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539화 (539/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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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이우 중장의 말을 들어보니, 그 곳의 상황은 생각이상으로 심각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고립된 지 거의 보름 정도 지나니 말이다. 다만 그 때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에는 자신의 동생인 병윤이 지속적으로 그 쪽에 보급을 해주어서 그럴 것이다. 또 여차하면 바로 철수할 수 있을 것이다. 병주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심각함을 느끼며, 동시에 그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되었다.

그 때, 병주 옆에 있던 제 3 군단 참모장인 최진석 준장이 한 마디 묻는다.

“무슨 전화이기에 이렇게 심각한 얼굴을 짓습니까?”

“제 2군단에서 나온 전화야.”

최진석 준장은 그 말에 ‘흐익!’ 소리를 낼 정도로 엄청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반문한다.

“아니 제 2 군단 쪽이라고 한다면. 그 곳은 고립된 지 보름이나 지난 곳이 아닙니까? 그런 곳에서 전화가 오다니... 진짜 핸드폰이라는 녀석은 신기하기 짝이 없습니다.”

“내 동생이 하는 사업이라는 것이 허술하게 하지는 않겠지.”

“그래도 제 2 군단 쪽과 연락이 되니 어느 정도 안심이 됩니다.”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럼 아니란 말씀입니까?”

“말로 설명하기는 그렇겠지. 우리가 직접 그 곳에 가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야.”

병주는 그렇게 말하고, 제 2 군단에 관련된 화제를 끝내버린다. 최진석 준장은 제 2 군단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병주가 끝내버리니 어쩔 수 없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육군본부 역시 수원에서 부산으로 옮긴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산이라... 하기야 정부도 그 쪽에 이전하는데. 육군본부도 옮기지 말라는 법이 없겠지.”

최진석 준장은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런데 굳이 부산으로 이전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서울에는 지금 제대로 된 사단이 하나뿐이고, 나머지 두 개 사단은 이제 훈련 중이라고 들었지. 그런 부대들 가지고, 서울을 끝까지 방어하기란 부족할 거야. 시간을 끌 수는 있어도 말이지.”

“시간이라... 하지만 중공군 역시 시간에 쫓기는 입장이 아니겠습니까?”

“시간에 쫓긴다 한들 적어도 정부가 서울에 있다면 시간 초과가 되어도 계속 공략하겠지. 조금만 더 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여기면서 말이야.”

“아...”

“하지만 부산으로 금방 이전하겠다고 하는 정부 역시 그다지 현명하지는 못하지. 차라리 우리들을 강원도 지방으로 파견 보내서 그 쪽을 틀어막았다면 중공군들은 함경도, 평안도 지방에서 고립될 테니 말이야.”

최진석 준장은 그 말에 격하게 동감하며 대답한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도대체 국방부 장관이라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병주는 국방부 장관을 생각하자 자동적으로 얼굴이 구겨진다.

“일단 우리 할 일은 많아. 시간이 지나면 여기도 전쟁터로 변하니 말이야.”

최진석 준장은 그 말에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유탄발사기의 양산 현장을 살펴본 병주와 그 수행원들은 문경에서 벌어질 전투에 대비해 더더욱 일전을 가한다.

한편, 대동강 유역에서 배치한 국군 제 1 군단을 상대하고 있던 중공군 본대에서는 안 좋은 분위기가 흘러들어간다. 팽덕회 총사령관은 지금 들어온 정보에 얼굴이 굳어지고 있었다.

“쯧. 이미 미군들이 이 쪽에 들어왔는가?”

그 말에 본대 참모장인 함식호가 아연실색한 얼굴을 지으며 말한다.

“비록 4개 사단밖에 배치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의 규모는 점점 더 커질 전망입니다.”

“하아... 답답하군. 본토 쪽에서는 다시 한 번 전쟁이 일어나고, 이 곳 상황은 지지부진하니 말이야.”

“거기다 선봉대 쪽에서 보급을 해달라고 청원 중에 있습니다.”

‘보급’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팽덕회 총사령관의 얼굴은 자동적으로 찌그러진다. 적이 아무리 바보라고 해봤자 보급의 중요성은 모르고 있지 않을 것이다. 북한군을 소탕하고 있었던 국군 제 4 군단은 중공군이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진출해 버리자 만주에서 함경도로 이어지는 보급로를 끊어버렸다.

아니 끊었다라고 표현하기는 그렇고, 매번 찾아오는 보급들을 약탈하는 편이 옳다고 볼 수 있었다. 그 때문에 현재 중공군들이 여기서 활동할 수 있는 기간들은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현재 본대에서 버틸 수 있는 기간 역시 거의 한 달 가까이 정도 되었다. 여기까지 진격하는데 보름 정도 걸렸다. 그러니 철수할 때도 그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시간은 대략 보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선봉대 측에서는 보급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나?”

“우리 측에 보급을 해달라고 요청을 하는 동시에 북한군을 이용해서 민간인들의 재산을 약탈하고 있습니다.”

“약탈? 그치들 제정신이 있는 건가?”

팽덕회가 짐짓 노한 음성으로 말하자 함식호 참모장이 이를 타이른다.

“오죽하면 그렇겠습니까? 현재도 서울에 진격하기까지의 시간은 거의 보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그 진격시간 동안 지금 가지고 있는 물자들을 거의 다 소모되는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서울 공략은 매우 힘들어질 것입니다.”

“으음. 선봉대의 진격 로는 어떻게 되나?”

“지금 강원도 회양군 반면에 있다고 했으니 창도군-김화군-그리고 경기도 가평군을 거쳐 서울로 진격할 것 같습니다.”

“온전히 산을 타는 진격로이군.”

“아무래도 미 공군의 융단폭격을 피하기 위해선 산맥을 탈 수밖에 없습니다.”

“산맥이라... 하아.”

산을 통해 기동하는 것은 중공군의 특기 중의 특기였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산을 타는 것은 어느 정도 제한요소가 되었다. 일반 평지에서 움직이는 것보다 산을 통해 기동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지금 모인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머리를 모으고,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달갑지 않은 손님들이 찾아왔다.

북한군 병사들의 호위를 받아 하얀 군복을 입은 김일성이 이 막사 안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회의는 잘 되고 있소?”

팽덕회는 이 사태를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는 김일성을 보고, 속으로 욕이란 욕을 다 한 후에 달갑지 않은 어조로 자리를 권한다.

“빈자리가 있으니 앉으십시오.”

그 말에 김일성은 낯짝도 뻔뻔하게 성큼성큼 걸으며 팽덕회가 권한 자리에 앉고는 이내 팽덕회를 바라보며 묻는다.

“언제 저 오합지졸 같은 남한군 부대들을 쳐부술 수 있소?”

현재 대동강 유역을 수비하고 있는 국군 제 1군단을 오합지졸로 표현하는 김일성의 말투에 팽덕회는 콧웃음을 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오합지졸 같은 군대에 밀려 우리들에게 붙어 사는 주제에 말이 많군.’

“아직까지 저들의 방어는 상당히 견고합니다.”

김일성은 그 말에 소리를 드 높이며 외친다.

“최소한 평양을 함락시켜서 우리 북한 정부가 일어섰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지 않겠소? 최대한 빨리 평양을 함락시키고, 서울을 함락시키면 우리 북한이 중공의 염려를 없애주겠소.”

‘말이야 못하면 곱지. 빌어먹을 자식.’

팽덕회는 한숨을 내쉬며 김일성에게 한 마디 말한다.

“현재 가용할 수 있는 북한군은 얼마정도 됩니까?”

“완편 사단 둘, 그리고 우리 공산주의에 열광하여 자발적으로 모인 의용군 다 섯 사단이오.”

‘의용군은 무슨 그냥 징발한 사단들이겠지.’

현재 북한군의 지휘는 김일성이 하는 것이 아니라 중공군이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한반도 전쟁의 주는 중공군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군 2개 사단이 선봉대에 붙어서 서울로 진격하고 있었다.

“일단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평양을 함락하기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저 쪽에서 공중을 통해 보급을 하는 이상 저들의 방어는 견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중보급’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김일성의 얼굴은 자연히 찡그러진다.

“그 보급을 싣는 헬기들을 격추시킬 대공무기들은 없소?”

“쯧. 그랬다가는 대공무기의 위치가 알려지게 됩니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공무기는 빈약합니다. 그 빈약한 대공무기들을 적 폭격기와 전투기에 사용해야지 일일이 적 보급공단에 사용된다면 적 비행체에 무참하게 망가질 것입니다. 그래도 좋습니까?”

“으으음...”

김일성은 가래 끓는 소리를 낸다. 현재 중공군의 주 전력은 우월한 규모의 보병부대들이었다. 그 보병부대들을 통해 기동과 화력을 다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서구 강대국의 군대처럼 전차 집단과 우수한 공군 부대들은 눈에 씻고도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빈약했다. 그 때문에 신의주를 통해 이동하는 부대들은 거기에 주둔하고 있는 남한군 유일한 기갑부대들에게 밟히고 있는 실정이었다.

‘뒤에 믿고 있는 이들이 이리 허술해서야. 제길...’

김일성은 왠지 중공군 측이 못 미더웠다. 하지만 북한군 지휘권이 저 쪽에 있는 동안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일단 복잡해 보여도 승기를 잡고 있으니 자신은 그냥 알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휴우. 알겠소. 혹여나 필요한 일이 있으면 부르시오.”

팽덕회는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김일성은 팽덕회의 대답을 듣고, 자신의 수행원들을 데리고 막사 밖으로 나갔고, 팽덕회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흥. 아무 것도 없는 주제에 저렇게 거들먹거리는 인상이라니. 북한 꼴 역시 말은 아니군.”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그 후로도 회의는 계속 진행되었다.

1950년 8월 10일, 중공군 본대 사령부 측에서 날벼락 같은 소식이 떨어졌다. 팽덕회 총사령관은 소식이 담긴 종이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부여잡고는 절규한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남한 정부가 부산으로 이전하다니! 부산으로 이전하다니!!!”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전부 침통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남한 정부가 이리 쉽게 서울을 버리고, 부산으로 이전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으아아!!!! 이게 무슨 개소리야! 이게 무슨 일이냐고!?”

평소 신중한 모습을 보이던 팽덕회 총사령관은 이 때만큼은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막사 안 물건을 집이는 대로 잡아 이리저리 던지기 시작한다. 가장 큰 전략 목표가 멀리 떠나보냈으니 자신의 전략 자체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헉... 헉...”

물건을 던지다 보니 팽덕회 총사령관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지금 암울한 현실을 바꿀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때, 참모장 함식호가 팽덕회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총사령관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뭘 어떻게 해?!”

“......”

팽덕회는 실 끊어진 인형처럼 의자에 털썩 앉는다. 그리고 한창 골몰히 생각하다 이내 세상 다 끝난 사람처럼 한숨을 내쉬다 대답한다.

“미치겠군. 이렇게 된 이상 전략을 전부 수정하는 수밖에 없겠어.”

“......”

“일단 경기도 가평군 쪽에 선봉대가 도착했다고 했는가?”

그 말에 참모장 함식호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인다.

“쯧. 그들이 버틸 수 있는 기간은 얼마정도 되지?”

“일전에 말씀드렸던 약탈 행위로 한 달은 버틸 수 있다고 합니다.”

팽덕회는 그 말에 조금 희망이 생기는지 한 마디 말한다.

“한 달이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미군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현재 미군들은 경기도와 충청도 쪽을 수비하고 있습니다. 전라도 지역을 방어하기 위함인 것 같지만...”

“그렇다면 경상도 쪽은?”

“경상도야 국군 후방부대라고 할 수 있는 세 개 사단밖에 없습니다.”

“좋아...”

팽덕회는 뭔가 결심했는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보고 한 마디 말한다.

“서울은 포기한다.”

순간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외친다.

“예에?!!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맞습니다. 이제 가평군 쪽에 진출하였는데 서울 공략도 못해보고, 그대로 철수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철수가 아니야. 우리 본대 측이 서울로 진격하고, 선봉대는 부산으로 향한다.”

그 말에 순간 사람들의 얼굴에는 뭔가 충격을 먹은 사람의 얼굴이 되었다. 참모장 함식호가 거친 숨을 내쉬며 팽덕회에게 말한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서울에 있는 남한 정부가 부산으로 이전했는데. 어쩔 수가 없지 않나? 서울을 함락한다한들 우리의 진격은 서울까지가 끝이야.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그대로 서서히 철수할 수밖에 없겠지.”

팽덕회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서울이 한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었지만 그 곳에 남한 정부가 없다고 한다면 효용가치는 절반이상으로 급감한다고 볼 수 있었다. 다만 서울은 포기할 수 없으니 본대가 서울에 진격하고, 선봉대는 기존의 전략 목표라고 할 수 있는 남한 정부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함식호 참모장은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총사령관님. 선봉대에게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그렇게 자신들을 충격에 빠뜨린 남한정부의 이전은 이렇게 재빨리 전략을 수정하는 것으로 비상사태를 넘겼다.

한편, 가평군 쪽에 진격한 선봉대 측은 본대에 올라온 소식을 듣자마자 다들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선봉대 사령관인 송시륜은 얼굴을 대차게 구기며 한 마디 말한다.

“이제야 서울에 왔는데. 서울은 빈껍데기라니. 하아...”

참모장 왕걸연이 그 말에 한 마디 말한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부산 쪽으로 갈 수밖에 없겠습니다.”

“부산에 간다면 다시 산을 탈 수밖에 없나?”

“경기도에서 충청북도를 거쳐 부산으로 가는 방법이 있지만 그건 위험부담이 큽니다. 아무래도 강원도를 통해 부산으로 가는 방법이 좋겠습니다.”

“제길... 어쩔 수 없군.”

그 때, 송시륜은 지도를 살펴본다. 바로 자신의 전략 목표라고 할 수 있는 한국 정부가 있는 부산으로 진격할 진격로를 탐색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중에 ‘문경’이라고 표시한 곳에 뭔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아주 꺼림칙하고 불길한 그런 무언가가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문경 옆에는 한국군 보급기지의 총산이라고 되어 있기에 송시륜의 고민은 순간 깊어진다.

============================ 작품 후기 ============================

저녁 8시에 자다가 아침 여섯시에 깼네요. 12시에 올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강원도를 거쳐 영주 혹은 봉화, 예천, 영양 쪽으로 갈 수 있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송시륜의 눈에는 보급기지의 총산이라는 대목에서 뭔가 유혹을 느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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