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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인생-595화 (59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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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병윤은 핸드폰을 붙잡고, 진세연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의 침묵 끝에 진세연은 마치 큰일을 결심한 듯 한 마디 외친다.

-저 회장님.-

“말씀하십시오. 비서실장님.”

-저... 오늘일자로 중국에 파견되면 안 되겠습니까?-

“중국이라... 흠... 그 곳에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예. 집안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병윤은 그 말을 듣고, 이내 한 순간 눈치를 챈다. 병윤은 어렵사리 이내 입을 떼넨다.

“집안일이라고 한다면... 역시 비서실장의 미래이겠지요?”

-역시 회장님의 눈을 속일 수가 없겠네요.-

“알겠습니다. 잠시간의 휴가는 아닙니까?”

-휴가는 아닙니다. 몇 년 단위의 전근을 요구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진세연 비서실장님.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중국에 파견간 곽 상무를 이 자리에 불러 오도록 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곽 상무의 업무는 제가 담당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중국 쪽 상황에 대해서 진 비서실장께 부탁드리겠습니다.”

-회장님. 떠나는 날에 꼭 찾아뵐 수 있겠습니까?-

병윤은 그 말에 피식 양쪽 입꼬리를 위로 올리며 미소를 짓고는 대답한다.

“예. 휴가를 내서라도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저도 마음에 결심이 섰습니다.-

결심이 섰다는 말에 병윤의 속은 뭔가가 빠져나간 듯 한 느낌이었다.

‘허탈하다는 느낌을 알겠지만. 어쩔 수가 없구나. 그 사람 인생도 그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순리겠지.’

병윤은 진세연의 말을 들으면서 결코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병윤은 이내 핸드폰을 바라보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철컥!-

-예. 여기는 동협 그룹 중화민국 지부장 곽조현 상무입니다.-

“아 잘 지내셨습니까? 접니다.”

-이 목소리는 회장님이십니까? 무슨 일로 저에게 이런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현재 중국 상황은 어떤지 궁금하군요.”

-아. 그 점에 대해 궁금하십니까? 그리 걱정하실 것은 없습니다. 현재 중경공단은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지역에 확장을 가하고 있습니다. 혹여 자료가 필요하면 가까운 시일 내에 제출할 용의가 있습니다.-

“하하.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전 군에 메인 몸이지 않습니까?”

-아. 그렇군요.-

병윤은 흠흠 기침을 하고선 이내 곽조현에게 한 마디 통보를 한다.

“혹여 가능하다면 여기로 다시 가는 것은 괜찮겠습니까?”

-흠. 그 소리는 여기에 다시 전근 가는 것입니까?-

“혹여 안 될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건 절대 아닙니다. 다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오늘 진세연 비서실장이 중국으로 다시 전근가기를 요청했습니다.”

-으음...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진세연 비서실장과 제 역할은 교체된다는 의미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혹여 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부르겠습니다만...”

-하하. 아닙니다. 회장님이 가신다고 하니까 여기로 달려올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비서실장이 하고 있던 역할은 그럼...-

“예. 제가 복귀할 때까지 곽조현 상무가 수고하셨으면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아 참. 형님에게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하. 제가 먼저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아쉽게 되었습니다. 그럼 알겠습니다.-

그 뒤로 곽조현과 사적인 이야기를 한 뒤 통화를 끊은 병윤은 다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뚜르르 뚜르르 철컥!-

-여기에 전화를 건 당사자는 소수에 불과한데. 누구인가?-

“접니다. 형님.”

-이 목소리는 병윤이 아니더냐? 갑작스럽게 전화를 건 이유가 있느냐?-

“하하. 제가 쓸데없이 형님에게 전화를 겁니까?”

-쓸데없어도 좋으니 그냥 자주 걸어라. 그게 나에게 더 좋다.-

“가뜩이나 국정에 신경을 쓰는 형님인데 이 아우가 피곤하게 만들 일이 있습니까?”

-그래. 그래. 그 말을 들으니 네 배려가 확 느껴지는구나. 일단 중한 공수동맹에 관련해서 네가 큰 도움을 주었다고 주한중국대사가 전달했다. 그 것에 대해서 고맙구나.-

“고맙기 뭐가 있겠습니까?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 않습니까?”

-하하. 그리 말을 해주니 고맙구나. 그런데 무슨 일이기에 전화를 주느냐?-

“아. 그 것에 대해선 사실 제 동협 그룹 인사 건에 관해서 그렇습니다.”

-흠. 소소한 인사 건이라면 나에게 전화를 줄 이유가 되지 않겠지? 꽤 중요한 인사가 여기에 오는 것이냐?-

“예. 잘 아시다시피 진세연 비서실장이 그 쪽으로 전근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파견된 곽조현 상무는 다시 이 쪽으로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방금 두 사람의 의사를 확인하여 지금 형님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그래? 뭐 별로 크게 변화하는 것은 없구나. 어차피 곽조현 상무와 진세연 비서실장 두 사람 모두 유능하기 그지없으니 말이다. 다만 염려가 되는 것은 진세연 일가는 진씨 일가 소속인데... 그 쪽 힘이 커지는 것이 조금...-

“아 그렇군요. 하기야 형님에게 있어서 진씨 일가는 총통 각하(지금은 죽은 장개석)의 사람이니...-

-그 일가는 나에게 확실히 복속된 것 보다는 힘을 합쳤다는 것이 강하지. 총통 각하의 아들이신 장경국님에게 접근해온다는 말이 들린다.-

“장경국님이라 하신다면...”

-그래. 지금은 내각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신 분이시다. 원래라면 그 사람이 나 대신 총통 자리에 뒤를 이을 뿐이시다. 다만 총통 각하의 급사에 빠진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나에게 협력을 아끼고 계실 뿐이다.-

“흠.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러니 형님의 염려는 혹여 진씨 일가가 장경국 님에게 접근해 형님에게 대항할까? 라는 근심이 생긴다 이 말입니까?”

-적어도 장경국 님과 혈통적 결혼을 추진할까? 라는 근심이 생긴다. 물론 장경국 님께서도 이미 소련에 여성을 데려와 결혼하시고, 자녀가 생긴 상황이지.-

“하하. 그럴 걱정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무슨 소리냐?-

“진씨 일가가 형님에게 쫓겨 다급하다면 형님의 걱정대로 급히 장경국 님과 혼사를 추진할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일은 형님에게 지금처럼 불안 근심 걱정을 일으키지 않습니까? 혹여 진씨 일가가 형님을 위협해서 형님의 자리를 강탈하지 않을까? 라는 근심이 말입니다.”

-역시 네 눈은 속일 수 없구나. 그런데 그럴 걱정이 없다는 말은 무슨 말이지?-

“그럼 한 가지 생각해봅시다. 진씨 일가가 정말로 불안한 위치입니까? 또 그 사람들이 형님을 평가할 때, 과연 이 일을 추진해도 될 만큼 만만한 사람이라고 평가할까요?”

-아... 그렇군.-

“진씨 일가도 머리는 있습니다. 아마 형님 자리를 위협하려면 형님이 모르게 다 조건을 만들어놓고, 일을 벌일 것입니다. 그래야 형님을 몰아 붙일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렇게 티가 나는데, 과연 진씨 일가가 그런 일을 벌이겠습니까? 그 사람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아마 비서실장을 정략혼 시킨다고 한다면 자신들의 일가에 득이 될 만한 세력을 영입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그게 오히려 말이 맞겠어. 하지만 그래도 경계는 해두어야 하지 않겠나?-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 자리에 오르면 믿을 수 있는 자는 없다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그 말이 있지 않습니까? 군주는 신하들을 의심해야하지만 신하는 군주를 무조건 믿고 따르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건 너도 해당사항이 아니냐?-

“제가 중국에 있습니까? 아시다시피 제 기반은 이 곳에 있습니다만.”

-쯧. 아쉽다. 그냥 기반을 여기로 삼으면 안 되겠냐? 너만큼 능력이 있으면서 듬직한 녀석은 없으니 말이다.-

“하하. 몇 년간 중국에 일을 할 수 있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끙. 네가 조선 사람이라는 것에 하늘이 원망스럽구나.-

“그 말을 들으니 형님이 저를 엄청 아낀다는 것을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저에게 필요한 것은 없습니까?”

-필요한 일이라. 현재 상황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다만 토지개혁에 관련해서 꽤 많은 분란이 있다.-

“토지개혁이라...”

-조선에는 이미 토지개혁을 완수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수직농업이라는 것과 또 자본가로의 유인 정책으로 인해 지주의 기득권을 유도했다고 알고 있다. 우리 정부에서도 알다시피 지주들의 자본가로의 변신을 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추진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럼 형님이 원하시는 것은? 아무래도 수직농업입니까?”

-그래. 그렇다. 다만 나 역시 공짜로 그 기술을 얻을 계획은 없다.-

“흠. 제 개인적인 힘이라면 형님에게 그 기술을 공유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그 기술 자체가 제 국가에 메인 것이라서 함부로 속단하기 힘듭니다.”

-아마도 그렇겠지. 그래서 네가 한국 정부 쪽에 힘을 발휘했으면 좋겠구나.-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제가 한 번 이 대통령에게 연락을 해보겠습니다.”

-아 또 그리고, 혹시 트랙터를 비롯한 농기계들 같은 것이 남지 않으냐?-

“현재 여기서도 수요가 부족한 상황이고, 그룹에서도 열심히 생산하고 있지만 여유가 있다면 그 쪽에 지원을 해드리겠습니다. 아주 급합니까?”

-이번에 토지개혁이 된 농가들에 한해 농기계를 지급하는 행사가 있었다. 그런데 그 지급할 농기계들이 관료들의 농단으로 이미 팔아버렸다는 황당한 전갈이 있지 않았던가?-

“그 사실을 들으니 형님께서 얼마만큼 화나는지 아시겠습니다.”

-물론이지. 그 관료들의 모든 재산을 압류 몰수하고는 직위를 박탈시키고, 아예 유배를 시켜 버렸지.-

“흠. 전 총통 각하이셨으면 그냥 전부 다 쏴 죽일텐데 말입니다.”

-그러면 비리가 있는 관리들이 목숨을 걸고 숨길 것이 뻔하다. 비리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의 일가족들이 전부 목이 날아가지 않은가? 적어도 살 길을 열어 두어야 하지. 물론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괘씸하기 짝이 없지만 말이야.-

“하하. 그 것 참 알겠습니다. 필요한 농기계는 얼마 정도 됩니까?”

-그건...-

신유철은 지금 필요한 농기계들의 수량을 병윤에게 전달했고, 병윤은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핸드폰을 통해 뜻을 전달했다.

“알겠습니다. 그 정도 물량이면 그룹 내에서 1주일이면 생산할 물량이군요. 그런데 중경공단 쪽에서도 농기계를 생산하지 않습니까?”

-당연히 생산하지. 그 쪽에도 주문을 넣었다. 아마 네가 말한 것이라면 대략 1주일 뒤에 수량이 얼추 맞을 것 같다.-

“미리 계산하고 부른 개수입니까? 하기야. 한국의 동협 그룹 생산력은 중경공단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나 다름 없겠지요. 잘 알겠습니다.”

-네가 만든 중경공단이야. 자부심 좀 가지면 좋겠구나.-

“이미 자부심은 충분합니다. 여기서 자부심을 더 가지면 오만이 되겠지요.”

-그래. 알겠다. 그런데 군인은 언제까지 할 생각이냐?-

“이 전쟁이 끝나야 전역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쪽 정부가 생각이 있다면 너를 당장 전역시킬 것이 뻔한데...-

“뭐. 그냥 상류층의 의무라고 생각하십시오.”

-쯧.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 뒤로 신유철과는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 후, 전화를 끊었다. 병윤은 이내 핸드폰 뚜껑을 닫은 뒤, 군복 안주머니에 넣고는 생각에 잠긴다.

‘어디보자. 내 휴가가. 며칠 뒤에 있던가?’

휴가 일정이 딱 맞았다라는 생각이 든 병윤이었다. 사실 군대에 집중하면서 휴가를 쓸 여유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휴가권이 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며칠 뒤에 자신을 따라 다니는 병사인 주민식과 같이 휴가를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휴가일정에 비서실장과의 면담이 추가된 것 뿐이다.

‘민식이에게는 그 땐 어쩔 수 없이 호텔에 가보라는 말밖에 할 수 없겠네.’

그렇게 생각한 병윤은 다시 자신의 일을 시작한다.

1950년 12월 4일, 헬리콥터 안에서 자리에 앉은 병윤과 주민식 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 이번에 집에 가볼 생각이냐?”

주민식은 집 생각하자 헤벌쭉 웃으며 대답한다.

“가족들은 제가 전쟁터에 있다는 사실을 듣고, 죽은 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얼굴을 보이면 마음이 놓일 것입니다.”

“그래. 네가 사는 것이 어디였지?”

주민식은 그 질문에 어이가 없었는지 한 마디 되묻는다.

“저에게 관심이 있습니까?”

“내가 네 집 궁금해야할 이유라도 있었냐?”

병윤은 태연하게 대꾸를 하자 주민식은 한숨을 쉬고 대답한다.

“끙. 보급 장교님만큼 얼굴 좋은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야. 임마. 난 그래도 천사야. 천사. 세상에 나보다 뻔뻔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는 있냐?”

“그 말은 자신이 뻔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 것으로 주제를 넘기냐? 쳇. 말하고 싶지 않으면 되었다.”

병윤이 삐진 척 고개를 돌리자 주민식만 진땀을 흘릴 뿐이었다.

“끙. 누가 뭐라고 했습니까? 그러니까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충청남도 공주입니다.”

“공주? 아 공주군 말하는 구나.”

“뭐 정확히 말해서...”

“그거야 네 집 방문하면 자연히 알게 되겠고.”

“이러기 입니까?!”

“아 성질은 참. 그래서 가족은 누구 누구 있는데?”

“당연히 제 부모님은 물론이고, 아버지 따라 농삿일 돕는 형님 두 분과 여동생 셋이 있습니다.”

“그렇구나. 그런데 형님 둘이라면 징집은 피하신 모양이냐?”

“아 원래 한 사람 징집대상인데, 제가 자청하는 바람에 징집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병윤은 ‘흠’ 소리를 내고, 생각에 잠긴다.

============================ 작품 후기 ============================

주민식 일가의 경우가 따로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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