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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인생-510화 (51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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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착륙장에 한 대의 헬기가 내린다. 그리고 헬기의 뒷문이 열리면서 그 틈 안으로 여러 명의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 중 젊은 한 사람인 병윤은 하늘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꽤나 푸르군.”

하늘은 푸르다 못해 깨끗했다. 또 착륙장 주위에 있는 민둥산들의 풍경이 병윤의 눈에 박힌다. 현재도 정부 차원에서 식목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녹림 사업에 힘쓰고 있지만 아직까지 묘목을 심고, 푸른 숲이 되기에는 시간이 더더욱 필요했다. 수십 년을 내다보는 장기 계획인 만큼 병윤은 당연한 눈빛으로 민둥산을 바라본다. 아마 자신이 아버지의 나이 대가 되면 이 민둥산도 푸르른 산으로 변해있을 것이다.

그 때, 병윤의 귓가에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디로 가실 생각입니까?”

바로 병윤의 비서실장인 진서연이었다. 병윤은 잠시 생각하다 이내 자신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저 사람들부터 만나는 것이 좋겠군요.”

그 말을 한 병윤은 다시 고개를 돌려 자신들을 기다려준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한다. 그 얼굴들 속에서는 상당히 익숙한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얼마 걷지 않아 병윤은 그 사람들 중 수장 격인 사람에게 인사한다.

“비록 몇 개월만의 일이지만 간만에 뵙습니다. 각하.”

‘각하’라는 단어에 둥그런 안경을 쓴 그 노인은 미소를 띠우며 말한다.

“그래. 중국에 있었던 일은 잘 해결되었나 보군?”

그 말에 병윤은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한다.

“아직까지 중공의 세력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겨우 생명만 이어 붙이는 꼴입니다.”

그 말에 노인은 심각하다는 얼굴을 하고는 묻는다.

“그 정도인가?”

“다만 지난번의 경우처럼 맥없이 무너질 만한 세력 또한 아닙니다.”

“휴우. 그 것 참 다행이군. 그런데 그렇게 말을 하는데도 이 곳에 돌아온 것에는 꽤 강력한 이유가 있겠군.”

병윤은 그 말에 바로 맞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예. 사실 그 것에 대해 각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호오? 얼굴을 보아하니 조금 심각한 이야기인 것 같군. 알겠네. 내 잘 아는 요정집이 있으니 거기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겠군.”

“예.”

병윤은 짧게 대답하고는 자신의 사람들을 불러 노인의 일행과 함께 차에 탑승한 채로 어디론가 떠난다.

서울 요정 명월관, 정부 혹은 유력자들이 자주 찾는 이 곳은 어느새 그들만을 위한 장소가 되고 있었다. 간단하게는 식사를 즐기는 것부터 여성을 찾아 그들의 노래를 듣거나 하는 유흥명소이기도 하지만 깊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중요한 정보들을 입에 담는 그런 장소이기도 했다.

명월관의 마담이 안경을 쓴 노인의 얼굴을 보고 급히 인사한다.

“이런 시각에 어찌 찾으셨습니까?”

그 말에 노인은 한 마디 말한다.

“일단 급히 쓸 수 있는 방이 있는가? 단순히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할 장소가 필요하다네.”

그 말에 명월관의 마담은 눈빛이 바뀌면서 노인에게 대답한다.

“즉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그나저나 어라. 이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도 있군요.”

마담이 병윤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하자 병윤은 쓴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간단히 이야기만 하고 돌아갈 것이니 너무 싫어하지 말아주십시오.”

마담은 그 말에 호호 웃으며 병윤에게 말한다.

“의당 사내에게는 그에 걸맞은 여인네들이 있는데, 그 사내가 거부를 하니 이 어찌 하늘이 황당해할 일이오.”

그 말에 안경을 쓴 노인이 마담에게 한 마디 말한다.

“저 녀석 체질이 한 여자를 바라보는 성격이니 굳이 여자를 필요하지 않겠지. 마담도 그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예.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너무 많은 말을 하는군요. 즉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마담은 직접 일행들을 방으로 안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명월관 중 어느 비밀스러운 공간 앞으로 안내하고는 마담은 일행들에게 인사하며 말한다.

“혹시 필요한 일이 있으면 이 마담을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겠네.”

그 후 노인이 먼저 들어가고, 그 뒤를 병윤이 따라 들어간다. 방 안에 편안히 자리를 잡고, 노인이 병윤을 바라보며 말한다.

“뭐 긴말 할 필요는 없겠지. 본론부터 꺼내보게나.”

병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각하도 이미 눈치를 채고 있지만 이 한반도에 전쟁이 터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흐음.”

노인의 얼굴은 꽤나 불편해진다. 병윤의 말처럼 이미 낌새를 채고 있었지만 막상 그 일이 닥친다고 생각하자 표정이 저절로 나타난다. 노인은 하아 한숨을 쉬며 병윤에게 말한다.

“그 이유도 들어볼 수 있는가?‘

“현재 중국 내 내전의 상황에서 비롯되어 있습니다. 중공군의 공세가 점차 약해지고, 공세보다는 수비에 중점적으로 두고 있습니다.”

“단순히 점령한 영역을 안정화시키는 명목이 아닐까? 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모택동이 후환을 남겨두는 성격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말을 들어보니 지금 모택동이 후환을 남겨두지 않는가?”

“예. 급히 처리해야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막상 이렇게 들으니 불쾌하기 짝이 없군. 중공의 입장에서는 이 한반도가 후환이 되다니 말이야.”

“......”

“그래. 중공 측의 움직임이 그렇다치더라도 왜 이 사실을 확신했나?”

병윤은 하아 한숨을 내쉬며 대답한다.

“북한 측에서 정보를 캐던 고씨 남매가 알려주더군요.”

“그들이?”

“매수한 인원에서 들리는 정보에 따르면 김일성이 거의 독단적으로 전쟁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으음. 그럴수가...”

“쯧. 그에 대해 약하게 대응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럼 자네가 이 곳에 온 이유에는 그런 측면이 있었군.”

“예. 사실 전 이제부터라도 전시경제로 돌릴 생각으로 왔습니다.”

“전시라... 몇 년 전에 배급제가 금지되었는데 또 배급제를 실시하면 사람들의 불만은 꽤나 커질 것이 분명하다네.”

“작은 불평불만보다는 전쟁에 대한 위협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노인은 휴우 한숨을 지으며 병윤에게 말한다.

“그래. 한 번 우남 형님에게 이야기를 해보겠네. 사이가 소원해졌지만 자네의 말을 무시하기는 힘들 거야.”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중공 측과 북한 측이 협공에 나선다면 이만저만 큰 일이 아니겠군.”

“다만 각하께서도 잘 알다시피 시간을 끌수록 유리한 것은 우리입니다.”

“그렇기는 하지. 자유중국에서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고, 미국도 이 곳을 포기하기는 힘들지.”

“제 작은 친형께서는 아예 최악의 사태를 상정해두고 작전을 세우더군요.”

“최악의 사태?”

“경상도만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이 적들에게 함락당하는 상황 말입니다.”

노인은 그 말에 ‘헉’ 소리를 내며 말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상황이 올 것 같은가? 전방에 있는 군인들이 전부 무능한 사람들은 아니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과부적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난 한강 방어선을 최후로 상정해두고 있는데. 자네 친형이 그렇게 상황을 염두하고 있다면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겠지. 그런데 그렇게 되면 한반도 최대 공업지인 문경이 최전선이 될 것 같은데?”

“몇 년 전부터 대구 쪽으로 시설들을 옮기고 있습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문경의 역할을 계속하되 최악의 사태가 다가올수록 대구 쪽으로 옮길 수 있도록 준비는 해두었습니다.”

“흠. 철저하군.”

“적어도 적을 얕잡아 보고 아무런 조치를 안 하는 것만큼 바보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쯧. 그나저나 만약 전쟁이 터진다면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가?”

“최소 한 달, 그리고 미국 본군이 도착할 시간까지 계산하면 아무래도 두 세 달은 족히 걸릴 것입니다.”

“흠.”

“방어에 성공한다면 중공 측에서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괜한 벌집을 건들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전 그 상황을 더더욱 커지게 만들 것입니다.”

병윤은 그렇게 말하며 분위기를 폭사시킨다. 이런 결정을 한 중공 측을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눈빛에 서려 있었다. 노인은 그런 병윤을 보고선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자네의 의지에 나 역시 동참하지. 이 한반도를 전쟁의 구렁텅이 속으로 몰아가는 인간들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어.”

노인 국무총리 김구는 그렇게 말하며 전쟁을 일으키려는 사람들을 저주한다.

1950년 6월 20일, 자유 중국과 대치 중이던 임표는 아연실색한 얼굴로 등소평을 바라보며 말한다.

“아니 이 곳의 정예병력을 빼겠다고?”

“이 것 역시 다 작전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엉터리 같은 작전 말인가?”

등소평은 그 말에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엉터리인 것은 잘 알지만 주석께서 결정하신 일입니다.”

임표는 하아 한숨을 내쉬며 등소평에게 말한다.

“그 정예 병력을 가지고 있어도 저들을 공략하기 힘든데. 그들을 뺀다면 어떻게 저들을 막을 수 있겠는가? 북한 김일성의 야욕을 위해 이 중국에서의 혼돈을 지속시키겠다는 주석 각하의 뜻이 잘 이해가 안 된다네.”

등소평은 그 말에 동감을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투로 말한다.

“아무래도 주석께서는 작년 이종인의 세력을 넘어뜨린 전략을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일부는 견제해두고, 일부는 전력으로 상대하여 전선을 줄이는 일말인가?”

“양면전쟁을 어느 정도 생각해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를 빠르게 함락시킬 전략과 전력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쯧. 그 때 동안 난 죽도록 여기를 수비해야 하고 말이야.”

“뭔가 어렵습니까?”

등소평이 그렇게 묻자 임표는 씁쓸한 얼굴을 지으며 대답한다.

“먼저 호북에 있는 두율명이 독을 품기 시작했어.”

“그가 독을 품든 말든 상관 없는 일이 아닙니까?”

“적어도 맥없이 무너질 상대는 아니지. 그리고 그럴만한 전력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야.”

“......”

“그 것뿐만이 아니야. 광동성에 있는 백숭희 군단이 기회를 엿보고 있어. 만약 기회가 찾아온다면 바로 강서성과 복건성을 노릴 것이 분명해.”

“으음. 두율명과 백숭희라...”

“두 사람 모두 우리들에게 패퇴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능력을 무시할 수 없겠지. 거기다 저 쪽에는 그들의 능력을 한차례 개화시킬 존재가 있다고.”

등소평은 그 말에 골치가 아프다는 얼굴로 대답한다.

“그 중경공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여기에 보급도 제대로 안 되고 있어. 거기다 지난번처럼 간첩을 이용해 혼란시키는 방법도 더 이상 통하지 않아. 저 쪽에서는 이미 토지개혁을 통해 농민들이 이탈시키지 않도록 했거든.”

등소평은 그 말에 ‘으음’ 소리를 하며 말한다.

“그래서 총리께서 저 쪽을 상당히 경계하셨군요. 그 때문에 총리께서도 한반도 공략을 늦추자고 간언을 드리고 있는데.”

“그래?”

“하지만 주석께서는 한반도가 더더욱 위협적이라고 보십니다. 북경과 한반도 간의 거리가 지척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팽덕회 장군께서도 이 점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한반도 공략에는 그가 나선다고 하던데? 혹시 정예병력을 빼달라는 요청도?”

“예. 그가 주석께 제안했습니다.”

임표는 그 말에 이를 부드득 갈고는 말한다.

“이 곳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양반이 역할을 바꿔보라고 해. 제기랄. 나에게 독을 품은 두 사람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고, 또 댐의 구멍이 나고 있는 상황에서 구멍을 커지게 만들다니.”

그 말에 등소평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하여튼 주석께서는 한반도 공략을 할 때 동안만이라도 그들의 공세를 늦추길 원합니다.”

“만약 저들의 행동이 개시된다면 대략 보름 정도는 그래. 이 정도이겠군.”

임표는 빨간 펜을 들고, 중국 전도에서 강소성과 복건성을 제외시키고, 저장성과 안휘성의 경계를 그린다. 그리고 등소평에게 말한다.

“단단히 전하게. 이 것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전선의 범위야. 만약 이 요청을 위쪽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면 정예 병력을 빼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말이야.”

“끄응.”

등소평이 침음을 흘리자 임표가 강하게 말한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나?”

“방어인데도 이리 상황이 심각합니까?”

“내가 괜한 엄살 피우는 것 같나?”

임표가 등소평에게 으르렁 거리며 말하자 등소평은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그 쪽에 전달하겠습니다.”

등소평은 그렇게 말하고는 임표에게 다른 지시사항들을 전달해 준뒤 급히 나간다. 임표는 등소평의 모습이 사라지자 하아 한숨을 쉬고는 말한다.

“미치겠구만. 정말. 그 놈의 한반도가 뭔지 왜 내 인생을 이리 꼬이게 만드냐고?!”

임표는 역정을 내며 이 사태를 만든 북한의 김일성과 또 이런 결정을 만든 윗사람들을 욕해댄다.

============================ 작품 후기 ============================

다음 편부터 본격적인 6.25 전쟁입니다. 인터넷에서 매번 헬조선 헬조선 하는데, 진짜 헬조선 중의 헬조선은 이 때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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