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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인생-536화 (536/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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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그 말에 왕걸연은 조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팽덕회 총사령관을 바라보다 이내 한 마디 말한다.

“그런데 문제점은 우리의 입장 상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걸 포위당한 남한군들도 잘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말로 느끼는 것과 직접 눈과 행동으로 느끼는 것에는 차이점이 많지.”

“으음. 우리가 급한 것이 아니라 포위당한 이들이 급하다는 것입니까?”

“자네가 한 번 상상해보게. 끊임없이 공격해오는 적들, 쉴 수 없는 환경, 올 지도 모르는 보급, 그리고 도망칠 수 없는 혈로. 자 이런 상황이라면 자네는 싸울 수 있겠는가?”

팽덕회의 말에 상상 이상으로 끔찍한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왕걸연이었다. 그저 상상만 했을 뿐인데, 직접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한 것처럼 생생해진다. 상상만 해도 몸이 절로 섬뜩해지고, 차가워지며 식은땀이 절로 흘러내린다. 팽덕회는 왕걸연을 바라보며 후후후 웃는다.

“뱀은 먼저 먹잇감을 잡아먹을 때, 힘부터 빼지. 그 수단이 앞니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인가? 아니면 뱀 허리를 이용한 단순한 조르기인가? 물론 우리에게도 시간이 별로 없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붕괴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저들이야.”

“놀랍습니다.”

“다만 적들의 전력이 전력인지라 그 동안 입을 피해는 상상도 못할 정도이지. 그래서 재빨리 북한 정권을 다시 회복시키고, 우리가 장악한 구역이라도 그들에게 넘겨야지.”

“그 말씀은?”

“그 북한 정권을 이용해서 북한군을 재건하고, 어느 정도 힘이 빠진 남한군과 싸우게 만든다면 여기서의 할 일은 끝이 아닌가?”

“하기야 우리 전략의 목적이 이 한반도의 전력들이 만주 쪽 아니 최소한 북경 쪽에 닿지 않는 것이 주 목적이니 말입니다.”

“그래. 맞아. 그리 무리하지는 않아도 돼. 주석 합하께 말씀드린 3개월의 시간은 헛되이 소모시키지 않아야지. 적어도 북한군을 재건하고, 그들을 어느 정도 도와 전선을 형성하여 대치만 시켜도 우리 임무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네.”

왕걸연은 그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다. 팽덕회는 그런 그의 모습에 만족스러운지 미소를 짓고 이내 한 마디 묻는다.

“그런데 선봉대는 언제 서울에 도착하는지 알 수 있나?”

“선봉대 약 20사단이 서울에 도착하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립니다. 빠르면 5일, 늦으면 대략 10일 정도 걸립니다.”

“으음. 많이 늦는군.”

“강원도가 산악지역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보병 특유의 기동력 때문입니다.”

“하기야 그렇겠군. 또 강원도 산악지역에 매복될 남한군 전력도 어느 정도 걱정이 되고 말이야.”

“그럴만한 전력이 있겠습니까?”

“지금 후방 지역에 적 3개 사단이 더 있다고 하더군. 그 사단들이 우리들을 가로막지는 못해도 유격전으로 우리를 괴롭힐 가능성이 충분하지 않겠나?”

“으음...”

“한성에 있는 남한정부라도 그걸 생각하고, 대비하겠지. 그러니 선봉대 쪽에 조심해두도록 말하게. 송시륜 역시 잘 알고는 있겠지만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팽덕회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중공군 선봉대를 가로막을 남한군 전력은 없었다. 왜냐하면 서울에 있는 남한 정부가 부산 쪽으로 천도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같은 시각, 경무대 어느 방 안에서는 이 대통령이 군복을 입은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네가 수도방위사단의 사단장인 김도진 소장인가?”

김도진 소장은 그 말에 경례를 하며 대답한다.

“예. 그렇습니다.”

이 대통령은 씩씩해 보이는 김도진 소장의 모습이 은근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잘 되었군. 김 소장. 이번에 자네에게 할 일이 있다네.”

“얼마든지 맡겨만 주십시오.”

이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좋아. 어차피 말해야 하는 일이니 말해주지. 현재 자네가 지휘하고 있는 수도방위사단, 그리고 용산에 훈련 중인 신생 두 개 사단을 중점으로 수도방위 군단을 창설할 예정이야. 그 군단장 직위에 자네를 생각하고 있네.”

“예? 그게 정말입니까?”

김도진 소장은 기뻐하기보다는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 대통령을 바라본다. 이 대통령은 김도진 소장이 무언가 낌새를 알아차릴까봐 급하게 말을 한다.

“내 자네를 눈여겨보고 있었다네. 지금껏 기회가 없어서 말을 아끼고 있었지. 이 서울은 한반도의 심장이자 우리 대한민국의 수도야. 그 중요성에 대해선 수도방위사단장인 자네가 잘 알고 있겠지. 광복군에서 전전하여 실전경험을 쌓은 점. 지금까지 무리 없이 능력을 보인 점 많이 인정하고 있네.”

그 말에 김도진 소장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이 대통령에게 말한다.

“그런데. 전 작년에 사단장으로 진급하였는데. 지금 또 진급하는 것입니까?”

“능력에 맞게 자리에 앉히는 것은 통치자로써 당연한 일이야.”

“하지만...”

“자네와 같은 동기라고 부를 수 있는 길 중장 역시 군단장 직위에 올랐는데. 자네 역시 그러는 법이 어디에 있겠나?”

“......”

김도진 소장은 이 대통령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못한다. 그 때, 이 대통령 옆에 있던 신성모 국방부 장관이 한 마디 말한다.

“이 보게. 김 소장. 자네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좋은 기회야. 군부 내에서도 자네의 진급에 대해 뭐라 그럴 사람이 없어. 만약 있으면 나에게 말해주게나. 그럼 내가 조치를 취해주지. 감히 국방부 장관이 인가한 일인데 어느 누가 딴죽을 걸겠나? 안 그러나?”

김도진 소장은 그 말에 속으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 마디 말한다.

‘아니 댁이 가장 못 믿음직하거든요. 젠장.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군.’

갑작스러운 군단장 임명에 김도진 소장은 뭔가 있다고 직감했다. 하지만 여기서 거절하기 요원하기에 일단 군단장 직위를 수여받고,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결국 김도진 소장은 수도방위군단의 군단장에 임명되었다.

그 후로도 김도진 소장은 이 대통령과 서울 방위 전략에 대해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는 이내 경무대 바깥으로 나가 자신의 사단 본부로 가기 위한 차량에 탑승한다. 김도진 소장은 운전병을 향해 한 마디 말한다.

“사단 본부로 가세.”

“예!”

-부르릉-

김도진 소장을 태운 차량의 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차량은 어딘가로 향한다. 차량에 있는 동안 김도진 소장은 군복 안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연락한다.

-뚜르르 뚜르르 철컥!-

-통신보안. 전격.-

“북진.”

-암구호 확인되었고, 전 제 3군단의 군단장 길병주 중장입니다. 누구십니까?-

“형씨 나야. 수도방위사단의 사단장 김도진.”

-아 김 소장. 이 시간에 무슨 전화입니까?-

“아 글쎄 말이야...”

김도진 소장은 아까 경무대에서 있었던 일들을 병주에게 알려준다. 조금 시간이 지나 병주는 생각을 하는지 대답을 하지 않다 이내 답해준다.

-꽤 복잡하군요. 흐음. 갑작스러운 진급. 그리고 서울 방위의 확충이라.-

“뭔가 있는 거 맞소?”

-그 정도의 상황을 보고, 뭔가 있지 않다는 것은 상당히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아마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것은 역시 이 서울이 전쟁터가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 뭐?! 전쟁터?”

김도진은 상당히 놀랐고, 그 때문에 운전대를 잡고 있는 운전병은 김도진 소장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김도진 소장의 감정과 상관없이 그의 귀에서 병주의 이야기는 계속 된다.

-예. 군단장 직위를 받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까?-

“그런 가능성이 있기는 한데. 설마 그럴까 생각했겠소?”

-사실 전 제 1군단의 배치를 보고, 적들이 강원도를 통해 우회할 것이라고 예측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국방부에게 제 3군단을 움직여 그들의 우회로를 가로막거나 유격전을 펼쳐 지연하겠다고 건의를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설마...”

-예. 제 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뭔가 낌새가 좋지 않습니다.-

“미치겠군. 그래서 날 군단장으로 임명한 건가? 아니 정상적인 세 개 사단도 그들을 막기에 벅찬데. 한 개 사단만 정상이고, 두 개 사단은 오합지졸이나 다를 바가 없는데. 이들을 가지고, 서울을 방호하라니. 그 무슨 어처구니가 없는...”

-사실 섬뜩하다고 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만.-

“그게 무슨 말이오?”

-아무래도 정부 쪽에서는 부산 쪽으로 천도할 것 같습니다.-

“무... 뭐?! 천도라고?!”

김도진은 또 놀란다. 갑작스러운 천도 이야기를 꺼내드는 병주의 말에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병주는 그런 김도진의 심정을 아는지 한 마디 대답을 해준다.

-단순한 추측이지만 이번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선 이럴 수밖에 없습니다.-

“젠장... 미치겠군. 그럼 우린 단순한 시간벌이 하는 거나 다를 바가 없다는 거야?! 제길! 나를 희생양으로 삼다니!”

-흥분하지 마십시오. 만약 정부가 부산 쪽으로 온다고 한다면 중공군들의 주력은 부산 쪽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병주의 말에 김도진은 이내 진정하고, 침음을 흘린다.

“으음...”

-최대한 시민들의 피난을 돕거나 해서 끝까지 서울을 수비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보급이야 제 동생이 있으니...-

“그래도 그렇지. 하기야 그 말도 맞기도 하겠군. 그런데 그렇게 돌아가면 중공군의 주력이 필시 문경 쪽으로 갈 텐데 무슨 방법이라도 있소?”

-부디 그 쪽으로 오기를 빌고 있습니다.-

“그 말은?”

-만약 이 쪽으로 온다면 그들에게 새로운 지옥을 선사하려고 합니다. 지난번 남경 시가전을 기억하십니까?-

“시가전이라... 그 말은 형씨가 그 시가전 판을 짰다는 것이오?”

-뭐 기대 하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 쪽에 가는 중공군 주력도 상당히 불쌍해지겠군.”

-예. 중공군이 뱀의 형태로 우리들을 조른다면 제 역할은 딱 하나입니다. 뱀 머리를 베는 일입니다. 나머지 몸통을 잘근잘근 자르는 일이야 현재 흩어져 있는 국군들이 담당할 일입니다.-

“흐음... 그 때를 어느 정도로 보고 있소?”

-아마 8월 말에서 9월 초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 때까지 무조건 버티시는 것이 상책일 것입니다.-

“그런데 형씨 쪽으로 가지 않고, 전라도 쪽으로 우회해서 갈 수 있지 않겠나?”

-그 것 역시 걱정거리는 없을 것입니다. 아마 지금쯤 그들의 귀에도 소식이 들려왔을 것입니다.-

“그들의 귀?”

-잊으셨습니까? 이번에 우리들의 원군을 말입니다.-

“미군이군. 설마 미군 4개 사단의 역할은?”

-아마 중공군이라도 미군을 모를 리 없을 것입니다. 전라도 쪽을 미군이 막았다고 한다면 중공군은 필시 제 쪽으로 돌파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적어도 미군 쪽을 돌파하는 것보다 이 쪽을 돌파하는 것이 나을 것이니 말입니다.-

“과연 생각대로 그렇게 돌아가겠나?”

-그렇게 돌아가도록 만들어야지요.-

“형씨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렇게 돌아가겠군. 알겠어. 이만 연락 끊지.”

김도진은 병주와의 연락을 끊고, 다시 핸드폰을 품 안으로 집어 넣는다. 그리고 길게 한숨부터 푹 쉰다.

“하아아아아... 진짜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그 말에 운전대를 잡는 운전병이 더 답답해한다. 하지만 함부로 김도진에게 물어볼 수 없었다. 자신은 단순한 운전병이었지. 작전을 묻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 역할에 충실히 했으면 되었다.

한편, 병주가 김도진 소장에게 말해준 대로 서울 주한미국대사관에서도 이 대통령이 부산 쪽으로 천도한다는 의중이 그들의 귀에 들렸다. 미 국무부 고문인 존 덜레스는 그 말을 듣자마자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이 곳을 간단히 포기할 줄이야...”

그 말에 러스크 차관보가 한 마디 말한다.

“하지만 우리로써는 잘 되지 않았습니까?”

“하기야 그렇겠지. 하지만 이렇게 쉽게 이 곳을 포기할 줄은 꿈에도 몰랐네.”

존 덜레스는 이내 러스크 차관보가 아닌 의자에 앉아있는 어느 한 사람에게 시선을 두며 묻는다.

“미 8군 사령관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틀 전에 서울에 도착한 미 8군 사령관 월튼 워커 중장은 조금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한 마디 대답한다.

“이 곳이 대한민국 수도가 맞습니까? 어찌 이리 쉽게 포기한다는 말씀입니까?”

“자네도 오죽하면 그런 말을 하는군.”

“한국인들은 이 서울을 지킬 생각을 하지 않는군요.”

월튼 워커 중장의 말에 존 덜레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아무래도 이 대통령과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해봐야겠어.”

러스크 차관보가 그 말에 한 마디 말한다.

“꼭 그러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천도는 하더라도 이 서울을 지키도록 압력을 놓을 생각이야.”

“으음. 그 것 역시 좋은 방법입니다만. 문제는 현재 중공군의 파도 속에서 고립되어가고 있는 한국군 군단들입니다.”

“그건 아직 문제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오? 월튼 워커 중장.”

월튼 워커 중장은 그 말에 한동안 생각하다 대답한다.

“꼭 그들을 재배치시킬 것까지는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차라리 우리 미공군의 우월한 공군력을 동원하여 그들을 포위하고 있는 중공군들에게 융단폭격을 가하는 것이 가장 나아보일 것입니다. 또 한국군 제 2군단 같은 경우는 신의주 쪽 항구를 통해 빠져나갈 수 있으니 이 점을 제 2군단 쪽에 염두를 두어 사기가 하락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점입니다.”

존 덜레스 미 국무부 고문은 그 말에 합당하다고 생각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미 8군의 사단은 어디로 투입시킬 생각이오?”

“전라도 곡창지대. 그 곳을 잃으면 한국정부는 끝장입니다.”

============================ 작품 후기 ============================

방향은 정 반대이지만 옛날 임진왜란과 흡사한 전쟁이 될 것 같습니다. 임진왜란에서 신의주까지 승승장구하며 쾌진격하던 일본군은 길어진 이동로때문에 보급로가 끊기고,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는 의병들과 관군들에게 타격을 입어 순식간에 경상도 지역에 박혔습니다. 물론 정유재란을 통해 다시 북상하지만 결국엔 또 경상도 지역에 쫓겨나 항전하다가 본국으로 도망칩니다. 아마 이번 전쟁도 그렇게 돌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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