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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인생-573화 (57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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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대구의 어느 한 카페, 병주는 자신 앞에 앉아있는 여성을 살펴본다. 어려보이는 것이 확 티나는 것을 볼 때, 자신보다 어린 것을 알 수 있었다. 외모로 보면 꽤 예쁘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뭔지 모를 여장부다운 느낌이 들었다. 머리카락은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었고, 어깨는 왠지 모를 가냘픔이 보인다. 얼굴을 볼 때, 꽤 귀하게 자란 부잣집 여성처럼 화장을 한 것이 눈에 보인다. 옷 역시 평범한 여성들처럼 한복을 입는 것이 아니라 신식 옷가지를 입은 것이 눈에 띈다.

한 마디로 종합하자면 상류층의 아가씨라는 것이 확 눈에 띌 정도였다. 병주는 작게 미소를 띠며 자신 앞에 있는 아가씨에게 자신을 소개한다.

“반갑습니다. 길병주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병주의 외모가 빛을 발한다. 이미 뭇 여성들을 따라다니게 만들어낸 외모이다. 병재, 병윤이 질투할 만큼의 외모였고, 또 병주가 산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분위기는 외모와 함께 빛을 발한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병주의 분위기에 그 상류층의 아가씨는 뺨에 홍조를 띠며 이내 자신을 소개한다.

“바... 반가워요. 조혜수라고 해요.”

조혜수의 모습을 본 유연서는 그녀의 반응이 마치 신기할 따름이었다. 조혜수의 본모습을 알고 있는 유연서는 조혜수가 당당하게 거침없이 말을 하는 것처럼 예상했는데, 그런 그녀가 병주에게 홍조를 띄며 소개하니 유연서 그녀로써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유연서는 병주의 모습을 힐끗 쳐다본다. 그녀가 본 병주의 외모는 한 마디로 말해서 사기라고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뭔지 모를 분위기, 그리고 빛을 발하는 외모, 혜수 그녀가 저런 반응을 보일만 하겠군.’

조혜수가 여성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처음이었다. 유연서는 호호 웃으면서 이내 병주에게 한 마디 질문을 던진다.

“저도 병주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군인이라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병주는 유연서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사실입니다.”

“흠. 원래 후방에서 근무를 하나요?”

그 말에 병주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그건 아닙니다. 원래라면 전장에서 근무해서 병사들을 지휘합니다.”

그 때, 최주평이 유연서에게 한 마디 말한다.

“뭐 저 녀석에 대한 것은 저번에 내가 말한 대로야.”

유연서는 그 말에 ‘흠’ 소리를 내며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뒤 이내 옆에 앉아있는 조혜수에게 한 마디 말을 건넨다.

“어떠니? 저 사람은?”

조혜수는 그 말에 얼굴이 빨개지며 이내 작은 목소리로 유연서에게 소근거린다.

“저 사람. 너무 멋있어.”

유연서는 그 대답에 조금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조혜수를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네 취향이 기둥서방이니?”

그 말에 조혜수는 빽하고 소리를 지른다.

“언니! 내가 그런 헤픈 여자로 보여?!”

갑작스러운 조혜수의 외침에 최주평은 조금 깜짝 놀란다. 유연서는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조혜수에게 한 마디 말한다.

“이 계집애는 갑작스럽게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아니... 그냥...”

유연서는 병주를 힐끔 쳐다본다. 병주는 자신 앞에 있는 커피 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내 자신의 남자친구인 최주평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우리는 조금 다른 자리로 가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네요.”

최주평은 그 말에 조혜수와 병주를 쳐다보다 이내 자신의 연인인 유연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뒤 한 마디 대답한다.

“그게 좋을 것 같군.”

곧 두 사람은 조심스레 자리에 일어섰다. 그 때, 조혜수가 유연서의 치마를 붙잡으며 한 마디 말한다.

“어디 가?”

“잠시 화장실 좀.”

“조금 늦게 가면 안 돼?”

“어. 안 돼.”

유연서의 대답에 조혜수는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유연서와 최주평은 곧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떠났다. 결국 병주와 조혜수 둘 밖에 남지 않았다. 조혜수는 홍조를 띄며 병주를 바라보고 있었고, 병주는 커피를 마시며 분위기를 바라본다. 잠시 동안이지만 침묵이 흐른다.

그 때, 병주는 커피 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이내 한 마디 말한다.

“흠. 혜수 씨는 좋아하는 것이 있나요?”

조혜수는 그 말에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으음. 좋아하는 것이라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이에요?”

“이런 질문의 범위를 넓게 잡았군요. 그럼 취미 같은 것은 있나요?”

“취미요? 전... 시나 소설 같은 것을 즐겨봐요.”

“시나 소설? 흐음...”

“헤헤. 저 같은 여성들에게 즐길만한 것들은 시나 소설밖에 없거든요. 가족들끼리 영화나 TV를 볼 때도 있는데, 그 것들을 볼 때마다 즐거워요.”

“영화나 TV라...”

“저 혹시 당신은 어느 것을 즐겨 보나요?”

“이런 말을 하기 부끄럽습니다만 신문 혹은 TV를 자주 봅니다.”

“둘 다 관심사는 TV라는 말이네요?”

병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후후후. TV에서 어느 것을 즐겨보는 편이에요?”

“뉴스나 혹은 쇼 같은 것을 자주 봅니다.”

“헤헤. 그래요? 전 엄마랑 같이 연속극을 자주 보는 편인데.”

“그런가요? 제 가족 역시 똑같은 것 같습니다. 제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여동생도 TV를 볼 때마다 연속극을 보던걸요.”

“요즘 제가 보는 연속극이 그 사현방송에서 하는 '흩날리는 봄날을 향해'을 자주 보는데요.”

“아. 그거. 어머니와 제 누나가 잘 챙겨보던 걸요. 저도 가끔가다 봅니다만.”

'흩날리는 봄날을 향해'는 사현방송국에서 제작한 연속극이었다. 올해 3월 6일 월요일부터 1화가 시작된 연속극으로 내용은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사랑 이야기를 담아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일제강점기 초중반 시기에 남성주인공인 지식인 남성과 여성주인공인 평범한 여성과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담아냈다.

사현 방송국에서 꽤나 힘을 다해 만든 작품이라서 그런지 TV가 있는 가정의 모든 여성들이 연속극을 할 때면 잽싸게 TV에 모여 보았다. 그 때 시간의 남성들은 어떻게 되냐고? 그 때쯤이면 남성의 권위도 소용없고, 가장이나 아들들은 내일 할 일을 위해 잠을 자두는 편이었다. 물론 연속극 애호가들은 남자이든 여자이든 무조건 챙겨보는 편이지만 말이다.

사실 한국의 TV방송국은 한국방송국, 사현방송국으로 나뉘어져 있기에 TV로 볼만한 재밌는 것이 그리 다양하지 않았다. 한국방송국은 공영방송국으로써 시사나 쇼에 치중을 뒀고, 사현방송국은 민간방송국으로써 연속극외 기타 여러 가지 방송을 하는 편이었다.

공통의 관심사가 생기자 두 사람은 그 연속극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내 조혜수가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한 마디 말한다.

“요즘 전쟁 때문인지 그 방송국에서 연속극을 틀지 않고 있어요.”

그 말에 병주는 조용히 커피를 마시면서 그녀의 말을 듣는다.

“알고 보니까 그 연속극의 남자주인공이 군대에 징집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병주는 그 말에 커피 잔을 다시 내려놓고는 대답한다.

“이런 시국에 어느 직업을 가지든 전부 징집하는 편이니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병주는 조금 회한의 눈빛으로 창가를 바라본다. 그런 병주의 분위기에 조혜수는 아까의 불만스러운 어조를 거두고는 이내 한 마디 말한다.

“아니... 그게... 저...”

“하하. 아닙니다. 전쟁이 끝난다면 혜수 씨가 좋아하는 연속극도 다시 시작하겠지요.”

그 말에 조혜수는 눈을 껌뻑이며 이내 병주를 쳐다본 뒤 한 마디 말한다.

“혹시 병주 씨는 군인이라고 들었는데, 어디에 복무하는지 알 수 있나요?”

그 말에 병주는 고개를 끄덕이고, 한 마디 대답한다.

“알려드릴 수 있는 사항으로는 전 북부군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북부군? 그건?”

“그러니까 말을 하자면. 이런... 숙녀 분에게는 조금 관심 없는 이야기가 될 수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병주가 정중하게 한 마디 양해를 구하자 조혜수는 홍조를 띄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한다.

“괜찮아요.”

“하하. 그러면...”

병주는 조혜수에게 간단하게 군 체계나 군인이 하는 일들에 대해 설명했다. 꽤나 재밌는 병주의 설명에 군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야할 조혜수는 빠져들기 시작한다. 병주의 설명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북부군은 그러니까 그 군단의 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 그 곳에서 근무를 하고 있고요. 이런 숙녀분께 너무 지루하게 설명을 드린 것 같군요.”

그 말에 조혜수는 고개를 살랑살랑 저으며 대답한다.

“아니에요. 병주 씨의 설명은 재밌고, 귀에 쏙쏙 들어가요. 호호.”

“그 것 참 다행입니다.”

“그럼 병주 씨는 그 북부군에서 장교직을 맡고 있는 거에요?”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으음. 그래요? 휴우. 군인이라. 제 오라버니도 장교를 한다고 들었는데.”

“전쟁이 터지면 젊은 남성의 많은 숫자가 병사 혹은 장교로 징집됩니다. 평온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미칠 지경의 환경 속에 살아가는 것만큼... 휴우. 말을 할 수가 없군요.”

병주는 꽤 슬픈 표정을 짓는다. 아무래도 조혜수가 보기에는 병주가 아픈 기억을 회상하는 것처럼 보였다. 병주는 눈을 지그시 감고는 이내 입을 닫는다. 아무래도 젊은 아가씨에게는 말하기 어려운 그런 언어였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다. 어색한 침묵만이 두 사람의 사이를 지배한다. 하지만 그 침묵을 깬 것은 병주가 아니라 조혜수였다.

조혜수는 조심스럽게 병주에게 입을 뗀다.

“저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요.”

병주는 그 말에 흠흠 기침을 하고는 대답한다.

“이거 실례했군요. 하하. 이 것 참 보기 흉한 모습을 보여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저도 오라버니에게 전장에 대해 들었는데,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이야기를 해요.”

“예. 그렇군요. 저 역시 군인이지만 절대 전쟁만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헤헤. 전 뭔지 모르겠지만 병주 씨가 그렇다고 하니 저 역시 동의할게요.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는데, 병주 씨는 여자를 만난 적이 있어요?”

조혜수가 생글생글 웃으며 묻자 병주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그건 아닙니다.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 다른 남성들처럼 여자들을 사귄 경험이 없군요.”

“헤에? 그 말씀은?”

“아직까지도 총각입니다.”

“으음... 진짜요? 병주 씨의 얼굴을 볼 땐 다른 여성들이 쫓아와서 사귀자고 말을 하지 않았나요?”

“그런 여성들을 본 적은 있습니다만.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남성과 여성은 끝을 모르는 관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끝을 모르는 관계? 그 말씀은?”

“처음 만난 연인과 오랫동안 만난 연인은 다르다고 말을 하지 않습니까?”

“아 예...”

“사실 전 그 여성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를 따라다니기 보다는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남성을 만나는 것이 좋다고 말입니다.”

“......”

“지금 여기서 이런 말을 혜수 씨에게 꺼내기 죄송합니다만...”

“흠흠 아니에요. 그게 당연한 말인걸요.”

“혜수 씨는 남자를 만난 경험이 있습니까?”

그 말에 조혜수는 깜짝 놀라며 병주를 쳐다보고는 대답한다.

“예? 예에? 아... 아니요...”

당황하는 조혜수의 모습을 보자 병주가 보기에도 조혜수는 몇 번 남자를 사귄 경험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병주는 그런 그녀에 대해 혐오감을 느낀다던가 그런 감정은 일절 생기지 않았다.

“하하. 그렇군요.”

“병주 씨는 순결한 여성이 좋으세요?”

그 말에 병주는 손사레를 치고는 대답한다.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성의 순결은 전 상관없다고 말입니다. 사실 여러 동료들에게 연애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들었던 이야기가 남자들은 순결한 여자들을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그 때, 전 ‘아 그렇구나.’ 라는 동의보다는 ‘왜?’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솔직히 말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고 사귀어보고, 헤어지면 뭐 어떻습니까? 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더군요. 그리고 순결이라는 것 자체가 여성에게 틀 안에 가두는 그런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으음...”

“하여튼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요? 병주 씨는 보면 볼수록 꽤 순진한 남성인 듯 보여요.”

“순진하다라...”

병주는 그 말에 얇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동의도 부정도 아닌 아주 미묘한 그런 감정이 묻어 나오는 미소였다. 병주는 이내 커피 한 잔을 마시고는 조혜수에게 한 마디 말한다.

“글쎄요. 전 순진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떼를 너무 탔다는 생각이 듭니다.”

“흥?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온갖 것을 경험한 사람에게 순진하다는 말보다는 떼를 탔다는 것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호호. 말씀을 들어보니 그러네요. 그런데 병주 씨는 군인이라고 들었는데, 가족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있나요?”

“제 형님은 의사입니다. 지금은 군의관에 배속해서 다친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누나는 미국의 대학에 가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있습니다. 제 남동생은 군수과에 재직하며 일을 하고 있고요. 제 여동생은 어린 아이라서 부모님과 같이 지내고 있습니다.”

그 말에 조혜수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들어보니 꽤 유력한 가문인 것 같았다. 조혜수가 생각하기에 저런 가족이라면 가문을 따지는 자신의 아버지라 하여도 허락을 할만 했다.

“그래요? 그럼... 응?”

그 때, 조혜수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떠오른 생각이 들었다. 그건 바로 아버지가 TV를 보면서 자주 궁시렁 거리던 말이었다. ‘또 길씨 이야기야. 하기야 이 대한민국을 잡은 가문이 그 쪽 가문이니.’ 이라고 말이다. 조혜수는 병주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리고 설마 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 작품 후기 ============================

병주는 과연 이 여성이랑 사귀게 될까요? 제길 모태솔로인 나로써는 더 이상 묘사할 자신이 없군요. 젠장 쓰는 동안 손이 오그라들 것 같은 이 개 같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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