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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직접적으로 아까 만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 김충호의 말에 병재는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한다.
“꼭 밝힐 의무가 있습니까?”
김충호는 그 말에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물론 그런 의무는 없어. 조금 직업의식 때문에 물어보는 거야.”
“아. 충호 형님이 하시는 일이 육군특무대이니까...”
“뭐 그런 셈이야. 요즘은 전쟁 통이다 보니 간첩들이 활동하는 경우가 더더욱 늘어나고 있어.”
“방첩 일입니까?”
“그래. 단순한 정보 수집이라면 상관이 없는데. 문제는 산업시설에 사보타주하는 인간들과 또 중요 인물들에 대한 포섭 내지는 전향, 더더욱 나아가서 암살을 저지르는 인간들이 태반이지.”
“흐음...”
“요즘 이 일을 할 사람들과 믿을 사람들이 없어서 일은 계속해서 쌓이고 쌓이다보니 태산처럼 되어 있지. 에휴...”
김충호는 진정으로 힘든지 한숨을 내쉰다.
“뭐 힘들겠군요. 저 역시 할 일은 많습니다만...”
“나 역시 잘 알고 있어. 네 역할이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다행입니다.”
“쳇.”
김충호는 이내 식탁 위에 있는 물 잔을 들고, 한 잔 꿀꺽꿀꺽 마신다. 병재는 그 모습을 보고, 그 물 잔 누가 사용했다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만둔다. 김충호는 병재를 응시하며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요즘 혈액 채취 때문에 난리라고 하던데?”
김충호의 말에 병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전쟁 통이니 혈액들의 수요가 급속도로 높이고 있습니다.”
“혈액들? 아...”
“예. 혈액들 수집을 위해서 피난민들과 시민들에게 혈액수급을 부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래는 병원 측의 부탁을 받아 혈액 수급을 하려고 했는데...”
“뭐 개판 5분 전이겠지.”
“그런 셈입니다. 혈액 관리가 부실한 경우가 많아서 수급하더라도 영 못 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예 예방접종이라는 명목으로 혈액들을 수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얼굴을 보아하니 영 마땅치 않은 모양이야.”
김충호의 말이 맞았는지 병재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고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피 뽑는 것이 죽을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그렇지만 시골에 가면 갈수록 더더욱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에휴. 고생하는군. 나라도 도와줄까?”
“형님 일이 많지 않습니까?”
“그냥 이 쪽 인원들을 붙여서 이렇게 말하면 되지 않을까? 헌혈하지 않는 것이 빨갱이들을 돕는 일이라고 말이야.”
“강압적인 것도 기회를 잘 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강온양면책을 구사하면 못 버틸 사람이 없어. 더불어 사람들에게 이념교육도 시키는 것도 꽤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그 말에 병재는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맞는 말이군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병재가 먼저 고개를 숙이자 김충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알겠네. 동생. 나만 맡기라고.”
그 후로도 두 사람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같은 시각, 병기창의 한 연구실 안에는 지긋지긋하다는 얼굴로 소위 계급장을 단 장교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씨발. 너 나랑 원수진 것 있냐?”
그 말에 소위 계급장을 단 사람이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한다.
“이미 원수지지 않았냐? 평상시대로인데 뭐 문제라도?”
“미친 놈. 그만 좀 쪼아라. 신무기라는 것이 그렇게 팍팍 개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냐?”
“아 잘 알고 있지. 그런데 늦으면 늦을수록 어머니를 부르는 병사들이 많아질 거야.”
“이 씨발놈.”
“K-46 소총에 끼울 수 있는 유탄발사기 부품 개발 현황은 어떻게 되었어?”
소위 계급장을 단 병윤이 다시 병기창에 끌려와 개고생을 하는 감연에게 묻자 감연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한다.
“일단 시제품은 만들어 놨다. 자.”
감연은 탁자 위에 있던 한 물건을 병윤에게 건넨자 병윤은 그 물체의 모습을 살펴본다. 뭔가 작은 발사구 처럼 되어 있는 물건을 보자 병윤은 흡족한 얼굴을 짓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잘 됐네. 그런데 양산은 어떻게 할 거냐?”
“양산문제는 병기창 소관이 아냐. 네 녀석이 할 사항이지.”
“원래 병기창에서 소량 생산하는 업무를 담당하지 않냐?”
“미친놈아. 나 일 쌓인 것 안 보이냐? 유탄발사기, 거기에 다연장로켓까지 개발하라고 난리를 피우고 있는데. 요즘 가족 얼굴도 못 봐. 잠도 잘 자지 못해. 이 것들 다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남 탓은 그만하고, 성능은?”
“빌어먹을 놈. 자.”
감연은 탁자 위에 있는 서류들을 병윤에게 넘겨줬고, 병윤은 그 서류를 받아서 일일이 한 장 한 장 내용을 살펴본다. 감연이 만든 유탄발사기의 성능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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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K-193 유탄발사기
구경 : 40 mm
사용탄 : 40 × 46 mm 유탄
장탄수 : 1
작동 방식 : 단발 수동식
총열 길이 : 338 mm
중량 : 0.87 kg (비 장전시)
발사속도 : 분당 8~10발
총구속도 : 105 m/s
유효사거리 : 380 m
최대사거리 : 600 m
40 × 46 mm 유탄은 인마살상용 고폭탄이니 취급에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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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내용들이 이어지는 것을 일일이 확인한 병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감연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한다.
“역시 넌 천부적인 과학자야.”
“됐어. 젠장. 어릴 시적에 네 녀석 따라가는 것이 아니었는데.”
“야. 그렇게 말하니 너무 서운하다.”
“닥쳐. 난 농사 체질이야. 농사 체질이라고...”
감연은 계속해서 자신을 세뇌하자 병윤은 키득키득 웃으며 말한다.
“농사 체질은 무슨. 농사는 애초에 지어보지 못한 놈이. 일단 양산과정은 내달에 시작할 예정이야.”
감연은 그 말에 엉뚱하다는 얼굴로 병윤을 바라보며 말한다.
“시험도 안 거치고? 그러다 문제 생기면?”
“야. 전쟁통이잖아.”
“미친 잘못 사용하면 좆 되는 것 알아?”
감연의 말에도 불구하고 병윤은 별 걱정 없다는 얼굴을 지으며 말한다.
“네 실력이 있잖아. 뭘 걱정하고 그래.”
“미친놈.”
“욕을 하든 말든 됐고, 일단 이걸 가지고 다음 달에 본격적으로 양산할 테니까 알았지?”
“아오. 마음대로 해라. 만약 잘못되면 책임은 너에게 돌아가니까 알아서 해라.”
“그래. 그래.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걱정 말고. 다연장로켓은?”
그 말에 감연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외친다.
“아 쫌! 이제 이 시제품 하나 만들었는데! 지금 개발 중이니 나중에 찾아오지?”
“아니 빨리 만들라는 것은 아니고, 일단 현황부터 말하라고.”
“시제품 만들기까지는 다음 달 하순까지 걸리니까 그만 물어봐라.”
“더 빨리 할 수 없어?”
“좆까. 대통령이 오든 국방부 장관이 오든. 좆까라고 그래.”
감연이 발광할 기세를 보이자 병윤은 할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소총에 끼울 수 있는 유탄발사기 시제품을 획득하였으니 이제 이 것을 가지고, 양산을 해야 했다.
사실 병윤이 직접 병기창에 찾아와 감연을 재촉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특히 작은 형 병주가 대규모로 침공할 중공군들의 규모를 상정해서 보병 화력이라도 보강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또 유탄기관총도 개발하라고 했던지라 병윤은 할 수 없이 감연을 쳐다보며 용건을 또 말한다.
“아 사실 이번에 찾아온 것은 유탄 발사기의 양산도 있지만.”
“있지만 또 뭔데?!”
감연은 왠지 불길하다는 느낌을 얻었다. 뭔가 일이 쌓일 것 같은 그런 개 같은 느낌이 머릿속을 지나친다. 그리고 그 느낌은 들어맞았다.
“유탄기관총의 개발은 어떻게 안 되겠냐?”
순간 감연은 탁자 위에 있던 물건을 들고, 병윤에게 던지려고 했지만 초인적인 인내력을 가지고 참아낸 후 한 마디 묻는다.
“그 부탁 누가 했냐?”
“내가 한 거 아니다. 우리 작은 형이 부탁했어. 작전에 필요하다고.”
그 말에 감연은 암담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치 세상 끝난 것처럼 한숨을 내쉰다.
“유탄발사기에 이어 유탄기관총을 개발하라니! 어떻게 너희 형제들은 나를 이렇게 쌍으로 괴롭히냐?!”
“야. 나는 편하게 일하냐?”
병윤이 그렇게 말하자 감연은 할 말이 없어졌다. 하기야 병윤도 편하게 일하지 않는다. 군수 업무 때문에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사람이 병윤이었기 때문이다. 쪽잠을 침대에서 편히 자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를 오가는 헬기에서 쪽잠을 자는 경우가 많았다.
“언제까지 개발하라고 하는데?”
“다음 달까지 시제품 만들어 달래.”
“미친...”
감연이 정말 암담한 표정을 짓자 병윤은 할 수 없다는 듯 한 마디 말한다.
“그 시간까지 안 되겠지?”
“너도 잘 알고 있네!”
“유탄 발사기 설계와 계획은 동협 그룹에서 알아서 처리할게.”
“너도 드디어 인정이라는 것을 아는 구나.”
“네 고생을 내가 잘 알기 때문에 이러는 거라고. 자 날 찬양해.”
“아이고 나으리 덕분에 이 소인이 잘 살고 있습니다요.”
그 말에 병윤은 자신이 잘났다는 표정을 연신 짓고는 이내 감연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요즘 아내와 네 딸아이는 어떻게 지내?”
감연이는 그 말에 한숨을 쉬며 말한다.
“전쟁 통이니 뭐 어떻게 하겠어? 내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친정집에서도 지금 문경에 내려오고 난리 났다.”
“허...”
“명목상 그냥 내 아버지와 생활한다고 하지만 누가 모르겠어. 피난이지 뭐.”
“그렇군. 차라리 대구까지 내려가는 것이 어때?”
“대구? 뭔 일 있냐? 중공군 침공하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중공군이 문경까지 쳐들어올 이유가 있겠냐?”
“최악의 사태는 대비해야지.”
“대구에 기반은 없는데? 아. 기반은 있지. 참.”
“그래 요즘 동협그룹 기반들 그 쪽으로 슬슬 옮기고 있잖아. 떼어놓을 수 없는 시설 같은 것은 그냥 그대로 놔두고 비상시에 폭파장치만을 설치했지.”
“독한 놈.”
“일단 평안도에 있는 시설 역시 옮기고 있다.”
“평안도야 당연하겠지. 그런데 제철소 같은 것은 옮기는 데 꽤 시간이 걸릴 텐데?”
“옮길 수 있는 것만 옮기고, 못 옮기면 비상시국에 폭파시켜야지 뭐.”
“아 그래?”
“폭파시키면 꽤 속이야 쓰리겠지만. 제철소가 그 것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상관없겠지.”
“쯧. 고생한다.”
그 후로도 꽤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뒤 시간이 되자 병윤은 감연에게 말한다.
“야. 나. 가본다.”
“그래. 얼른 꺼져.”
“그래. 그래. 잘 꺼질 테니까 다연장로켓 개발 잘해라.”
감연은 그 말에 대답보다는 감자바위를 먹였고, 병윤은 키득키득 거리며 밖으로 나간다. 이후 병윤은 품속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한다.
-뚜르르 뚜르르 철컥!-
-뭐야? 병윤이야?-
“예. 작은 형. 감연이에게 유탄발사기 시제품을 받고, 나오는 길이에요.”
-허 그래? 그 유탄기관총은 어떻게 되었어?-
“유탄기관총은 동협 그룹에서 자체 개발하려고 합니다.”
-뭐? 왜? 그 쪽 바쁘지 않아?-
“감연이 녀석 사정을 보니까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 그래? 하여튼 다음 달에 그 유탄발사기 개발 가능하겠지?-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작은 형.”
-최선가지고 안 돼. 저 쪽에서 쪽수로 밀어붙인다면 우리는 화력으로 밀어붙일 수밖에 없지. 일단 유탄발사기 양산부터 해라.-
“예. 예.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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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탄발사기와 유탄기관총, 다연장로켓까지 합하면 국군 3만명 vs 중공군 30만명의 대결이 대등해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