁히기가 실시되면서 제주도에 활동하는 무장대원들의 활동범위는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했다. 병주의 사단 측에서 기본적으로 민사작전을 통해 무장대원들과 주민들 사이를 찢어놓기 시작하면서 무장대의 상황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전망이었다.
무장대 본부의 한 방 안에서는 김달삼이 머리를 부여잡고, 상당히 괴로워 하고 있었다.
“제길. 목이 조이는 기분이 이런 기분이었어.”
그 말에 그 주위에 모인 참모들과 간부들은 아무런 말을 못한다. 지금까지 이어진 패배의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고개를 들지 못한다. 김달삼은 그런 인원들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쉰다.
“하아. 진짜 방법이 없는 건가?”
그 물음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아니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이 정확하다. 아마 확실한 방법이 있다면 지금 바로 김달삼에게 입을 열어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김달삼은 이 분위기에 감정이 격해졌는지 한쪽 손으로 테이블을 내려친다.
-타앙!-
“휴우.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모두들 힘들지만 제안을 해봐.”
그 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자기들끼리 눈치를 보면서 서로 자기가 말하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런 분위기에 김달삼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참고, 이내 한 사람을 지목한다.
“이보게. 한 번 속시원히 털어놔봐.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저 그... 그 것이...”
“그 것이 뭔가? 무슨 방법이 있는 것인가?”
그 말에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 김달삼에게 대답한다.
“현재로써는 이 곳을 기반으로 최대한 저항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대답을 듣자 김달삼의 얼굴은 흉하게 일그러진다. 그는 감정을 이기기 힘들었는지 여러 번 탕탕탕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내려치며 외친다.
“이런 원론적인 방법 말고. 획기적인 것 없나?! 획기적인 것! 우리 모두 이렇게 방법을 구상하지 않다가 가만히 있으면 모두들 죽어. 죽는다고. 알고 있어? 죽는다 이 말이야. 저쪽에서 우리들을 살려줄 것 같아?! 어? 그리고 우리를 지원하는 주민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김달삼의 외침에도 자리에 앉은 이들은 전부 조용했다. 김달삼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토의를 할 수 없다고 여기며 감정을 폭발시킨다.
“에이 씨발! 제기랄!”
그렇게 김달삼은 욕설을 내뱉고, 자신이 쥐고 있던 지휘봉을 전방으로 던져 버린 뒤 벌떡 일어서서 방 밖으로 나갔고,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잠시 조용해지다가 서로 수군거린다.
“휴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정말 어떤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동무들?”
“사령관께서 화나신 것은 둘째 치고,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해안가에 소개된 민간인들에 투입된 무장대 요원들을 이용한다면...”
“그거 이미 다 검문으로 걸리지 않았습니까?”
“에휴. 이번 진압군 사령관은 정말 방법이 없어요. 이 것도 안 돼. 저 것도 안 돼. 제길.”
그렇게 모두들 답이 없다는 것을 느끼는지 얼굴들이 답답해보였고, 그들의 답답한 시간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흘러간다.
1948년 11월 16일, 무장대를 격멸하기위한 작전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병주에게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병주는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사람에게 한 마디 묻는다.
“그러니까 당신들이 제 형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이라 이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이번에 제주도 사태에 대해 교수님이 그 쪽으로 민간인들에게 한 번 봉사를 해서 경험을 쌓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그 쪽을 통해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병주를 찾아온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의사복장을 갖춘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병주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당신도 오셨습니까?”
바로 병재와 같이 타라와에서 탈출했던 동료들 중 하나인 채병호였고, 채병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이번에 학생들의 실전경험도 있지만 이 쪽에 사람이 많이 부족하다고 들었습니다. 혹여 할 일은 없습니까?”
그 말에 병주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채병호에게 대답한다.
“아주 잘 오셨습니다. 형님께서도 저에 대해서 잘 알고 계셨군요. 이런 시기에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말입니다.”
자신들을 그렇게 환영해주는 병주의 태도에 채병호 역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일단 군인들을 치료할 약품들은 물론이고, 주민들에 대한 예방접종 역시 실시할 예정입니다.”
“휴우. 그렇게 되면 다행이겠군요. 여러분들의 경호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들이 끝까지 지켜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제주도 사람들에 대한 의료 지원들이 시작되었다. 저번에 파견 온 ‘생구단’의 단체원들을 합류시켜 조직화하고, 그 다음 군인들을 경비원으로 대동시켜 혹시나 모를 그들에 대한 암살이나 공격을 방지하고자 했다. 그렇게 민사작전도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또 이틀이 지났다. 상황이 계속해서 국군 쪽으로 유리하게 돌아가자 무장대에게서 붕괴의 징조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악착같이 수비하던 무장대원들 일부가 항복한 것이었다.
한현수 중위는 이번에 항복한 무장대원들의 모습에 ‘으음’ 침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상태는 거지나 다를 바 없을 정도였고, 그들 중 두 사람만이 겨우 소총을 들고 있을 뿐 나머지는 죽창을 들고 있었다. 병사들로 하여금 항복해온 무장대원들을 포박한 뒤 한현수 중위는 한 사람에게 말한다.
“당신 이름이 뭐요?”
그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전태윤.”
항복은 했어도 적어도 자존심만은 지키겠다는 그의 태도에 불구하고, 한현수 중위의 질문은 계속 되었다.
“이번에 항복한 이유가 뭐요?”
“항복시킨 사람이 그걸 왜 묻소?”
“그 것도 그렇군. 담배 필요하오?”
그 물음에 그 전태윤이라는 사람의 얼굴에는 잠시 간절함이 있었다. 아무래도 담배를 피나 보았다. 한현수 중위는 옆에 있는 중대 통신병에게 한 마디 말한다.
“혹시 담배 있냐?”
그 말에 통신병이 대답한다.
“담배 피십니까?”
그 말에 한현수 중위는 눈짓으로 포박된 무장대원인 전태윤을 가리키자 중대 통신병은 눈치를 채고, 자신의 품속에서 ‘럭키 스트라이크’라는 영어가 새겨진 담배갑 하나를 꺼낸 후 한 개비를 전태윤의 입에 물려주고는 라이터로 담배 끝에 불을 붙인다. 전태윤은 그 한 개비의 담배를 피우며 말하기 시작한다.
“우리들을 발견하면 공적으로 삼는 인간들과는 달리 이렇게 담배까지 쥐어주기는 처음이군. 이 담배도 몇 개월만에 피는 것인지 모르겠소.”
한현수 중위는 그 말에 한숨을 내뱉으며 전태윤에게 말한다.
“무장대에 온 것에 무슨 사정이라도 있소?”
“사정없는 인간들은 없소. 다들 하나같이 내몰릴 대로 내몰린 사람들이지. 나 역시 그런 사정 때문에 무장대를 하는 것이고.”
한현수 중위의 얼굴은 그 말에 굳어진다.
“사정이라. 다시 한 번 묻겠소. 항복을 권유 당했을 때 드는 생각이 뭐요?”
전태윤은 그 말에 잠시 말을 안 하다 한현수 중위에게 대답한다.
“나는 상관없는데 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 때문에 그렇소.”
“사람들?”
그 말에 전태윤은 눈짓으로 누군가를 가리킨다. 그 쪽에는 군인들을 보며 오들오들 떤 채로 포박당한 마을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으음. 저 사람들은 당신들을 지원하던 사람들이겠군?”
“반은 협박으로 반은 자원으로. 뭐 그런 것이오.”
한현수 중위는 한숨을 내뱉으며 말한다.
“뭐 저들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오. 이번에 파견 온 진압 사령관은 괜히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것에 대해서 진저리를 치는 사람이니 말이오.”
그 말에 전태윤이 한 마디 대답한다.
“그래서 항복했소.”
“그래서 항복했다고?”
“그렇소. 하늘에서 종이들이 떨어져 나가더군. 대원들 중 한 사람이 자신들의 생명을 보장해주겠다는 내용에 반신반의하기는 했지만 보험으로 삼고 자기 주머니에 넣었소.”
그 말에 한현수 중위는 다행이라는 얼굴로 대답한다.
“그런가? 처음에는 그냥 헛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효과를 내다니.”
“그런데 그 진압군 사령관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오?”
한현수 중위는 그 물음에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한다.
“나도 잘 모르겠소. 이번에 기동 중대로 발탁된 뒤에서는 별 인연이 없던 사람이라서 말이지. 다만 해방 전에 광복군에 자진 입대하기 위해 일본군에서 탈출하여 지금의 지위를 손에 쥔 자라고 들었소.”
전태윤은 그 말에 ‘허’ 소리를 내며 대단하다는 얼굴을 짓고는 말한다.
“그런 무시무시한 인간이 진압군 사령관을 맡으니 우리 쪽이 괴멸되는군. 하여튼 왜노들 밑에서 알랑방귀를 뀌며 행세하다가 우리 쪽을 탄압하는 그런 인간들보다는 그런 사람 밑에 붙잡히는 것이 낫겠지.”
한현수 중위는 그 말에 침묵하고 말았다. 자신도 병주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자신이 다녔던 사관학교의 교관을 통해서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정보를 듣고 있었다.
‘중국에서 소대장을 영임하며 시가전을 치르다 이내 승진하여 해방 전에는 연대장 직을 거머쥔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그 교관들도 원래는 그 사단장 밑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라고 말했지.’
군 장교들 사이에서 병주는 꽤 대단한 존재였다. 그건 그와 생사고락을 같이한 병사와 부사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현수 중위 역시 병주에 대해 꽤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일면부지인 나를 비정규전에 어느 정도 경험이 있다고 기동 중대의 중대장에 명하고, 중대장 직을 수행하게 만들었고. 또 다른 사람들과 달리 민간인들에게 온갖 봉사를 해주며 보살폈지. 정말이지 군인다운 군인이야.’
아마 자신이 군인이 되고자 했다면 꼭 병주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공을 위해 무고한 이들을 죽이는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들보다는 오히려 그 무고한 이들을 앞장서서 보호하는 그런 군인. 자신이 생각해도 병주는 충분히 자신이 따라가고자 하는 그런 군인다운 군인이었다.
그렇게 기동 중대를 이끄는 한현수 중위는 포로가 된 무장대원들과 마을사람들을 이끌고, 철수했다.
============================ 작품 후기 ============================
병주의 제주도 파견은 1949년까지 계속될 예정입니다. 뭐 어차피 1949년은 점프할 예정이니 상관없는 일이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