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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윤치영 비서실장은 이 대통령의 그 말에 한 마디 덧붙여 말한다.
“지금은 그 방송국 사장이 군에 입대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허? 그 친우가? 아 하기야 군에 가기에 상당히 적절한 나이겠지.”
사현방송국의 사장 연형칠은 이제 25살이 된 청년이었다. 군 병사로 징집하기에 상당히 적당한 나이였다. 다만 일반 병사로 전선에 복무하는 것보다 그의 가진 바 지위를 감안하여 군 내부 라디오, TV 방송과 관련된 업무를 맡기는 것이 그나마 효율적이었기에 국방부에서 따로 그런 일을 맡는 과를 신설했다.
구체적으로 ‘국방부 방송과’라는 것이었는데, 군 내부의 선전 영상, 그리고 소식에 대해서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현재 연형칠은 그 방송과의 실질적인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흠. 그럼 사현방송국은 어떻게 되고 있나?”
“지금 부사장이 사장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원래 부사장 역할은 비서실장이 맡고 있습니다.”
“허참. 그 사장이라는 친구가 다시 방송국에 복귀한다면 문제가 생기는 거 아닌가?”
“그건 아닐 것입니다. TV방송국의 지분이 대부분 그의 일가와 그리고 동협 그룹이 가지고 있습니다. 경영권은 그의 일가가 거머쥐고 있고, 동협 그룹은 그들을 보조하는 일만 거들 뿐입니다.”
“흠. 사현방송국이 동협 그룹이 키워준 곳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언제든지 동협 그룹이 그 곳을 조종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 정부 지분은 어떻게 되는 거야?”
“대략 20%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 지분 중 10% 가량이 야당에 가까운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흠. 우리가 주도적으로 사현방송국을 조종할 수 없다는 말인가?”
“보도 같은 것은 지분이 많은 편이 가장 유리하니 어쩔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 대통령은 그 말에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다.
“어쩔 수 없겠군. 대신 우리에게 불리한 보도가 나오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지.”
“그야 당연한 말씀 아니겠습니까?”
이 대통령은 TV에서 나오는 매체의 위력을 한눈에 꿰뚫고 있었다. 신문이 전달하는 정보의 가독성보다 TV에서 나오는 정보의 가독성이 훨씬 더 우월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느 발달한 도시에서나 TV를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자신이 롤 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에서도 개인가정마다 TV가 풀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TV가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이 한국에서도 풀리고 있으니 이 대통령은 자신이 정치를 잘해서 이런 현상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그래. 암 그래야지.”
이 대통령은 윤치영의 말에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 때,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 한 사람이 이 대통령 일행에게 다가가 이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인다.
“각하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 대통령은 지금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인물을 바라본다. 바로 국군 의무 사령부의 사령관인 병재였다. 병재를 바라본 이 대통령은 그에게 한 마디 말한다.
“아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군의관이 잘못 처방한 것을 다시 치료해주었다고 하더군. 그게 사실인가?”
“예. 일선 군의관들이 환자 몸에 박힌 총알을 빼내다 신경을 건드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수술을 통해 치료했습니다.”
“흠... 다행히 잘 치료는 되었고?”
“예. 그렇습니다.”
“그 것 참 다행이군. 그런데 그 수술을 맡을 만한 사람이 없는 건가?”
병재는 그 물음에 웃으며 대답한다.
“물론 있기는 하지만 적다고 봐야 될 것입니다. 거기다 그 환자의 상태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 제가 처리하는 것이 더 적당하다는 판단이 들어서 했습니다.”
“수고하는군. 실력이 미숙한 자가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것을 자네가 수습을 하는군.”
“이 것이 제 역할 중 하나입니다.”
“흠. 그렇군. 하기야 자네의 실력은 세계에서도 잘 알아주니 말이야. 다른 의사의 실수를 바로 잡아줄 수 있는 능력도 있고, 자네 같은 사람이 이 대한민국에서 일하고 있으니 이 조국은 상당히 복받은 나라일 거야.”
“너무 송구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뭘 그런가? 자네는 그런 극찬을 받을만한 실력과 인성을 가지고 있네. 자네 아들 상진이는 잘 크고 있는가?”
“이제 어느 정도 말을 할 줄 아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제 배우자가 돌보고 있지요.”
“허참. 그 아이의 모습도 언젠가는 보고 싶군.”
“만약 집에 찾아오신다면 언제든지 제 아들 녀석을 보이겠습니다.”
“하하. 암 그래야지. 그런데 의무 사령부 일을 총괄하면서 뭐 어려운 것은 없는가? 혹여 내가 따로 지원해줄 일이라도 있나?”
그 말에 병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현재 내무부의 도움을 받아서 각 대도시에 병원 설립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헬기로 군 부상자들을 임시로 수용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따로 운영이나 체계에 대해선 대통령 각하께서 그리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기야. 문제점이 있거나 아니면 도움이 필요했다면 얼마든지 요청을 했겠지. 알겠네. 난 이 곳을 시찰하도록 하지. 자네도 따라올 텐가?”
“국군 의무 사령부의 사령관으로써 저 역시 각하를 보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좋군. 그럼 시찰하면서 내가 눈에 띄는 것에 대해서 대답을 해주도록 하게나.”
“예.”
그 후, 병재는 이 대통령 일행들을 직접 안내하며 이 대통령의 시찰을 돕기로 했다.
1950년 9월 28일, 소련 모스크바의 귀빈실에 머무르고 있던 주은래 총리는 등소평이 가져온 소식지의 내용을 훑어보며 얼굴 표정이 점차 굳기 시작한다.
“이 쪽에서도 양보는 없다는 것이군.”
주은래 총리의 굳은 말투에 등소평은 조금 안절부절못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참으로 난감하군. 소련에서는 우리 중공을 약화시키기 위해 길림성 하나를 뚝 떼놓으라고 하고, 본국에서는 이 요청을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않고 말이야. 생각할 시간이 있어야 되겠군. 자네도 앉아서 같이 머리를 맞대보지.”
주은래 총리의 말에 등소평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귀빈실에 놓인 쇼파에 앉아 주은래 총리를 바라본다. 주은래 총리는 흠 생각을 하다 이내 등소평에게 한 마디 말한다.
“이거 참. 어쩔 수 없군. 복잡해.”
“소련에서 말을 들어주지 않는 이상 언제든 미군과 한국군이 만주를 침공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흠...”
“그건 그렇고, 소련의 스탈린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공산주의 맹주국가로서 자신의 동맹국을 견제하고자 이리 박대하게 나올 수 있는 것입니까?”
“스탈린은 원래 그런 인간이야. 하지만 여기서 불만을 터뜨린다한들 이 사태를 넘기는데 큰 문제는 되지 않으니.”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이 자꾸 나옵니다. 쯧. 지금도 한반도에 파견된 우리 병사들이 계속해서 희생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그래도 냉정해져야해. 이 일에 우리 목숨만이 달린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 있는 병사들을 구출하기 위해 여기에 나와 있다고 생각하게.”
등소평은 그 말에 뚱한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투덜거리지는 않고, 대신 한 가지 물어본다.
“총리 각하께서는 소련의 제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거 참. 어려운 질문이군. 내 생각 말인가? 하아. 계륵이지.”
“그 말씀은?”
“내 가슴과 또 신념, 민족, 정신적인 가치관은 절대 들어줄 수 없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나도 모르게 길림성을 거래물로 보고 있네.”
“으으음. 우리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길림성이 한국과 미국 등 적성세력에 넘어간다면 소련 역시 곤란해지지 않겠습니까?”
“아니야. 소련에게 있어서 극동은 개발 안 된 지역이나 다름없지. 주 지역은 우랄산맥 서쪽에 있는 지역이야. 연해주가 소중하다 한들 주 지역보다 소중할 리는 없겠지. 거기다 길림성과 연해주의 국경선은 흑룡강성과 연해주 간의 국경선보다 1/20 수준이니. 충분히 감당할만한 수준이지. 아마 소련은 우리 중공을 약화시켜 통제하는 것을 더더욱 중점적으로 두고 있네.”
“그렇다면 더더욱 그 것에 대해 저항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소련과의 관계가 상할 수 있네. 우리 중공과 소련은 불화적인 동맹국가임을 명심하게.”
“으음...”
“사실 솔직히 난 미군과 한국군이 만주를 공격할 의사가 있냐는 생각이 들어.”
등소평은 그 말에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며 묻는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미국이 소련을 자극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지. 소련이 우리 측에게 이렇게 나온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지. 즉 미국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만약 자신의 군대가 만주를 침공하게 된다면 소련이 즉시 이 전쟁에 끼어들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
“흠흠. 하지만 그건 가능성이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은가? 일단 소련이 말하는 길림성을 내놓는다고 이야기를 하고선 이내 소련이 공식석상에서 말을 하는 것이지. 그럼 미국과 남한 군이 길림성을 침공한다는 보장이 있는가? 아마 만주 자체에 발을 딛는 것을 꺼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
“그러면 소련이 길림성을 제외한 구역에 미군과 유엔군이 진출할 때, 이 선언이 유지된다는 조건을 내걸면 말짱 도루묵이 되지 않습니까?”
“쯧. 그 생각을 못했군.”
“미군과 남한 군이 한반도를 통일시키고, 길림성에 전력을 집중한다면 우리가 감당해야할 전선의 길이는 증가하게 됩니다.”
“그 것 참 좋은 조건이군.”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생각을 해보게. 전선의 길이가 늘어난다면 누가 불리하고 누가 유리하겠나? 병력이 많아야 전선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생기네.”
“하지만. 그건 기동력으로 메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기동력으로 메운다고 하여도 사람을 교대시키지 않으면 피로는 누적되기 마련이야. 전선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저들의 부담감은 크게 증대할 것으로 보이네. 거기다 남한 전체가 전쟁으로 인해 쑥대밭이 되었는데, 길림성을 욕심낼 의지가 있는가? 에 대해서 의심스럽다고 생각을 하는군. 거기다 미군 역시 길림성을 욕심낼 의지가 있는 지도 잘 모르겠고 말이야.”
“그럼...”
“본국에 다시 보내는 것이 좋겠어. 소련의 제안을 들어주는 것이 낫다고 말이지. 첨언해서 남한 군과 미군이 길림성을 침공할 의지가 낮아 보인다고 하면 좋겠지.”
“으음...”
“내가 괜히 그런 주장을 하는 것 같은가?”
“남한 측이 전쟁의 피해를 메우기 위해 길림성을 차지하고, 그 곳의 주민들을 피해보상이라는 명목으로 수탈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는 것이 우리 정부에게 이득이 되겠지. 또 명분이 우리 쪽으로 넘어가고 말이야.”
“설마...”
“저들도 생각이 있다면 약탈로 손해를 메우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는군. 명분 때문에 한반도에 참전한 유엔군과 미군이 그런 짓을 가만히 두겠나? 아마 소련에서도 기회는 이때다 하고는 비방을 놓아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얻겠지. 미국에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묵인할 것 같은가?”
“하지만 너무 대책 없는 낙관론이 아닙니까?”
그 말에 주은래 총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지금은 그런 낙관론을 기대고 싶군. 하지만 한반도에 병력을 투입시키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겠나? 지금 가만히 있다 그런 일이 생기면 국부군에 있는 전선은 밀리고 말 것이네.”
“......”
“믿어달라는 말을 못하겠군. 하여튼 이게 내 생각이야.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으음...”
등소평 역시 뭔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상황이 나락이라 그런지 답이 없다고 결론이 나온다. 우월한 병력이 있으면 무엇을 하는가? 지금 미군과 남한군에게 까먹고 있지 않은가? 주은래 총리의 말대로 그 쪽에 병력을 투입하는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면 최소 그런 일을 막아야 했다.
“저도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총리님이 말씀하신 것이 설득력 있다고 생각이 되더군요.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모든 일이 명확하게 돌아갈 수는 없지. 다만 자네 말대로 미군과 남한군이 길림성에 침공하는 가능성 역시 생각을 해봐야겠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본국에서 이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일지 걱정입니다. 또 이 기회에 총리 각하의 영향력을 깎고자 공작을 벌이는 사람들이 생길까 걱정입니다.”
그 말에 주은래 총리는 씁쓸한 얼굴을 짓고는 한 마디 대답한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여기서 성공을 못하면 목숨을 내놓아야겠지. 나에 대한 신뢰가 붕괴된다고 하여도 우리 조국을 살려야 하지 않겠나?”
“각하...”
“이미 모든 것을 각오하고, 여기에 왔다고 난 생각하네. 이 일을 함으로써 나에게 손해가 온다고 한들 그 손해를 감수해야겠지. 나를 돕지 못해도 이해는 해주었으면 하네.”
“하하. 물론입니다. 총리 각하.”
등소평은 주은래 총리에게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본국을 향해 소련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는 식으로 전문의 내용을 짠다.
1950년 10월 1일, 미 8군의 한 개 여단과 국군 제 3군단에 속한 제 10 강습산악사단의 활약으로 북한 영유에 있었던 원산을 다시 점령하게 되었다. 원산을 지키고 있었던 두 개의 중공군 사단은 병주가 정교하게 짠 작전에 의해서 산산이 붕괴된 지 오래였다.
원주를 얻음으로써 현재 북한이 가지고 있는 항구 도시는 나진과 그리고 청진 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항구 도시의 역할 역시 저해를 받았다. 국군 해군과 미 해군이 동해안에 활동하면서 항구 도시를 봉쇄하는 작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함경도에 틀어박혀 수비를 하던 중공군 본대는 원산 함락에 전선을 다시 재정립시킨다. 병주의 작전을 당해본 팽덕회 총사령관은 그다지 놀라지 않고, 일단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하지만 중공군 본대에 붙어 세력을 유지하고 있던 김일성의 북한 쪽에서는 상당히 경악스런 일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정권이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 때문인지 북한의 김일성의 권력은 시간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었다. 아직까지 김일성을 보좌하는 군부의 인사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김일성의 지지기반은 확실히 약화되고 있었다.
그럴수록 김일성은 패배의 책임을 경쟁자에게 돌려 그 경쟁자를 제거하는 식으로 권력을 강화하려고 하지만 경쟁자들 역시 살기 위해 김일성과 맞서는 식으로 나아간다. 결국 북한 정부 내의 권력 다툼은 더더욱 치열해져갔다.
한편, 원산 시를 함락시키고,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구출하고, 위무하는 형식으로 안정을 취하게 만든 한국과 미국은 여유를 가지는 것이 당연했다. 이제 시간이 지나갈수록 북부 지역은 점차적으로 추워질 것이다. 함경도 일대는 겨울이 된다면 영하권 10도에서 20도 가까이 되는 극한 기후를 맞이하기 때문에 조금씩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미군에서는 엄청 더운 날씨가 동토의 날씨처럼 추워진다는 것에 이해를 못했지만 말이다. 결론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전쟁의 흐름이 느려진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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