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574화 (57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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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조혜수는 병주의 얼굴을 바라보며 혹시나 해서 한 마디 묻는다.

“그런데 혹시 그 TV에 자주 나오는...”

병주는 그 물음에 답을 하는 대신 미소만을 띄운다.

“으음... 혹시나 해서 묻는데, 그 동생이라는 분이 그 길병윤이라고 해요?”

“제 동생이야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지요.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조혜수는 입이 저절로 벌어지며 이내 벌어진 입을 급히 손으로 가린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병주로써는 조금 웃음이 나온다. 두 사람 사이에 이내 어색한 침묵만이 감돈다. 조혜수는 병주와 그의 가족들이 어떤 사람인지 대강 알아차렸다.

‘세상에... 세상에... 그 TV에서 자자한 사람이 진짜로 내 눈앞에 있다니.’

TV로는 연속극을 주로 보는 그녀이지만 신문이나 시사 정보를 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또 자신의 가문이 가문이다 보니까 부모님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혼사 상대를 알아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상류층일수록 격에 맞는 상대방 집안의 인물을 찾느라 고생이었다. 조혜수로써는 연예결혼은 꿈에도 못 꿀 일이다. 아마 그녀가 적극적으로 TV 연속극을 봐온 이유에는 그런 집안 내력 때문에 그렇다.

혼사 상대로 여러 가문들이 많았다. 지방의 중소지주, 혹은 지식인, 작은 사업체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어느 정도 관료 직에 오른 사람들까지 다양했다. 군 장교 역시 해당된다. 조혜수는 이 자리에 가볍게 나왔다. 혼사 문제가 아니라 그저 남자 한 명을 만나서 연애를 하다가 그대로 헤어지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그 행동으로 말이 많았고, 그녀의 부모님이 주의를 주었지만 그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병주의 얼굴을 보니 너무 반반하고, 꽤 재치 있는 입담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조혜수는 속으로 ‘사귈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자신 앞에 앉은 남성이 가볍게 연애할 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이런 말을 하기는 그렇지만 역시 가족 이야기는 꺼내든 것은 제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왜 그렇습니까? 솔직히 궁금해서 물어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조혜수는 그 대답에 병주를 응시하고는 한 마디 묻는다.

“당신 집안에서 중매 같은 것은 없나요?”

그 물음에 병주는 대답대신 커피 한 잔을 마신다. 그러다 이내 병주는 커피 잔을 탁자 위로 두고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중매라. 부모님께 저와 제 동생에 대한 집안끼리의 결혼을 청원하는 편지들이 계속해서 오고 있습니다만...”

“다만?”

“제 부모님께서는 원래 농사를 짓던 분이고, 또 두 분 다 마음이 맞아서 결혼을 한 지라 저희들에게 정략결혼 같은 것은 강요하지 않습니다.”

조혜수는 그 말에 충격을 먹은 얼굴을 짓는다.

“그... 그게... 사실이에요?”

“제 대답이 그리 충격 먹을 대답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사실입니다.”

“으음... 너무 부러워요.”

“응?”

조혜수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병주를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너무너무 부러워요. 뭔지 모를 자유가 당신에게 느껴져요.”

“자유라...”

“상대방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자유,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마음에 드는 여성과 같이 연애해서 결혼하는 자유...”

“하하. 그 것이 그리 부러운 일인지 모르겠지만. 사실 요즘은 이렇게 자리를 갖는 것이 오랜만입니다.”

“예에?”

“사실 원래 휴가를 부하들이랑 같이 보내려고 했습니다.”

병주는 창가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을 한다. 병주의 외모와 패션, 그의 우수에 찬 눈빛, 그리고 무언가 간절히 바라는 분위기가 조합되어 남성의 매력이 확 나타났다. 조혜수는 저 남자의 품에 안아서 그의 달콤한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환상에 빠진다. 그의 품 안에서 사랑을 노래하면 얼마나 좋을까? 조혜수는 마치 뭔가에 홀리듯 그에게 다가가려던 찰나, 순간 정신을 차린다.

‘헉... 내가 무슨 생각을...’

병주는 창가 너머를 보느라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을 보지 않았다. 병주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고는 한 마디 말한다.

“제 의형 따라서 여기에 왔는데, 역시 전 천생 군인인가 봅니다. 지금도 전장에 두고 온 전우들이 생각납니다.”

“전장이 두렵지 않으세요?”

“두렵죠. 하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같이 가족 이야기를 하며 언젠가 집에 돌아갈 것이라고 결심하는 전우가 적 총탄과 포탄에 맞아 죽을 때. 그 때가 정말이지 두렵습니다. 그 전우의 가족에게 제가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또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전 너무나 두렵습니다.”

‘겉모습도 그렇지만 정말이지 마음이 넓은 사람이구나.’

병주에게서 강렬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말하는 내용의 경험을 겪었는지 병주의 얼굴은 슬픈 기색이 눈에 보였다. 병주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한다.

“죄송합니다. 당신에게 너무 재미없는 이야기를 꺼내 들었군요.”

“제 오빠도 군인이기에 당신의 말을 잘 알고 있어요.”

“휴우.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하는데, 역시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제대로 되지 않는군요.”

“으음...”

“하하 이거 참. 부끄럽습니다. 이런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죠?”

병주가 묻자 조혜수는 조심스럽게 한 마디 대답한다.

“그 중매까지 이야기를 했어요.”

“하하. 그렇습니까? 당신은 어떻습니까?”

“예? 저요? 사실... 부모님이 상대방의 가문을 너무 따져요.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다두고, 격이 안 맞는다고 그 사람을 내쫓아요. 어느 날에는 아버지의 사람이 찾아와서 그 사람을 뚜드려 패는 일까지 있어요.”

“으음... 마음고생이 심하겠군요.”

조혜수는 한숨을 내쉬며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 놓는다.

“매번 집안 내력, 마치 전 집안에 딸린 물건처럼 느껴져요. 마치 다른 가문을 얻기 위해 거래되는 그런 매매대상 같은...”

병주는 절실히 느껴지는 그녀의 마음에 공감하는지 저절로 표정이 어두워진다.

“사실 집안 어른들끼리 미리 짝을 지어놓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만.”

“그래도 그렇죠.”

“제가 그 당사자가 아니라서 뭐라 말을 못합니다만. 그래도 고생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군요.”

조혜수는 그 말에 슬픈 눈빛으로 병주를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정말이지...”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닫는다. 재차 묻기 거북한 그런 분위기였다. 그래서 병주는 다른 화제로 바꾼다.

“이런 꿀꿀한 날일 때는 좋아하는 취미에 몰두하는 것이 마음을 푸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혜수는 그 말에 금방 헤헤 웃으며 대답한다.

“예. 그래요. 사실 연속극을 연속으로 보는 것이 좋아요. 작년에 한 연속극, 재작년에 한 연속극을 봤는데, 또 보고 싶어요.”

“흠. 사실 사현방송국의 사장이 제 동생의 친우인데...”

“알고 있어요. 사현방송국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방송국의 사장과 동협 그룹의 회장과는 고향친우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어요.”

“꽤 깊은 곳까지 알고 있군요.”

“사실 또 이런 말을 꺼내기 뭐하지만 제 부모님이 제 혼사 상대를 찾기위해 사현방송국에 재직하는 사람을 알아본 적이 있어요.”

“하하. 그렇습니까?”

조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아버지께서 사현방송국의 간부 중 미혼인 사람을 물색해서 저를 데리고 만나려고 한 적이 있거든요.”

“당신으로썬 꽤 피곤한 일이겠군요.”

“어휴. 말도 마요. 억지로 따라와서 남자 앞에서 천생여자처럼 행동하는 것이 별로 조금 그래요.”

병주는 그 말에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 대답한다.

“전 청순하고, 순종적인 여자보다는 편한 게 좋습니다. 혜수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말에 조혜수는 홍조를 붉히고는 목소리를 떨며 말한다.

“예에? 예...?”

“편한 것이 좋다고 말을 했습니다.”

“...... 정말로요?”

“제 부하들이나 동기들이 청순하고 가녀린 여성을 좋아한다고 말을 하지만 전 그 것보다는 저에게 편하게 다가가는 여성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답에 조혜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둘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가 흐른다. 병주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 말한다.

“역시 처음 만난 사이인지라 둘 사이에 속 편히 말을 꺼내기는 그렇네요.”

그 말에 조혜수 역시 같은 감정을 가졌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저 역시 그래요.”

병주는 조혜수를 바라보며 이내 한 마디 꺼내든다.

“조혜수 씨. 당신이 보기엔 전 어떤 사람인 것 같습니까?”

“으음... 모르겠어요.”

그 말에 병주는 미소를 지으며 이내 한 마디 대답한다.

“그 것이 당연한 대답입니다. 저 역시 당신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도 이 것 하나만큼은 대답해줄 수 있습니까?”

“예? 뭐죠?”

“당신이 보기에 전 또 다시 만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습니까?”

훅 들어오는 병주의 말에 조혜수는 깜짝 놀라며 한 마디 대답한다.

“그... 그게...”

“제 질문이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진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병주가 조혜수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하자 조혜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병주의 사과를 받는다.

“저... 저는... 으음...”

“곧바로 대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조혜수는 그 말에 이내 병주를 바라보다 결심을 했는지 한 마디 말한다.

“그럼 질문을 역으로 말할게요. 당신이 보기에 전 또 다시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에요?”

병주는 그 말에 대답대신 커피를 마신다. 그리곤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전 다시 당신과 만나볼 용의가 있습니다. 저랑 다시 만나는 것은 당신이 선택할 몫입니다.”

그 말에 조혜수는 홍조를 띄우며 한 마디 말한다.

“으으음... 만약 시간이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병주는 그 말에 한숨을 쉬며 이내 한 마디 대답한다.

“사실 전 전장에 메인 몸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휴가시기만 된다면 언제든지 당신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것으로 대답은 되었습니까?”

조혜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저 역시 좋아요. 그럼 다시 연락할 수단이...”

병주는 그 물음에 이내 양복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며 한 마디 말한다.

“혹시 핸드폰은 있으신가요?”

그 물음에 조혜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한다.

“아직 없어요. 사실 핸드폰이 비싼 물건이라서 그런지. 하지만 집에 전화기는 있으니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겠죠.”

그 말에 병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마디 대답한다.

“그 것 참 다행입니다. 그럼 제 핸드폰 전화번호는...”

병주는 작은 쪽지를 꺼내어 펜을 들고,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적은 뒤 이내 그 것을 조혜수에게 건네준다. 조혜수는 그 쪽지의 내용을 보고는 홍조를 띠며 한 마디 말한다.

“이것으로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는 건가요?”

그 말에 병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한다.

“업무용 핸드폰이 아니니 가능합니다.”

“헤헤. 그렇군요.”

둘은 다시 어느 정도 이야기를 했다. 시간이 지나자 화장실을 간다고 한 최주평과 유연서 두 사람은 멀찍이서 병주와 조혜수 두 사람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허. 목석이나 다름없던 인간이 여자랑 오래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군.”

유연서는 그 말에 신기해하며 최주평에게 한 마디 묻는다.

“왠지 기둥서방처럼 생긴 것으로 보이는데, 겉모습과는 행동이 달라요?”

“저 녀석. 어릴 때부터 여자랑 같이 붙어 다닌 경우는 없었어. 학교 다닐 때도, 대학에 갈 때도 마찬가지였지. 매번 일과 공부에 치중하니 말이야.”

“호호. 당신이 그런 말을 하니 알만 하네요.”

“뭐 그렇지. 해방이 되고나서 여자를 만나러 갈 줄 알았는데, 그 것도 아니더라고. 휴가를 낼 때마다 병사들을 찾아가 위무하거나 또 전사자들의 유족을 만나서 머리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말을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녀석이니 말이야.”

최주평의 말에 유연서는 헉 하며 놀란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 말한다.

“그건 너무 착한 것 아니에요?”

“그 녀석 성정이 원래 그래. 사실 그 녀석을 처음 볼 때부터 알 수 있었지. 책임감이 강하고, 말한 것은 무조건 지키는 녀석이야. 그래서 마음에 들어 의형제 관계를 맺고 지금까지 지냈지. 딴 건 몰라도 저 녀석만큼은 무조건 믿을 수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일생의 즐거움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좋은 것 아니겠어? 이미 저 녀석 나이도 27살인데도 여자 하나 없다니.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어?”

“으음. 말을 들어보니 상당히 놀라네요.”

“그렇지. 내가 오죽하면 그 녀석을 데리고 소개까지 다 시켜줄 생각을 하냐 이 말이냐고. 쯧. 너무 착한 것도 문제라니까.”

유연서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며 최주평을 바라보고는 한 마디 말한다.

“그럼 당신은 나쁜 사람이에요?”

최주평은 그 말에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착한 것도 그리고 악한 것도 혼합한 이상적인 남성이지. 당신 생각은 어때?”

“후후. 그런 것도 매력이라니까.”

두 사람은 이내 사랑의 눈빛을 서로 쏘아 보낸다. 그러다 최주평은 병주, 조혜수 두 사람을 슬쩍 보고는 이내 유연서에게 한 마디 말한다.

“일단 다시 저 쪽으로 가자고. 이제 오늘 일정은 마무리할 시간이야.”

그 말에 유연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두 사람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병주와 조혜수가 앉아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두 사람의 조심스럽고, 달달한 분위기를 깨기는 그렇지만 시간이 되었다.

============================ 작품 후기 ============================

병윤 같은 경우는 완전 선머슴 같은 여성이 이상형입니다. 병주 같은 경우는 그보다는 덜해도 털털하고 편한 여인이 이상형이죠. 젠장 모태솔로인 내가 이런 X같은 로맨스 이야기를 쓰다니. 하아. 미치겠구만.

댓글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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