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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부유해 보이는 여성은 감시관의 눈에 눈빛을 반짝이고는 이내 박출환을 포함한 일행들을 살펴본다.
“흐음... 원래 빨갱이라고 했던데. 생각대로 그저 그러네요. 호호호.”
“아... 예... 마님.”
감시관은 어색하다는 듯 웃는다. 갑작스러운 중년 부인이 자신들을 살펴보는 눈초리와 감시관이 굽실거리는 모습을 보자 박출환은 속으로 기분이 나빴다.
‘이거야 원 완전 동물원 안의 원숭이도 아니고.’
마치 품평을 받는 시선에 박출환은 속이 상했다. 그러나 얼굴 하나 바뀌지 않고, 자신의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감시관은 굽실거리는 표정으로 중년 부인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런데 마님께서는 여기에 무슨 일로 오셨는지 제가 알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중년 부인은 가벼운 어조로 대답한다.
“그냥 한 번 와봤어요. 좀 특이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띄어서 다가왔죠. 이런 게 문제 있는 것은 아니겠죠?”
“아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하.”
중년 부인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며 이내 감시관에게 한 마디 말한다.
“아 그래요? 요즘 전장 분위기는 어떤지 알 수 있을까요?”
감시관은 그 말에 흠흠 기침을 하고는 이내 이렇게 한 마디 말한다.
“아직까지는 별 진전사항은 없습니다. 지금 신문이나 TV에서 이야기하는 전선과 별반 변동사항은 없습니다.”
중년부인은 그 말에 비웃는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 대답한다.
“그 소문의 길씨 가문의 장군도 겨울에는 어쩌지는 못하네요. 허참.”
감시관은 그 말을 듣자 속으로 조금 열불이 났지만 겉으로는 끄응 침음을 흘릴 뿐이었다. 중년 부인은 이내 호호 웃으면서 감시관에게 한 마디 말한다.
“아 참. 이거 비밀이에요.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가 들어가면 안 돼요.”
감시관은 그 말에 자신 앞에 선 중년 부인이 두려운지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그런데 그 대화소리를 들은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박출환이었다.
‘분명... 저 중년 부인이라는 사람은 길씨 가문의 어쩌구저쩌구 하는 것 같은데. 혹시... 저 사람이면...’
박출환은 순간 고민했다. 중년부인의 얼굴을 보아하니 그녀는 길씨 가문에 대해서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았다. 확실치는 않지만, 적어도...
‘그래. 도박을 거는 거다. 어차피 여기에 끌려 가봤자 그 놈들의 눈에 띄어 개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출환의 머릿속 계산은 재빨리 끝이 났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중년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감시관에게 다가간다. 중년 부인은 인민군 군복을 입은 박출환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경계의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며 말한다.
“이 사람 뭐죠? 갑자기 왜 나에게 오는 거죠?”
감시관은 그 말에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을 짓고는 이내 박출환을 다시 제 자리로 보내기 위해 행동을 나서려던 찰나였다. 박출환은 즉각 중년부인에게 무릎을 꿇는다. 갑작스러운 박출환의 행동, 중년부인과 감시관, 그리고 아까전만 하더라도 그와 대화하던 그의 부하들은 꽤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박출환은 포기할 수 없었다. 박출환은 이내 머리를 땅바닥에 닿으면서 절까지 해댄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박출환의 행동에 감시관은 큰 일 났다는 표정으로 즉시 박출환을 붙잡고, 소리친다.
“이! 무슨 짓이야! 허튼 수작을 부리면 용서 않겠다!”
감시관이 즉시 박출환을 끌고 나서려던 찰나 중년부인이 즉시 감시관을 제지했다.
“잠시만 놔둬 봐요. 저 이가 무슨 일로 나에게 이런 행동을 했는지 궁금하네요.”
중년 부인은 흥미로운 미소로 자신에게 절을 한 박출환을 바라본다. 그런 중년 부인의 말에 감시관은 당황해하며 한 마디 말한다.
“저... 저... 마님... 저 놈은...”
“씁. 진짜 이럴 거에요? 제 남편이 누구인지 아시죠?”
감시관의 얼굴은 그 말에 사색이 되었다. 중년 부인의 시선은 감시관에서 절을 한 박출환에게 향하더니 이내 한 마디 말한다.
“저... 당신은 무슨 이유를 품었기에 저에게 이런 절까지 하는 거죠?”
박출환은 그 말에 토끼처럼 놀란 얼굴을 하고선 중년 부인에게 대답한다.
“그야 물론. 부인에게서 빛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빛?”
중년 부인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되묻자 박출환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그렇습니다. 순간 부인을 보자마자 제 눈에 부실만한 후광을 눈 여겨 보았습니다. 그 후광에 저 역시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으며 절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년 부인은 그 대답에 재치가 있다는 듯 호호 웃으며 한 마디 말한다.
“그런 어쭙잖은 이유로 이런 행동을 취하는 거에요? 절 바보로 아시는 거죠?”
중년 부인의 힐난에도 불구하고 박출환은 두렵다는 얼굴을 지으며 대답한다.
“아...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제 눈에 똑똑히 보였습니다. 확실히 보였습니다.”
정말 박출환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빛을 보았듯 외치자 중년 부인은 호호 웃으며 이내 이렇게 말한다.
“거참 재밌는 남자네. 저...”
중년 부인이 시선을 감시관에게 두고 부르자 당황한 감시관이 부리나케 달려 나가 응답한다.
“예. 말씀하십시오. 마님.”
“아직 열차 떠나기까지는 시간이 있죠?”
“그... 그게...”
“뭐 어차피 하루나 이틀 정도는 늦출 수는 있잖아요?”
“으음...”
“당신에게 문제가 된다면 상부에 이렇게 말씀하세요. 서울시장이 이 인원들이 필요해서 데려갔다고 말이죠.”
그 말에 감시관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마님의 부탁이라면 마땅히 따르겠습니다.”
중년 부인은 그 말에 호호 웃으며 대답한다.
“어머. 융통성이 있으신 분이네. 아참. 그리고 그 당신.”
중년 부인이 자신을 지목하자 박출환은 급히 대답한다.
“예?! 저 말씀입니까?”
“따라와요. 한 번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박출환은 그 말에 속으로 ‘드디어 기회다.’라고 생각했고, 겉은 황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연신 끄덕인다.
“제가 어찌 그 말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박출환은 마땅히 승낙할 뿐이었다. 중년 부인은 박출환을 데리고, 역 어디론가 갔다. 그리고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다가서더니 중년 부인이 싸늘한 눈초리로 박출환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수상한 자에요. 붙잡으세요.”
순간 검은 장정들을 입은 사람들이 빨리 움직이더니 이내 박출환을 붙잡는다. 갑작스러운 사태에도 불구하고, 박출환은 별반 당황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속으로 기쁜 감정이 있었다.
‘이 정도면... 그래. 그 쓰레기같은 놈들과 대항할 수 있겠어...’
중년 부인의 경비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재빨리 박출환을 구속시키지만 박출환이 당황하지 않고, 또 저항하지 않자 중년 부인은 조금 흥미롭다는 눈빛을 내보이며 이렇게 말한다.
“이런 상황에 닥쳤는데도 별반 당황하지 않네요?”
박출환은 그 말에 이렇게 대답한다.
“하하. 후광을 가지고 계신 분이 저를 죽이지 않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 쯧. 당신 날 너무 바보 취급하는 거 아니야? 슬슬 솔직히 부는 것이 좋을 텐데? 내가 한 번 말해줘? 당신 말이 사실이라면 왜 처음부터 날 보자마자 절을 하지 않았을까?”
박출환은 그 말에도 얼굴이 굳지 않고, 이내 능글거리며 대답한다.
“그 때 전 제 부하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이었습니다.”
“흐음. 그래? 그럴 수 있겠네. 원하는 게 뭐야?”
박출환은 순간 대답을 숨긴다. 그런 박출환의 모습에 중년 부인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표독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는 대답을 재촉한다.
“당신 같은 자. 어디 안 보이는 장소에 시체로 만들 수 있어. 날 너무 궁금하게 해주지 않으면 좋겠는데.”
그 말에 박출환은 오히려 눈빛을 반짝이며 이렇게 대답한다.
“제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한 가지입니다. 복수.”
“복수? 허참. 후광 어쩌고저쩌고는 거짓말이었다는 것이네. 어차피 거짓말이라는 것이 한눈에 보였지만 말이야.”
박출환은 그 말에 후후후 웃으며 이내 중년부인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마님께도 그리 손해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손해라... 당신같은 작자를 보는 것이 지금 손해라고 느끼는데?”
“뭐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중년부인은 그 말에 얼굴을 구기며 한 마디 대답한다.
“그거 말해봐. 어떤 건데?”
“마님께서는 길씨 일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일가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오지?”
중년 부인이 박출환에게 물었지만 박출환의 눈에는 중년 부인이 길씨 일가라는 단어를 꺼낼 때, 어느 정도 당황이라는 감정이 그녀의 얼굴에 서려 있었다.
“저 역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남한 상층부에서 그 인간들을 모른다는 것이 거짓말이지 않습니까?”
“재밌네. 아까 말했던 복수라는 것은. 그 일가에 대한 것이야?”
박출환은 그 물음에 히죽 웃으며 대답한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중년 부인은 박출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고심을 하고 있었다. 뭔가 판단을 하다가 이내 한 마디 묻는다.
“당신이 그 일가에 대해서 복수를 하고 싶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 일가에 대해서 대항할 계획은 가지고 있는 거야?”
박출환은 그 말에 속으로 당황했지만 겉으로는 굳게 고개를 끄덕인다. 중년 부인은 그런 그의 모습에 싱긋 웃고는 이내 한 마디 대답한다.
“신기하네. 그 일가에 대해 복수심을 품은 사람이 있다니 말이야.”
“흐흐흐. 그 놈들이 겉으로는 그래 보여도, 속은 다른 법입니다.”
중년 부인은 마음에 들었다는 표정으로 이내 이렇게 대답한다.
“그래. 하지만 여기서 계획을 듣기는 그렇군. 다만 당신의 의기는 칭찬해줄게. 그 인간들에게 복수를 하려는 인간이 등장할 줄은 몰랐으니까.”
중년 부인은 그 일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얼핏 두려움이 서린 것 같았다. 박출환은 속으로 ‘저 대단해 보이는 사람이 길씨 일가에게 약점이라도 잡혔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여유롭게 대답한다.
“원래. 출신들이 비천하기 그지없는 인간들입니다. 비천한 인간들은 그에 걸 맞는 격을 가지고 있는 법.”
“호호. 그거 참 다행이네요. 당신 꽤 마음에 드는데. 좋아. 특별히 당신에게만 내 소개를 해주지. 난 박마리아라고 해. 지금 서울시장 이기붕의 아내이지. 이 정도면. 뭐 알만 하겠지?”
‘서울 시장이라. 그 인간들에 비해서는 부족한 면이 많지만 그래도 나보다는 상황이 나은 인간들이다.’
박출환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얼른 중년 부인 아니 서울시장 이기붕의 부인인 박마리아에게 꼬리를 치며 말한다.
“이 비천한 인간을 거두어주시면 전 부인에게 개처럼 지으라고 하면 개처럼 지을 것이고, 누구 한 사람 죽이라고 하면 그 사람을 죽이겠습니다.”
“호호. 우리보고 더러운 일을 대신해주겠다는 말이야? 당신 꽤 험하게 살았네.”
“아 잠깐...”
“뭐 다행히 그런 인간들이 필요하기는 하지. 그런데 부하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까 저랑 대화하던 녀석들이 제 부하들입니다만...”
“다행이네. 그 녀석들 싹 다 거둘 수 있겠지?”
박출환은 그 말에 환한 미소를 내보이며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그야 물론입니다.”
“좋아. 당신들 행적에 대해선 손을 써주지. 어차피 밝혀지면 나 역시 곤란하니 말이야.”
박출환은 드디어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게 되자 이 운수를 하늘에 감사해했다.
‘그래. 나에게는 이 천운이 있었지. 흐흐흐. 한 번 두고 보자고. 저번에 쓰레기처럼 발악하다 이제 힘이 생기니 주인인 나를 죽이려고 하는 천한 인간들. 누가 누구를 죽이는지 기대가 되는군.’
박출환은 속으로 음험하게 웃으며 이내 길씨 일가를 어떻게 요리할까? 라는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가장 급우선적인 것은 자신과 자신의 부하들을 거둬준 박마리아에게 신임을 얻는 것이다. 그 과정이 꽤 험난하겠지만 박출환은 그 과정을 죽을힘을 다해 거칠 생각이다. 안 그러면 자신이 죽기 때문이다.
결국 박출환과 그의 부하들은 박마리아에게 고용이 되었다.
1950년 11월 24일, 사령부에서 병주는 자신의 할 일과 또 공병 부대장 이종찬 준장의 마을 재건 보고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현재 영하가 10도 이하로 떨어진 전방에 속한 병사들의 겨울나기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시와 준비를 끝마친 상황이라 병주는 꽤 이른 시간에 할 일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병주는 이내 어딘가로 전화를 한다.
-뚜르르 뚜르르 철컥!-
-예. 대구신병훈련장의 피현유 대령입니다.-
“어. 피 대령인가? 북부군 사령관 길병주인데...”
-앗! 사령관님이십니까? 충성!-
대구신병훈련장의 책임자인 피현유 대령은 병주가 소대장 시절, 남경 공방전에서 포로로 붙잡혔던 일본군 조선인 병사들 중 회유했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병주를 따라 광복군에 투신하다 장교의 길에 나서서 지금 대구신병훈련장 책임자로 있었다.
“그 박출환이라는 놈과 그 부하들은 여기에 안 왔나?”
-흠... 아직 안 왔습니다. 북한군에 억지로 부역하여 회유했던 다른 병사들은 다 도착했지만 그 놈들은 여기에 안 온 모양입니다.-
“그게 정말이야?”
-예. 그렇습니다. 뭔가 수상한 낌새가 눈에 보이는데...-
“설마...”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것입니까? 사령관님?-
“피 대령. 한 번 그 쪽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게. 내가 전에 말했듯이 그 놈들은...”
-알고 있습니다. 전방에 있던 마을의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그래도 우리에게 투신했던 개놈들이라는 사실을...-
“그럼 피 대령 부탁하네.”
병주는 그 것으로 피 대령과의 전화를 끊었지만 머리가 상당히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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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처음에 말씀드렸습니다. 발암이 될 거라고 말이죠. 이히히히. 여기에 댓글 폭풍들이 쏟아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