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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인생-519화 (519/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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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김석원 소장은 길병주를 생각하자 조금은 입이 텁텁한 기색이었다. 사실 김석원 소장은 길병주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원래 길병주를 일본군에 입대하라고 권유한 사람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유망한 학생들을 자주 학도병 모집으로 권유하기도 했는데, 그 때 만난 사람이 길병주였다.

그런데 문제는 길병주가 1달 만에 탈영하여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탈영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자신은 항변했지만 해방 직전까지 그 일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실이 있었다. 그 후 그 길병주가 광복군 대령이 되면서 조국으로 귀환한 모습을 보니 상당히 마음이 텁텁했다.

“뭐 그리 생각하십니까? 선배님.”

김석원 소장은 그 말에 회상에서 깨어나 대답한다.

“아무 것도 아니야. 그 것보다 가장 큰 우선은 원산에 있는 시민들을 구출하면서 동시에 우리들 피해를 적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거 참 큰일이군.”

“아무래도 구역 식이 낫겠습니다.”

“구역식?”

“예. 저번에 사관학교에서 시가전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습니다. 당시 남경 시가전을 직접 참여한 사람인만큼 시가전에 대한 상식은 알고 있습니다.”

“구역이라. 시내 구역을 일정부분 점령하며 그 곳을 중점적으로 구역을 넓혀 나가는 것인가?”

“그러니까 칼싸움 하는 시기에 성을 거점으로 주변 도적들을 토벌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 것도 단점이 있지 않은가?”

김종오 준장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 방법 역시 큰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보병이 주가 될 테니 보병전력이 상당히 중요해집니다. 그리고 화력 지원도 제한되기 때문에 적 화력에 그대로 노출되는 편이 많습니다.”

“으음...”

“거기다 시내에 설치한 적 부비트랩들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낚시 줄을 이용해 부비트랩들을 만들면 꽤 많은 피해를 볼 것입니다.”

“쯧. 상당히 복잡하군. 그런 단점들이 있는데.”

“아 물론 그런 단점들을 상쇄할만한 장점도 있습니다. 바로 확실히 시내를 점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민간인들을 구출할 수 있습니다.”

“흠...”

“시가전을 피하기 위해선 우회하는 방식도 있고, 아니면 시내를 중심으로 포위하여 저 쪽이 알아서 제풀에 쓰러지도록 하는 방법, 그리고 외곽에서 포들을 이용하여 화력으로 뭉개버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우회하는 방식은?”

“아무래도 시내에 남아 있는 적들이 있는지라 그들이 역습에 들어가면 곤란합니다. 아무래도 그들의 역습을 견제할 수 있는 병력들도 생각해야 합니다.”

“흠...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군.”

“무슨 말 이십니까?”

“적들을 낚아보는 것은 어떤가?”

“낚는다니? 그 말씀은?”

“어차피 원산에 주둔한 적들을 정리를 해야 하지만 동시에 바로 시가전에 들어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야.”

“예. 그렇습니다.”

“적들 역시 바보는 아닌 이상 우리가 우회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일정 병력들을 정찰 내지 역습용 병력으로 보낼 가능성이 높아.”

“설마?”

김석원 소장은 김종오 준장이 눈치를 채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래. 그 병력들을 노려 원산에 주둔한 적 병력들을 깎아내는 것이지. 물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더 보내면 좋고 말이지.”

“으음...”

“어떤가? 적어도 우리들이 손해를 볼 것 같지는 않을 텐데?”

“하지만 적들도 바보는 아닌 이상 이 정도 계획은 예상하지 않겠습니까?”

김석원 소장은 큭큭 웃으며 말한다.

“낚이지 않으면 선택지는 없어. 그냥 우리는 그대로 우회하면 끝이니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적들이 우리 보급로를 끊을 수 있지 않습니까?”

“이 친구야. 지도를 좀 보게나.”

지도라는 말에 김종오 준장은 다시 한 번 지도를 바라보았고, 그는 지도를 본 순간 ‘아!’ 소리를 내며 무슨 사실을 알아차린다.

“보급은 걱정 없군요. 우리 쪽은 해안 지역을 따라서 작전을 하니 말입니다.”

“그래. 바다가 적의 수중이라면 상당히 위험하겠지만 바다가 우리 아군의 영역이라면 가장 안전한 장소가 되는 셈이지.”

“흠... 과연 선배님의 계획은 아무래도.”

“그래. 이 것들도 다 해방 전에 쌓아둔 경험들이지. 이 것들 전부 다 헛짓거리였지만 말이야.”

김석원 소장은 얼굴에 어두운 기색이 서려 있었다. 과거의 경력이 자신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올지 예상을 했을까? 그렇게 치면 자신이 직접 권유하여 일본군에 보냈던 길병주는 선택을 잘 한 셈이었다. 물론 ‘그 때 당시에는 어쩔 수 없다’라는 변명이 떠오르겠지만 자신이 그런 말을 하기에는 자신의 자존심이 상했다.

“일단 정보를 저 쪽에 흘려야 하는 것이 좋겠지.”

“의도적으로 도청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저들이 잘 낚여주면 좋겠지만 말이야.”

1950년 7월 6일 아침 7시, 국군 기계화사단 둘이 원산 시에 진입하지 않고, 우회하기로 결정했고, 그 정보는 바로 원산을 수비하고 있던 북한 제 2 보병사단의 사단장 이청송 소장의 귀에 들어갔다.

“으음...”

참모장이 한 마디 말한다.

“아무래도 저 쪽에서 시가전을 부담스러워 한 모양인지라 우회하는 것 같습니다.”

이청송 소장은 그 말에 ‘으음’ 침음을 흘리며 한 마디 말한다.

“저 쪽에서 우회하겠다는 결정은 어떤 부분에서 기인된 것일까? 저 쪽에서도 우리가 뒤로 역습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텐데?”

그 말에 참모들은 이청송 소장의 의문에 공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이청송 소장과 참모들은 잠시 생각하다 한숨을 내쉰다. 이청송 소장은 참모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저들의 생각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는 것 같군. 아무래도 시가전은 저들의 전력을 상당히 경감시키는 전장이니 말이야.”

“예. 우리들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들이 외곽에서 포위 한 채로 이 원산을 화력으로 뭉개버리면 어떻게 될까? 예상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들이 원산 시민들을 놓아주지 않는 이상 그들 역시 그런 선택을 할 수 없겠지. 또 그런 선택을 한다면 우리에게도 호재가 되겠지만 말이야.”

이청송 소장이 이렇게 냉혹하게 이야기를 하자 참모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현재 원산 시민들은 북한군의 통제에 따라 집에 있었다. 몇 몇 인원들이 피난짐을 꾸려 어딘가로 떠나기는 하지만 사실 이청송 소장의 입장으로썬 괜히 시민들을 총알받이로 내세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상부에서 시민들을 괜히 총알받이로 써서 적들을 막으라고 하니 꽤나 고심했다.

참모장이 이내 이청송 소장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어떻게 말인가?”

“저들을 역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는 것이 저들을 바라는 일이 아닐까?”

“으음... 그럴 수 있겠습니다.”

“아무래도 저들 역시 시가전을 달가워하지 않는 모양이야. 그렇다면 우리 역시 선택을 해야 하는데 말이야. 이런 방법은 어떤가?”

참모장은 그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어떤 방법을 말입니까?”

“저들은 지금 법동군과 안변군을 비우지 않았는가?”

“설마...”

“그 쪽을 공격하는 거지. 그러면 적들의 의도에 흘리지 않고,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겠나?”

“물론 그 방법도 좋겠지만 저들이 그런 것을 대비하지 않을 리 없지 않습니까? 그 곳에 미리 병력을 배치해두고, 우회하는 결정을 내렸을 것입니다. 아니면 그렇게 쉽게 우회 결정을 내릴 리가 없습니다.”

“쯧. 하지만 그대로 적 의도에 순순히 넘어가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 아닌가?”

“그야 그렇습니다만...”

“적어도 내가 말한 방법이 가장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다만...”

그 때, 군수참모가 사단장 이청송 소장에게 말한다.

“만약 우리가 법동군, 안변군에 진출한 것을 안다면 저 쪽에서 보급로를 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쪽으로 공격하는 틈을 타 원산 시를 점령할 수도 있습니다.”

이청송 소장은 군수참모의 말을 듣고, 상당히 곤란하다는 얼굴을 한다.

“미치겠구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니 말이야.”

“적들보다 우리 병력이 많다면 이런 선택지도 여러 가지일텐데 말입니다.”

“휴우 이 쪽에 3개 사단이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한 개 사단은 빈 두 개 군을 공격하러 가고, 한 개 사단은 여기에 수비하러 나서고, 나머지 한 개 사단은 우회중인 적을 견제하면 딱 일 텐데 말이야. 어?”

이청송 소장은 자신이 말하다가 이내 뭔가 깨달은 표정을 짓는다. 참모장이 그런 이청송 소장을 바라보며 묻는다.

“뭔가 좋은 생각이라도 나신 것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굳이 병력 규모에 연연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그 말씀은?”

“장기적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시간을 짧게 잡으면 우리 사단 내에 있는 병력들을 쪼개어 해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네.”

그 말에 순간 참모들은 ‘바로 이거다!’ 라고 생각했다. 참모장은 한창동안 생각하다 이청송 소장을 바라보며 말한다.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시간을 짧게 잡으면 병력들을 쪼개어 사단장님의 작전에 동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문제점이라면 저 쪽에서는 한 개 사단을 우회하고, 한 개 사단을 안변군, 법동군에 세워둘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일단 그런 경우에 한하여 한 개 연대를 정찰하는 방식으로 두 개군의 동태를 살피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으음. 그런 식으로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우리 모두 죽을 거야. 그래도 좋은가?”

참모장은 그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한다.

“아무래도 이제까지 나온 방법 중에 사단장님의 생각이 가장 적합하다고 봅니다. 얼른 세밀한 작전을 준비하여 올리겠습니다.”

이청송 소장은 그 말에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그렇게 하게나.”

그렇게 원산 시내를 수비하는 북한군 제 2사단 역시 작전을 결정한다.

한편, 우회하면서 적을 낚기로 한 김석원 소장을 바라보며 김종오 준장이 걱정스럽다는 얼굴을 지으며 말한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자네도 이번에 같이 우회하는 것이 어때?”

“그러기에는 원산 쪽에 웅거한 적들이 걸립니다. 저 역시 같이 우회하면 법동군과 안변군이 적의 공세에 노출되지 않습니까?”

“쯧. 그런 경우도 생각해야지. 그 것보다 후방 부대들은 언제 전방으로 보낸다고 하는 거야?”

김종오 준장은 그 말에 한심스럽다는 얼굴로 대답한다.

“사실 그 건에 대해서 문경에 주둔 중인 길병주 군단장이 위로 보고를 올리는데, 국방부 장관이 한사코 막아내고 있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자식이 있나? 쯧. 대통령 눈에 띄어서 벼락 출세한 인간은 이래서 안 된다는 거야.”

김석원 소장의 말에 김종오 준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국방부 내부에서도 어느 정도 파벌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전시 상황에 가서 정치싸움을 벌일지는 상상도 못했다. 거기다 길병주에 한해서 어거지를 놓는 국방부 장관에 대해서 이해가 안 된다는 눈치였다.

물론 국방부 장관은 후방에 존재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봉기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그들을 막는 일에 길병주를 내정했다는 말을 했기에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압록강에 주둔한 사단들은 아직도 그 자리에 대기시키는 거야?”

김석원 소장이 묻자 김종오 준장은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한다.

“저 역시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그들 역시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공세에 나서는 우리 병력들이 우세한 지라 합참에서도 굳이 압록강에 있는 사단들을 동원할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쯧. 지난번에 중공과 북한이 합세한다면 전선의 길이가 거의 두 배가량 늘어난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말이야.”

“예. 떠도는 이야기로는 그렇게 되겠지요. 저번 전쟁에 터질 때, 길병주 중장님이 그렇게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다행히 북한 쪽에서 선공을 하고, 중공 쪽이 움직이지 않아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요새는 최악의 사태를 대비한다고 뭔가 계획을 짜두고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도 최악의 사태를 상정하다니 참으로 기묘한 사람입니다.”

김석원 소장은 쯧쯧거리며 한 마디 말한다.

“최악의 사태를 상정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 사태가 막상 닥치지 않으면 헛짓이 되는 일이 아닌가?”

“......”

길병주의 일을 헛짓이라고 평가하자 김종오 준장은 은근슬쩍 김석원 소장을 바라본다. 김석원 소장은 조금 자신이 한 말이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흠흠 거리며 이내 한 마디 말한다.

“뭐 그 사람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니 그런 행동을 하는 거지 말이야.”

“하기야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이제 일을 할 시간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 김석원 소장은 이내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고 한 마디 말한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그리고 혹여 무슨 문제라도 있으면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김석원 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알겠네. 그나저나 세상 참 편리해졌어. 이제는 이런 물건까지 등장하고 말이야. 해방 전에는 이런 간편한 물건이 아니라 매번 손잡이를 돌리는 것이었는데 말이야.”

김석원 소장이 핸드폰을 내보이며 말하자 김종오 준장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하기야 전쟁이 터지기 전에 이런 물건이 나올지 상상도 못했다. 동시에 씁쓸한 감정도 들었다.

‘이런 물건이 전쟁 통에 활약하는군.’

전쟁은 기술발전을 촉진시킨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 김종오 준장은 앞으로의 전쟁이 얼마만큼 기술의 발전을 가속화시킬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결국 김석원 소장은 자신의 기계화사단과 기갑여단을 이끌고, 원산을 우회하며 작전에 나섰고, 김종오 준장은 한 개의 연대를 기동연대로 편성하고, 각 연대들을 안변군과 법동군에 배치시켜서 적들의 공격에 대비하고자 했다.

============================ 작품 후기 ============================

이 것이 실제 전장이었다면 제가 이야기한 작전 따위는 아이들이나 구상할법한 간단한 작전일 것입니다. 아마 저의 생각에 벗어난 기상천외한 작전들을 생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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