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576화 (576/633)

0576 / 0633 ----------------------------------------------

[3부] 지옥의 한반도

조학준은 이내 흠흠 거리면서 자신의 딸 조혜수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그 말이 진정 사실이냐?”

“예. 이 종이 쪽지를 주면서 이 핸드폰 번호는 내 사적 핸드폰이니 얼마든지 통화가 가능하다고 그렇게 말했어요.”

“으음. 그렇다면야. 일단 다음에 만날 계획이 잡힌 것은 확실하지?”

그 말에 조혜수는 뺨을 붉게 물들이고 부끄럽다는 어조로 대답한다.

“헤헤. 아직. 모르겠어요. 다음에 만나는 것은 확실한데.”

조학준은 그 말에 박수를 짝짝 치면서 조혜수를 칭찬한다.

“암 내 딸이야. 역시 해낼 줄 알았다니까. 그래 혹시 그 사람을 여기에 들여올 수 있는가?”

그 말에 조혜수는 한 마디 대답한다.

“아직 확실한 사이가 아닌데, 그리 진전되어서야 되겠어요?”

“아참. 그렇지.”

“저도 여자에요.”

조인안은 그 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얼씨구. 얼굴과 몸만 여자인 주제에.”

조혜수는 그 말에 조인안을 살벌한 눈빛으로 획 노려본다. 조인안은 그런 여동생의 눈빛에 깨깽하고는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일단 다음에 만날 때, 그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맞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뭐에요?”

“아니 혹시 네가 그 분을 사칭하고 다니는 기둥서방에 홀린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어서 말이지...”

“아니 그럼. 그 이종언니(유서연을 지칭함.)가 거짓말을 쳤다는 거야?!”

“끄응. 그게...”

그 때, 유서연이 조혜수를 진정시킨다.

“인안이도 의심이 들겠지. 네가 걱정스러워서 하는 말이겠지.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 있단다. 직접 확인시켜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구나.”

조혜수는 그 말에 한숨을 쉬며 유연서에게 작은 목소리로 하소연한다.

“언니도 그 사람이 사칭한 남자로 알고 있어요?”

“아니. 난 그 사람이 진짜라는 것을 알고 있지. 하지만 말로 설득하는 것보다 직접 확인시켜 주는 것이 더 설득이 잘 된다고 말을 하고 싶구나.”

“으음...”

조혜수는 자신의 오빠인 조인안을 째려보고는 이내 부모님에게 시선을 돌려 한 마디 말한다.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학준은 그 말에 조인안과 조혜수, 그리고 유연서를 지그시 바라보며 고민하다 이내 한 마디 대답한다.

“한 번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리고 네 말대로 처음 만난 사이인데 굳이 혼사로 밀어붙이는 것은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할 수도 있는 법이지.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라면 분명 명성이나 위치로 볼 때는 어느 유력한 가문에서 혼사를 청원할 텐데 말이야.”

“저 그게... 그 쪽은 그 쪽의 부모님이 그런 결혼을 바라지 않나 봐요.”

“뭐? 그게 정말이야? 왜 그런데?”

어릴 때부터 가문끼리의 결혼이 익숙했던 조학준에게 있어서 병주의 사정에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사람의 부모들은 서로 짝 지어서 결혼한 것이 아니라 서로 마음에 맞아서 결혼한 편이라. 자식들에게 일방적인 결혼 강요를 하고 싶지 않다고 해요.”

“그래? 거참 신기한 일이군. 하기야. 그 사람들 애초에 소작농이었으니 말이야. 쯧. 누구는 애들 잘 낳아 인생 펴지고, 누구는...”

조학준은 조인안과 조혜수를 번갈아 바라본다. 조학준의 눈빛에 조인안은 가슴을 당당하게 해놓고 대답한다.

“그래도 저 정도면 평범한 사내는 아니라고 자부합니다.”

“언제 내가 그 말 했어? 뭐. 혹시 잘 되면 잘 키운 딸 하나가 열 아들 부럽지 않을 지도 모르지.”

조혜수에게 은근 기대하는 조학준의 말에 조혜수는 불편한 마음을 가졌다.

‘뭐. 그 이랑 잘 되면 좋겠지. 일단 그 사람이 TV와 신문에 나오는 그 사람이 맞으면 아버지께서도 허락해주시겠지.’

만약 조혜수가 만난 남자가 길씨 일가의 길병주가 확실하다면 조학준을 포함한 일가 쪽에서 전격적으로 지원을 해줄 가능성이 농후했다. 재생치료의 창시자 길병재부터 해서 독립군에 입대하고, 또 이번 전쟁에 있어서 가장 큰 공을 세운 군 장성 길병주, 마지막으로 한국을 넘어 세계에 뻗어나갈 정도로 가장 거대한 기업 집단을 보유한 길병윤까지 그 사람들과 혼인 관계 가문이 된다면 자신의 집안에 떨어지는 것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래. 내 집안이 하고 있는 사업도 혹시나 모르지.’

현재 조학준 일가는 농지개혁으로 인해 자신의 땅들을 다 팔고는 사업에 매진하고 있었지만 공장에 대한 경험이 없었던지라 꽤 부채가 있었다. 그 때문에 자신의 딸 조혜수를 가지고 유력 가문과의 혼인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물론 그 길씨 일가와 맺어진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사업의 방향은 뭐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최소한 장인 집안이라고 해서 혜택을 던질 것이다. 조학준은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니 제발 자신의 딸이 만나는 사람이 그 소문의 길병주가 되기를 하늘에 빌고 빌었다.

그러나 조학준은 그런 속마음을 숨기고는 이내 엄숙한 표정으로 조혜수에게 한 마디 말한다.

“원래 네 행각에 대해서 엄히 벌할 생각이었지만 연서의 말도 타당하니 그만하겠다. 그리고 흠흠... 만약 그 이가 정말 소문대로의 그 이가 확실하다면 난 적극적으로 너의 그 연예를 허락하겠다.”

조혜수는 그 말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예...”

결국 조혜수는 자신이 만나는 상대가 제발 병주이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병주가 지금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한편, 최주평과 함께 고기 집을 찾아온 병주는 고기 한 점을 집어먹으며 최주평과 같이 있었다. 최주평은 막걸리 한 잔 마시면서 조금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병주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런데 너네 집안 좀 형편이 되지 않냐? 왜 이런 곳에서 나랑 같이 먹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병주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면서 대답한다.

“사람이라는 것이 잘 변하지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겪었던 인생경험이 부유하다고 한 번에 바뀌지 않아요. 사실 집안 재산이 제 소유입니까? 다 제 동생 녀석이 벌어들인 돈이지.”

“뭐 말을 들으니 그럴 수도 있고. 그런데 계속 만나볼 용의는 있는 거냐?”

병주는 그 말에 막걸리 한 잔 마시면서 한 마디 대답한다.

“만나볼 용의는 충분합니다. 형님 체면도 있지만 저 역시 마음에 든 것도 있습니다.”

“허... 다가오는 여자들 마다않던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뭐 어떻습니까? 제가 평생을 목석처럼 살아야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크크크. 그래 그 말이 맞다. 그 말이 맞아.”

두 사람은 계속해서 고기를 집어 먹으며 배를 채운다. 그 때, 최주평이 취기가 오른 표정을 지으며 병주에게 한 마디 말한다.

“하아. 나라꼴이 말이 아니야.”

“무슨 소리입니까? 그게?”

“대통령이라는 작자는 자신이 살겠다고 부산으로 튀며 젊은 장정들에게 애국하라는 말만 하고. 그 밑에 있는 녀석들은 피난민에게 오는 물자들을 착복하고. 이게 진짜 나라꼴이냐?”

병주는 그 말에 씁쓸하게 웃으면서 대답한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시궁창 같은 현실을 헤쳐 나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아직까지 한반도에 빨갱이 놈들이 물러나지 않았는데 말이죠.”

최주평은 그 말에 헤헤 웃으면서 한 마디 말한다.

“뭘 또 그러냐? 춘천의 수백만 군대를 함경도 북부로 쫓아낸 사람이. 그런데 결판은 내년에 볼 생각이라며? 그 겨울 때문이냐?”

“한반도 북부의 겨울은 매섭습니다. 장진호 부근은 11월 달에 무려 영하 20도가 내려가는 극한지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날씨 속에 무리하게 작전하는 것은 병사들을 희생시키는 지름길입니다.”

최주평은 그 말에 쯧쯧 거리며 병주에게 한 마디 말한다.

“넌 솔직히 말해서 효율을 어떻게 뽑아내야 되는지 모르겠어. 만약 한 개 분대를 희생시켜 한 개 사단을 구할 수 있다고 치자. 너야 성격상 그 한 개 분대를 희생시키기 싫다고 말을 하겠지. 하지만 위에 있는 사람은 그 분대 하나를 희생시켜야 수만의 사람들을 구할 길을 택할 거다. 넌 좀 매정함을 키울 필요가 있어.”

“그거 군주론에서 말하는 건가요?”

“군주론이라... 그렇지.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에서 희생시키는 것도 하나의 수단이라고 말이야.”

“흠. 군주론에선 원래 정당하고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택하는 것이 가장 먼저라고 하지 않았나요?”

최주평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지. 그런 방법이 없다면 선한 것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매정함과 악독함이 따르는 방법도 선택해야 한다고 말이지.”

“그래서 정치인이 개새끼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하는군요.”

“개새끼라. 후후후. 그렇지. 권력을 얻는 길이 그리 꽃길만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 형님 말대로 매정함이 필요할 날이 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 그런 순간에도 모두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방법이 없다면 매정함을 선택하되 그 선택으로 발생하는 부정적인 것들을 최소화할 방법까지 찾을 것입니다.”

최주평은 그 말에 ‘쯧쯧’ 거리며 한 마디 말한다.

“뭐 그 것이 최선이겠지. 넌 그 것을 훌륭히 증명했고 말이야.”

병주는 그 말에 싱긋 웃으면서 한 마디 대답한다.

“사람의 생각은 제각기 다른 법입니다. 같은 날에 태어난 쌍둥이라고 해도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삽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의 부분에서 호감과 혐오감을 가질 수 있겠지요.”

“그래서 날 설교하는 거냐?”

“그냥 간단히 말해서 사람은 다르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불탄 위에 있는 고기 이대로 있다가 탈 것 같은데. 지금 먹죠.”

“그래.”

병주와 최주평은 불판에 익힌 고기를 집어먹으며 맛을 음미한다. 그렇게 두 사나이의 대화와 또 안주를 채우는 행각은 밤까지 계속된다. 후에 병주는 대취한 최주평을 택시 안에 먼저 태우고는 자신도 안에 들어가 기사에게 장소를 이야기하고는 이내 핸드폰을 꺼내며 어디론가 전화한다.

-뚜르르 뚜르르 철컥!-

-누구십니까?-

“나다. 지금 일하고 있냐?”

-형님입니까? 뭐 지금 일하고 있습니다만. 그런데 형님 휴가 나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지금 여기 대구다.”

-대구라. 언제 집에 들어오실 생각입니까?-

“집은 무슨. 집에 우리 큰 형 부부밖에 있지 않겠냐? 사실 나 소개 받았다.”

-...... 예?-

“소개 받았다고. 여자 소개 받았어.”

-진짜요? 형님이?-

“말을 들어보니 내가 여자 사궐 것이지 않고, 예상한 말인 것 같다?”

-지금 형님은 여자들을 마다하지 않고, 일에 치중한 사람 아닙니까?-

“뭐. 주평이 형님이 소개시켜줘서 한 번 만나봤다.”

-그래서 뭐 어떻습니까?-

“처음 만나보니 꽤 괜찮더라고. 나도 여자를 사겨봐야 하지 않겠냐?”

-누가 뭐라 합니까? 얼른 그 사람 사귀셔서 결혼까지 가십시오. 그나저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엄청 좋아할 것 같네요.-

“나도 이제 3년만 더 지나면 이립(30세)에 들어선다. 이제 한창 노총각인 나이이지. 지금까지 여자 없이 지내온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예. 예. 알겠습니다. 이 동생 형님의 연예 각골난망하게 지켜보겠습니다.-

“뭐. 잘 되면 네 형수님 될 분이다.”

-예. 그럼. 결과 나면 전화주십시오.-

“썩을 놈.”

그 것으로 두 사람의 통화는 끊어졌다. 그리고 택시 차량은 어디론가 향한다.

1950년 10월 14일, 병주는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하며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잘 차려진 옷을 입은 한 여성이 병주에게 다가간다.

“헤헤. 안녕하세요? 혹시 오래 기다렸나요?”

바로 소개로 어제 만난 조혜수였다. 병주는 조혜수의 얼굴을 보고선 이내 벤치에 일어서서 그녀에게 말한다.

“그건 아닙니다. 저도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호호 그래요?”

“휴가라서 그런지 쉬는 날이 익숙하지가 않네요.”

“그럼 제가 익숙하게 만들도록 돕겠어요.”

“하하. 이거 참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일단 길거리를 걸어가며 같이 이야기를 나눌까요?”

조혜수의 말에 병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와 같이 발걸음을 옮긴다. 두 사람은 마치 다정한 연인처럼 천천히 걸어가며 공원 안을 살핀다. 전쟁통으로 난리가 났다고 하지만 여기는 그야말로 평온함이 보였다. 하지만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것이 눈에 띈다. 그러나 병주는 이 것을 자연스러움으로 보고는 그리 어색하지 않는다.

그녀와 걸으면서 이야기를 하다 이내 중절모를 쓴 한 사람이 병주와 조혜수를 지나친다. 그리고 그 사람은 병주를 살펴보다 이내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병주는 그 사람에 응시하다 이내 조혜수를 바라보고는 한 마디 말한다.

“그런데 혜수씨의 오빠는 군인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예. 그래요. 그러니까 원래 3군단 소속이라고 알고 있어요.”

“3군단이라... 그렇다면 문경의 그 전투에 참여한 적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조혜수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면서 한 마디 대답한다.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매번 집에 올 때마다 그 전투에 대해 말을 올려요. 엄청난 대첩이라고 자신은 이런 전공을 세웠다고 자랑하는 것이 좀 그래요.”

“하하. 그렇습니까?”

“그런데. 3군단의 일에 대해서 아시나 봐요?”

“저도 군인이고, 한 때 거기에 소속된 사람이니 잘 아는 수밖에 없지요.”

“흠... 지금 전쟁은 함경도에서 발생한다고 들었어요. 맞나요?”

“예. 아직까지 중공군과 국지전을 벌이고 있죠.”

두 사람은 곧 전쟁 이야기를 하며 거리를 걸어 나간다.

============================ 작품 후기 ============================

젠장 문명 때문에 지금 글을 쓰게 됩니다. 휴우. 다음 편에 병주의 연애도 끝이군요. 제길 오글거려. 그리고 사실 전 병윤과 진서연을 이을 생각이 없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