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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병주와 면담했던 월튼 워커 중장은 이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바로 핸드폰이라는 녀석이었다. 자신이 살면서 이런 물건을 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물건이 한국에서 만든 녀석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그러했다. 현재는 이 핸드폰을 가지고, 대학 연구소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시간이 걸린다는 답변이었다. 적어도 그 거대한 무전기를 들고, 손잡이를 돌리며 연락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월튼 워커 중장은 이내 전화번호를 입력한 후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뚜르르 뚜르르 철컥!-
-그래. 무슨 일인가? 월튼 워커 중장.-
“문경에 배치된 한국군 장성을 만나봤습니다.”
-그래. 그들은 어떻게 하고 있었나? 후방지역에 있다고 희희낙락거리던가?-
“이런 부대들이 왜 아직까지 후방지역에 있는지 모를 정도로 제대로 되어 있더군요. 원래 적들을 막기 위해 거듭 출정 요청을 했지만 파벌 싸움 때문에 후방지역에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래? 흠... 그럼 내가 영향력을 발휘하여 그들의 출정을 허락하게 하면 되는가?-
“그건 아닙니다. 그들은 이 곳에 아주 무시무시한 함정을 파두었더군요.”
-무시무시한 함정?-
“예. 저 역시 설명을 듣자마자 중공군들이 불쌍해질 정도의 함정입니다.”
-그럼 경상도 북부 지역은 문제가 없다는 건가?-
“적들이 이 문경을 우회하지 않는 이상 문제는 없습니다. 적들 역시 한국군 보급기지가 있는 이 곳을 그냥 지나치기 힘들 것입니다.”
-흠... 알겠네. 그럼 다음 달 초에 내가 그 쪽에 가보도록 해보지.-
“알겠습니다.”
월튼 워커 중장은 이내 상대방과의 통화를 끊는다.
1950년 8월 22일, 전쟁이 시작된 지도 거의 2개월 가까이 지났다. 그 동안의 참화는 말로 이룰 수 없을 정도였다. 양군의 포탄으로 인해 죽어나가는 군인들, 기관총탄에 맞아 손목이 잘려나간 군인들, 오사들로 인해 죽어나가는 민간인들, 그리고 오폭으로 인해 가족들과 찢겨지는 인간들.
전쟁이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글로 표현할 수 없고, 인간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야 생생하게 느껴지는 그런 지옥 같은 분위기. 한반도가 전쟁의 참화를 겪는 동안 사람들은 고생하고 또 고생했다. 살기위해 도망가고, 살기위해 남의 목숨을 노리며 살기위해 또 살기위해... 해방된 지 5년밖에 지나지 않은 한반도에서 전쟁은 진정으로 끔찍한 것이었다.
다만 한국군 입장에서 보자면 지금껏 잘 버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고립된 군대들은 적의 맹렬한 파상공세를 겪으면서도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버티는지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그 때문에 중공 정부에서는 꽤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한반도 전쟁은 그들에게 있어서 늪이 되고 있었다.
지금 그 분위기에 걸맞게 중공 북경 관저의 한 방 안에서는 눈살을 찌푸리며 자료들을 살펴보는 장년 남성이 있었다. 바로 중공의 총리로 임명된 주은래였다. 주은래는 자료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얼굴이 차츰차츰 굳어진다. 그를 바라보는 한 사람 역시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은래는 자료를 다 넘기자마자 한숨을 내쉬며 한 마디 말한다.
“미치겠군. 역시 한반도에 끼어드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어.”
그 말에 주은래 앞에 서 있는 남성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조한다.
“전쟁을 벌이기 전에 이런 상황이 벌어질지 누구나 예상했겠습니까?”
주은래는 그 말을 듣고, 피식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이미 예상은 하지 않았나? 하지만 예상보다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서 그렇게 될 뿐이지.”
“중화민국 전선에서 수비를 하고 있는 임표 사령관이 죽는 목소리를 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원래 예견된 상황이 아닌가? 전선을 축소하고자 아예 복건성, 강서성을 내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
주은래 앞에 서 있고, 또 주은래의 비서이기도 한 등소평이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예. 지금까지 신유철, 신유철 하는데 그리 무서운 작자인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산 넘어 산이라고 말을 하고 싶습니다.”
‘산 넘어 산’이라는 단어에 주은래는 가슴 속이 답답해진다.
“현재 한반도에 투입된 전력만 해도 200만이 넘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사상된 인명만 해도 40만이 넘고 말입니다.”
“우리가 잘못 생각했지. 하지만 주석 합하께서는 이 전쟁을 물릴 생각을 하지 않으니 큰일이야.”
등소평은 주은래의 말에 할 말이 없어진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이 중공에게 상당한 독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여기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중공을 이끄는 지도자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 쉽게 그 전쟁에서 발을 뺄 수 없으니 늪이라고 표현하는 것이었다. 등소평은 잠시 생각하다 뭔가 재밌는 생각이 났다는 표정을 짓고는 주은래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리고 보니 한반도에 투입된 선봉대가 꽤 깊숙이 진출한 것 같습니다.”
“깊숙이라... 아. 그렇군. 남한군 보급기지를 일단 점령하는 것으로 목표를 잠시 바꾸었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예. 그 곳을 지키고 있는 남한군은 겨우 세 개 사단이니 그들을 격파하고, 보급기지를 점령한다면 한반도의 전쟁도 수월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은래는 그 말에 싱긋 웃으며 말한다.
“그렇게 일이 잘 풀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뭐 이렇게 지금까지 안 풀리다가 한 순간에 풀리는 날도 있기 마련이지. 그런데 남한군 보급기지는 도대체 어디라고 하던가?”
“그... 문경이라고 했던가? 뭐 생소한 이름입니다. 애시당초 그 지역이라는 곳이 광주나 대구, 한성, 평양처럼 역사적으로 중요시하지 않은 지역이니 말입니다.”
“흐음... 문경이라. 문경.”
문경을 중얼거리던 주은래는 갑자기 눈이 커진다. 뭔가 귀신에 홀린 그런 표정을 지은 주은래는 헉헉 거친 숨을 내쉬기 시작했고, 손은 수전증마냥 부들부들 떨린다. 등소평은 갑작스러운 주은래의 반응에 놀라며 묻는다.
“괘... 괜찮으십니까?”
“문경하다 생각났는데...”
주은래가 ‘문경’이라는 단어에 상당한 두려움을 느끼는 듯 몸이 벌벌 떨리며 말한다.
“그 문경이라는 곳... 설마 그들이 있는 곳이 아니겠지?”
‘그들’이라는 단어에 등소평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그들이라면...”
“길씨 일가 말일세...”
등소평은 그 말에 ‘흐익!’ 하고 놀란다.
“그들이 그 쪽에 있습니까?”
“내가 그들에게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는 것 잘 알지 않은가? 그래서 한 번 살펴보았네. 그들이 주로 활동하는 곳을 말이야.”
“그런데 그 것이 그리 문제될 것이 있습니까?”
등소평의 한가한 말에 주은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외친다.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야! 전쟁 통에서 그들이 그리 그 곳을 쉽게 내주리라고 생각은 해봤나?”
“설마...”
“내가 생각하는데 그 곳은 꿀로 잘 발라진 독이야. 독. 내가 그들 입장이라면 나 역시 그렇게 했으니 말이야.”
등소평은 그 말에 말이 없어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나? 주은래 총리가 너무 걱정이 많으신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은래의 반응은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이제와서 그들의 군대를 물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주은래는 그 말에 결국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한편, 문경 인근 지역에 도착한 중공군 선봉대 본부 막사 안에선 회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그 중 상석에 앉아있는 송시륜 사령관이 정찰보고서를 읽으면서 ‘으음’ 침음을 흘린다.
“이 한반도의 수도 한성에서도 보기 힘든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다라...”
그 말에 보고서를 올린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부연설명을 해준다.
“도심에 가까울수록 고층건물들의 빈도가 높아집니다.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완전 새로운 유형의 지형입니다.”
송시륜은 그 말에 얼굴을 찡그리며 그에게 한 마디 묻는다.
“곤란하군. 그럼 보급기지로 쓰이고 있는 공업지역은 살펴보았나?”
그 말에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할 뿐이다.
“정찰을 시도하기는 했지만 그 곳은 상당히 엄중한 상황입니다.”
송시륜은 참으로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한 마디 말한다.
“적어도 그 곳을 수비하고 있는 남한군들은 어느 정도 생각이 있는 것 같군. 후방지역에 있다고 방심할 줄 알았는데. 일이 이렇게 되니까 역시 만만치 않다고 생각되는군.”
그 때, 참모장 왕걸연이 송시륜 사령관을 보면서 한 마디 묻는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라는 질문에 송시륜은 보고서의 내용을 보면서 대답한다.
“으음... 문경 외곽지역보다는 도심 가까운 곳에 공장들이 있다라고 하는군. 한 마디로 적들이 우리보고 저 곳을 들어가라는 소리인 것 같은데. 왠지 꺼림칙해. 우리들의 화력으로는 저 쪽을 공격할 수 있나?”
왕걸연은 그 말에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한다.
“아시다시피 우리에게 배치된 화력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렇게 고층건물들이 즐비한 곳에 우리의 화력이 제대로 먹힐지 의문입니다. 우리의 전력 대다수가 보병 전력이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중공군의 대다수 구성은 보병 전력들이었다. 정예를 가린다고 중화기들을 어느 정도 배치했지만 그 수량은 전체 규모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
송시륜은 화력이 부족하다는 말에 ‘끄응’ 침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선봉대가 보유하고 있는 병력은 20여개 사단이었다. 문경에 주둔한 병력이 3개 사단 뿐이니 병력 차는 거의 7배나 다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송시륜의 머릿속엔 왠지 모를 불길함이 생겼다.
“본대로부터의 지원은 불가한가?”
그 물음에 왕걸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본대는 지금 서울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쪽 지역을 점령하는 것은 우리들만의 힘으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송시륜은 그 말에 정찰보고서를 책상에 턱하니 내려놓고는 이내 한 마디 외친다.
“어쩔 수 없군. 오늘 오후 4시 부로 이 곳을 공격하게나.”
그 말에 자리에 앉은 사람들 모두가 대답한다.
-예! 사령관님!-
한편, 문경 도심의 고층 건물 지하실에서 본부를 둔 병주는 군단에 속한 참모들과 지휘관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고 있었다. 병주는 자리에 앉은 모두들을 바라보며 진중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시다시피 우리의 작전은 ‘개미지옥’이다.”
‘개미지옥’이라는 말에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 모두 침을 꿀꺽 삼킨다. 전쟁이 터지기 전부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고 해놓고선 지금까지 준비한 작전이었다. 병주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명령을 하달하기 시작한다.
“먼저 임 준장, 그리고 박 준장은 작전대로 산악지역에 주둔하면서 적들의 우회를 단단히 막도록 해라.”
국군 3 군단에 속해있는 제 11 강습산악사단의 사단장 임삼길 준장과 제 12 강습산악사단의 사단장 박현호 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알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병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젠 고호윤 준장에게 시선을 돌리며 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고 준장 자네는 이 작전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개미지옥에 걸맞도록 적들이 이 도심 지역에 진입하면 출입구부터 틀어막는 것이 핵심이다.”
제 10 강습산악사단의 사단장 고호윤 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적들의 무덤을 여기로 만들겠습니다.”
병주는 모두를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아마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승리해야 이 전쟁에 승기가 우리에게 넘어온다. 최소 9월 5일까지는 버텨라. 그 때쯤이면 미군 부대들이 인천을 통해 우리들에게 힘이 되어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곳을 공격하는 적들 역시 큰 혼란에 빠질 것이고, 그러면 우리가 그들을 각개격파 하여 곧바로 북상하도록 할 것이다.”
그 말에 군단 참모장인 최진석 준장이 병주에게 한 마디 묻는다.
“그런데 북상 명령은 허락받았습니까?”
“이미 허락받은 지 오래이다. 물론 이 전투에서 승리해야 가능한 일이지.”
최진석 준장은 그 말에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때,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온다. 바로 미국 고문관으로 이 쪽에 배치 받은 도노반 시밀터 대령이었다. 미군 병사들과 함께 들어온 시밀터 대령은 자신의 자리에 앉자 병주는 그를 바라보며 한 마디 묻는다.
“미군 쪽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도노반 시밀터 대령은 묘한 얼굴을 지으며 대답한다.
“현재까지 미 본토의 병력들이 일본에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마 9월 초쯤에 항구도시를 통해 상륙하여 작전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그렇게 묻는 도노반 시밀터 대령에게 병주는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여기서 물러서면 우리 모두 죽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싸울 뿐입니다. 서양에 이런 말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 동양에서는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뜻은 인간으로써 할 일을 다 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는 것입니다.”
“으음...”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이 전투에서도 변수들이 생겨나리라고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이대로 가만히 앉을 수 없는 일. 이 쪽이 뚫리면 부산까지 직통되는 길이 생김은 물론 남한군 보급기지가 함락됩니다. 아마 우리들 모두 여기서 죽기로 싸우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병주는 그렇게 말하며 투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투기는 자리에 앉은 사람들 모두가 보여준다. 질 때 지더라도 쉽게 지지 않겠다는 결의가 시밀터 대령의 눈에 보인다.
‘일단 이 작전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보라고 말을 들었지만...’
이미 예전에 병주의 부대에서 고문관 역할을 한 도노반 시밀터 대령이었기에 병주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능력과 철저한 준비까지도 말이다.
‘아마 이렇게까지 준비한 작전은 없을 것이고, 이렇게까지 투지와 의지를 보여주는 군대는 없을 것이야. 적들은 20개 사단이 넘는 대군들. 하지만 전사에서는 그런 소수의 군대가 다수의 군대를 쳐부수는 경우는 많이 있었지.’
도노반 시밀터 대령은 그렇게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주를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혹여 미군의 지원이 필요하다면 즉시 말하도록 하십시오.”
“지난번에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요청할 때마다 폭격을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 후 작전 브리핑은 간략하게 진행되었고, 적들의 배치 상황, 그리고 예상 공격방향을 검토하면서 작전을 다듬어가고, 생겨날 예상변수에 대한 대처방법 역시 생각해낸다. 그렇게 양군 모두들 준비하고 있었다. 한 쪽은 이 땅을 지키기 위해서 또 다른 한 쪽은 이 땅을 점령하기 위해서 말이다.
1950년 8월 22일 오후 4시, 그렇게 한반도 전쟁에서 분수령이 될 만한 거대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 작품 후기 ============================
아마 문경 시가전 편은 거의 10편 정도는 나갈 것 같습니다. 사실 20편 이상을 생각했지만 많이 지루하실 것 같아서 10편만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