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557화 (557/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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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1950년 9월 12일, 맥아더 총사령관이 지휘하는 미 부대들이 인천을 통해 들어오고, 경기도 강원도 쪽에 북상한 국군 제 3 군단과 미군들, 그리고 중공군 본대의 공세에도 철벽처럼 지키던 군단 수도방위군단, 개성에 먼저 진출한 제 1군단의 한 개 사단까지 총동원하여 중공군 본대를 향해 공세에 들어갈 이 시점.

부산 서구의 유명 요정집이라 불리는 ‘한유루’라는 곳이 있다. 이 ‘한유루’는 일제 시기 시절부터 일본인 및 기세가 등등한 유력가들이 애용한 곳이었다. 그런 ‘한유루’의 한 방 안에서 잔칫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호호호호. 장관님도 이 잔을 드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장관이라 불리는 남성 옆에 있던 예쁜 기생이 웃음을 팔며 술을 따라 그 남성의 입에 가져다주자 남성은 기쁜 마음으로 술을 냅다 받아 마신다. 그리고 남성은 식도 안에 들어오는 술의 취기에 화기를 느끼며 기뻐한다.

“크으. 이런 맛에 요정 집에 들어가는 거지. 그래. 네 이름이 ‘초영’이라고 했나?”

초영이라 불리는 기생은 그 말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이 하찮은 기생의 이름을 불러주시니 감격할 따름입니다.”

“그래. 암 그래야지. 하하하. 자네들도 어서 들게.”

그 말에 그 남성 주위에 있던 여러 남성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젓가락을 들고, 상에 차려진 음식들을 한 점씩 집어 먹는다. 그렇게 잔치가 벌어지며 지금껏 쌓은 정신적 피로를 풀 때쯤 한 사람이 취기가 있는 얼굴로 장관이라 불리는 남성에게 한 마디 묻는다.

“그런데 장인 어르신. 무슨 일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까?”

그 말에 장관이자 어르신이라 불리는 남성, 즉 국방부 장관인 신성모는 자신에게 말을 건 사위인 김윤근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이런 날에는 사위 모셔다 놓고, 술을 좀 마시는 것이지. 왜 이렇게 말이 많은가?”

그 말에 김윤근은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신성모를 바라보며 한 마디 묻는다.

“저같이 무식한 놈을 부를 이유가 있겠습니까?”

“흥. 뭐가 그리 두렵나? 내가 자네의 장인이지 않나? 그리고 국방부 장관까지 역임했고, 대통령 각하의 신임까지 두터운 마당이지.”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신성모는 그 말에 자랑스러워하다 이내 한숨을 푹 내쉰다.

“하아... 일이야 잘 돌아가고 있는데. 내가 조금 걱정이야.”

김윤근은 그 말에 조금 의아함을 느꼈다. 일이 잘 돌아가는 것은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매번 TV에서 전쟁의 상황에 대해서 떠들어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공군 본대의 서울 포위를 풀어버리고, 총 반격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 국방부 장관인 신성모에게 있어서 이번 일은 호재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왜 신성모가 한숨을 쉰다는 말인가? 그 의문은 신성모의 입에서 나왔다.

“그 놈. 아니 그 일가가 너무 크고 있어.”

김윤근은 ‘그 일가’라는 단어에 누구인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씨름만 하다 살아온 자신도 알고 있는 그 누군가였다.

“길씨 일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래. 그 놈이 국군 제 3군단을 성공적으로 지휘하여 중공군 선봉대를 전멸시키고, 이번 서울 포위를 풀며 전공을 획득하고 있지 않은가? 미군 측에서는 우리 국방부보다는 그의 말을 더 듣고 있는 실정이야.”

신성모의 말을 듣자 김윤근은 자신이 생각해도 조금 심각하다고 여겼다. 현재 신성모와 길씨 일가의 사이는 불화였다. 대놓고 전쟁할 거리는 안 되었지만 현재 견제부터 해대고 있는 그런 사이였다.

현재 길씨 일가의 수장이자 가장이라 할 수 있는 길남효부터 가족들을 이끌고, 부산에 피난 온 사람들을 도우면서 지내고 있었다. 명성 면에선 이미 신성모와 길씨 일가의 차이는 컸다. 물론 김윤근은 신성모의 사위인지라 길씨 일가의 선행에 대해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신성모는 계속해서 말을 한다.

“합참 쪽에서는 그 길병주를 북부군 사령관으로 임명하려고 하고 있고, 전쟁이 성공리에 마무리되면 나야 타격이 없겠지만 그 길병주가 군부의 확실한 권력자로 임명받게 된다는 것이지.”

“그렇게 되면 장인어른에게 무슨 일이라도 닥치게 된다는 것입니까?”

신성모는 그런 김윤근의 질문에 혀를 차며 한 마디 말한다.

“아 그 놈들이 나에 대해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나? 아마 날 실각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냐? 이 말이란 것이지.”

“으음...”

신성모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초연은 신성모를 보고 속으로 한 마디 말한다.

‘쯧. 한 나라의 위정자라는 자가 잘하는 짓이다. 진짜 차이부터가 확 난다. 한 사람은 지금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데, 한 사람은 여기에 앉아 대판 술부터 마시며 주정이나 부리니...’

초연은 상류층의 행각을 애초부터 경험한 기생이었다. 그래서 신성모를 속으로 한심하게 여겼고, 또 상류층에 대해 한심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신성모가 길씨 일가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면서 초연은 그 일가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사실 상류층이 되면 우선 비밀리에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부터 찾는 편이었다. 그 장소가 바로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요정집인 것이다. 그런데 이 ‘한유루’에 길씨 일가에 해당되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았다.

‘뭐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이야 찾아왔겠지만...’

그 때, 초연의 귀에서 성난 신성모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 뭐해! 어서 술을 따르지 않고?!”

신성모의 성난 말투에 초연은 생각을 그만두고, 이내 웃음을 지으며 신성모가 내민 술잔에 술을 쪼르르 붓는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젓가락을 들고, 음식 하나 집더니 이내 신성모의 입에 가져다 준다. 신성모는 그런 음식을 잘 받아먹으면서 아까의 이야기를 계속한다.

“요즘 대통령 각하께서도 길씨 일가에 대해 고민이 많으신 것 같네.”

김윤근은 그 말에 잠시 한 마디 묻는다.

“대통령 각하께서도 눈치를 보는 일가가 아니겠습니까?”

“군, 민, 그리고 명성까지 있는 집안이고, 거기에 중국, 미국의 정재계까지 관련된 일가이니 어쩔 수 없지. 각하께서도 그들을 함부로 내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으음...”

“더욱 큰 문제는 여기서 그들을 막지 못한다면 그들의 성장세는 더더욱 높게 뻗어 나갈 것이란 말이야.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나? 대통령 뒤의 흑막이 되는 것이지. 즉 대통령부터가 꼭두각시가 된다 이 말이야.”

김윤근은 그 말에 ‘설마 그렇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의 장인어른 신성모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 그들을 막을 방법부터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그러고 있는데. 못하니까 문제이지. 쯧. 그 놈의 정치자금부터 그들이 대고 있는데. 공격하면 곤란하잖아.”

“아...”

사실 신성모가 대통령의 심복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은 그들과 비교할 수 없었다. 자신은 대통령의 배경을 바라보고 있는 처지였지만 그들은 이미 전반적으로 세력을 구축해도 될 만큼 기반과 자금이 튼튼했다. 현재도 그들이 지원하는 정치인이기도 한 장성환 국회의원은 여러 당파에서 이 쪽으로 오라고 권유를 받는 처지였다.

“그들과 맞서려면 단 한 가지밖에 없겠지.”

김윤근은 그 말에 침을 꿀꺽 삼키면서 한 마디 묻는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정치자금을 이 쪽에서 대주는 수밖에.”

그 말에 김윤근은 깜짝 놀라며 한 마디 묻는다.

“아니 그 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장인 어르신부터 공장이나 땅을 가지고 계십니까?”

신성모는 그 말에 씁쓸한 얼굴을 하고선 한 마디 말한다.

“그래. 그 기반이 없지. 그런 기반들 자체를 그 쪽 일가가 몽땅 가져가 버렸으니 그 쪽에 파고들 수는 없지. 그럼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지 않겠나?”

“한 가지라고 하신다면...”

“그래. 권력이야.”

그 말에 김윤근은 호기심을 가지며 신성모에게 한 마디 묻는다.

“권력을 이용해서 재산을 축적하는 것이야 뭐... 그런데 어떻게 재산을 모을 생각입니까? 그들에게 협박할 생각입니까?”

“미쳤어? 그들을 협박하다 나까지 죽을 판국인데.”

“으음. 그렇다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판을 벌릴 수밖에 없겠지. 그렇다면...”

신성모는 이내 자신 옆에 있는 초연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는 눈치를 준다. 그러자 초연은 그 눈치에 이 방에서 나가야함을 직감하고는 신성모에게 한 마디 말한다.

“이 아낙네들이 듣기 힘든 말을 하신다면 얼른 자리에서 나가겠습니다.”

하지만 신성모는 그 것까지 모자르는지 한 마디 말한다.

“만약 이 사실이 네 귀에 들려 바깥에 퍼진다면 너부터 죽을 준비를 하라고 말하고 싶구나.”

신성모의 소름끼치는 협박에도 초연은 호호 웃으며 대답한다.

“이 아낙네가 그런 목숨 아까운 짓을 벌이겠습니까? 또 여기에 신세를 지게 하는 한유루를 망하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신성모는 그 대답에 조금 안심이 되는지 초연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럼 계집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 있어라. 때가 되면 다시 부르겠다.”

초연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다.

“예. 알겠습니다. 장관 나리.”

그리고는 초연을 필두로 남성들 옆에 있는 기생들이 방 밖으로 나간다. 신성모는 그녀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김윤근과 자신의 측근들 밖에 없자 슬슬 말을 걸 준비를 하고는 입을 뗀다.

“이제 우리끼리 남았으니 본격적인 이야기를 할 때가 온 것 같군.”

김윤근과 그 주위에 있던 남성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신성모는 스산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설명하기 시작한다.

“사실 내가 국방부 장관이지 않나? 그만큼 권한이 많지. 이번에 대한청년단을 이끌어 새로운 병력들을 만들 계획이야.”

김윤근은 그 말에 의아한 얼굴로 한 마디 묻는다.

“그 계획이라면... 전에 수도방위군단에 편입된 두 개 사단처럼 만드는 일입니까?”

“그거야 내 입지를 위해 만든 사단들이고. 이번 건수는 다르다 볼 수 있지. 알다시피 재산을 모으는 일이 될 거야.”

김윤근은 그 말에 잠시 이해를 못하다 이내 이해를 하고는 반문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병력들을 만들 계획에 책정되는 그 예산들을 노리는 것입니까?”

신성모는 그 말에 짝하고 박수를 치며 김윤근에게 대답한다.

“그렇지. 어차피 사람들을 모으고, 그냥 누더기, 죽창 하나만 쥐어주고 행군 좀 하다 자연적으로 해산시키면 그만이지.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이야 우리가 먹으면 그만이란 소리야.”

김윤근은 그 말에 너무 놀랐는지 들고 있던 술잔을 스르르 떨어뜨린다.

-땡그랑.-

술잔이 상에 부딪치며 또르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고, 신성모는 손가락으로 얼굴을 긁으며 김윤근에게 한 마디 한다.

“내가 뭐 못할 소리를 했는가?”

“장인어른. 제가 아무리 무식한 놈이라고 하지만... 이번 것은 걸리면 아주 큰일 나는 것입니다.”

신성모는 그 말에 걱정도 안 된다는 얼굴을 지으며 말한다.

“그거야 아무런 대책 없이 낱낱이 공개되도록 놔두면 그렇게 되는 것이고. 다 방법이 있어.”

김윤근은 그 말에 걱정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혹했다. 그런 커다란 일을 두고,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만들어놨다는 장인어른의 호언장담에 그는 다행스럽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어차피 이 일 자체가 나뿐만 아니야. 각하께서도 원하신 일이지.”

“그 말씀은?”

“다 각하의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벌이는 일이야. 내가 그 계획의 맥을 맡고 있는데. 각하가 나를 버리실 수 있겠나?”

“과연 그렇게 되겠습니다.”

“거기다 그 일에 나만 주도하는 것이 아니야. 그들까지 같이 끼어들게 하는 것이지.”

“예? 그들이라 한다면 길씨 일가 말씀입니까?”

“그렇지. 지금 좋은 사람 흉내를 내고 있는데. 이번 일에서 과연 안 해쳐먹을 수 있을까?”

신성모는 그 말을 하지만 표정 속에서는 이미 확실하다 라는 감정이 자리를 잡았다. 김윤근은 그런 그의 얼굴을 보면서 한 마디 말한다.

“그들을 옭아 맬 생각입니까?”

“그래. 그들에게 우리가 할 일들까지 다 뒤집어씌우는 것이지. 그렇게 되면 지금의 그들을 박살낼 수 있겠지.”

김윤근은 그 말에 한편으론 한 가지 의문이 생겼고, 이내 그 의문을 던진다.

“그런데 그 일의 낌새를 야당 측에서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야당? 그 백범을 따르는 얼간이들 말인가?”

“예. 야당도 그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데...”

“걱정하지 말게. 어차피 그들의 숨통을 끊어 놓는 역할을 야당에서 하게 될테니 말이야.”

“으음... 그 말씀은?”

“아마 도중에 발각되고 나면 야당 측면에서 파헤치자고 소리가 나올 텐데. 그 현장을 내가 아닌 그 쪽으로 집중시키는 것이지.”

“......”

“후후후. 어떤가? 이 방법으로 그들을 물 먹일 수 있고, 재산도 얻을 수 있고, 일석이조 아닌가?”

김윤근은 그 말에 한 마디 말한다.

“정말 엄청난 방법입니다. 저로썬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그런 방법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을 언제 시작할 생각입니까?”

신성모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 말한다.

“지금은 조금 그렇고... 아무래도 2달 뒤에 본격적으로 시작해야지. 지금부터 그 때까지 물밑 작업을 해대는 거야. 언론부터 시작해서 중공군의 침략에 부족했던 병력 수를 확장시켜 문경까지 밀리는 이 사태를 다시는 발생시키지 말도록 말을 하는 거야. 그러면 이 계획에 대한 정당성을 얻겠지.”

김윤근은 그 말이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그 정당성을 바탕으로 그 군대. 아니 국민방위군을 결성할 자금을 획득하고, 그 자금을 얻은 뒤에 알아서 하라고 운영하는 거지. 자네가 그 운영을 주축으로 하는 것이고 말이야.”

“그 말씀은?”

“그래. 이번 건수는 자네가 직접 해봐.”

김윤근은 그 말에 곤혹스러웠지만 신성모가 자신을 키워주기 위해 이 계획을 세운 것이라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알겠습니다. 장인어른.”

“그래. 그래. 일이 잘 풀리면 나 역시 정치인 사위를 얻겠군. 하하하하.”

그 말에 김윤근을 포함한 대한청년단 간부들 역시 하하 웃기 시작한다. 그들은 이 일이 아주 잘 풀리리라 예상했다. 대통령 각하의 빽 부터 뒤집어씌울 상대까지 있으니 빠져나갈 구멍까지 완벽했다. 이제 11월에 실시할 날까지 물밑 작업만 확실히 하면 되는 일이었다. 신성모는 다 잘 될 거란 믿음을 가지고 다시 초연을 포함한 기생들을 불러서 술판을 벌인다.

============================ 작품 후기 ============================

국민방위군 사건에 대해 찾아보니까 1950년 12월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일단 이 이야기에서는 신성모 국방부 장관이 정치자금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일으킨 사건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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