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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1950년 11월 25일, 서구에서 유행하는 복식을 입은 한 아낙네가 건물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면회소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조혜수였다. 전방이라서 그런지 면회소로 가는 길은 상당히 삼엄했다. 하기야 전투가 벌어질 수 있는 지역에 민간인이 휘말리면 상당히 곤란하다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해당 병사의 가족들이 면회 오는 것에 대해서 막을 수가 없었기에 특별한 경우와 기간에 한하여 면회를 허락해주고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끼이익!-
면회소의 문이 열리고, 거기에는 전시에 입는 군복을 갖춘 한 사내가 등장한다. 조혜수는 그 남성을 보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반긴다.
“아... 안녕하세요?”
사내는 조혜수의 방문이 조금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뚜벅뚜벅 걸으며 조혜수 곁으로 다가오더니 한 마디 말한다.
“지금 저를 찾아오신 거에요?”
조혜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사실 여기까지 찾아오기에는 어려웠어요.”
“으음...”
사내 병주는 이내 조혜수를 자리에 앉게 하고는 조금 진지하게 말한다.
“혜수씨. 여기는 전쟁터에요.”
조혜수는 그 말에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이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서 간절한 마음이 들끓었어요. 그래서 찾아 왔어요.”
“이런...”
병주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말을 아낀다.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조혜수는 조용히 분위기를 보다 이내 병주의 얼굴을 보고는 한 마디 말한다.
“조금 얼굴이 어두워 보이는데.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병주는 그 말에 한숨을 쉬며 이내 조혜수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실제로 들어보면 재미없을 텐데? 상관없나요?”
“으음... 그건... 하지만 워낙 얼굴이 어두워 보이니...”
병주는 그 말에 이내 평상시 웃는 것처럼 웃더니 이내 한 마디 대답한다.
“혜수씨.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어요. 전쟁터에서 워낙 기상천외할 일들이 많이 일어나죠. 아마 혜수씨의 머리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는 것이 전쟁터죠. 저뿐만 아니라 여기에 있는 병사들 모두 얼굴이 어두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조혜수는 그 대답에 눈을 껌뻑이며 병주를 살펴본다. 그 때, 끼익하고는 누군가 안으로 들어온다. 바로 병주의 동생인 병윤이었다. 군복을 입은 병윤이 병주에게 다가오더니 서류를 바로 건넨다. 병주는 따가운 시선으로 병윤에게 한 마디 말한다.
“넌 눈치가 없냐? 이런 상황에서 왜 갑자기 서류를 주고 난리야?”
병윤은 그 말에 단호하게 대답한다.
“형님. 이 일은 몹시 중요한 일입니다. 어차피 며칠 뒤에 저 다시 군수과 본부로 돌아갈텐데. 그 때까지만 협조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야. 너...”
“작은 형님에게 면회 온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형님. 빨리 처리해주십시오. 그러면 물러가겠습니다.”
“끄으응. 이 눈치 없는 녀석.”
병주는 곧 서류의 내용을 살펴보더니 이내 서명란에 서명을 하고는 서류를 다시 병윤에게 넘기며 말한다.
“쯧. 쉬는 시간에 일거리 넘기지 마라. 이 무슨 망신살이냐?”
병윤은 그 말에 싱긋 웃더니 이내 병주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건 그렇고, 형수님을 보아하니. 꽤 잘 어울리는 것 같네요.”
“너 이 자식. 일은 핑계구나.”
병주와 병윤이 아옹다옹하는 모습을 보자 조혜수는 작은 미소를 짓는다. 이내 그녀는 병주에게 한 마디 묻는다.
“저 이 사람은 누구에요?”
그 말에 병주는 이내 와락 팔로 병윤의 목을 휘어감아 억지로 어깨동무를 하고는 대답한다.
“제 친동생입니다. 인사해라.”
병윤은 그 말에 조심스럽게 조혜수에게 인사한다.
“하하. 안녕하세요? 전 이 형님의 동생인 길병윤입니다.”
조혜수는 그 대답에 그 유명한 동협 그룹 회장의 얼굴을 보아하니 신기한 감정이 들었다. 그런데 솔직히 두 사람의 외모를 비교했을 때, 얼핏 얼굴 모양새는 비슷해 보였지만 역시 병주가 엄청 미남이었다. 조혜수는 이내 병윤에게 작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전 대구에 살고 있는 조혜수라고 해요. 저 병윤 씨라고 했나요? 병윤 씨도 이 군대에서 지내는 것이에요?”
조혜수의 물음에 병윤은 평범하게 대답한다.
“예. 뭐...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 망할 전쟁이 끝나야 전역을 하던가 말던가 할텐데...”
“호호 그런가요?”
그렇게 병윤과 조혜수 간에서 대화소리가 조금 오갔고, 병주는 괜히 병윤에게 따가운 시선을 주며 나가라고 압박을 한다. 병윤은 병주의 그런 시선에 결국 어쩔 수 없이 병주가 서명한 서류를 챙기고 일어서서 한 마디 말한다.
“이런 제 일이 있는데.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죄송합니다. 전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아 예...”
병윤은 병주에게 잘 하라고 손짓을 하고는 이내 방 밖에 나간다. 조혜수는 병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병주에게 시선을 돌린다. 다시 방 안에 두 사람이 앉게 되었다. 다시 조금 어색한 분위기가 흐른다. 이내 병주는 흠흠 거리며 이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조금씩 조혜수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혜수 씨는 요즘 뭘 하고 지내요?”
“호호. 요즘 학교에서 미진했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있어요.”
“공부라. 혜수 씨는 어떤 분야를 중점으로 공부를 하고 있어요?”
조혜수는 그 말에 고민을 하다 이내 대답한다.
“전 요즘 한글 공부에 매진하고 있어요. 어릴 때, 워낙 일본어를 가지고 공부를 했잖아요. 우리만의 글에 매력을 느껴서 공부하고 있어요.”
“하하. 그 것 참 다행이군요.”
사실 병주나 조혜수는 일제시기 때, 한글로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 때는 국어가 일본어이었기 때문에 한국어는 제 1 외국어나 다름없었다. 거기다 40년대에 들어서는 아예 한국어 자체를 말살해버렸으니 병주나 조혜수 두 사람 다 학교에 다닐 시적에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로 학교 수업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시대적 상황이 있었기에 조혜수가 한글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도 몰랐다. 현재 조혜수의 나이는 병윤보다 2살 어린 23살이었다. 그 정도면 시집가기에 충분한 나이였다. 물론 신여성이라고 해서 결혼보다는 자신의 생활에 치중하는 여성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사실 한글 하니까 생각이 나는데, 해방 후에 우리말사전이 서울 역에서 발견한 것 아시나요?”
그 말에 조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잘 알고 있어요. 그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되었던 사람들이 해방 후 어떻게 우리말사전을 다시 작성하나라고 고민에 빠질 때, 그 사건 당시 압류 당했던 그 자료들이 서울 역 창고에서 발견된 그 사건 말이죠?”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천운이라고 여겨요.”
“호호. 제 스승님도 그 사건을 언급할 때, 병주 씨처럼 이야기를 하던 걸요.”
“스승이라... 혹시 누구인지 알 수 있나요?”
“성세 이희승 선생이세요.”
“하하. 이거 참 성세 선생이었습니까?”
“응. 그 반응을 보아하니 병주 씨도 제 스승님과 만난 적이 있어요?”
“원래 지식인들 층에 서로 교류하는 것이 많거든요.”
“아... 그렇구나. 하기야 스승님도 매번 어느 단체나 협회 같은 곳을 찾아가거든요. 그런데 스승님과는 언제 만난 거에요?”
“아 그건. 사실 제가 성세 선생을 초청한 겁니다. 군에 입대한 병사들 중에 글도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거든요.”
조혜수는 그 말에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요즘 문맹이 많이 문제가 되기는 하고 있죠.”
“후후. 그런데 혜수 씨가 한글에 그리 많이 관심을 가지는지 전 알 수가 없었거든요.”
“뭘요. 그냥 관심이 있어서 파고드는 것뿐이에요.”
두 사람의 사이에 훈훈한 대화가 오가면서 꽃이 피워 나간다. 덕분에 박출환 생각으로 가득 찼던 병주의 불안한 마음은 조혜수가 오면서 먼지처럼 흩어진다.
한편, 서류를 하나 처리한 병윤은 자신이 지휘하는 행정병을 통해 이번 원정 일을 마무리하고 있을 때였다.
-띠디딩~!-
군복 안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울리자 병윤은 ‘끙’ 침음을 흘리면서 이내 핸드폰을 꺼내고는 뚜껑을 열면서 전화를 받는다.
“누구십니까?”
-아 회장님이십니까?-
“그 목소리는 비서실장 아니십니까? 그런데 무슨 일로 이렇게 전화를 주었죠?”
-그... 사실 회장님께 긴히 알려드릴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국방부에서 이번 국민방위군 창설에 관해서...-
“쯧. 그 쓸데없는 군대 만드느라 사람 여럿 피곤하게 만드는군요. 그 쪽에서 뭐라고 합니까?”
-이번 국민방위군의 군수에 대해서 동협 그룹이 책임져 달라고 요청합니다.-
“아직 창설도 되지 않은 군대 가지고, 물밑 작업 엄청 하는군. 정확히 말해서 그 쪽에 떨어지는 예산은 정확히 얼마인지 파악이 되었습니까?”
-정확히 말해서 국민방위군 창설과 운용에 1억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허. 1억이라. 정부 쪽에서 꽤 크게 만드는 것 같군. 그럼 우리 쪽에 떨어지는 예산은 얼마 정도입니까?”
-대략 8000만원으로 알고 있습니다.-
“8000만 원이라... 그럼 예산 중 8할을 우리 쪽에 투자한다는 소리인데. 그럼 우리가 책임지는 사람들의 수는 대략 얼마정도입니까?”
-그 쪽에서 말하기로는 군경과 공무원이 아닌 만 17살 이상 40살 이하의 장정을 제 2 국민병에 편입한 뒤 제 2 국민병 중 학생이 아닌 자는 지원에 의해 국민방위군에 편입한다고 전했습니다.-
“미쳤군. 그 범위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우리가 전부 책임지라는 소리는 아니겠지?”
-아마 예산이 떨어진 비중대로 책임지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으음. 그럼 나머지 2할은 우리가 아닌 다른 곳에 돈이 떨어지니 그 비중만큼 그 사람들을 책임지는 것인가? 그래도 우리가 책임지는 사람들의 숫자는 엄청납니다.”
-하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제가 대충 예상해도 대략 수십 만에 가까운 숫자인 것 같은데.-
“일단 예산대로 처리를 하는 것으로 합시다.”
-예? 그렇게 된다면... 일단 최대 백만 명이 우리에게 할당되었다고 하고, 본다면 일인당 80원 수준으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80원 이라... 허참 미치겠군. 아무리 싸게 군복을 맞춘다고 하여도 대략 30원 정도 들어가는데. 나머지 장구류 및 기타 운영비용까지 합산하면 일인당 140원 정도로 치솟아 오르는데. 그 쪽에서 정치자금을 넉넉히 챙겨주는데 왜 이리 욕심을 내는지.”
-그 인간들이 탐욕의 끝을 보겠습니까?-
“그런데 그 2할은 누구에게 떨어집니까?”
-제가 알아보니 신성모 국방부 장관의 친인척이 세운 회사에 그 2할을 떨어뜨리게 한답니다.-
“날 방패로 삼고, 자신은 그 뒤에서 알아서 헤쳐 먹겠다는 이야기군. 쯧. 그 낙루장관(국방부 장관 신성모의 멸칭)도 이제 슬슬 운명이 다된 모양이네.”
-예? 그게 그렇게 되겠습니까?-
“내가 생각했을 때, 이번 국민방위군에 대해선 100% 문제가 벌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 우리에게도 불똥이 튀지 않겠습니까?-
“어쩔 수 없지.”
-무슨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으음...-
“바로 솔직하게 공개하는 거죠. 여기서 국민방위군 관련 비리가 우리와 연관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거 연관 되는 순간 우리도 큰 폭풍을 맞을 거에요.”
-한 마디로 언론에서 정보 공개를 요청하면 바로 공개하라는 소리입니까?-
“언제든 볼 수 있듯 말이죠. 적어도 그런 행동을 취해야 차후 터질 폭풍에서 우리 피해가 적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저 쪽에서 국민방위군에서 떨어진 예산을 가지고, 정치자금으로 바치라는 말을 하면 어쩌실 생각입니까?-
“그런 요구가 있다면 저에게 바로 직통 연락하라고 말하십시오. 가만히 정치자금을 바치니 우리가 호구로 보이는 모양입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아참. 그런데 차후에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한 정책인데, 야당에서 이를 허락해줄 것 같습니까?-
“흠. 그 문제에 대해선 제 추측으로는 불가항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군요.”
-예? 불가항력이라면...-
“아마 야당이 이 사실을 예상하여도 이 일을 야당 측에서 막기 힘들다는 소리입니다.”
-으음... 왜 그렇게 보십니까?-
“국회 내부에서 여당 의원 숫자가 야당보다 많으면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겉으로는 완전하든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아. 그 말씀은 결국 날치기를 한다는 것입니까?-
“뭐 그렇겠지요. 쯧쯧. 나라를 세워도 나라를 위해 투신하기 보다는 오히려 정치자금을 먹기 위해 이리저리 꼼수만 부리니.”
-그거야 어차피 다른 나라에서도 발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기야 적극적으로 막을 수 없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 우리라도 살기 위해서 대비라도 할 수 밖에...”
-예. 알겠습니다. 아 참. 그리고 만약 책정된 예산보다 돈이 더 들어가면 그 때는 어쩌실 생각입니까?-
“회사 예산으로 부족합니까?”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돈을 버는 집단이지 봉사집단은 아니지 않습니까?-
“비서실장. 그냥 이번 건은 이익을 볼 생각보다는 손해를 어떻게 최소화시키는가? 로 관점을 바꾸십시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아 참 그리고. 회장님께서는 언제 복귀하실 생각입니까?-
“뭐 전쟁이 끝나야 이 짓거리를 끝내든 말든 하겠지요. 하지만 전황을 보아하니 몇 년도 안 걸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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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방위군 드디어 슬슬 등장하는군요. 결국 병윤은 이 사태를 적극적으로 막기 보다는 어떻게든 뒤이어 올 파도를 덜 맞기 위해 고생을 합니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