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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인생-593화 (59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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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병윤의 말에 핸드폰 너머 진세연 비서실장은 곧바로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다만 최대한 본 자리로 복귀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예. 그럼 여기서 전화 끊겠습니다.”

병윤은 이 말을 끝으로 진세연 비서실장과의 연락을 끊는다. 그리고 한 마디 내뱉는다.

“이거 미치겠군.”

그 놈의 정치자금이 뭐라고, 정부 쪽에서 이런 짓을 벌이는가? 병윤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하기야 이번 일을 벌이면서 먹을 수 있는 파이가 많기에 이런 일을 적극적으로 벌일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피해를 볼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문제였다.

병윤은 이내 한숨을 쉬며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뚜르르 뚜르르 철컥!-

-예. 여보시오.-

“하하. 접니다. 당수님.”

-그 목소리는 군에 들어가신 동협 그룹 회장이 아닌가? 이런 시간에 무슨 전화지?-

“잘 지내고 계십니까?”

-이런 시국에 편안한 날은 없지만 일단 지내고 있다네. 뭐 자네처럼 전방에 가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도 할 일은 꽤 많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하. 자네가 그리 말해주니 고맙기 그지없군. 그런데 무슨 일로 이렇게 전화를 주었는지 알 수 있겠는가?-

병윤은 그 말에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혹시 정부에서 창설한다던 국민방위군에 대해서 알고 계시는 것이 있습니까?”

-국민방위군이라. 그야 물론 알고 있지. 그런데 나에게 전화를 준 것은 그 국민방위군에 대한 건수 때문인가?-

“예. 그렇습니다.”

-우남 형님이 아무리 욕심이 많다고 하지만 대놓고 자금을 빼먹을 인간은 아니지. 내가 알기로는 예산 8할은 동협 그룹에게 쏟아 붓는다는 말을 들었네. 하지만 자네 쪽에 떨어지는 돈이야 어차피 고민할 것은 없지. 문제는 남는 예산 2할이 문제지.-

한정당 당수 김구가 그 사실을 언급하자 병윤은 눈빛을 빛내며 묻는다.

“파악하고 계셨습니까?”

-나라를 잃고, 수십 년 동안 국정에 관한 일을 한 나야. 그 정도면 눈치를 채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나?-

“한정당 측에서는 이 일을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아마 자네도 이미 예상은 하고 있을 텐데? 이번 사항은 우리 측이 시간을 끈다고 하여도 막기는 어렵다는 것 말이야. 다만 우린 그 다음을 예상하고 있지. 바로 감찰권 말이지.-

“이미 대비는 해놓은 상태이군요.”

-하지만 그 쪽에서 대놓고, 감찰권 행사를 방해하겠지. 깡패들을 동원하여 우리들을 겁박할 수도 있어. 다만 사태가 터지면 막을 명분이 없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예산 8할을 받은 동협 그룹이 표적이 될 텐데. 자네 괜찮겠나?-

“하하. 제가 그런 것으로 돈을 빼먹는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또 사실 저 역시 이번 일이 회사의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몰려올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힘을 쓸 생각입니다.”

-그 말은 자네도 이번 건수에 대해서 파악했다는 뜻이군. 그럼 우리 측이 자네 회사를 파헤친다고 하여도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인가?-

“너무 적극적으로 파헤치지는 마십시오. 다만 사건이 터지고, 당수님께서 말씀하실 감사가 용이하도록 우리 측 자료들을 공개할 테니 당수님께서는 어떻게든 방향만 그 쪽으로 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뭐 그거야 여론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겠지만 잘 알겠네.-

“감사합니다. 그럼 당수님만 믿고 가겠습니다.”

-자네가 나에게 해준 것을 생각하면 그거야 당연하겠지. 그럼 전화 끊지.-

백범 김구와의 연락을 끊은 병윤은 이내 핸드폰 뚜껑을 닫으며 생각에 잠긴다.

‘이번 건수로 아마 이승만 정권은 꽤 큰 타격을 입겠지. 하지만 이 것으로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겠어.’

병윤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핸드폰을 군복 안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곤 아까의 할 일을 다시 시작한다.

1950년 11월 27일, 장성환은 눈을 껌뻑이며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성환 시선 끝에는 서로 가까워진 두 남녀가 서 있었다.

“흠. 그러니까 자네 둘이 사귄다는 말인가?”

사무소 직원 임용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당당하게 대답한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의원님.”

“허참. 남녀 사이는 모른다는 말이 있던데. 뭐 그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가 없겠지. 그런데 손 비서와는 언제 맺어진 거야?”

임용주는 그 말에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한다.

“그건...”

임용주가 말을 못하자 손채현 비서가 사무적인 어조로 대답한다.

“용주 씨와 만나게 된 것은 한 달 전이에요.”

“흠. 그렇구만. 나야 뭐 두 사람의 사이가 그렇게 진전될 줄은 몰랐지. 알겠네. 일단 축하하네. 하지만 두 사람 관계는 둘이 알아서 하는 거고, 일단 문제는 학교 건립 청원 건은 어떻게 되었어?”

임용주는 그 물음에 즉각적으로 대답한다.

“현재 많은 지역의 사람들이 자기 지역에 학교를 설치해달라고 난리를 피우고 있습니다. 자세한 지역은 이 서류에 적혀 있습니다.”

임용주는 서류 세 장을 장성환에게 넘기자 장성환은 서류의 내용을 살펴보고는 얼굴이 일그러지며 한 마디 외친다.

“쯧. 미치겠군.”

“일단 학교를 지어달라는 곳이 도심 지역이 아니라 교외 지역이 꽤 있어서 문제입니다.”

“순회 교육으로는 부족한가? 해방 전에는 그냥 야학으로 교육을 때웠는데 말이지.”

“야학으로 학식을 쌓기에는 여러 가지 부족하지 않습니까? 사실 시장께서도 이번 일을 처리하기에 꽤 골치가 아프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 요구들이야 다 들어주면 좋겠지만 아시다시피 예산은 한정되어 있지 않습니까?”

“으음. 관건은 역시 소통을 할 수밖에 없는가?”

“방법이 있으십니까? 의원님?”

장성환은 가만히 궁리하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한 마디 말한다.

“아무래도 학교를 신설하는 것보다는 교통을 편리하게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군.”

“예? 그 무슨 말씀입니까?”

“생각을 해보게. 어차피 학교를 요구하는 것은 다 똑같아. 그런데 어느 지역에 학교를 설치하면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어?”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거야...”

“그럴 바에는 아예 애초에 안 짓는 것이 낫지. 그렇다고 해서 저들의 청원을 무시하기도 뭐하고, 그럼 남는 방법은 하나이지 않은가? 교통을 어느 정도 확충시키는 것으로 말이야.”

그 말에 손 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장성환 의원의 말에 동조한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교통 기반을 확충시킬 만한 것이 있겠습니까?”

“왜 없어? 어차피 노면 전차 노선을 어느 정도 확충시키면 가능한 일이 아닌가? 더군다나 여기에 몰린 피난민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도 좋고 말이야.”

손 비서와 임용주 두 사람은 그 말에 고민한다. 하기야 장성환의 말이 꽤 여러 가지를 만족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피난민들의 일자리, 그리고 학교를 만들라는 요구에 부족하지만 그래도 학교 통학 시간을 줄여 얻는 청원 해소 여러 가지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을 과연 시장이 허락할 지에 대해선 의문이었다. 결국 손 비서가 장성환 의원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시장께서 의원님의 말을 들어줄까요?”

장성환은 그 말에 걱정 말라는 듯 큰 소리를 친다.

“박 시장. 그 양반도 이 일에 꽤 골치 썩히고 있을 거야. 나와 그 양반에게 떨어진 청원들을 한꺼번에 해결하기에는 예산도 돈도 없으니 내가 제시한 방법으로 갈 수밖에 없을 거야.”

“합리적인 판단입니다만...”

“뭐. 안 되면 같이 요정에 가며 둘이 이야기를 나눠볼 수밖에 없겠지. 정치가 그런 것이 아니겠어?”

“흠흠. 맞는 말씀입니다.”

“뭐 이해가 되었으면 일들 해야지. 자네들 연애는 일 끝나면 알아서 하는 것이고.”

임용주는 그 말에 ‘끙’ 침음을 뱉으며 한 마디 말한다.

“사무소의 두 사람이 연애하게 되는데, 사무소에 무슨 혜택이 없습니까?”

“무슨 혜택? 뭐 집이라도 얻어줘?”

“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임용주가 그렇게 말을 하자 장성환 의원은 어이가 없었는지 한 마디 말한다.

“그 놈 참. 그 40층짜리 고층건물 있지?”

“오 혹시. 편안 건물 중 하나를 주시는 것입니까?”

그 물음에 장성환은 주려다 갑작스럽게 든 생각에 멈칫하고는 이내 시선을 손 비서에게 돌리며 한 마디 말한다.

“잠시만. 그 편안 건물 중 손 비서 자네 집도 있지 않은가?”

손 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전에 일했던 곳에 퇴직 명목으로 받았습니다.”

“거 잘 되었군. 둘이 거기서 살면 되지 않나?”

임용주는 그 말에 ‘끙’ 침음을 흘리며 한 마디 말한다.

“그럼... 제가 데릴사위가 되라는...”

“뭐 어떤가? 어차피 사귀는 것 아닌가? 결혼하게 되면 다시 이야기하지. 흠흠.”

임용주는 그 말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 요구하기 힘들어졌다. 손 비서는 그런 임용주의 등을 토닥이며 임용주를 위로한다. 하여튼 일단은 임용주와 손 비서가 연애하게 되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본 장성환 의원은 한숨이 나온다.

‘나도 새 부인이라도 들어야 하나?’

자신의 아들 장평균을 낳고, 사별한 자신의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자 장성환은 자동적으로 그 생각이 옅어진다.

‘일단 일이 급선무다. 평균이야. 어차피 잘 자라고 있으니까.’

장성환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일에 집중했다.

사무소에서의 일이 끝나고, 밤이 되자 장성환은 문경 요정에 방문하여 미리 예약했던 방 안으로 들어간다. 요정의 직원이 직접 안내해 예약한 방문을 열었고, 방 안에서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다. 장성환은 이내 그 사람에게 인사한다.

“이런 시장께서 먼저 기다리고 있었군요.”

그 말에 문경의 시장 박권오가 벌떡 일어나서 장성환에게 인사한다.

“하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단 자리는 마련해두었습니다.”

장성환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박권오 맞은편에 앉는다. 박권오가 생글생글 웃으며 장성환을 대하자 장성환 역시 그리 기분 나쁘지 않은 표정을 짓는다. 두 사람은 음식이 나올 때까지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다 이내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간다.

“저 의원님. 그 학교 청원 건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권오 시장의 물음에 장성환은 잠시 생각하다 이내 이렇게 대답한다.

“사실 나도 많은 고민들을 해봤지만 어느 특정한 지역에 학교를 건립하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하오.”

“그... 무슨 말씀입니까?”

“시장께서도 정치 판 돌아가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만약 어느 특정한 지역에 학교를 세운다고 해보시오. 그러면 다른 지역의 사람이 만족하겠소?”

“으음... 그런 일이야 매번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의원인 나로써는 이 불만들에 대해서 무시하기 힘든 노릇이오.”

장성환의 말에 박권오 시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다. 청원 받는 것은 두 사람 모두 같았다. 그러나 국회의원인 장성환에게 청원을 무시하기는 상당히 힘들었다.

“그래서 한 번 생각했소. 어차피 학교들을 세워달라는 것은 자기들 가까운 곳에 학교 다니기 쉬우라고 하는 것 아니겠소?”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교통을 확충시키는 것이 더 낫지 않겠소?”

“으음. 그 말씀은...”

“교통만 확충시키면 학교 가는 시간은 더더욱 짧아질 것이오.”

박권오 시장은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 이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다만 문제는 자신들의 청원이 무산되었다는 것인데. 그 것에 대해선 어떻게 하실 방침입니까?”

“뭐 어쩔 수 없이. 직접 나서서 설득이라도 해야지. 별 수 있겠소?”

박권오 시장은 그 말에 상당히 죄송하다는 얼굴을 내보이며 대답한다.

“욕을 듣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냥 정치가의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더군다나 여기에 몰리는 피난민들에게 일자리도 줄 수 있으니.”

박권오 시장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이렇게 대답한다.

“맞는 말씀입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이 문경도 전쟁 전 모습을 되찾지 않겠습니까?”

“하하. 그 당연한 말씀을.”

그렇게 둘이 이야기를 하다 이내 요정의 직원들이 음식들을 하나 둘씩 내온다. 그리고 이내 식탁 중심에 신선로를 딱 올려놓자 박권오 시장은 미묘한 표정으로 한 마디 말한다.

“이 신선로 자체가 옛 조선왕조 궁궐에서 맛 보던 것인데. 지금은 여기서 맛보게 되는군요.”

“흐흐. 우리 같은 아랫것들이 신선로 정도는 즐길 수 있지 않겠는가? 옛 왕족이 이 사실이 안다면 우리들보고 역적이라고 말을 하겠지.”

“아하하. 맞는 말씀입니다. 하여튼 좋은 세상이지 않습니까?”

그 말에 장성환은 한 마디 대답한다.

“그건 아니지.”

“이런. 의원 님 기분을 상하게 해드렸군요.”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러나? 일단 신선로 맛 좀 봐야겠지.”

신선로 안에 있는 음식들을 젓가락으로 집은 장성환은 이내 그 것을 입 안으로 넣으면서 음미하기 시작한다. 조화롭게 조리된 음식들이 맛의 조화를 뿜어냈고, 장성환은 꽤 만족스런 표정으로 한 마디 말한다.

“이래서 왕가가 즐겨 찾은 것 같군.”

“저 역시 의원님께서 이런 기쁜 모습을 보이니 마음이 놓입니다.”

장성환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며 식사를 계속한다.

============================ 작품 후기 ============================

헬조선 네버 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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