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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1950년 7월 5일, 육군 본부의 한 사무실에서 채병덕은 한 자료의 내용을 보고선 이 자료를 올린 사람을 흘깃 바라본다. 바로 이번에 보급부대의 병사로 배정받았던 병윤이다.
“흠흠...”
딱히 뭐라 할 정도로 군더더기가 없는 자료이기에 채병덕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료를 가지고 한 마디 대답한다.
“뭐 수고하셨습니다.”
일개 병사로 입대하기는 했지만 군 상층부에 워낙 아는 인맥들이 많은 병윤인 지라 채병덕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실질적으로 무기들을 포함한 각 군에 필요한 물자들을 생산하는 업체가 동협 그룹을 포함한 하청 업체들이었기 때문에 채병덕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고, 또 병사라고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거기다 해방 전에 임시정부 시절 광복군의 물자를 대준 적이 많았기에 현재 중요 지휘관을 형성하고 있는 광복군 장교들에게 꽤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혹여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병윤이 이렇게 말하자 채병덕은 꽤 부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미진한 부분이... 있을 리가 없겠군요.”
채병덕의 말에 병윤은 눈치를 채고, 채병덕에게 인사를 한다.
“필요한 자료는 있다가 다시 올리겠습니다.”
채병덕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럼 부탁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 간의 대화가 끝이 나고, 병윤은 제 자리로 돌아간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한 이름표에 ‘김문식’이라는 장교가 옆에 있는 장교에게 묻는다.
“아니 병사 주제에 왜 이렇게 기세가 등등한 거야?”
“지금 군수 사령관님 말도 붙이지 못하잖아. 영 불만이면 네가 한 번 병사로 대해보던가?”
그 말에 김문식 장교는 식은 땀을 흘리며 대답한다.
“내가 미쳤어? 간신히 아버지 배경으로 여기에 들어왔는데.”
“미친 놈. 아버지 배경으로 온 것이 자랑이다. 이 자식아. 그런데 저 사람은 배경도 확실한데 왜 병사로 오고 이 난리를 치는 거야?”
김문식 장교는 그 말에 한숨을 내쉬며 대답한다.
“그러게 말이다. 우리 군 쪽에 물자들을 대주는 동협 그룹의 회장에 저 뒤에 합참의장 지청천 대장을 포함해서 전 국방부 장관 이범석, 그리고 자기 친형은 중장이라고 하던데.”
“햐... 나도 이런 배경을 가졌다면 이런 개고생을 하지 않을텐데.”
“모르지. 저런 사람들의 속은. 그나저나 이건 어떻게 다뤄야 하는 거야?”
김문식 장교는 자신 앞에 놓인 미니컴퓨터를 보고,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아버지 배경으로 전쟁터와는 거리가 먼 이 곳으로 장교로 배치를 받았다고 하지만 이번에 전선사무화라고 해서 병윤이 병에 입대한 이후로 이런 것들을 배치하게 해두었다.
그 때문에 평상시에 일을 하던 형태가 워낙 뒤바뀌고 있기 때문에 따로 미니컴퓨터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었다. 김문식 장교 옆에 있던 사람이 말해준다.
“네 오른 손에 잡고 있는 거 왼쪽 버튼을 누르고, 또 이렇게 생긴 거 누르면...”
컴퓨터의 화면이 바꿔지면서 뭔가 문서를 작성하는 프로그램이 작동되었다. 그리고는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자 문서 작성해라.”
김문식 장교는 한숨을 쉬며 이내 타자기에 손을 놓고, 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표를 그리는 것 역시 옆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해낸다. 한편 자기 자리로 돌아온 병윤은 익숙하게 컴퓨터를 움직여 아까 자기가 말한 대로 자료들을 작성하기 시작하는데. 이번에 동시에 책상에 놓인 휴대폰이 울린다. 한 손에는 타자기로 문서를 작성하는 와중에 한 손으로 휴대폰 뚜껑을 열어 전화를 받는다.
“예. 여기는 육군본부 병기창입니다.”
-거기 생활은 잘 맞습니까?-
“진 비서실장입니까?”
-예. 회장님이 갑작스럽게 군 입대를 하는 와중에 제가 대리로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저랑 같은 나이 대의 사람들이 전선에 나가서 목숨을 걸고 있는데. 제가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여기에 나가서 보탬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제가 회장님의 자리를 맡기에는 버겁습니다.-
“뭐가 문제입니까?”
-지난번에 요청하신 수량에 대해서 안 맞는 부분이 있어서...-
“말해주십시오.”
-예. 그러니까...-
진서인 비서실장이 어느 정도 설명을 해주자 병윤은 명쾌하게 대답한다.
“군복 수량은 120 상자로 바꾸고, 그걸 다시 수원으로 보내주십시오. 그럼 군수과에서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예. 예.-
“그리고 이번에 그 전기 보급차에 대한 것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전기 보급차는 현재 양산 중에 있습니다.-
“재고는요?”
-현재 100대 가량 생산했습니다.-
“그 것도 군수과로 보내주십시오. 그럼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휴대폰이 끊어지고, 병윤은 다시 한 번 자료 작성에 집중한다. 병윤 옆에 앉아있던 병사 역시 침음을 흘리며 그의 일솜씨에 감탄한다. 하지만 병윤과 같이 일을 하고 있던 병사와 장교들은 다 이렇게 생각한다.
‘아니 꼭 여기서 이래야 되는 거야?’
왠지 높으신 사람과 같이 일하는 기분이라서 그런지 다들 피로감이 생긴다. 그 것은 군수과 사령관인 채병덕 중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병윤은 자료들을 채병덕 앞에 내걸며 말한다.
“점심시간이 끝난 뒤에 검토를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채병덕은 뜨악한 표정으로 자료들을 건네받으며 한창 살펴보다가 말한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외출복을 입고, 어디에 가십니까?”
그 말에 병윤은 채병덕 중장에게 한 마디 대답한다.
“아무래도 수원에 있는 군수 창고로 가서 일을 좀 처리해야겠습니다.”
이렇게 바쁘게 행동하는 병윤의 태도에 채병덕 중장은 ‘끄응’ 침음을 흘리며 한 마디 말한다.
“아직 젊다고 하지만 이렇게 힘들게 움직였다가는 피로감만 쌓일 것 같은데. 천천히 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제 할 일이라도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채병덕 중장은 한숨을 내쉬며 이내 통행증과 권한증을 주며 말한다.
“이건 제가 대리로 나선다는 증명표입니다. 이걸 가지고, 일 처리한다면 수월해질 것입니다.”
병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병윤은 채병덕 중장에게 인사하고는 표들을 챙기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으며 밖으로 나간다. 채병덕 중장은 병윤의 모습이 방 안에서 사라지자 한 마디 말한다.
“꼭 병사 입장으로 나돌아 다녀야 하는 거야? 쯧. 그냥 장교 신분으로 입대하는 것이 좋을텐데.”
그 말에 부관은 심히 동의하는 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군수과의 별난 병사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같은 시각, 함흥 관저 위원장실에서는 실망한 얼굴의 사람이 쇼파에 앉아 있었다. 바로 김일성이었다. 김일성은 이 소식을 가져온 부수상 박헌영에 대해서 영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바라보며 묻는다.
“진정 22일까지만 버티라고 그렇게 말했소?”
박헌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22일에 출정한다고 합니다. 사실 중공 쪽에 꽤 사정들이 있어서 이번에 약속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합니다.”
“이런...”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현재 남한 측에서 대대적인 반격을 가하고 있소.”
박헌영은 그 말에 얼굴을 대차게 구기며 한 마디 대답한다.
“벌써 반격에 나선다고 합니까?”
“일단 공격에 나섰던 10개 사단은 다시 방어 요충지를 중심으로 모이게 하여 이번 반격 작전을 막도록 지시했소.”
“......”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에 함흥을 포기하고, 새로운 곳에 수도를 옮길 예정이오.”
“예에!?”
박헌영이 놀라서 소리쳤지만 김일성은 태연하게 대답한다.
“임시 수도로 라진으로 선정했소. 현재 행정 기관을 포함한 각종 기관들을 그 쪽으로 옮기기로 했으니 협조 부탁하오.”
“으으음...”
김일성의 말에 박헌영은 어느 정도 공감을 했다. 다만 이렇게 쉽게 함흥을 버린다는 것에 조금 마음이 찔리는 감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위원장님이 결정하셨다면 따라야겠지요.”
김일성은 그 말에 활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하하. 22일까지 성공적으로 수비하여 만약 중공군이 출정한다면 저 남한군의 기세도 수세에 몰릴 것이니 아직 희망은 존재하는 편이오.”
박헌영은 그 말에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이번에 중공군이 출정에 동원되는 사단 수는 100여개 이상은 된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오?”
“예. 이번에 모택동 주석이 최소라고 말을 했으니 아마 100여개 사단 이상은 이 한반도 쪽으로 동원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으으음... 과연...”
“뭔가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 말에 김일성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아니오. 다만 압록강에 주둔한 남한군들이 이 쪽에 투입하지 않는 정보가 있기에 그들 역시 중공군이 들어오는 것을 눈치 채지 않을까 싶소.”
“으으음... 하지만 그건 중공군이 감당해야할 문제이지. 우리가 감당하는 문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박헌영이 그렇게 말하자 김일성 역시 어느 정도 동의한 얼굴이었다.
“과연... 그 것보다도...”
그 때, 방 안에 누군가 급하게 들어오더니 이내 김일성에게 보고한다.
“현재 남한군에서 총 공세를 가하고 있습니다.”
김일성은 이미 예상했다는 얼굴을 지으며 말한다.
“규모는?”
“현재 낭림산맥에서 5개 사단, 그리고 법동군과 안변군에 주둔한 2개의 기계화사단이 공세에 나섰습니다.”
“으으음...”
“현재 강건 총참모장께서는 원산 시에 두 개의 보병사단을 주둔시켜 원산 시의 방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시가전을 벌이겠다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김일성은 그 말에 눈빛을 반짝이더니 이내 한 마디 말한다.
“시가전이라면 기계화사단의 위력도 많이 죽겠군. 그럼 우리 쪽에서 역포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그 말에 박헌영이 김일성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런데 역 포위를 할 사단들이 있기는 합니까?”
김일성은 그 말에 생각을 하다 ‘끄응’ 침음을 흘리며 대답한다.
“그럴 병력이 없지. 지금. 제길. 일단 강건 총참모장에게 전해. 시가전을 벌이되 최소 함흥으로 후퇴할 수 있는 숨구멍을 만들어놓으라고 말이야.”
그 말에 보고를 한 장교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위원장님!”
그렇게 장교가 방 밖으로 나가자 김일성은 한숨을 쉬며 박헌영에게 말한다.
“이제 슬슬 우리 역시 라진으로 가봅시다.”
박헌영은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알겠습니다.”
한편, 원산시를 서쪽과 남쪽으로 반포위한 두 개의 기계화사단은 이번에 사단장들끼리 만나게 되었다. 안변군에서 북한군 2사단의 공세를 격퇴시켰던 김종오 준장과 법동군에서 방어를 하던 김석원 소장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김석원 소장은 자신의 카이저 콧수염을 만지며 골치가 아프다는 말투로 말을 한다.
“이거 참...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군.”
“뭐가 문제라도 있는 것입니까? 선배님.”
해방 전에는 김석원 소장이 대좌로 활동했고, 김종오 준장은 한낱 학도병에 불과했다. 그 때문인지 김석원 소장은 김종오 준장에게 말을 놓고있었다.
“그런데 꼭 원산 시를 함락시켜야 하는 거야?”
김종오 준장은 잠시 이해를 못 하다가 이번에 대답한다.
“우회를 할 수 있지만 그러다가는 원산에 주둔한 사단 병력들에게 측면이나 후방을 공격당할 수 있지 않습니까?”
“쯧. 기계화사단은 달리라고 주는 사단인데 말이야. 시내에서는 장갑차, 전차들이 별 효용가치가 없잖아.”
“그래서 기동력 보다는 그 것들을 그냥 지원 화력으로 쓰면 되지 않습니까?”
그 말에 김석원 준장은 생각을 하다 이내 김종오 준장에게 묻는다.
“그런데 해군 쪽에서 뭐라고 하던가?”
“원산시 함락 작전에 대해서 말입니까?”
“그래. 이번에 순양함들을 건조했다고 자랑을 하던데 말이야. 차라리 거기에 달린 포들로 시내에 펑펑 쏘면 좋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원산 시내에 남아있는 시민들이...”
“끄응. 그렇군. 그걸 생각 못했네.”
김석원 소장은 영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고민에 빠진다. 김종오 준장은 이런 분위기에 결국 한 마디 말한다.
“적어도 시가전에 대해 전문적이라고 할 수 있는 길병주 중장님이 지휘했다면 이런 문제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그 말에 김석원 소장 역시 공감을 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 작품 후기 ============================
김석원 장군은 워낙 논란이 있는 분이기는 합니다. 예전 일본군 대좌이니 말입니다.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분이기도 합니다. 다만 한국 전쟁에 활약하고, 민간인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것을 생각하면 그리 비난을 받을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기다 독립군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김경천, 지청천의 가족들을 돌봐주었다는 일화까지 있는 사람이니. 뭐 복잡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