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550화 (55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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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주흘산 인근 구릉지, 그 위에서 병사들이 삽과 곡괭이를 동원하여 미리 포대를 만들고 있었다. 인근 분대장 혹은 소대장들이 자신이 들고 있는 종이의 내용을 바라보며 지시를 내린다.

“그래. 거기 좀 파.”

“예!”

지시를 받은 병사는 이내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기더니 자신이 들고 있는 삽으로 땅바닥을 찍고, 파낸다. 그렇게 시간을 들이며 포대가 점차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런 작업의 현장들이 이 구릉지뿐만 아니라 주흘산 인근에 포를 댈 수 있을만한 지형에 하고 있었다.

제 3군단 포병 여단장 대령 최주평은 그런 작업의 현장을 바라보며 이내 여단 참모들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어느 정도 작업은 끝난 거야?”

그 말에 장교들 중 하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보고한다.

“예. 그렇습니다. 현재 각 고지마다 155m M114 견인곡사포의 설치와 그에 따른 위장막 설치까지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 말에 최주평은 보고를 올리는 장교를 바라보며 한 가지 묻는다.

“천둥포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적들의 대포병 사격이 시작되더라도 즉시 이동할 수 있는 곳에 미리 자리를 잡아놓았습니다.”

최주평은 그 말에 미소를 짓는다. 어느 정도 일이 잘 되고 있었다. 최주평이 지휘하는 국군 제 3군단 포병 여단은 문경 방어전에서 꽤나 큰 활약을 했다. 공세에 들어가는 중공군들의 숫자가 워낙 많으니 어쩔 수 없이 포들의 비중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며칠간에 벌어진 전투는 전환점을 넘겼다. 이미 중공군들은 총 퇴각하기 위해 발악하고 있고, 자신들은 그 중공군들을 한꺼번에 섬멸시키기 위해 이 주흘산 인근에 야포 및 자주포를 설치하여 기다리기로 한다.

그 때, 최주평의 군복 안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최주평은 얼른 핸드폰을 잡고, 뚜껑을 열어 귀에 가져다 댄다.

“예. 포병 여단장 최주평 대령입니다.”

-아 형님. 그 곳 진행상황은 어떻습니까?-

자신의 상관인 군단장 병주의 목소리가 최주평의 귓속에 울려 퍼진다. 최주평은 그 목소리에 속으로 반가웠지만 이내 한 마디 말한다.

“저랑 군단장이랑 지금 공적인 관계입니다.”

-하하. 형님 뭘 또 그러십니까? 일단 그런 대답을 하는 것으로 볼 때, 아마 일이 잘 끝난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예. 기대해주십시오.”

최주평은 끝까지 자신을 대우해주는 병주의 말에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문경의 그 학교에서 이어진 인연은 지금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최주평은 이내 핸드폰을 다시 안주머니에 넣고, 여단 참모들에게 한 마디 말한다.

“정식 공격 명령이 떨어질 동안 준비를 해.”

-예! 알겠습니다.-

참모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최주평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자신 역시 할 일을 찾아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 그에게 한 사람이 다가와 한 마디 묻는다.

“아까 무슨 전화셨습니까?”

최주평이 자신에게 그렇게 묻는 이의 얼굴을 살펴보니, 바로 자신의 부관이자 심복이 된 김장표 중위였다.

“아 군단장님 전화야. 준비가 잘 되냐고 물어봤어.”

김장표 중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한 마디 말한다.

“적어도 여단장님을 끝까지 챙기시는 것 같습니다.”

“쯧. 그 인간과 몇 년과의 인연을 보냈는데, 그런 소리를 하는가?”

“으음. 그 인연 상당히 부럽습니다.”

“사실 그 인간을 처음 볼 때, 난 눈치가 보였어. 저 인간은 되는 사람이라고 말이야.”

김장표 중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친다.

“하기야 그 역시 꽤 대단한 활약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원래는 대학생에 일본군에 징집되다 이내 탈영하여 광복군에 입대하고는 지금까지 올라오지 않았습니까?”

“빽도 상당하지만 그에 걸 맞는 실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

최주평의 말에 김장표 중위는 조금 머쓱한 반응을 보인다. 지금이야 병주의 휘하 내에서 활약을 하고 있었다. 김장표 중위는 최주평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그런데 파벌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파벌? 그 무슨 소리야?”

김장표 중위의 말에 최주평의 얼굴은 짐짓 구겨진다.

“그 일본군 출신, 원조 광복군 출신, 탈영 광복군 출신, 만주군 출신 꽤 많은 출신대로 파벌들이 갈라져 있지 않습니까?”

최주평은 그 말에 한 마디 말한다.

“지금은 끈 놓을 시기가 아니야. 그리고 내 처지는 꽤 유연하다고. 광복군 출신에 알고, 만주군 출신에 해당되기도 하지. 그런데 뭐가 문제야?”

“아마 전쟁이 끝나고, 그 파벌 싸움이 본격화될 것 같습니다.”

“전쟁이 끝난다라. 그럴 수도 있겠군. 일단 중공군 선봉대들을 격멸시킨다면 서울에 공방전을 펼치는 본대를 포위시킬 있으니 말이야. 그 이후부터는 압록강 두만강까지 이어지는 북상이겠고, 그러면 그 경계면에서 국지전만 펼쳐지겠지.”

최주평의 말에 김장표 중위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 말한다.

“아마 그 때쯤이면 논공행상이 펼쳐질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말에 최주평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 마디 대답한다.

“그래도 내가 급히 올라가는 일은 별로 없을 거야. 잘하면 준장을 달 수 있겠고, 몇 년이 지나면 소장 계급을 달겠지.”

김장표는 그 말에 정확하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지금은 파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우선 중요한 것은 되놈 빨갱이새끼들을 격멸시키는 것이니까 말이야.”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났다.

충청북도 단양군 남쪽 산악지역에 급히 대대병력을 이끌고, 내려온 김영옥 대대장은 휘하 지휘관들을 시켜 병사들에게 참호를 파놓으라고 지시를 내린 뒤 생각에 잠긴다.

‘으음. 과연 상부 측의 생각대로 전황이 이루어질까?’

그는 조금의 가능성도 놓치지 않았다. 전쟁이 사람들 머릿속대로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나 다름없다. 이미 여기에 오기 전부터 주흘산 지역에 국군 군단 포병 여단이 미리 자리를 잡아놓았다는 말을 들었다. 퇴각하는 중공군 무리들을 포격으로 박살 내놓고, 그다음 보병 사단들을 투입시켜 완벽히 격멸시킨다는 것이 군단의 작전이었다.

작전의 내용은 상당히 간단하고, 정석적이었다. 그런데 과연 중공군 선봉대 사령관이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아마 대책을 강구할 것인데. 과연 그 것이 무엇일지 생각하다 이내 자신에게 지급된 핸드폰을 바라본다.

아버지가 이 한국 출신이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지금 그는 이 곳에 도착하여 그 곳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 곳은 상당히 기묘하기 그지없었다. 처음 마을의 모습을 살필 때는 미국에서 상상하기 힘든 가난한 곳이었지만 한편으로 이 물건을 만든 곳이 여기서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김영옥 대대장은 모순을 느낀다.

‘적어도 연락을 해두는 것이 좋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내 핸드폰 뚜껑을 열고, 번호를 누르기 시작한다. 그 후 귀에 가져다 대며 연락을 기다린다.

-뚜르르 뚜르르 철컥!-

-예. 누구십니까?-

“미 보병 1대대 대대장 김영옥 소령입니다.”

-아. 그 쪽이 그 곳에 배치된 보병 대대장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이 쪽에 배치되어 방어준비를 박차고 있는데 상당히 궁금한 점이 있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말씀해보십시오.-

“군단 쪽의 작전은 제가 알기로는 포격을 이용한 뒤 보병들을 투입시켜 적들을 격멸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 그런 작전의 내용입니다. 문제될 것이 있습니까?-

“적들이 그런 작전에 뻔히 당할까? 라는 의문이 들더군요.”

-하하. 그들도 그런 작전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뭐가 어쨌다는 것입니까?-

“예?”

김영옥은 그 말에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적들이 대비책을 강구한다는 것을 아는데, 대비책을 무시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지 않나? 김영옥은 영 꺼림칙한 얼굴을 하고선 이내 한 마디 묻는다.

“그 대답은 무슨 의미입니까?”

-한 가지 가정을 해보죠. 만약 중공군 선봉대의 사령관이 당신이라고 합시다. 우리의 작전 계획이 포들을 동원하여 대열을 흐트러뜨린 뒤 보병들을 투입시켜 격멸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 당신은 어떻게 대처할 생각입니까?-

“아무래도 방어 준비를 해놓고, 응?”

김영옥은 자신이 말하다 이내 맹점을 파악한다. 순간 김영옥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대처할 방법이 순간 머릿속에 사라진다. 아까까지만 의문을 제기할 때만 하여도 적의 공격을 알고 있으면 어떻게 대처할지 머릿속을 그리던 것이 순간 사라진다.

-지금 퇴각하고 있는 상황, 자신들에게 포탄들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럼 퇴각을 멈추고, 방어준비를 할까요? 뭐 상관없습니다. 방어준비를 한다면 포격으로 멈추고, 차근차근 포위시켜 공격하면 됩니다.-

순간 김영옥은 핸드폰 너머의 상대가 조금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적들의 상황을 미리 파악한 뒤 이런 단순한 작전이 최상의 작전으로 탈바꿈했다.

-서양에서는 이런 말이 있더군요. ‘simple is best.’라고 말입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 역시 물어보고 싶습니다. 문경에서 충주로 빠지는 길이 있지 않습니까? 만약 중공군들이 충주로 진격한다면 어쩔 생각입니까?”

-아 그래서 그 쪽에는 한 가지 정보를 흘렸습니다. 미 사단들이 그 쪽에 배치가 되어있다고 말입니다.-

“예에!? 그건 기밀 유출이지 않습니까?”

-그 건에 대해선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미군 사령부에게 문의해보고 허락받은 일입니다.-

김영옥은 그 말에 침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미리 허락받고 이런 행동을 하다니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것보다 중요한 것은 당신 대대의 존재입니다. 아마 중공군들이 그 쪽의 전력이 대대 규모라는 것을 안다면 그 쪽에 공세를 집중시킬 여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선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그 쪽에 몰이한다는 편이 정확하겠군요.-

김영옥은 그 말에 순간 기분이 나쁘기 시작한다. 자신을 총알받이로 내세우겠다는 말과 다를 바가 뭐가 있는가?

-그래서 그 쪽이 잘 버틸 수 있도록 물자들을 보낼 용의가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으음. 솔직히 한 가지 궁금한데.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런 말을 하시는 것입니까?”

-적어도 상황을 모르다 알아차리는 것보다 미리 양해를 구하는 측이 좋지 않습니까? 이 것으로 저를 뭐라 말을 해도 달게 받겠습니다.-

김영옥은 상대방이 이리 말을 하자 어쩔 수가 없었다. 적어도 사정을 미리 말을 하니 말이다. 그래서 김영옥은 상대방이 주고자 하는 물품들이 궁금했다.

“그 물자들이 무엇입니까?”

-기관총이나 소총 같은 화기류들이야 충분할 것입니다. 그 쪽에 유탄발사기와 유탄기관총을 넘기겠습니다. 그럼 방어가 한껏 수월해질 것입니다.-

“흠. 유탄발사기와 유탄기관총이라.”

김영옥은 그 것들에 대해 미리 말을 들어봤다. 유탄발사기는 소총에 결합시켜 유탄들을 발사시키는 것이고, 유탄기관총은 그 유탄들을 연속으로 쏘아대는 무기였다. 상부 측에서 그 화기들에 대해 한국 국방부 측에 요구를 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 무기들이 자신들에게 지급된다니 김영옥은 어느새 조금 기분이 풀린다.

“좋습니다. 그 물건들이 있다면 적어도 방어를 하기에 수월해지겠군요.”

-거기다 방어하기까지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뒤에서 우리가 그들을 섬멸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만해보이기까지 한 그의 목소리에 김영옥은 든든하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덕분에 모든 의문이 풀렸습니다.”

-예. 전쟁이 끝나고, 한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좋겠지요.-

“그런데 당신 이름이 길병주라고 했나요?”

-제 이름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혹시 그 길병재라는 사람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제 친형입니다. 그 것으로 대답이 되었습니까?-

“아 아닙니다. 그럼 전투가 끝난 후에 찾아가 뵙겠습니다.”

김영옥은 병주와의 연락을 끊어버리고, 길병재, 길병주에 대해 생각한다.

‘정말이지. 대단한 형제들이군.’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 곳으로 몰려올 중공군들을 막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

1950년 9월 2일, 중공군 선봉대들의 대철수가 시작되었다. 문경 점령에 실패하고, 이번에 적들의 추격 섬멸에 대비를 해야 한다는 마음에 중공군 병사들의 사기는 급락에 급락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미 목표 달성은 실패하고, 보급은 끊긴지 오래 상대방의 전력은 막강하기만 했다. 그런 와중에 통한의 총퇴각은 병사들의 의지를 흩뜨리기 놓기 충분한 시점이었다. 물론 그런 병사들의 분위기는 지휘관들 역시 잘 알고 있었지만 이대로 가다간 방법이 없었다. 퇴각이라는 강수를 둬서 전력을 보존하는 방향이 옳다고 여겼다.

자신들이 문경에 진출했던 경로를 그대로 퇴각로로 사용했다. 사실 김영옥 대대장이 의문을 제기했던 대로 문경에서 충주로 진출하는 경로 역시 존재했지만 그 쪽에 이미 미군 사단들이 자리 잡았다는 소식이 중공군 선봉대에 들리자 송시륜은 어쩔 수 없이 단양군 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만약 미군들이 이 사실을 알아차린다면 한국군과 미군들이 자신을 포위섬멸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렇게 중공군들의 철수는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중공군들의 행동에 대해 병주가 모를 리는 없었고, 미리 주흘산 지역과 단양 쪽에 갈 때 거치는 산들인 운달산, 대미산, 황장산 지역에 사단 포병 전력과 군단 포병전력을 미리 배치시킨 지 오래였다. 그리고 단양 쪽에 철수하며 이동 중인 중공군 병사들에게 집중적인 화력이 투사되기 시작한다.

-쿠콰아아아앙! 쿠쿵!-

국군이 보유한 야포들과 자주포들이 일시에 포탄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중공군 지휘관들은 적들이 미리 자리를 잡고, 포격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일단 포격을 피하고자 급히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포격은 멈추지 않았다. 미리 중공군들의 경로에 화력들이 집중되도록 포들의 배치가 미리 끝난 상황이었다. 송시륜은 이런 상황에 허망하다는 표정으로 한 마디 말한다.

“제길. 진짜 끝인 것인가?”

왕걸연이 그 말에 짜증을 내며 한 마디 대답한다.

“지금 적 포병들이 있는 구릉지 쪽에 병사들을 투입시켜 포격만은 막아야 합니다! 어서 명령을 내리십시오.”

“그 말대로 해라. 하아...”

송시륜은 그렇게 명령을 내리지만 이미 그의 겉 얼굴에는 절망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렇게 퇴각하는 중공군 선봉대에 불벼락들이 쏟아진다.

============================ 작품 후기 ============================

당시 중공군을 이끌었던 송시륜은 결코 무능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결과적으로 무능하게 되었네요. 끄응. 할 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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