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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인생-498화 (498/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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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혼란과 광기와 학살과 기회의 시대

정호영의 그 말에 박태식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한 마디 말한다.

“네 말대로 대단한 사람이기는 하지. 하지만. 그 것 뿐이야.”

정호용은 그 말에 풋 하고 웃으면서 박태식에게 말한다.

“이 자식. 또 진지 병 걸렸네. 하여튼 대단한 사람인 것은 둘째치고, 저 사람 밑에서 일하게 되는 거야.”

“나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늙어 죽을 때까지 그 밑에 일하지 않겠지. 나 역시 야망이 있으니 말이야.”

정호영은 그 말에 ‘오오’ 소리를 내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까지 말하다니 네가 바라보는 높이는 그 정도인가?”

“내 이상은 저들이 추구하는 것보다 더 크고 높아. 여기는 단순히 나의 목표를 디딤돌일 뿐이야.”

“호오. 이거 상당히 야만 큰 녀석이야.”

“저 쪽에서 그만한 계약을 했으니 난 그만큼 일해줘야 하는 거지. 그 뒤부터는 저들과 상관없지 않아?”

“그래 그래. 맞는 말이다.”

박태식은 자신의 손목시계의 시간을 보고는 다급히 말한다.

“이렇게 시간 보내다 강의 시간 늦어지잖아. 빨리 가자고.”

“예. 예. 알겠습니다아~ 나으리~”

정호용은 그렇게 키득키득 웃으면서 박태식과 같이 동행한다. 한편, 감연을 찾아 그가 근무하고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복도를 걸어, 어느 방문 앞에 서서문을 끼익하고 열 때였다.

“내가 실험하고 있을 때는 열지 말라고 했지?!”

그런 외침이 병윤의 귀에 들림과 동시에 얼굴을 향해 무언가 날아온다. 병윤은 그 날아오는 물체를 자신의 순발력으로 쓱 잡고는 한 마디 말한다.

“방문 열고 들어온 사람에게 이런 것을 던지냐?”

병윤은 그렇게 말하고는 탁자 옆에 물건을 두고, 방 안에서 연구 중인 감연을 바라본다. 감연은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병윤에게 한 마디 말한다.

“언제 왔냐? 이 썩을 자식아.”

“흥. 네 녀석에게 볼 일이 있어. 찾았다. 다른 이유가 필요해?”

“필요하다면?”

“필요해. 그럼 말해주지. 한 가지 물건을 개발했으면 해.”

그 말에 감연은 손을 휘휘 저으며 냉정한 어조로 대답한다.

“야. 내 연구 때문에 급한 거 안 보여? 이 썩을 놈은 이야기도 하지 않고, 찾아와서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어.”

병윤은 그 말에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한 마디 말한다.

“호오? 내 말을 듣고도 그런 태도를 유지할 수 있나 보자고.”

“아서라. 지금 내가 연구하고 있는 상온 초전도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셀폰.”

병윤이 한 단어를 말하자 감연의 눈빛이 순간 바뀌었다.

“뭐? 셀폰? 으음...”

감연은 병윤이 말한 ‘셀폰’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내 병윤을 보고 손을 휘휘 저으며 한 마디 대답한다.

“내 할 일이 더 중요해. 동협 그룹에 소속된 기술자라면 셀폰 정도는 충분히 만들 텐데? 그러니까 내 방에서 꺼지시지?”

“호오. 그런 정도야? 하지만 셀폰으로 매번 연락해서 필요한 것들을 구매해서 보낼 수 있을텐데?”

감연은 그 말에 ‘으으’ 소리를 내다니 짜증난다는 얼굴로 병윤에게 말한다.

“제길. 그 놈의 셀폰은 왜 필요한 거냐?”

병윤은 그 말에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일반 전화기로 사용하다보니 불편해서 말이지. 요즘 의형님이 계시는 중국과 내 회사가 있는 한국 사이에 왔다갔다 연락할 사람들도 많고 그래서 말이지.”

“쯧. 그런 이유 때문에 내 연구를 방해한 거냐?”

“어때? 할 거야? 말 거야? 그 것만 정해.”

감연은 생각하더니 이내 병윤에게 한 마디 말한다.

“언제까지 시제품을 만들면 돼?”

“올 해까지.”

“올 해? 지금이 11월 말인데? 올 해까지? 미쳤구나.”

“네 능력으로 부족한 것은 아닐 텐데?”

감연은 그 말에 ‘크으으’ 소리를 내며 대답한다.

“야 나 요즘에 연구에 바쁘고, 집에서는 내 아내가 만삭이라 돌봐야 하고, 나 시간 없거든?”

“그래서 안 할 거야?”

감연은 그 말에 결국 짜증을 내며 병윤에게 대답한다.

“그래. 한다 해. 이 징글징글한 자식아. 나를 힘들게 하려고 작정을 했어.”

병윤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한다.

“어차피 그런 물건이 너에게도 필요할 텐데?”

“아 한다고! 올해 말까지 시제품 회사로 보내면 되지? 만들게. 만든다고!”

“후후. 그래. 그래. 알겠다. 그럼 그렇게 알고, 난 자리를 뜨지.”

“어서 꺼져. 이 썩을 자식아.”

감연은 방방 뛰면서 병윤을 방 밖으로 쫓아냈고, 병윤은 감연의 떠밀림에 방문 밖으로 쫓겨났다. 그 후에 감연은 문을 세게 ‘쾅’하고 닫으며 마치 잡상인 쫓아내는 것 같은 반응을 보인다. 병윤의 비서실장인 진서연이 병윤에게 말한다.

“욕보셨습니다. 회장님.”

“하하. 아닙니다. 아니에요. 저 빌어먹을 자식은 자기 일 도중에 방해하는 것을 상당히 싫어합니다. 그걸 알고도 이런 행동을 한 제 잘못이 있지요.”

진세연은 그 말에 의아한 표정을 잠시 지었지만 이내 이해한다는 얼굴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두 사람의 우정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까 회장님이 말씀하신 셀폰이 올 해 안에 나올 것 같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녀석 성격, 그리고 능력 잘 알지 않습니까? 올해 안으로 시 제품을 회사로 보내니 그 것을 바탕으로 양산 품을 만들면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회사 내 이사들에게 그렇게 의중을 전하겠습니다.”

“그 것보다 다음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 말에 진서연은 곧바로 자신의 품 안에서 수첩을 꺼내들더니 병윤의 일정을 확인하고 대답한다.

“1시간 뒤에 우리 그룹과 하청 계약을 맺은 기업 사장들과의 회의가 있습니다.”

“장소는?”

“대구 달서구에 위치한 상공업 발전소입니다.”

병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숨을 푹 쉰다.

“중국에서나 여기서나 할 일은 그야말로 태산 같군요.”

“그만큼 회장님의 회사 영역이 큰 탓이 있습니다. 원래는 그 자리에 곽조현 상무를 대신 보내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 일인 만큼 제가 하는 것이 옳겠지요.”

진서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한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병윤과 진서연, 그 둘을 따르는 일행들은 곧바로 대학에 갈 때 타고 온 헬기에 탑승하여 다음 일정이 있는 장소를 향해 이동한다.

같은 시각, 제주도에 파견 온 병주는 주민들과 함께 있었다. 이번에 제주도의 유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단장님 말씀은 그러니까 이번에 제주도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위령제를 열고 싶다는 것입니까?”

한 늙은 유지의 물음에 병주는 굳세게 고개를 끄덕인다.

“올해 4월 사건이 터지고, 지금까지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학살,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원혼들을 무시하고 떠나기에는 제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 말에 질문을 던진 늙은 유지가 아리송한 얼굴로 대답한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까지는...”

“꼭 필요합니다. 정 그러시다면 민주주의 국가답게 투표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병주의 당돌한 말에 늙은 유지는 당황하며 대답한다.

“투표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우리 제주도민들을 이렇게 생각해준 사람은 얼마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저 말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간 학살해오던 분위기에서 이런 화해의 분위기로 변하는 것이 어색할 뿐입니다. 저는 확실히 찬성입니다. 여기 중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있습니까?”

늙은 유지의 말에 나머지 유지들은 잠시 눈치를 보더니 이내 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반대하는 사람 없습니다. 뜻대로 하십시오.-

유지들의 긍정적인 대답을 듣자 병주는 싱긋 웃으면서 말한다.

“여러분들의 협조에 이 길병주 매우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시국에 축제를 열 수 없지만 이 제주도에 반드시 평화가 깃들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하겠습니다.”

그 말에 늙은 유지가 한 마디 푸념을 놓는다.

“단순히 위령제, 그리고 위령 비를 세운다고 이 원한, 지옥이 잊혀 질 리는 없지만 어디 그 것만 해도 어딘가? 하아...”

오랜 시각 제주도 토박이로 살아온 늙은 유지의 한숨에 병주는 자신 역시 공감을 하는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이 지옥은 절대 잊혀 질 수는 없겠지. 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은폐하는 것만은 능사가 아니야. 절대로 말이야.’

아마 자신의 이런 결정으로 인해 자신은 물론 자신을 따르는 이들까지 포함해서 불이익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병주는 이대로 제주도에서 철수하기까 찜찜했다. 결국 자신의 부하들의 불이익은 자신이 대신 받기로 마음 결정했다. 물론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한국의 정치계에서 크나큰 파문이 일고, 또 그 때문에 자신의 가족들이 고생한다고 하지만 병주는 이미 일을 저지르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형 병재와 자신의 동생 병윤 역시 동의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한 중년 남성의 유지가 병주에게 묻는다.

“그런데 한라산 중턱에 만들어진 금족령은 언제 풀리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잠시 병주는 머뭇거리다 대답한다.

“아직 잔여 무장대 인원들이 있을 수 있기에 금족령은 거둘 수 없는 사항입니다.”

“으음. 산 중턱에 살고 있던 사람들까지 해안가에 내려오면서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의 처지까지 많이 곤궁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군부대와 제주도에 파견 온 ‘생구단’의 사람들이 봉사하며 처지를 돌보고 있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악화될 것입니다.”

“물론 그 것을 잘 알겠지만 잔여 무장대들이 주민들을 선동하여 일을 치르면 그 것이 더 큰일이 될 수 있습니다.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조금만 더 참아봅시다. 제 동생 녀석에게 부탁하여 생필품들을 실고 오도록 했으니 생활면에서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으음... 제가 그렇게 말하니 저만 매정한 사람이 되는군요. 죄송합니다.”

“하하. 아닙니다. 원래 군인이라는 것은 국민들을 보호하는 사람들입니다. 국민들의 생활에 민폐를 끼칠 수 없는 노릇이지요.”

병주의 그 말에 유지들은 조금 감격한 얼굴이었다. 사실 이 전까지 부임한 관료들은 유지들과 공생관계를 맺었지만 그건 부패한 관계들뿐이었다. 그런 관계에서는 언제 배신할지 모르는 불안한 관계, 그리고 서로 이용만 하는 관계였다. 그런데 병주가 이렇게 태도를 굳히자 유지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속으로는 ‘다행이다’라는 편안한 감정을 느꼈다. 물론 속물적인 몇 몇 유지들은 병주의 태도에 ‘왠 호구 새끼가 넝쿨째 들어 오냐?’라는 그런 눈치였지만 말이다.

그 후 병주는 유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주도의 전반적인 상황을 살펴보고, 민원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원래 이 일들은 관료들이 맡아야할 일이었지만 병주가 토벌대 사령관이고, 또 비상시국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병주의 권력이 집중되었다. 아마 비상시국이 끝나고, 정상화되면 제주도는 다시 관료들의 손으로 행정처리가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 유지들과의 이야기와 민원 처리가 끝이 난후, 병주는 기지개를 핀다.

“으으. 뻐근하군. 실전도 실전이지만 제주도의 상황은 완전 엉망이군.”

그 말에 병주 옆에 서 있던 전속부관 김장표 중위가 한 마디 묻는다.

“그런데 굳이 우리 사단이 직접적으로 나서서 제주도의 상황을 처리해야 하는 것입니까?”

김장표 중위의 물음에 병주는 그를 쓱 보고는 대답한다.

“어쩔 수 없지 않나? 이런 혼란 상황을 진정시키기에는 군정이 가장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정부에서도 그 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으니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런데 아까 유지들과 이야기를 나누실 때, 위령제와 위령 비 건립을 들었을 때 상당히 깜짝 놀랐습니다.”

병주는 그 말에 싱긋 웃으며 말한다.

“당연한 것 아닌가? 자네는 여기를 그냥 떠날 것인가?”

“원래 군인은 명령받은 대로 행동하지 않습니까? 사단장님은 원칙을 중시하면서도 어떨 때는 원칙을 위반하고 계십니다.”

“그저 두 원칙이 부딪칠 때, 난 적절한 방법을 찾을 뿐이야. 적어도 사람의 양심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말이지.”

김장표 중위는 그 말에 얼굴을 굳으며 대답한다.

“양심으로 세상은 쉽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양심이 있든 없든 세상은 쉽게 살아갈 수 없어. 그러나 떳떳한 채로 살아가면 어디 덧나나? 그 길이 다른 길보다 더 험하고, 힘든 길일지 말이라도.”

“으음...”

“뭐 자네의 말도 이해가 가. 사람이라는 것은 가치관이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니 말이야. 그건 사람의 개성이야. 누가 더 옳고 그른가? 그 것보다는 각 자의 특성이 얼마만큼 다른가? 의 그 차이야.”

김장표 중위는 그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 말만큼은 동의할 수 있군요. 그런데 사단장님은 그런 생각을 언제부터 갖고 다녔는지 궁금합니다.”

“뭐? 궁금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 민간인들을 위시하는 그런 가치관들 말입니다.”

“......”

병주는 그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한다.

“이런 말하기에는 창피하지만 사실 강형의 말에 따라 일본군에서 탈영할 때부터 가진 생각이야.”

“그렇습니까?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내 생각이 그렇게 잘못되었다고 여기는 건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일을 할 때, 좀 더 중요한 것을 택할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냉혹한 눈물과 피를 뿌리서라도 말입니다.”

“......”

“원래 위로 올라가는 사람일수록 그런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사단장님은 그 반대로 가시니 신기할 뿐입니다.”

병주는 그 말에 후후 웃을 뿐이었다. 하기야 자신이 생각해도 신기했다. 원래 그저 강형의 말에 따라 부병초 같은 삶을 살아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은 길병주의 생각, 그리고 김장표의 생각 둘 중 어느 것이 더 옳은 것 같습니까? 여러분들의 생각을 기탄없이 내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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