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585화 (58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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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1950년 11월 18일, 부산에 있는 한 저택, 원래 병윤이 부산에서 가족들이 머무를 수 있는 별장으로 지었는데, 지금은 병윤의 아버지 길남효의 일 때문에 집으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었다. 길남효는 지금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보고 짜증난다는 얼굴로 바라보며 말한다.

“당신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 말에 길남효와 비슷한 나이 대의 노인 두 사람과 그 노인보다 더 늙어 보이는 노파가 앉아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망했는지 복장 차림이 꾀죄죄했다. 다만 예전 있는 집 자식 출신이라서 그런지 꼴에 양복을 입었다. 부산에 몰려든 피난민들을 정착시킬 피난촌의 건설을 주도하여 사람들의 인망을 얻도록 노력하는 길남효였지만 지금 이들을 바라볼 때, 특히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의 두 사람을 바라볼 때는 감정이 격해진다. 그나마 그 둘 옆에 있는 노파 때문에 억지로 참았다. 길남효는 두 노인을 바라보고는 한 마디 말한다.

“이미 그 쪽 집안과는 인연이 끊은 것으로 기억나는데?”

그 말에 허망한 표정을 지은 노인들 중 한 사람이 어렵게 대답한다.

“예전에 끊었지. 하지만...”

“하지만 뭐지?”

“적어도 아버지의 핏줄을 혈연이지...”

그 순간 길남효는 자신 의자 옆에 있던 탁자 위의 화분을 던져버린다.

-쨍그랑!-

길남효가 아끼던 난이었는데, 감정이 격해졌는지 그런 것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까 말을 꺼내던 노인에게 씩씩 거릴 뿐이었다. 그 때, 노파가 길남효에게 한 마디 말한다.

“지... 진정하거라...”

“하아... 휴우... 젠장. 빌어먹을 당신 때문에 말을 들어볼 여지가 있는 거요.”

길남효는 자신의 감정을 진정시키며 노파에게는 그나마 상냥하게 대답한다. 길남효의 감정에 놀란 두 노인은 자신의 어머니인 노파만을 기댈 뿐이었다. 노파는 담담하게 길남효에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난 그저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왔단다.”

길남효는 노파를 바라보며 상당히 고민하는 처지였다. 시궁창 같은 어린 시절에 그나마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해준 사람이기에 길남효는 감정이 격해져도 노파에게 함부로 대하기는 싫었다. 길남효는 분노의 눈빛으로 두 노인, 아니 지금 피가 이어졌다고 주장하는 이복형 두 사람을 바라보다 이내 그 두 이복형의 친어머니이자 본가의 본부인인 서혜연에게는 감정을 누그러뜨린다.

“이야기라. 으음...”

“적어도 우리가 왜 이런 꼴로 나에게 나타난 것인지는 알고 싶지 않은가?”

서혜연의 말에 길남효는 은근 궁금했다. 일제 시기부터 일본인들의 도움을 받아 일대 가문의 지주로써 머슴들과 소작농들을 부리고 떵떵 거리며 살았단 본가였다. 물론 길남효는 경술국치가 이러진 해에 본가에서 쫓겨나 완전 인연을 끊었지만 말이다. 4년 전에 본가 쪽이 병윤에게 멋대로 정략결혼을 시키다 아예 본가와 다툼을 벌여 인연을 완전히 끊어 버렸다. 그러나 그 본가가 이렇게 몰락하여 자신을 찾아왔는지 몰랐다.

“그러고 보니. 그 가문의 가주는 어디에 있습니까?”

길남효는 노파 서혜연에게 존중하게 물어봤고, 서혜연의 얼굴은 금세 어두워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대답한다.

“종들에게 살해당했다.”

“종들? 흠. 머슴들을 말씀하시는 군요.”

그 때, 두 노인들 중 한 사람이 서혜연의 말을 이어받아 대답한다.

“그래. 1년 전에 농지 개혁이 추진되고 난 뒤 소작농들에게 땅을 분배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우리 본가는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다른 일에 진출하면 안 되었다. 하지만 그 일에 보기 좋게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빚을 갚기 위해 땅을 팔아야 했지.”

“......”

“하지만 우리 가문에 봉사하던 종들과 소작농들이 우리 가문에 반란을 일으켰고, 그대로 우리 아버지는 살해당했고, 지금 우리만 그들을 피해 도망칠 수 있었지. 그런데 문제는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했지. 그리고 땅 문서도 일어버리고.”

노인의 입에서 나오는 기구한 사연에 길남효는 속이 시원하다는 감정이 들어야 하는데, 조금 텁텁하다는 감정이 들었다. 그러나 길남효는 속으로 억지로나마 감정이 시원해야 했다.

“그래서 찾아온 것이 이 곳인가?”

길남효의 물음에 대답을 한 노인, 아니 이복형인 길장주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 참 곤란하게 만드는군. 하지만 더욱 궁금한 것이 종들과 소작농들이 그냥 반란을 일으킨 것은 아닐 텐데?”

그 말에 길장주는 입을 다물었다. 길장주의 반응에 길남효는 오히려 비웃는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 대답한다.

“꼴을 보아하니. 가문의 빚을 갚기 위해 종들과 소작농들을 무리하게 쥐어짰군.”

길장주는 그 말에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이내 눈을 질끈 감을 뿐이었다. 두 노인 중 한 사람인 길장현이 소리를 높여 길남효에게 반박할 뿐이다.

“흥. 그 놈들은 그저 빨갱이 사상에 물이 들여 우리 집안의 재산을 훔친 것 뿐이다!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인가!?”

길남효는 오히려 비웃으며 과정을 추론해나간다.

“어이. 인간이라는 것은 말이지. 어느 정도 만족시키면 현실에 굴복하여 살아가는 존재야. 공산주의 사상은 그저 좋은 핑계일 뿐이지. 종들과 소작농들이 본가의 상황이 좋은지 안 좋은지 판단할 능력도 없을까? 빚이 있다는 소문을 듣을 귀 정도는 있겠지. 하지만 그들은 들고 일어났어. 왜냐고? 곧 떨어질 자신의 몫에 계속 이의를 제기하고, 방해하며 약속을 어기면서까지 그들을 핍박했기 때문이지. 당신들에 대한 분노와 그리고 생계에 대한 절박함으로 당신들에게 반기를 들었지. 그리고 그 짐승도 운 좋게 뒈진 것이고.”

길남효의 말에 길장주와 길장현은 길남효를 노려보지만 길남효는 오히려 웃으며 그들의 시선을 받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길장주, 길장현은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인다. 지금 자신들은 길남효에게 따지러 온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이 곳을 찾아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눈빛이 수그러들자 길남효는 이 상황이 계속 이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면서 이내 서혜원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래서 이번에 도움을 받으러 여기에 오셨습니까?”

서혜원은 그 말에 한숨을 내뱉으며 이내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 집안 사정이 말이 아니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지금 이대로 거리를 돌아가다 전부 다 죽을 판인데. 인연 있는 사람에게 살 길을 구걸하는 길밖에 없지 않겠는가?”

길남효는 그 말에 ‘끄응’ 침음을 내뱉으며 뭔가 장고에 들어간다. 그 때, 누군가 집 안으로 들어간다.

“에휴. 오랜만에 집이군.”

바로 군복을 입은 병윤이 일을 끝마치고,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 때, 새로운 사람들이 거실의 쇼파에 앉는 것을 확인하자 의아한 얼굴을 짓는다.

“응? 저들은...”

병윤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내 저들의 정체가 누군지 기억할 수 있었다.

‘아버지랑 원수 졌던 본가의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인연은 이미 끊은지 오래인데. 왜 이 곳에 찾아왔지?’

그렇게 생각할 때쯤, 병윤에게 다가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어머니인 김민숙이었다. 김민숙은 병윤을 보자마자 한 마디 말한다.

“응. 병윤이 왔니?”

병윤은 대답대신 눈짓으로 쇼파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가리키자 김민숙은 조심스럽게 병윤에게 말한다.

“그게... 갑작스럽게 방금 전에 이 곳에 찾아왔어. 네 아비도 저들에 대해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지 않니? 그래서 저들에 대해 손님 대접도 못하고 저런 분위기란다.”

병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김민숙에게 대답한다.

“알겠어요. 그럼...”

병윤은 성큼성큼 거실로 걸어 나간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병윤의 모습에 길남효는 흠흠 기침을 하며 병윤에게 말한다.

“그래. 막내 아들 왔는가?”

병윤은 길남효에게 조심스럽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으면서 길남효에게 사정을 묻는다.

“저 사람들이 왜 이 곳까지 찾아왔어요? 이미 인연을 끊어버리지 않았어요?”

길남효는 그 말에 한숨을 내쉬며 한 마디 대답한다.

“저 두 인간만 여기에 찾아왔다면 당장 내쫓을 텐데. 저 사람이 있어서 말이지.”

길남효는 눈짓으로 노파를 가리킨다. 병윤은 ‘흠’ 소리를 내며 이내 길남효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기야 저 할머니에게 아버지가 조금 은혜를 받았다고 들었어요. 이럴 때는 가장 적당한 것이 뗌이 아니겠어요?”

“뗌이라... 흠. 한 마디로 빚을 갚으란 거지?”

“아버지가 저들 집안에 죽을 만큼의 은혜를 입은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적당히 돈을 주면서 떼는 것이 그나마 낫지 않겠어요? 두 사람은 그렇다치고 말이죠.”

“그래. 그게 좋겠지.”

길남효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정했는지 노파를 바라보면서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본가에서 겪은 일만 생각하면 내쫓는 것이 당연한 일일 텐데. 작은 은혜도 은혜라는 말이 있습니다. 본가에서 쫓겨날 때, 저와 그리고 제 어머니를 챙겨준 은혜는 잊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것으로 소원한 관계가 풀리기 기대하지 마십시오. 적당히 정착할 자금을 드릴 것입니다. 그 것으로 알아서 살든 말든 하십시오.”

노파는 그 말에 수긍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길남효에게 대답한다.

“진정으로 고마우이.”

“됐습니다. 전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 돕는 것일 뿐.”

길장주와 길장현은 그 말에 안타깝다는 얼굴을 지을 뿐이었다. 하지만 노파는 그런 두 사람을 보자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볼 뿐이다. 이윽고 병주는 노파에게 이렇게 말한다.

“혹여 은행에 계설된 계좌 번호가 있으십니까? 그 것도 본인 명의로 된.”

그러자 노파는 곧 자신의 짐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병주에게 건네준다. 바로 노파 명의로 된 통장이었다. 통장 내역을 살펴보니 돈이 없었다. 아니 있기는 한데 97전이 전부였다.

“이 통장에 제가 십만 원이라는 돈을 넣어드리겠습니다. 그 정도면 어느 정도 집을 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생계를 유지할 수단이 있지요.”

노파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병윤에게 대답한다.

“미... 미안하구려...”

“제 아버지의 부탁이니 저 역시 들어주는 것뿐입니다. 아마 돈은 내일 들어와 있을 것입니다.”

병윤은 그렇게 말하고는 대화의 주도권을 아버지 길남효에게 넘긴다. 길남효는 세 사람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그 돈을 가지고, 어떻게 이용하는지는 당신들이 알아서 할 사항이고. 이제 나가주시지? 특히 두 사람의 얼굴을 더 이상 보기 싫으니 말이야!”

길장주와 길장현의 얼굴은 벌레 씹은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자존심을 뭉개면서 겨우 살 수 있는 수단을 얻었기에 길남효에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두 사람의 어머니인 서혜연이 고맙다고 고개를 연신 숙일 뿐이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천천히 집 밖으로 물러난다.

길남효는 김민숙에게 한 마디 말한다.

“에이. 불청객 같으리라고. 현관에 소금을 뿌려. 젠장. 저 두 사람의 얼굴을 볼 때 마다 구역질이 치밀어 오를 것 같으니 말이야.”

김민숙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길남효에게 말한다.

“아니 정말 괜찮겠어요?”

“뭐가?”

“저 사람들을 저대로 쫓아보내도...”

“괜찮아. 너무 괜찮으니. 당신은 걱정 안 해도 돼.”

“......”

김민숙은 결국 부엌에 가 소금을 집고, 현관에 뿌린다. 이 것으로 불청객에 대한 액땜을 했는지 길남효의 얼굴은 조금 편안해진다. 그 때, 병윤이 길남효에게 한 마디 질문을 던진다.

“그 것보다 아버지는 고향에 언제 돌아가실 생각입니까?”

“여기에 한 몇 년은 있다 돌아갈 생각이다. 장부가 일을 맡았으면 끝내놓고, 마무리를 지어야지.”

“흠흠. 백부님(장성환)께서 아버지를 보고 싶어 하시는데...”

“어차피 헬기 타면 1시간 이내로 그 곳에 갈 수 있으니 심심할 때마다 그 곳에 가야지. 뭐. 그런데 그 친구도 국회의원이라 문경시 재건에 바쁠 것이고, 서로 여유 될 때, 만나야지.”

“알겠습니다.”

그 때, 꼬마 여자아이가 거실에 투다다 달려와서 병윤의 품에 안긴다. 그리고 방실방실 웃으며 병윤에게 말한다.

“헤헤. 막내 오빠 왔다. 헤헤헤.”

병윤은 그 여자아이의 머리를 만지며 말한다.

“보니까 건강해 보이네.”

“오빠들은 항상 바빠서 얼굴 보기 힘들어.”

효혜는 볼을 빵빵 부풀리며 조금 서운하다는 반응을 내보였고, 병윤은 이내 싱긋 웃으면서 효혜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이렇게 왔으니 다행이지 않아?”

“응!”

효혜는 병윤을 바라보며 방실방실 웃고는 좋아한다. 그리고 병윤에게 온갖 질문들을 쏟아낸다.

“막내오빠. 막내오빠. 그러니까...”

여자아이가 호기심을 느끼는 것들은 꽤 많았다. 병윤은 그 질문들에 대해 재미난 설명들을 덧붙이며 효혜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그 때, 효혜가 병윤에게 정곡을 찌를 만한 질문을 한다.

“그런데. 학교에 다니던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의 오빠가 전쟁터에 갔다고 들었어. 그런데. 매번 소식이 끊겨서 그 친구의 엄마 아빠가 매번 한숨을 쉬고 그래. 그건 어떤 상황이야?”

병윤은 그 말에 잠시 어두워지다 이내 밝게 한 마디 말한다.

“사정이 생겨서 연락이 두절한 것일지도 몰라.”

효혜는 그 말에 아리송한 표정으로 갸우뚱거린다.

“그래?”

“그... 그래... 그렇죠? 아버지?”

병윤이 길남효에게 질문을 넘기자 길남효는 얼렁뚱땅 대답한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그 때, 효혜의 시선은 병윤 대신 길남효에게 향한다. 그리고 이내 길남효에게 묻기 시작한다.

“아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야?”

“그... 그건...”

길남효는 한껏 곤란하다 이내 병윤에게 시선을 던지지만 병윤은 그 시선을 회피할 뿐이었다. 길남효는 그런 병윤의 반응에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을 보채는 효혜를 막는 것이 급 우선이었다.

“그건 다음 이 시간에 대답해줄게.”

“흥! 매번 그런 소리를 한다니까!”

효혜는 삐진 표정을 지으며 이내 방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하지만 길남효는 그 것으로 사태를 극복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내 시선을 병윤에게 꽂는다. 결국 병윤은 길남효에게 어느 정도 잔소리를 들었다.

============================ 작품 후기 ============================

아이가 곤란할만한 대답을 요구할 때, 과연 어떤 대답을 하는 것이 좋을까요? ㅎㅎㅎ

아 그리고, 본가 이야기는 차후 이야기가 진행하면서 틈틈이 나올 생각입니다. 물론 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독자 여러분들은 고구마를 100여개를 삼키는듯 답답함을 느낄 것이지만 말이죠.

작가 : ㅎㅎㅎ 이 작품에 사이다는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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