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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인생-563화 (56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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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1950년 9월 16일, 병주의 전속부관 정철회 대위는 영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병주를 바라본다. 정철회 대위는 병주를 향해 한 마디 말한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뭐가?”

“아니. 그 이런 전쟁터에 피난민들을 우리가 직접 이끌어야하는 것도 사실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렇게 직접 군단장님이 나서서 그들을 통제해야겠습니까?”

정철회 대위의 말에 병주는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피난민들은 현재 정보가 아무 것도 없어. 어딘가에 전투가 터졌다는 소식이 귀에 들릴 뿐이지. 전쟁터와 가까운 마을에서는 혹여나 모를 전투 때문에 민간인들이 비명횡사한다고 생각해보게.”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이...”

“이미 발을 가고 있으니 도중에 돌아가는 것도 웃기지 않은가?”

“끄응...”

정철회 대위는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병주를 졸졸 따라다닐 뿐이다. 그들을 호위하는 병사들은 묵묵히 그들을 따라갈 뿐이다.

병주의 일행이 찾은 것은 어느 산골 마을이었다. 병주의 군단이 주둔하고 있는 곳은 횡성 부근이었다. 그 산골마을은 횡성 위쪽에 있었다. 병주는 원래 산골마을에서 자란 지라 마을의 풍경은 상당히 익숙했다. 그러나 병주의 전속부관 정철회 대위는 도시에서 자란 지라 이런 오지가 상당히 익숙하지 않았다. 물론 그의 마음속에서는 야전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이런 오지에 생활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마을 주민들이 밭을 매고 있었다. 호미를 들어, 밭의 돌들을 골라내고 있었다. 그런 풍경 속에서 군인들이 들어서는 모습은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다만 이미 이 마을은 군인들이 여러 번 거쳤기에 마을 주민들은 병주의 일행을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다. 하여튼 전쟁 분위기에 맞지 않게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그 때, 병주를 반기는 한 노인이 있었다. 바로 이 마을의 촌장이었다. 밀짚모자로 가리기는 했지만 조금 드러나 보이는 틈 사이에 머리가 흰 것이 조금씩 보이는 그의 모습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지금까지 농사일을 하며 사느라 상당히 억세 보였다.

“또 군인양반이오?”

촌장은 병주의 모습을 위아래로 쳐다보다 이내 한 마디 말한다.

“보기에는 상당히 젊어 보이는데... 어떤 분이오?”

그 말에 정철회 대위가 나서서 촌장에게 대답한다.

“이 분은 횡성 전반에 주둔 중인 군단의 군단장 길병주 중장이라고 합니다.”

“으음? 중장? 허... 꽤 높으신 양반이 찾아 왔네. 겉보기엔 상당히 젊어 보이는데...”

병주는 촌장에게 인사하고 자기 소개를 다시 한다.

“국군 제 3군단의 군단장 길병주 중장이라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이 마을에 찾아오는 군인들 전부 3군단 소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으음... 그런데 그 높으신 양반이 여기에는 왜 찾아오시오?”

“지난 번에 미리 말씀드렸던 피난 건에 대해서...”

병주가 그렇게 운을 떼자 촌장은 얼굴을 구기며 한 마디 대답한다.

“일 없소. 가보시오. 전쟁 터졌다는 소식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또 전쟁터가 인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내 가족은 떠날 생각이 없소.”

“그렇습니까? 그럼 혹여나 이 마을에서 피난 가겠다는 마을 사람들은...”

“한 두 가족이 짐을 꾸리고, 아까 말한 장소에 기다리고 있을 것이오.”

“상황을 보면 상당히 심각하다는 것을 촌장님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알고 있지. 전쟁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던가? 다만 터전 문제도 있고 하니 떠나기 망설여지는 것이지.”

“......”

“그 쪽 양반이 피난을 간 후, 전쟁이 끝나면 다시 되돌아갈 수 있다고 말을 하고, 또 대책도 마련되었다는 말을 들었지만. 미안하게 되었소. 이미 예전에 마을 사람들에게 피난가라는 말을 했으니. 아마 시일이 지날수록 떠날 사람은 떠날 것이오. 그러니 자꾸 찾아오지 마시오.”

병주는 그 말에 고개를 바짝 숙이며 촌장에게 인사한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죄송은 무슨. 휴우. 내가 다 죄송하지. 적어도 군인들 중에서 우리들을 피난시키려고 매번 설득하고, 하는 사람들은 없어요.”

“......”

마을의 촌장과 한창 대화를 나눈 병주는 별수 없다는 표정으로 촌장과 헤어지게 된다. 정철회 대위가 그런 병주의 모습에 한 마디 말한다.

“민간인들에게 굳이 이렇게 피난가라고 매번 말하는 것도 조금 그렇습니다.”

“그래도 해야지.”

“물론 그 말이 정답입니다만. 말을 듣지 않으니 답답합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이 곳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니 상대방의 의사를 묻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나?”

“그 놈의 자유민주주의. 그 놈이 밥을 먹여 줍니까?”

병주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며 한 마디 말한다.

“밥은 안 먹여주지. 하지만 좆같은 일은 덜 당하잖아.”

“......”

“일단 마을에서 쉬다 민원 들어온 거 처리하고, 피난의사를 밝힌 마을사람들을 데리고, 철수하도록 하지.”

정철회 대위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병주의 일행들은 휴식을 취하기 시작한다.

한편, 지게꾼으로 위장한 저격수 박용갑을 포함한 그의 호위 두 명 역시 병주가 있는 마을 근처에 왔다. 박용갑은 옆에 있는 한 사람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러니까 그 목표물이 이 마을에 있다는 것 확실하다는 말이지?”

그 말에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마을 아이들 중 누추한 애를 초콜릿으로 꼬여 알아본 결과 확실하다고 합니다.”

“쯧. 안타깝군. 그런 사람이 목표물이라니 말이야.”

박용갑은 그렇게 말하고는 시선을 자신이 진 지게에 돌린다. 장작 안에는 그 흉악한 물건이 분해되어 들어가 있었다. 그 말에 나머지 호위 한 사람이 덧붙여 말한다.

“그 놈은 단순한 반동이 아니겠습니까?”

“그래. 반동 노무 새끼지.”

“그런데 언제 시작하실 생각입니까?”

박용갑은 그 말에 한 마디 말한다.

“일단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마을 안 분위기를 살펴보는 것이 좋겠군. 목표물이 어디로 있는지. 또 일을 치를 적절한 장소를 찾는 것도 중요해.”

그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이번 일은 상당히 신중해야 했다. 기회는 딱 한 번뿐이었다. 불리한 전황을 뒤집기 위해선 장군을 암살해야 했다.

두 사람 중 덩치가 큰 사람이 지게를 메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박용갑은 나머지 한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며 한 마디 말한다.

“우리는 마을 주변을 살피면서 장소를 찾지.”

“예. 알겠습니다.”

박용갑과 그 한 사람은 곧 발걸음을 옮겨 마을 주위를 빙 둘러 보기로 한다. 세 사람은 그렇게 찢어지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한편, 조금 휴식을 취하다 병주는 곧장 마을사람들을 만나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로 민원을 처리하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흠. 그러니까 군인들 중 몇 사람이 먹을 것을 요구했다는 말씀입니까?”

병주가 묻는 말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중년 부부는 두렵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자기들은 이 곳을 지키는 군인들이니 당연히 그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우리 집에서 키우는 닭을 가져가버렸습니다.”

병주는 그 말에 눈을 조금 찡그린다. 그리고 두 사람을 쳐다보지만 그 두 사람의 눈빛에는 거짓이 없어 보였다. 병주는 그 말에 한 마디 말한다.

“그 외에는 범죄 사실을 저지르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 중년 부부 중 남성이 어렵사리 한 마디 말한다.

“사실 우리 집 순이도 요구했습니다만.”

“순이?”

“우리 집에서 키우는 소입니다.”

“소라...”

지금 소는 당연히 농가에서 거대한 재산이라고 볼 수 있다. 소가 없으면 농사 일 자체가 엄청 힘들어진다. 그러므로 소를 보유한 농가에서는 소를 마치 가족처럼 애지중지 대한다. 지금 소의 가치는 거의 집 한 채 값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막대했다. 그런데 그런 소까지 요구하려고 하다니 병주의 눈썹이 조금 휜다.

“지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떤 한 병사가 소고기가 먹고 싶다고 말을 하다 이내 그의 동료 병사가 일을 더 키울 셈이냐고 하면서 말렸습니다. 그래서 순이는 잘 있습니다.”

“흠. 그들에 대한 단서는 없습니까?”

“단서라고 해봤자 다 똑같은 복장을 입었기에 구별이 안 갑니다. 거기다 얼굴 역시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전부 말해주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조금 특징들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시다면야...”

그는 그 말에 기억나는 대로 병주에게 설명을 해준다. 병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중년 부부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다.

“죄송합니다. 제 불찰로 여러분께 폐를 끼쳤습니다.”

“아니... 그게...”

중년 부부는 갑작스러운 병주의 태도에 얼떨떨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하지만 병주는 사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병주는 직접 군복 안주머니에 있는 지갑을 꺼내 돈을 그들에게 넘긴다. 10원이었다. 닭의 값치고는 꽤 큰 액수에 중년 부부는 놀라며 병주에게 말한다.

“아니... 이건...”

“제 병사가 닭 하나를 잡아먹은 값입니다. 제가 군단 안에서 누누이 말하는 이야기하는 사실이지만 이렇게 여러분께 피해를 끼쳤다면 당연히 피해 보상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받으십시오.”

“그래도 이건...”

중년 남성은 조금 어렵다는 표정으로 돈을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병주는 억지로 돈을 쥐어주고는 다시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다.

“다시 한 번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말한 그 병사들은 꼭 적발해 일벌백계할 생각입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으음...”

그 이후 병주는 중년 부부와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진다. 병주는 자신의 뒤를 따라다니는 부관 정철회 대위에게 한 마디 말한다.

“아까 말해주었던 특징들은 다 적었지?”

그 말에 정철회 대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직접 찾아내 처벌할 생각입니까?”

“육군 본부에서 민간인에게 피해를 끼친 군인들은 어떻게 처벌해야하는지 지시사항이 떨어져 있을 텐데?”

“물론 그렇습니다만.”

“자네도 알다시피 겨우 닭 하나 정도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 옛 말에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된다는 말이 있지. 군 안에서 돌고 있는 범죄 행각을 잡아내지 않으면 독버섯처럼 불어나게 될 거야.”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알겠습니다.”

정철회 대위는 이런 측면에서 병주가 상당히 철저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병주가 병사들에게 잘 대해주고, 또 훈련과 일만 잘 하면 병사들을 괴롭히지 않는다. 거기다 병사들을 위해 시설 투자 및 급양 투자도 많이 하는 편이지만 그런 병주가 철저하리만큼 규정을 적용하는 사실이 있었다. 바로 일방적인 구타, 가혹해위, 범죄, 또 대민피해가 그 대표적인 예였다.

그 것들에 대해 병주는 사이가 어떻든 간에 무조건 철저히 처리했다. 그리고 그 대상이 어떤 대단한 집안이라고 봐주는 행동 따위는 없었다. 철저하리만큼의 일벌백계, 그 때문에 병사들과 장교들은 병주가 명시한 금지 항목만큼은 철저히 안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물을 어지럽히는 미꾸라지들은 계속해서 나타났다. 그 때마다 병주는 계속해서 처벌했다. 정철회 대위는 그런 분위기를 잘 알기에 이런 일을 저지른 병사들을 보고 속으로 생각한다.

‘쯧. 왜 이런 짓을 저지르고 난리야? 또 시끄러워 지겠군.’

아마 그 병사들은 곡을 해댈 것이 분명했다. 이미 그런 모습들을 정철회 대위는 잘 봐왔기 때문이다. 물론 처벌될 것을 알고, 반항하는 인간들이 있기는 하지만 철저한 일 처리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병주가 본부로 돌아온다면 즉시 헌병들을 움직여 그 병사들을 알아낸 뒤 처벌을 할 생각일 것이다. 그 병사들의 지휘관은 아느냐 아니면 모르느냐에 따라서 처벌 강도가 달라질 것이다.

그렇게 중년 부부의 민원을 처리하고, 다시 다른 마을사람들을 만나러 걸음을 걷는 와중 정철회의 눈에서 자신들을 흘깃 살펴보는 지게꾼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수상한데?’

마을에서 장작들을 수집하려는 지게꾼이 없지는 않지만 이렇게 자주 관찰하는 지게꾼은 처음 이었다. 자신들을 보며 신기하다는 그런 눈빛이 아니라 염탐하는 그런 눈빛이었다. 하지만 수상하다고 해서 붙잡아 검문할 수는 없었다. 순진한 지게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때, 병주가 지게꾼을 잠시 쳐다보다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두고, 걸어간다. 그렇게 걸어가다 아까 그 지게꾼의 모습이 조그마한 점으로 보일 때쯤 정철회 대위가 병주에게 한 마디 말한다.

“저 군단장님. 아까의 그 지게꾼은...”

병주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며 한 마디 말한다.

“쯧. 너무 노골적이야.”

“예?”

“너무 티가 난다고. 나를 대상으로 염탐하는 눈빛이 말이야.”

“알아차리셨습니까?”

“빨갱이들 중에는 민간인으로 변장해 염탐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게 사실인 것 같군.”

“그렇다면 그를 직접 잡아서 문초하면...”

“안 돼. 수상하다고 잡아둘 수는 없지.”

“하지만. 그가 불순한 목적으로 군단장님을 해하려 든다면...”

그 말에 병주는 피식 웃으며 한 마디 말한다.

“잊었어? 우리가 착용하고 있는 장비가 무엇인지?”

“아... 그렇군요.”

적 소총탄 정도는 거뜬히 막아내는 방탄장비이다. 일반 소총보다 위력이 강하다는 저격총의 총탄에도 방어를 해내는 무지막지한 능력을 지닌 방탄장비이다.

“그렇다고 너무 방심은 하지 말아야겠지.”

병주는 그렇게 말하며 정철회 대위에게 한 마디 말한다.

“일단 이 마을에 염탐꾼이 들어왔다는 것은 아마 여기에 무슨 일을 벌일 생각으로 온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기습입니까?”

병주는 그 물음에 희미한 웃음을 지을 뿐이다.

============================ 작품 후기 ============================

아 문명을 했더니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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