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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같은 시각, 군복을 입은 병윤은 지금 자신 앞에 대면해 앉아있는 서양 중년 남성을 바라본 채로 코코아를 마시고 있었으며 병윤을 졸졸 따라다니는 병사인 주민식은 긴장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분위기를 살필 뿐이다.
단안경을 쓰며 병윤, 주민식에게 미소를 짓고 있는 둥그런 안경을 쓴 서양 중년 남성, 그 남성은 미국 자동차 회사 제너럴 모터스 사에서 찾아온 이사인 존 포트만이라고 소개했다. 그런 그가 한낱 소위 계급장을 단 애송이를 찾을 리 만무할 일이었다. 그 것도 미군이 아니라 미국보다 뒤쳐진 국가의 소위를 찾는 것은 이해가 안 될 일이었다.
하지만 존 포트만은 지금 자신이 대면한 채로 코코아를 마시고 있는 이 애송이 소위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눈빛을 빛내며 병윤을 바라본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회장님.”
병윤은 그 말에 코코아잔을 앞에 있는 책상에 놓고는 존 포트만을 바라보며 말한다.
“지금은 회장직을 맡고 있지 않습니다.”
“하하. 겸손하시군요.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말 어떤 관념인지 몰라도 위에 오른 사람일수록 사회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뜻이지요. 물론 그 관념을 꼭 지켜야 되는 것이 아니지만 도덕을 수행하는 것은 뭇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일이 아닙니까?”
“흠... 동협 그룹과의 계약이라면 저보다는 진서연 비서실장을 만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지금 그녀가 제 대신 일을 대행해주고 있거든요.”
“물론 그 것이 옳은 과정이겠지요.”
존 포트만은 그렇게 말하며 안경 너머의 눈빛을 빛내고, 슬며시 한쪽 입꼬리를 올린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일의 경중성입니다. 아무리 비상시국의 비서실장이라고 하여도 회장이 가지는 전권을 맡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
“지금은 한국군 군수과에 재직하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바쁘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자기 회사만큼 중요한 것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제가 쉬는 시간이니 이렇게 만났지만 지금 이렇게 담화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당연한 말씀 아니겠습니까?”
존 포트만이 동의를 하자 병윤은 이내 미소를 짓고는 자신 앞에 있는 서류를 천천히 살펴본다. 병윤을 졸졸 따라다니는 주민식에게는 서류에 써진 영 문장을 보니 머리가 자동적으로 아파온다.
‘허참. 한글을 겨우 뗀 나로써도 한글로 된 서류를 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길 소위님은 저렇게 뱅뱅 꼬인 글자들을 보고선 마치 한글 보듯 읽는 구나.’
주민식은 병윤을 마치 신기한 외계인처럼 보았지만 병윤은 자신을 바라보는 주민식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으며 서류를 넘기면서 내용을 살핀다. 그리고 다시 서류를 책상에 놓으며 존 포트만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흠...”
“우리 제너럴 모터스 사는 전기자동차에 대한 전반적인 기술이 필요합니다. 특히 가장 중요한 기술인 축전지 기술이 엄청 필요합니다. 이 것에 대해서 제휴를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허참. 우리 회사가 축전지를 주로 적용하는 대상은 노면전차 하나밖에 되지 않는데, 자동차에 적용할 생각입니까?”
“아무래도 그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석유(현재 1~2 달러 정도 됨.)가 싸다고 하지만 전기로 굴리는 것보다 더 싸겠습니까? 회사는 이득을 위해 쫓는 단체입니다.”
사실 자동차의 시초는 내연기관을 통해 굴려가는 것이 아니라 전기를 이용해 움직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기름으로 굴러가는 것보다 항속거리가 너무 짧은 나머지 내연기관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되어 자동적으로 전기 자동차가 쇠퇴되었다. 그런 와중에 제너럴 모터스 사가 새로운 자동차를 설계하던 와중 획기적인 축전지 기술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병윤을 찾아온 것이다.
현재 동협 그룹에 의해 개발된 초축전기는 노면전차에 사용되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자동차와 헬리콥터에 보조적으로 적용될 뿐이다. 그러니까 연료가 다 떨어지면 비상시에 이용할 수 있도록 말이다. 순항속도로 12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도록 배터리 양을 조정하고 있었다.
“흠. 축전지 기술이야 뭐 상관이 없는데, 축전지와 연관된 기술과 관련해서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존 포트만은 그 말에 하하 웃으며 대답한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자동차를 처음 만들 때, 전기를 이용해 움직이는 것을 염두 해두고 제작했습니다. 전기자동차를 만들 기술 정도야 우리 회사에 이미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뭐 그렇다면야 별말이 없겠군요. 그럼 우리 축전지와 연관된 동력 계통 기술 및 기타 기술에 대해서 제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존 포트만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하하. 그 것들도 욕심이 나기는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부터 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흠. 좋습니다. 서류에 나온 로열티 25% 정도에 합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존 포트만은 그 말에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한다.
“탁월한 결정이십니다. 회장님. 앞으로 두 회사가 같이 번창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병윤과 존 포트만은 곧 서류의 서명 란에 자신의 이름을 쓰고, 곧 엄지에 인주를 묻혀 지장을 찍었다. 존 포트만은 계약이 되었다는 것을 알자 희희낙락하며 병윤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고, 병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덕담을 주며 그들을 밖으로 배웅했다.
존 포트만 일행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병윤을 따라다니는 주민식이 궁금하다는 얼굴로 한 마디 묻는다.
“아니 무슨 말이기에 저들이 웃고 다니는 것입니까?”
“뭐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고 싶군. 어차피 군대 일이 아니라 우리 회사의 일이니 말이야.”
“회사라 한다면. 으음...”
“알겠지? 신경 꺼. 자네가 그 회사에 입사한 인물인가?”
“입사했으면 좋겠지요.”
주민식이 간절한 표정으로 병윤을 바라보자 병윤은 손사레를 치며 한 마디 말한다.
“쓰읍. 간도 크네. 나에게 인사 비리를 저지르게 하다니 말이야.”
“그 쪽 사원도 좋습니다. 부디 한 자리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한 마디 대답하지. 꺼져.”
“뀡.”
주민식은 처량한 표정을 지으며 병윤을 따라다닐 뿐이었다.
한편, 어느 한 건물 안에서 존 포트만 일행이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짧게 머리를 깎은 존 포트만의 수행원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존 포트만을 바라보며 의아스럽다는 말투로 말한다.
“그런데 저 쪽이 순순히 핵심기술을 허락해줄 줄 몰랐습니다. 가랑이를 잡고, 몇날 며칠이고, 제발 제휴해달라고 그렇게 말을 할 줄 알았습니다.”
그 말에 존 포트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렇지. 나 역시 저쪽에서 순순히 허락해줄 줄은 몰랐어. 이거 참... 일단 일은 잘 풀린 셈인가?”
“그런데 왜 미군 쪽에서 전기자동차를 요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남는 기름을 퍼다 그걸로 쓰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흠. 소식이 들리기로는 저 쪽에서 개발한 축전지의 부피로 움직일 수 있는 항속거리가 일반 연료통의 부피로 움직일 수 있는 항속거리의 배는 된다고 하더군.”
“그 정도면 아예 연비 자체가 비교가 되지 않습니까?”
“그렇지. 지금 석유 노래를 부르면서 엔진 개량에 힘을 쓰고 있는 판국에 우리처럼 전기 자동차를 생각하는 기업은 없을 거야.”
“흠...”
“뭐 거기다 석유 업체들은 일반적인 석유 채굴보다는 풍력이나 태양광 등 다양화된 방향으로 사업을 진출한다는 소식을 들었어. 앞으로 시대는 석유 시대가 아니라 에너지 시대야. 특히 에너지 전환 효율이 높은 전기 에너지를 잘 이용하는 기업이 승리하는 시대가 올 거야. 그런 점에서 보면 동협 그룹은 미리 미래를 예상하고, 발을 딛는 것이지.”
“그래봤자. 한낱 미개한 인간들이 만든 기업이 아닙니까?”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하지만 그 영화로웠던 로마 제국이 무너지게 된 이유에는 내부의 거대한 부패도 있지만 외부의 미개했던 야만인들의 침략에 무너졌다고도 할 수 있지. 상대방을 무시하고, 교만 하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을 거야.”
“끄응. 무슨 소리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래. 그래. 일단 가장 중요한 기술을 획득했으니 전기 자동차의 개발은 한층 더 빨라질 거야. 아마 내년이면 양산을 시작할 수도 있겠지. 그 때가 되면 미군에서 요구하는 전기자동차 및 전기헬기, 전기전차, 여러 가지를 만들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군 쪽의 수요는 제한되어 있지 않습니까? 역시 민간인들 시장만큼 거대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연비를 비교했을 때, 더 경제력 있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고객이니 말이야. 그건 그렇고, 컴퓨터 말이야. 하아. 그 것 참 이용하기 어렵게 만들어졌는데. 회장님이 그 것을 대대적으로 활용하라고 지시를 내리는 바람에 뭔가 조금 그렇군.”
존 포트만이 컴퓨터 이용에 대해 하소연을 하자 짧은 머리의 수행원이 그에게 한 마디 말한다.
“저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일단 시간을 내서 적응하고 있습니다. 어떤 녀석은 컴퓨터에 적응하자마자 일반 사무직원보다 일처리 속도를 빠르게 하니 컴퓨터 적응 못한 사람들로써는 죽을 맛이나 다름 없습니다.”
“쯧쯧. 하필 내 시기에 컴퓨터가 만들어지는가? 좀 늦게 개발되지.”
존 포트만은 발달된 세계에 투덜거렸다.
1950년 10월 13일, 시간이 흐르면서 함경도 인근 전선도 점차적으로 소강상태가 되어 간다. 날이 지나면서 추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전선에 복무 중인 병사들은 참호를 파내고, 또 방어진지를 구축하는 동시에 철저히 겨울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군 역시 혹독한 추위에 닥친다는 것에 신기해했지만 한국군에서 강력하게 경고하는 바람에 일단 현장 사람의 충고라고 생각하고는 조금씩 겨울나기에 준비하고 있었다.
한편, 한국군과 미군을 상대하는 중공군 역시 전투가 뜸해지자 재편을 서두르고 있었다. 또 이럴 시기에 공세를 해봤자 자신만 손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들도 역시 방어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그렇게 양군들 모두 국지전 규모의 전투를 벌이면서 조금씩 다음 전쟁을 위해 준비를 가하고 있었다.
한편, 북부군 총사령관 일을 하던 병주를 의형 최주평과 같이 자리에 앉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 다 군인이라는 것을 티내고 싶지 않은지 군복 대신 양복으로 입었다. 최주평은 병주를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어떤 옷을 입었던 간에 넌 그냥 외모가 날개구나.”
병주는 그 말에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일반 양복대신 차라리 평상복으로 다니고 싶군요.”
“평상복? 야. 그거 입지마라. 외모가 살아준다 하여도 그 머슴처럼 다닐 거냐?”
병주가 사복을 입을 때면 마치 조선시대의 머슴처럼 옷을 입었기에 병주의 그런 패션을 아는 최주평은 그를 결사적으로 말렸다.
“그런데 무슨 일이기에 저까지 부르시는 것입니까?”
“뭐. 내 아는 여자 있어서 말이지.”
“아는 여자? 결국 헤어졌습니까?”
최주평은 떫은 감을 씹는 듯한 얼굴을 하고선 대답한다.
“어차피 집안에서 결정한 사이니 내가 따를 필요는 없어.”
“으음...”
“결혼 못한 네가 나에게 뭐라 할 자격은 있냐?”
최주평은 그리 말하자 병주는 손사레를 치고는 대답한다.
“뭐 되었습니다. 형님 인생은 형님이 결정하시는 것이니 말입니다.”
“말 좀 이쁘게 하는군.”
“하하. 그럼 자기 인생은 자기가 결정한다라고 다시 말할까요?”
“됐다. 됐어.”
그렇게 두 사람이 떠들고 있을 때, 한 여성이 최주평에게 반가워 하며 한 마디 말한다.
“오셨습니까? 그런데 옆 사람은...”
최주평은 그 여성에 대해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 말한다.
“아.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은 의동생이야. 이번에 같이 휴가를 나오는 사이이지. 뭐 인사들 나누라고.”
그 말에 병주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길병주라고 합니다.”
그 말에 여성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소개한다.
“유연서라고 합니다.”
두 사람의 인사에 최주평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일단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지.”
유연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최주평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고, 병주는 최주평에게 한 마디 묻는다.
“형님. 이 사람은?”
“아. 나랑 결혼할 사람이지.”
“아 그렇군요.”
병주는 최주평의 과거에 결혼한 사실을 알고 있지만 여기서 언급하지는 않았다. 최주평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병주에게 한 마디 말한다.
“사실 널 데리고 온 이유는 너 결혼 때문에 그렇다.”
“예? 제 결혼이 뭐 어때서 입니까?”
“혼기가 찬 남성이 계속 홀로 살 거냐?”
“끙. 형님. 제 결혼은 제가 알아서 할 겁니다.”
“알아서 하겠지. 하지만 널 데리고 온 이유에는 소개가 있다.”
“소개라면?”
“그래. 어디보자. 연서. 내가 말했던 사람은 어디에 있어?”
그 말에 유연서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여기에 올 것 같습니다.”
마치 제 말하면 찾아오는 호랑이처럼 신여성처럼 옷차림을 한 젊은 여성이 등장했다. 그리고는 유연서를 발견하고는 반갑다는 표정으로 한 마디 말한다.
“사촌 언니.”
젊은 여성은 유연서를 발견하자마자 밝은 미소를 지으며 달려든다. 그리고 최주평과 병주를 보면서 유연서에게 한 마디 말한다.
“혹시 이 사람들이? 그...”
“그래. 조숙하게 행동해라. 너에게 소개시켜줄 남자를 데려왔다.”
“으음.”
젊은 여성은 병주의 얼굴을 보자마자 헉하며 이내 한 마디 말한다.
“저 사람은...”
그 때, 유연서가 한 마디 말한다.
“우선 앉아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겠지.”
그 말에 젊은 여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병주의 맞은편 자리에 앉는다. 최주평은 흠흠 거리며 병주에게 한 마디 말한다.
“일단 내가 소개시켜줄 처자는 저 여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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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주도 이제 꽃을 볼 시기가 온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