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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인생-584화 (58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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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1950년 11월 16일, 점점 한반도 북부의 기온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영하권을 넘는 경우도 허다했다. 바깥에 있을 때마다 허연 입김이 저절로 나온다. 자연히 이 쪽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바깥에 활동하기보다는 안에 지내는 것을 선호했다. 현재 한반도 북부의 전선에 있는 병사들은 어느 정도 준비 태세만을 갖추고는 겨울나기에 바빴다. 그건 건너편 북한군과 중공군 역시 사정은 동일했다. 거의 국지전만이 오고갈 뿐, 다음 전투를 위해 휴식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난방이 되어 있는 방 안, 병주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이내 자신 앞에 서 있는 부관 정철회 대위에게 지나가는 말투로 말한다.

“흠. 미처 예상한 일이었지만 역시 날이 갈수록 추워지니 곤란한 일이 많이 생기는 군.”

“일선 부대에서 동파 사건들 때문에 곤란을 겪는 곳이 많습니다. 현재 동파를 해결할만한 기기들을 요청하는 부대들이 많습니다.”

날이 추워지면서 가장 곤란을 겪는 것은 바로 급수였다. 일단 야외에서 활동하다보니 꽤 곤란한 것들이 많았다. 물을 구하고, 화장실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난방, 취사, 그 외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었다. 물을 구할 때는 인근 깨끗한 개울가나 샘터를 기준으로 양수기와 간단한 정화기를 설치하여 물을 끌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비상시에는 아예 군수과에 대놓고 물을 요구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민물의 경우 영상 4도면 얼기 시작하기 때문에 양수를 하여 일선 부대로 가는 관 도중에 얼어서 물이 안 오는 경우가 생겼다. 그건 날씨가 추워지면 추워질수록 더더욱 심해졌다.

그럴 때마다 관 이음새를 풀고, 언 부위를 찾고, 해동기의 호스를 투입시켜 열수를 집어넣어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 것도 사실 임시조치일 뿐이었다.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흠. 임시로 투입한 관에 그만한 돈을 쏟아 붇자니 위에서 지랄을 할 것이고. 이거 참 큰일이군.”

정철회 대위는 그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병주에게 한 마디 말한다.

“사령관님 동생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 사람에게 말하여 동파방지용 관을 따로 만들거나 아니면 지속적으로 온수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병주는 그 말에 정철회 대위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야. 정 대위 임마. 나도 자존심이 있어. 어떻게 동생에게 매번 손을 빌릴 생각을 하냐?”

“매번 그러하지 않았습니까?”

“쯧. 간단한 방법을 찾을 생각을 안 하고, 어떻게 내 동생에게 손 벌릴 생각을 하는가?”

정철회 대위는 그 말에 할 말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병주는 잠시 고민하다 이내 정철회 대위에게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흠... 차라리 급수지에 가열기를 투입시켜 열수를 통과시키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정철회 대위는 그 말에 고개를 갸우뚱 거리다 이내 한 마디 말한다.

“그런데 물을 끓일만한 기기가... 아 있군요. 그런데 그건 병사들의 난방기로 많이 애용하지 않습니까?”

정철회 대위가 언급한 것은 태양광 열 발생기라고 말을 할 수 있었다. 원리는 간단하다. 태양 전지로 모은 전기로 물을 가열시켜 마치 보일러 형식으로 난방이 되게끔 하는 것이다.

“어차피 이런 시기에 냉수보다는 온수를 더 선호하겠지. 일선 지휘관들과 회의를 한 뒤에 동파 사태를 극복해야겠지. 어차피 한반도 북부의 추위는 그냥 버틴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니 말이야.”

그 말에 정철회 대위는 공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같은 시각, 서 일본 시모노세키의 어느 저택의 한 방 안에서 두 노인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일본 전통차를 우려 마신 하카마를 입은 노인이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양복의 한 노인을 보고 조금 놀란 표정으로 되묻는다.

“흠. 그 것이 사실이오?”

그 말에 양복을 입은 한 노인은 자신의 콧수염을 만지며 대답한다.

“아마 내년 후반기쯤에 샌프란시스코에서 회의를 열어 우리 일본에 대해서 정상적인 국가로 만들려는 논의가 있소.”

그 말에 하카마를 입은 노인이 피식 미소를 머금으며 한 마디 말한다.

“그 것 참 축하해야할 일이로군.”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우리 일본국은 한반도에 대해 어떤 청구권도 가지지 못하도록 논의가 오고 가고 있소.”

순간 하카마를 입은 노인의 눈빛이 변한다. 그리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고는 말한다.

“쯧. 좋다가 말았군.”

“이치죠 상은 일본제국 시기에 한반도에 많은 이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소?”

하카마를 입은 노인 이치죠는 씁쓸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뭐 지나간 과거의 일이오.”

“허... 지난번에 한반도 이권을 되찾겠다고 바락바락 기를 쓰지 않았소이까?”

하카마를 입은 노인은 양복을 입은 노인의 말에 짜증을 내며 대답한다.

“그래서 나를 찾아온 목적이 단순히 나를 조롱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오?”

그 말에 양복을 입은 노인은 손사레를 치며 대답한다.

“그런 뜻으로 곡해하지 마시오. 이치죠 상은 한국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는 조선인 공무원과 꽤 많은 관계를 나눴다고 듣고 있소.”

“......”

“사실 나 역시 미군이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수출하여 돈을 버는 사람이오. 다만 이 것으로 부족하다는 인식이 없지 않아 있소. 이치죠 상. 그러니 제발 나와 거래를 합시다.”

하카마를 입은 노인은 그 말에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허... 조선반도가 난리이니 나를 찾아온 이가 왜 이리 많누...”

양복을 입은 노인은 그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하카마를 입은 노인은 차를 마시다 이내 한 마디 말한다.

“이번에 샌프란시스코 이야기는 잘 들었소. 다만 거래 이야기는 없는 것으로 하지.”

양복을 입은 노인은 그 말에 얼굴이 굳어지며 이내 한 마디 말한다.

“아니! 패전 전에만 하더라도 나에게 손을 벌리던 사람이 이러기 이오?!”

하카마를 입은 노인은 그 말에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한다.

“그 때는 그 때 일뿐. 그리고 패전 전에 당신에게 빚진 것을 모두 갚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끄응. 내가 당신에게 많은 투자를 했으니 그 인연으로...”

“당신 말고도 나를 만나기 위해 안달한 사람들은 많으니 없는 것으로 알겠소.”

양복을 입은 노인은 굳은 얼굴로 하카마를 입은 노인을 바라보고는 이내 한 마디 말한다.

“이리 은혜를 원수로 갚는지 모르겠소.”

그 말에 하카마를 입은 노인은 거슬렸는지 이내 누군가에게 눈짓을 한다. 그러자 하카마를 입은 노인 뒤에 서 있던 양복의 선글라스를 쓴 남성이 자신이 차고 있던 일본도를 칼집에서 꺼내더니 순식간에 칼날을 양복을 입은 노인의 목에 갖다 대었다.

“히이이익!”

하카마를 입은 노인의 전담 경호원인 마츠나가 요헤이는 칼날을 조금씩 목에 가까이 대면서 살기를 일으키고는 이내 양복을 입은 노인의 귓가에 속삭인다.

“어르신에게 함부로 말을 걸다니 배짱도 좋군.”

“히익!”

양복을 입은 노인은 엄청 겁을 내면서 시선을 마츠나가 요헤이와 하카마를 입은 노인을 번갈아 바라본다. 그런 꼴을 보자 하카마를 입은 노인은 이내 한쪽 손을 들었고, 그러자 마츠나가 요헤이는 순식간에 칼을 거두며 다시 칼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 상황이 되자 하카마를 입은 노인은 이내 양복을 입은 노인네에게 한 마디 말한다.

“평화협정에 대한 이야기는 잘 들었소. 이번에 목숨을 잃지 않은 것도 그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준 대가라고 하시오.”

“예... 예...”

“뭐하는가? 손님 나가신다.”

마츠나가 요헤이는 그 말을 듣자 곧 문 가까이에 서 있던 남성들을 손짓으로 지시를 내려 양복을 입은 노인을 끌고 가게 만든다. 마치 경찰에 붙잡혀 질질 끌려가는 범죄자처럼 남성들에게 끌려가는 양복을 입은 노인은 아까 실례라도 했는지 바지가 축축 젖어 오줌 방울들이 바닥에 흘리고 다닌다.

하카마를 입은 노인은 그런 모습에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이내 옆에 서 있는 기모노를 입은 젊은 여성에게 짧게 말한다.

“보기 흉하군. 닦아라.”

“예. 어르신.”

곧 젊은 여성은 저택에 일하는 하녀들을 불러 방바닥을 닦는다. 그런 와중에 하카마를 입은 노인은 아까 마시지 못한 차를 다 마시면서 이내 옆에 서 있는 마츠나가 요헤이에게 말한다.

“흠. 결국 공식적으로 내가 가진 한반도의 이권은 박탈당하는 셈이군.”

그 말에 마츠나가 요헤이는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어르신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 것이 너의 잘못은 아니지. 원래 순리가 그렇게 돌아가는 것 일뿐. 중요한 것은 힘찬 과거에 매달리는 것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겠지.”

“......”

하카마를 입은 노인은 분위기를 잡다 이내 옷 속에 무언가를 꺼낸다. 그리고 그 것을 본 노인은 큭큭 웃으며 말한다.

“거참. 재밌는 세상이군. 내가 적수로 인정하는 단체에서 사용하는 물건을 쓸 줄이야.”

바로 한국에서 밀수한 핸드폰이었다. 노인은 핸드폰을 이리저리 바라보다 마츠나가 요헤이에게 시선을 돌리며 한 마디 말한다.

“참으로 재밌는 세상이지 않나? 역시 내가 인정한 적수다워. 적수에서 만든 물건이 내 손에 들어와 이용되니. 그 것 참 기분이 묘하군.”

마츠나가 요헤이는 그 말에 진지하게 대답한다.

“우리 일본도 이런 물건 따위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르신.”

“그래. 만들 수는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

“일단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야.”

노인은 그렇게 답변하고는 이내 핸드폰 뚜껑을 열고는 누군가에게 연락을 한다.

-뚜르르 뚜르르 철컥!-

-어르신이십니까?-

“척보면 척 받는군. 자네가 바쁜 것은 알지만 이 쪽으로 오게나.”

-예. 빠르게 달려오겠습니다.-

잠시 시간이 지나 방 안에 누군가 안으로 찾아들어온다. 바로 어르신 세력에서 첩보를 담당하는 사이토 이카무라였다. 사이토 이카무라는 노인을 보자마자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묻는다.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습니까?”

그 물음에 노인은 이내 눈짓으로 사이토 이카무라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지시를 내렸고, 사이토 이카무라는 긴장한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노인의 반대편 의자에 앉는다.

“그래. 조선반도의 상황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

사이토 이카무라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대답한다.

“아직까지 전쟁 중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점차적으로 전투가 뜸해지고 있는 양상입니다.”

“뜸해진다라? 그건 왜 그렇지?”

“아시다시피 한반도 북부는 엄청 춥습니다. 지금은 11월이지 않습니까? 여기서는 그냥 활동할 수 있지만 한반도 북부의 전장은 다릅니다.”

“흠. 그렇군. 이해가 되었어. 그렇다면 겨울 동안은 적극적인 작전이 없겠군.”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나의 적수는 어떻게 하고 있나?”

“별 다른 사항은 없습니다. 그들로써는 이 전쟁에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중요한 문제이니 말입니다. 다만 한국 정부에서 꽤 묘한 것이 포착되었습니다.”

“묘한 것?”

“예. 한국 정부에서 대대적인 비리 게이트를 열 것 같습니다.”

“허... 비리 게이트라. 거참 재미있겠군. 한 번 알아보았는가?”

“일단 자세한 것은 둘째 치고, 군사들을 새로 뽑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거기서 비용을 착복한다는 말이 들립니다.”

노인은 그 말에 비릿하게 웃으며 한 마디 대답한다.

“어려운 시기에 한탕을 해먹으려고 하다니. 거참 인간이란...”

“어르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게이트에 그들과 엮인 것인가?”

“그들이 한국군의 군수 보급처이니 반드시 엮일 것입니다.”

“대답은 간단하군. 정보들을 수집해.”

“예? 이걸 기회로 이용해서 그들을 궁지로 모는 것이...”

노인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며 이내 사이토 이카무라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네 아직까지 그들에 대해서 잘 파악하지 못하는군.”

“......”

“그들에게 몇 번 공작을 해 본 경험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결과는 어떠했지?”

그 말에 사이토 이카무라는 죽을 죄를 졌다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그들과 전면전을 치르기에는 곤란해. 우리가 먹히지. 안 그런가? 사이토.”

“정말 엿 같은 현실이지만. 어르신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하지만 차후에 승리는 우리 손아귀에 있을 것입니다.”

노인은 그 말에 싱긋 웃으며 사이토에게 말한다.

“재밌는 아부이군. 그 것보다 컴퓨터에 대한 것은 어떻게 되었나?”

사이토는 그 말에 잠시 생각을 하다 이내 이렇게 대답한다.

“컴퓨터 개발에 참여했던 미국 과학자들을 따로 만나 기술들을 습득하려고 했지만 기밀 사항인지 핵심기술에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렇게 하겠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현재 동현대학교에 심어놓은 인원들은 어떻게 하고 있지?”

“아직 학생 신분으로 있어서 컴퓨터에 대한 핵심 기술을 접근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쯧. 짜증이 나는군. 매번 시간이 걸리니 말이야.”

“하지만 그 인원들이 적수의 기술들을 파악한다면 우리 역시 꽤 많은 이득을 볼 것입니다. 한 수를 위해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누가 그 것을 모르는가? 일단 지속적으로 조선반도의 정보를 접수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시모노세키에 기반을 다지는 것이다. 시모노세키에 기반을 다진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 부족해.”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어르신!”

하카마를 입은 노인은 그 말에 진득한 미소를 흘러내릴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다시 등장한 어르신! 하지만 다시 등장해도 관망자로 나설 것이라는 사실.

어르신 : 씨발! 나 좀 출연 좀 시켜줘.

작가 : ㅇㅇ 관망. 엑스트라 ㅅㄱ

어르신 : ㅂㄷㅂ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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