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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1950년 11월 8일, 병윤은 군복을 입고, 두 사람과 같이 식사를 나누고 있었다. 바로 병윤의 절친한 친우인 연형칠과 송감연이었다. 세 사람은 한 식당에서 같이 설렁탕을 먹으며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요즘 정훈 일은 어떻게 하고 있냐?”
연형칠은 그 말에 깍두기를 하나 집어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대답한다.
“뭐 별거 있냐? 지금도 자유민주주의가 위대하다 라고 선전하고 다니는 꼴이지. 요즘은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정훈 교육이 진행 중이다.”
“민간인들?”
“전쟁에 군인들만 동원되는 것이 아니잖아.”
“그렇기야 하겠군. 요즘 전투가 뜸해졌으니 그 곳에 집중하는 건가?”
“매번 헬기를 타며 일일이 마을 사람들에게 영상 틀어주고, 교육시키고, 꽤 고역이다. 고역.”
“허참. 고생이 눈에 보인다.”
“너만 하겠냐?”
송감연은 그 말에 병윤과 연형칠에게 한 목소리로 외친다.
“닥쳐봐. 이 편안하게 지내는 자식들아. 나 밥 좀 먹자.”
송감연에게서 신경의 날카로움이 느껴진다. 몇날며칠 잠도 안 자고, 일하다 겨우 쉬는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송감연의 팔은 부들부들 떨면서 숟가락으로 억지로 음식을 입 안에 꾸역꾸역 넣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병윤은 그런 송감연의 모습에 혀를 찬다.
“넌 어째. 하루가 갈수록 늙어간다. 조수들 없어?”
감연은 그 물음에 묵묵부답 음식을 입 안에 넣는다. 마치 온 신경을 음식에 집중하겠다는 집념이 느껴질 정도였다. 연형칠은 병윤에게 넌지시 한 마디 묻는다.
“감연이 쟤 왜 저러냐?”
“딱 보니까 붙들려서 몇날 며칠 야근한 것이 눈에 보이네.”
“하기야. 너무 유능한 것도 안 좋은 거야.”
“그 말에 나도 동감한다.”
그 때, 그릇 바닥까지 삭삭 긁어먹은 송감연은 이내 숟가락을 살포시 식탁 위로 내려놓는다. 그리고 피곤한 얼굴로 병윤과 연형칠을 바라보고는 말한다.
“에휴.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야.”
병윤은 그 말에 한 마디 대답한다.
“예전 같았으면 욕을 해댔을 텐데. 지금 그 꼴을 보니. 그런 말을 못하겠군.”
“차라리 욕을 하세요.”
연형칠은 감연이 걱정스럽다는 눈빛으로 이내 한 마디 묻는다.
“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냐?”
“에휴. 몰라. 젠장 일이란 일은 나에게 다 쏟아지고. 조직을 개편해도 일감은 나에게 가고. 휴가라도 가고 싶다.”
감연의 말에 병윤이 한 마디 말한다.
“그럼 휴가를 가세요.”
“그게 그리 쉽게 이뤄진다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병윤은 그 말에 골치가 아프다는 얼굴로 감연에게 대답한다.
“또 뭐가 문제인데?”
“젠장. 대학에서 애새끼들 가르치는 것도 그렇고, 쪽지시험을 봐줘야 되고, 논문도 봐야 되고, 자료도 검토해야 하고, 또 나에게 맡겨진 연구도 수행해야 되고...”
“평상시랑 다름이 없잖아.”
“아 몰라. 난 지쳤어. 집에서 실컷 자고 싶다.”
“그럼 집에 가서 자. 누가 뭐라 해?”
감연은 그 말에 ‘진심이냐?’라는 눈빛으로 병윤을 바라본다. 병윤은 오히려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뭐 뒤는 네가 책임지는 것이고.”
“젠장. 넌 진짜 사악하기 그지없는 인간이야.”
연형칠은 은근 감연을 옹호하며 병윤에게 말한다.
“야야. 그러지 말고. 감연이 얼굴 봐라. 애 잡게 생겼다.”
병윤은 그 말에 감연을 지그시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며 이내 이렇게 말한다.
“에라. 친구 녀석 좋다는 것이 무엇이냐? 지금 집에서 가서 쉬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라. 책임은 내가 져줄테니.”
감연은 그 말에 두 눈을 부릅 뜬 채로 병윤을 쳐다보며 묻는다.
“야 그거 거짓말 아니지?”
“그럼 대학 총장에게 직접 전화라도 할까?”
“어. 해.”
병윤은 ‘뭐 이런 자식이 다 있냐?’라는 눈빛으로 이내 군복 속에서 개인 휴대폰을 꺼내들며 어딘가로 전화한다.
-뚜르르 뚜르르 철컥!-
-동현 대학교 총재 봉필현입니다. 누구십니까?-
“접니다. 총재님.”
-아 그 목소리는 셋째 도련님(동현대학교는 애산재단 소속이라 애산재단의 회장인 길남효의 아들들을 도련님이라 칭함.)이십니까?-
“조금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러는데...”
-예. 얼마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그 송감연 교수 있지 않습니까? 며칠간 휴가를 줄 수 없습니까?”
-예? 송 교수의 휴가를 말씀입니까? 그건...-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지금 이 시점에서 송 교수를 쉬게 해두었다간 지금 송 교수가 맡고 있는 일이 차질을 빚을 것 아닙니까?-
“단순히 그 점이 걱정입니까?”
-그 것도 있지만 역시 정부가...-
“그 점에 대해선 제가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그 점만 확실히 셋째 도련님께서 해주신다면 상관없습니다.-
병윤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봉필현 총재에게 대답한다.
“그럼 확실히 송 교수 휴가를 허락해주십시오. 이만 끊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셋 째 도련님.-
병윤은 이윽고 이내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건다.
-뚜르르 뚜르르 철컥!-
-누구시오? 이 시간에 나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접니다. 장관님. 현재 군수과에 군무 중인 중위 길병윤이라고 합니다.”
-군수과 중위? 그런 사람이 나에게 전화를 줄 이유가... 응? 잠시 길병윤이라고 하셨소? 설마...“
“하하. 군 입대 전에 제 직업은 동협 그룹 회장이었습니다.”
-아 길 회장. 무슨 일이기에 나에게 이런 전화를 다 주었소?-
“조금 장관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흠. 길 회장의 성격으로는 이 체신부에 굳이 사업 이권을 부탁할 사람은 아닌 것 같고. 무슨 일이라도 있소.-
체신부 장관 장기영 장관의 말에 병윤은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이내 이렇게 한 마디 말한다.
“혹시 체신부에서 동현 대학교의 송 교수에게 맡긴 연구가 뭐 뭐 있습니까?”
-뭐 그거야 많을 것이오. 아마 수십 건이 송 교수에게 떨어졌으니 말이오. 그만큼 송 교수의 역량을 지닌 과학기술자가 현저히 부족한 실정이오. 지금은 지속적인 전화 통신망 구축에 대해 힘을 쓰고 있소. 그 건에 대해선 길 회장께서도 잘 아리라 생각하오.-
사실 동협 그룹은 체신부의 의뢰에 따라 한반도 전국적인 통신망 구축에 나선 적이 있었다. 특히 핸드폰의 발명과 상용화로 인해 전국 각 지방에 핸드폰이 사용될 수 있도록 각지에 통신시설을 건설한 적이 있었다.
“사실 송 교수의 일을 미뤄달라는 요청을 하기위해 전화를 했습니다.”
-송 교수의 일을? 흠. 그의 일이 조금 밀린다면 우리 체신부의 일도 밀릴 터인데...-
“하하. 송 교수가 제 친우인데. 지금 상태를 보아하니 꼴이 말이 아니라서 휴가를 줘서 피로를 풀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으음. 휴우. 알겠소. 어차피 며칠 말미의 시간이니 그 때 동안은 송교수의 일을 잠시 미루고, 다른 곳에 일을 집중하면 그만이니.-
“감사합니다. 장관님. 다음에 제가 한 번 대접해드리겠습니다.”
-뭐 그럴 필요까지야. 그럼 길 회장에게 필요한 일이 있다면 다시 연락을 드리겠소. 그럼 이만 전화를 끊겠소.-
“예. 감사합니다.”
체신부 장관 장기영과의 통화를 끝낸 병윤은 이내 송감연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그래. 며칠간 잠을 자고, 다음에도 고생해야지. 안 그래? 나의 친우여.”
송감연은 그 말에 좋다가 만 얼굴로 병윤에게 투덜거린다.
“며칠 간 잠을 잔다는 말에서 기분이 좋았다가 다음에 고생하라는 말에 기분이 엿 같았다. 이 개 같은 친우여.”
“그래그래. 그런데 체신부 쪽에서 너에게 떨어진 연구가 뭐 뭐 있냐?”
“뭐 별 것 있나? 무선 통신과 관련된 기술들을 나에게 의뢰했지. 그리고 골치 아프게도 암호와 관련해서 일을 맡긴 것도 있고. 젠장. 내가 무슨 암호학 박사도 아니고.”
“통신에서 암호 역시 중요는 하지.”
“아니 그리고. 그 양놈들이 왜 나에게 의뢰를 하고 지랄이야. 자기들 기술을 갖다 쓰면 될 거 가지고. 유엔 명목으로 나에게 일을 떠맡기니 아주 엿 같아.”
“예를 들자면?”
“뭐긴 뭐야. 군부대 간 통신 개선에 관해서 말이야. 무거운 무전기로 통신을 하다가 한 손에 쥘만한 작은 핸드폰으로 통신을 하니 그 쪽에서 뻑 가는 거지.”
“하기야...”
연형칠은 핸드폰이라는 말에 자신이 아는 이야기를 꺼낸다.
“요즘 핸드폰이 계속 대중화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전라도 어느 시골 마을에 가봤는데. 그 곳 마을의 이장이 핸드폰을 들고 다니더군.”
“허. 진짜로?”
“그래. 전화기를 따로 연결하고, 기반 시설을 설치하려면 이 것 저 것 드는 돈이 많이 드니 차라리 핸드폰으로 갈아탔나봐. 그게 더 편리하고 말이야.”
“도시에서도 가끔 보이는 핸드폰이 시골 지역까지 오네.”
“네 기업에서 핸드폰을 찍어대듯 생산하고 판매한다면 한반도 전국에 핸드폰 이용자 수가 급증할 걸?”
“흠. 이거 체신부에서 떼돈을 벌겠군.”
체신부 소속의 한 기관을 생각한 병윤은 왠지 조금 배가 아팠다. 하지만 통신과 관련된 업무는 엄연히 공기업의 일이었고, 병윤 역시 그 곳을 끼어들 생각은 별반 없었다. 만약 민영화 된다면 한 번 진입을 시도할 용의는 있었다.
그 때, 감연이 병윤을 보고 한 마디 말한다.
“그런데 너 나보고 이런 거 하라고 말하지 않았냐?”
“뭐?”
“그 컴퓨터 통신망 말이야.”
“아 그거 말이야?”
“그래. 그거. 컴퓨터와 컴퓨터 사이에 무선 신호를 통해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 좋다고 저번에 지껄였잖아.”
“아 그런 말을 했었지. 참. 그런데 그거 어떻게 되어가고 있냐?”
연형칠은 그 말에 궁금한 표정으로 이내 두 사람에게 한 마디 묻는다.
“아니 그 컴퓨터 통신망이라는 것이 뭔데 그러는 거야?”
병윤은 그 말에 연형칠에게 간단히 설명해준다.
“너도 한 기업의 사장이니 컴퓨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
“그래. 그런데 그게 뭐?”
“컴퓨터 통신망이라는 것은 컴퓨터 끼리 서로 연결하여 자료들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는 거야.”
“뭐 설명이 그래? 좀 간단하게 설명해봐.”
병윤은 한숨을 쉬며 이내 연형칠에게 비유적인 어법으로 컴퓨터 통신망에 대해 설명해준다. 연형칠은 그 설명에 곰곰이 생각하다 이내 이렇게 말한다.
“뭐? 이런 것이 가능하다는 거야?”
“어차피 근본 원리는 통신을 이용한 것이니 가능하겠지. 그걸 실질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감연의 역할이고 말이야.”
감연은 그 말에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한 마디 말한다.
“병윤아. 내 한 마디 이야기를 할게. 좆 까고 엿이나 처먹어.”
“에이 왜 그러나? 친우여. 너만큼 아주 유능하고, 성과도 척척 내는 친우는 세상에 없다고.”
“체신부에서 우리가 이야기한 걸 알면 날 감금시켜서 일을 시킬 거 같군.”
“흠. 친우여. 만약 그 컴퓨터 통신망이 만들어진다면...”
“그만. 그냥 그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 난 지금 집에 가서 잠을 잘 생각 밖에 없으니. 그 컴퓨터 통신망인가 뭔가 하는 지랄 같은 것은 내 여유로울 때 꺼낼 수 있도록.”
“그 것 참 안타깝군.”
“정 안타까우면 동협 그룹이 직접 한 번 해보는 것이 어때?”
병윤은 그 말에 잠시 판단하다 이내 피식 웃음을 지으며 감연에게 이렇게 말한다.
“컴퓨터 통신망의 설계 개발의 공을 나의 절친한 친우에게 떠넘기려고 했는데. 안타깝게 되었군.”
“엄청 안타까워 해. 난 안 할테니.”
연형칠은 그 말에 병윤에게 이렇게 한 마디 말한다.
“그래서 그 컴퓨터 통신망은 누가 한다는 거야?”
“아 그거? 차후 생각해봐야겠지. 지금 그게 중요하냐?”
“있으면 상당히 흥미로울 것 같은데 왜?”
“흥미로울 거야. 아직은 말이지.”
병윤은 피식 미소를 짓고는 이내 자신의 설렁탕을 비우기 시작한다. 연형칠 역시 설렁탕 한 그릇을 비우고, 후식으로 입가심을 했다. 그러다 이내 서로 가족 이야기를 꺼내들다 두 사람 전부 병윤을 바라보고 이렇게 말한다.
“그건 그렇고, 길병윤이 너도 이제 슬슬 가정을 꾸려야 되지 않겠냐? 이번에 병주 형님이 형수님을 모색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말이야.”
연형칠의 말에 병윤은 얼굴을 찡그리며 이내 이렇게 대답한다.
“네놈들이 내 부모냐? 그냥 신경 꺼라. 어차피 내 인연은 시간이 지나면 만나게 되겠지.”
병윤은 이내 후식을 처리하며 더 이상의 언급을 하지 않는다. 연형칠과 송감연 두 사람은 그런 병윤을 보고, ‘역시 정신이 나간 자식.’이라고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만약 1950년대에 지금처럼의 인터넷이 있었다면 과연 어떻게 사회가 변화했을까요?
후에 다가올 유신 + 정보화의 조합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