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496화 (496/633)

0496 / 0633 ----------------------------------------------

[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1948년 11월 20일, 제주도 사단 본부 회의장 안, 직사각 탁자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흠...”

병주는 탁자 위에 놓인 지도들을 바라본다. 거기에는 한라산 어느 한 구역을 나타내는 지도였는데, 그 지도의 중심이 되는 곳을 ‘의심지역’이라고 빗금을 칠해놓고, 나머지는 전부 자기 영역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제 마지막인가 보군.”

병주의 말 한 마디에 자리에 앉은 사람들 모두 침을 꿀꺽 삼킨다. 병주는 그들의 얼굴을 바라본 뒤 다시 검지로 지도의 의심지역을 가리키며 말한다.

“이 구역만 정리하면 알다시피 후속 작전으로 돌입할 것이다. 속칭으로 말하면 후속 정리에 해당되는 일이지. 우리 모두 이 땅에 다시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라자.”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회의는 끝이 났다. 드디어 제주도 무장대 토벌의 마지막 순서가 다가온 것이다.

한편, 같은 시각 무장대 본부에서는 온갖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모든 보급이 끊겨 물자들은 별로 없지만 나무나 그리고 돌들을 이용해서 진지를 보강하고 있었다. 물론 공사하고 있는 무장대원들은 저 쪽에서 바주카 한 번 쏜다면 금세 무너질 허술한 방어선이라고 이야기들 했다.

본부 안 회의장에서는 김달삼이 굳센 얼굴을 하고는 한숨을 내뱉는다. 자신 역시 소총을 잡고, 등허리 부근에 권총을 매달았다. 이 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자신의 인생이 생각났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부친을 따라 대구로 가면서 그 곳에서 자라난 기억들, 그리고 일본에 유학하여 학문에 매진했고, 그 다음부터는 일본군 장교에 입대하기까지 했다. 해방 전에는 오사카에서 일본공산당원과 만나 공산주의를 접했고, 거기서 결혼까지 했다.

그 후 해방이 되자 다시 자기나라로 돌아가 대구에 지내면서 활동을 계속하다 10월 대구 사건에서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다 이내 다시 고향 제주도로 피신해오면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내 인생도 여기서 끝인가?”

이제 자신의 나이는 26세였다. 이 나이라면 젊음을 느끼며 왕성하게 활동할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 나이에 생을 마감하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이 곳 진압군 사령관의 나이도 자신과 비슷하다고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같은 나이인 사람들이 서로 이념에 따라 죽고 죽이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이 희생된다는 생각을 하니 뭔가 허전했다. 자신은 그저 세상을 바꾸고 싶을 뿐이었지만 세상은 자신을 원하지 않았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지.”

그는 의지를 불태웠다. 가장 열정적이고 의지가 왕성한 젊은이인 자신이 이대로 절망과 체념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러니 독해져야 했다. 그 때, 자신의 방에서 한 사람이 뛰쳐나와 말한다.

“사령관님! 저 쪽에서 항복 권고를 해옵니다.”

김달삼은 그 말에 ‘으음’ 침음을 흘리며 한 마디 말한다. 그리고 이 소식을 알려준 사람에게 한 마디 묻는다.

“자네 나이가 이제 몇인가?”

“예? 전... 이제 16살 입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

김달삼은 이런 어린 청소년이 무장대에 있는 것이 조금 신기했다. 그는 한숨을 푹 쉬며 그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둬라. 항복은 하지 않겠다. 대신 19세 이하의 남성들을 저 쪽으로 보내겠다고 말을 하겠다.”

“예에?! 그건...”

김달삼은 그를 보며 한 마디 말한다.

“넌 이런 곳에서 죽기에는 너무 어려. 그러니 그렇게 전달해. 어서.”

그 말에 그는 급히 대답한다.

“예? 예에. 예!”

그렇게 그 어린 소년이 부리나케 방 밖으로 나가고, 김달삼은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저 쪽에서 이 말을 들어줄 줄은 모르겠지만 일단 최선을 다해야지.”

그렇게 김달삼은 마음을 먹으며 전의를 다져간다.

두 시간이 지나자 무장대 본부를 중심으로 병주의 사단 병력들이 포위하기 시작한다. 엄폐물을 중심으로 임시로 방어시설을 구축하고, 고지를 향해 공격할 준비까지 한다. 그 곳에서 병주가 손수 헬기를 타고, 내려와 지휘하기로 한다. 병주는 쌍안경을 들고, 무장대 본부를 바라본다. 주위 나무들과 돌들로 은폐된 무장대 본부의 모습을 보고, 한 마디 말한다.

“지형지물을 이용해 그나마 모습을 꾸렸군.”

그 말에 옆에 있던 전속부관인 김장표 중위가 한 마디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보니 꽤나 한심한 방어선인 것 같습니다.”

“저게 저들이 최선의 결과물이겠지. 아마 시멘트와 철근, 자갈이 있었다면 요새라도 건설할 수 있겠지.”

“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런 물건들이 하늘 위에서 뚝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 것보다 언제 공격시기를 잡으실 생각입니까?”

그 말에 병주는 자신의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한 후 대답한다.

“이제 곧.”

그 후 병주는 자신의 등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통신병의 무전기를 들고, 한 마디 말한다.

“아아. 전 부대 공격해라. 전 부대 공격해라!”

그 말과 동시에 무장대 본부를 포위하고 있던 사단 병력들이 일시에 공세로 돌입하게 된다. 전투는 무장대 본부 쪽에서 전의를 다지든 말든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무장대원들이 처절히 저항했지만 사단의 화력에 어쩔 수 없었다. 바주카포들을 포함해 각종 야포, 그리고 무장헬기들을 동원하자 방어시설은 금방 파괴되어 버리고 말았다.

뒤이어 이어진 것은 본부 내 잔여 무장대원들의 생포와 사살이었다. 그 모든 과정이 30분도 채 안 되어 벌어졌다. 병주는 쯧쯧 거리며 한 마디 말한다.

“덧없구나. 저 쪽도 전의를 다지고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물질이 정신을 이기고 있군.”

그 말에 김장표 중위 역시 맞장구를 치며 대답한다.

“이제 무기의 화력과 편의성이 인간의 정신력을 뛰어 넘었군요.”

“그래. 그 차이는 이제 시간이 갈수록 벌어지겠지.”

그렇게 말하며 병주는 후속 처리를 각 연대장에게 맡기고, 자신은 철수하고 만다. 그렇게 제주도에서 활동하던 무장대들은 1948년 11월 20일 오후 2시 5분경으로 소멸되고 말았다. 물론 잔여 병력들이 저항하고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들의 위세는 점차적으로 떨어져 완전히 진압되고도 남을 것이다.

1948년 11월 22일, 병윤은 한국의 집으로 간신히 돌아올 수 있었다. 자신의 의형인 신유철 사령관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남겨두고, 또 중경공단 재건의 주축을 만드느라 이제야 귀국할 수 있었다. 자신을 태운 헬기가 집 마당 헬기 착륙장에 착륙하자마자 자신을 반겨주는 한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오빠! 이제야 돌아오는 거야?!”

자신을 반겨주는 효혜의 말에 병윤은 피식 웃으며 효혜의 머리를 강아지처럼 만지며 말한다.

“꽤 일이 많아서 조금 늦었어.”

“그래? 그런데 선물은 있어?”

“넌 나보다 선물을 먼저 기다리나?”

“흥. 엄마한테 멀리 돌아온 자식이 선물 정도는 내놓는 것이 기본 예의라고 들었단 말이야.”

그 말에 병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하하 웃으며 효혜에게 말한다.

“아아. 선물이야 이미 가지고 있지. 기다려봐.”

병윤은 이내 헬기에 다시 들어가 무언가를 꺼내더니 한 상자를 효혜에게 건네준다.

“이거.”

효혜가 눈빛을 반짝이며 묻는다.

“이게 뭐야?”

“네가 그토록 바라는 선물이라는 거다. 받아둬.”

“으음...”

효혜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받았지만 개봉하지는 않았다. 병윤은 그런 효혜의 모습에 궁금증이 생기며 한 마디 묻는다.

“어라. 궁금하다고 개봉하지 않네?”

“힝. 내 방에서 상자를 열어 볼 거야.”

“그래. 그래. 그 것보다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

효혜는 그 말에 기쁜 얼굴을 하며 병윤에게 알려주기 시작한다.

“가장 큰 오빠야 학교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어. 또 둘째 오빠는 제주도에 가서 일한다고 했어. 그리고 언니는 단체 활동을 하면서 평상시대로 지내고 있어. 엄마와 아빠야 마을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이 정도면 돼?”

그 말에 병윤은 다시 한 번 효혜의 머리를 만지며 말한다.

“그래. 그래. 잘 했다. 그러니까 이 집 안에는 가족들이 없다는 거야?”

“아니. 큰 오빠의 으음... 뭐지?”

“그냥 언니라고 해.”

“으음. 그렇다면 우리 언니랑 그 언니랑 다 똑같이 불러?”

효혜의 질문에 병윤은 아차하고 한 마디 말한다.

“그냥 메리 언니라고 말하면 될 거야. 그리고 통상시의 언니는 친언니라고 말하고. 알았지?”

“아. 그러면 되겠구나. 알겠어. 막내 오빠.”

병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효혜랑 같이 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 곳 안에는 집사 손본규가 반겨준다.

“오셨습니까? 도련님.”

“하하. 도련님이라고 하니 조금 낯간지럽네요. 보니까 잘 있네요. 하하.”

손본규는 그 말에 싱긋 웃으면서 병윤에게 말한다.

“중국에서 있었던 사업은 잘 된 모양이군요. 감축드립니다.”

“감축이라 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그나저나 이 집의 변동사항은 없지요?”

“예. 없습니다. 물론 셋째 도련님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다들 셋째 도련님이 출타 중이라는 것을 알려드리자 어쩔 수 없이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중에는 국무총리께서도 있으셨습니다만...”

“아. 그렇군요. 그 분께는 따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휴우.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병윤은 손본규와 이야기를 나눈 후, 집 안으로 들어와 자신의 큰 형수이기도 한 메리를 만나 인사한다.

“큰 형수님. 잘 지내셨습니까?”

그 말에 메리는 자신의 아기를 안고, 병윤에게 인사한다.

“아. 막내 도련님이시군요. 중국에서의 일은 잘 되었어요?”

“하하. 잘 되었습니다. 그 것보다 큰 형수님께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과라면?”

“이번에 큰 형수님이 출산할 때, 제가 중국에 출타 중이라 찾아가 뵙지 못한 것에 대해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병윤의 사과에 메리는 잠시 당황하더니 이내 한 마디 말한다.

“괜찮아요. 아시다시피 막내 도련님의 일이 얼마만큼이나 중한 지 잘 알고 있으니 전 서운해 하는 것은 없어요. 그 대신...”

메리는 병윤에게 자신이 안고 있던 아기를 보여준다.

“이 아기는?”

“네. 그 이와 저 사이에 난 아기에요. 여기서는 조카라고 부르더군요.”

병윤은 그 말에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한다.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남자아기에요?”

메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제 남편과 똑 닮은 귀여운 남자아이에요.”

병윤이 살펴보니 메리가 내보이는 아기는 혼혈의 색보다는 동양인의 색이 더 강한 모양이었다. 메리의 특징은 눈에 씻고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아무래도 이 남자아기에는 큰 형님의 유전 특성이 강하게 물려받은 것 같았다. 병윤은 큰 형의 아이라고 하지만 자신 밑 대의 아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상당히 묘했다.

“그렇군요. 이런 말씀을 늦게 해서 죄송한데. 순산하시고, 건강하신 것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큰 형수님.”

메리는 그 말에 호호호 웃으며 대답한다.

“아니에요. 막내 도련님. 어차피 막내 도련님도 조금 있다 단짝을 만나 자식들을 볼 텐데 말이죠.”

메리의 말에 병윤은 어색하게 ‘하하’ 웃으며 대답한다.

“예. 형수님 말을 들으니 어서 저도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휴우. 일이 끝나야 가능하겠군요. 일단 편히 쉬십시오.”

“안 그래도 편히 쉬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예. 예. 그럼 전 일이 있어서.”

“어머. 또 일이 있나요? 중국에서 일이 있었는데 또 일이...”

“하하. 여기서 단순히 통화하는 것밖에 없으니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전...”

병윤은 메리에게 인사를 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얼마 정도 발을 옮기지 않아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병윤은 ‘하아’ 한숨을 쉬고는 말한다.

“결혼이라. 매번 주위에서 결혼을 하라니 압박이야. 쯧.”

병윤은 그렇게 말하고는 이내 침대에 앉더니 이내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들고, 어딘가로 전화하기 시작한다.

-뚜르르 뚜르르 철컥!-

-이 시간에 전화를 건 사람은 누구인가?-

“하하. 접니다. 국무총리 각하.”

-그 말투는 병윤인가? 이제야 중국에서 돌아왔군.-

“예. 제 의형의 세력 다지기에 어느 정도 도움을 주고 왔습니다.”

-그래. 그렇군. 그럼 앞으로 자네는 중국과 한국을 번갈아가며 활동할 생각인가?-

“중국내 상황이 안정되기까지는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중국내 상황은 삐끗 잘못되면 전부 공산화할 처지로 안 좋습니다.”

-그래? 허어... 그럴 정도인가? 하여튼 다행이군.-

“어느 정도 여기서 활동하다가 다시 중국의 중경공단 재건에 힘을 쓸 예정입니다. 그 때까지는 국무총리님께 큰 힘이 되어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자네가 직접적으로 도와주지 않아도 되네. 중국이 어느 정도 산다면 우리 세력 역시 안정화되니까 말이야. 그런데 자네도 소식을 들어서 알겠지만 미국에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하더군.-

병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저도 들었습니다. 이번에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에서 부통령이던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아마 다른 성향의 대통령이 당선되었으니 여기의 상황도 점차 바뀔 것입니다.”

============================ 작품 후기 ============================

댓글들이 많이 없으니 제가 많이 슬퍼집니다. 요즘따라 전기기사 공부 중이다 보니 소설을 쓰는 시간도 늦어지고 있습니다. 댓글들을 달아주어 힘 좀 주십시오. 저에게 댓글은 힘이자 사랑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