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6 / 0633 ----------------------------------------------
[3부] 지옥의 한반도
상공을 빠르게 날아가고 있는 헬리콥터 검은 매 안에서 좌석에 앉아 있는 병윤은 주민식이 하던 말을 듣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기야. 그런 경우도 간혹 가다 있지.’
아직까지 전 국민을 대대적으로 징집하기에는 인구가 부족한 실정이었다. 왜냐하면 징집이라는 것은 다시 말해서 일을 하고 있던 사람을 군대에 써먹는 일이기 때문이다. 즉 원래 생산활동을 하게 되는 사람을 데려다 쓰면 그 생산을 하지 못하게 되고, 자연히 그 사람이 담당하던 경제는 그대로 없어진다.
거기다 더불어 군인이라는 직업이 생산은커녕 소비를 더더욱 극대화시킨다. 즉 생산 중지에 따른 경제 약화에 더해서 군인이 자체적으로 갖는 경제 약화까지 더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젊은 실업자들이 많으면 그 실업자들을 징집하여 군에 복무시키면 되겠지만 알다시피 실업자의 량은 한정되어 있고, 나라의 경제 역시 제한적이다.
거기다 전시라면 몰라도 평시의 군대는 한 마디로 돈 먹는 조직이었기에 경제적 관점에서 보자면 군대는 상비군 즉 국가 안보만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징집하고, 나머지는 필요한 곳에 투자하고, 전시가 날 때만 동원령을 긴급히 내려 전쟁을 수월하게 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그래서 나오게 된 개념이 바로 모병제이기는 한데, 모병제 역시 실상 군대에 끌리는 사람들이 없다면 병력 유지가 되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그러면 징병제가 나을 수도 있겠지만 그 것 역시 국가 경제는 물론 생산 활동 하던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문제점이 있다.
그러므로 지금 정부가 취하고 있는 방향은 기본적으로 징병제이지만 필요한 병력 수를 제한해두고, 딱 거기에 맞게끔 모집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전시라서 그런지 급히 병력이 필요하다보니 무조건적으로 거리에 돌아다니는 청년들을 잡아다 입영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런 경우는 국가의 국방예산에 비해 병력이 너무 부족할 때 쓰는 비상 책이나 다름없지만 말이다.
아마 주민식의 가정 역시 그런 경우로 인해 주민식만 징집된 것일지도 몰랐다. 병윤은 주민식을 바라보며 피식 웃고는 이렇게 말한다.
“하하. 그렇군. 두 분 다 연세는 있으시고?”
“그게 저... 사실 첫째 형이야 32세로 가정을 꾸렸고, 둘째 형 역시 28살로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런데 저만 가정이 없어서 이렇게 징집이 되었습니다.”
주민식의 말투에 병윤은 한 마디 말한다.
“그래서 너만 징집된 것이 억울해?”
“예? 그런 소리는 아닙니다. 뭐... 장교 님 따라 다니는 것도 꽤 많이 경험하는 것도 있고, 또 가족들에게 자랑거리도 생기고.”
병윤은 그 대답에 하하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날 만난 게 무슨 자랑거리라고.”
“엥? 그 무슨 소리입니까? 해방 전 독립운동에 전폭적으로 지원한 기업집단, 대학까지 공부한 사람들이 어떻게든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 난 기업들. 다른 기업들과는 차원이 다른 곳인데. 그런 곳의 회장님과 독대한 사실에 제 가족이 안 놀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아 그렇게 말해도 내 그룹에 안 뽑아준다고.”
주민식은 그 말에 기대도 안 했다는 표정으로 한 마디 대답한다.
“하기야 장교님이 어떤 사람인데 그런 청원이 통하겠습니까?”
“몇 개월 같이 지내다 보니 날 좀 알게 되는군.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징집되기 전에 가정을 꾸릴 생각은 없었어?”
그 물음에 주민식은 머리를 긁적이고는 대답한다.
“그야 물론 있습니다만. 제 나이 이제 스물입니다. 장가도 안 간 장교님도 있는데. 저 역시 결혼이 늦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게 내가 결혼을 안 했다고 너까지 들먹이는 거냐?”
“제가 무슨 말을 했습니까? 전 그저 결혼을 늦게 할 수 있다 그렇게 말을 한 것이지.”
병윤은 그 말에 피식 웃고는 주민식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래. 그래. 맞는 말이다. 결혼은 늦게 할 수 있는 법이지. 암.”
“장교님이 늦게 장가가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고요?”
“엄한데 정곡 찌르지 마라.”
“예.”
병윤은 잠시 창가 너머 지표면을 쳐다보다 감상에 젖는다. 지표면은 자연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전방은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이 작은 다툼은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작은 규모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식인들이 이런 모습을 보고, 역사를 재단할 때, 우주에 비교하면 먼지보다 더 작은 일이라고 이야기를 했구나.’
병윤은 그렇게 감상에 젖고는 잠시 지표면을 바라본다. 그 때, 병윤의 감상을 깨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주민식이었다.
“장교님. 장교님. 솔직히 궁금해서 그러는데. 장교님은 원래 기업 집단의 회장님이 아니십니까?”
그 말에 지표면을 바라보고 있었던 병윤은 고개를 주민식에게 돌리며 조금 귀찮다는 표정으로 되묻는다.
“알고 있는 내용을 왜 언급하는데?”
“아니. 그게 신기해서 그렇습니다.”
“뭐가? 지난번에 여러 번 이야기한 것 같은데.”
“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신기합니다. 혹시 장교님의 아버지께서는 무슨 지주였습니까?”
“그건 아니야.”
“예? 지주가 아니라면. 그 거대한 기업들을 만들 수가 없지 않습니까?”
“과연 그럴까?”
“제가 군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런 거대한 기업들을 만들 때에는 필요한 조건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분명 장교님의 가문에서 비롯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렇게 생각해.”
“끙. 말투를 보니 아닌 것으로 알겠습니다.”
“왜? 내가 있는 집 자식이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능한가?”
“그게 맞는 말이지 않습니까?”
그 말에 병윤은 피식 웃고는 이내 주민식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래 그게 맞는 말이지. 맞는 말이고 말이야.”
“마치 예외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외는 간혹 가다 있지. 그래서 뭘 물어보고 싶은 것인데?”
“그... 아닙니다. 제가 물어봤자 답을 해줄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후후. 그게 좋은 생각이야. 어차피 나에 대한 것은 어느 정도 귀동냥을 들으면 알 수 있는 것들이야. 그래도 한 가지 말은 해줄게.”
그 말에 주민식은 곧바로 관심이 생기며 병윤의 입에 집중한다. 병윤은 그런 그의 반응에 흥미라도 여겼는지 말을 한다.
“솔직히 우리 가족이 이렇게까지 됐는지 잘 모르겠어. 원래 사실 우리 가족 역시 농사일을 하던 사람들이었지. 지주 밑에서 간간이 일을 맡으며 겨우겨우 살아가는 것이 일생이었지.”
병윤이 말해준 것에 주민식은 대경실색하며 묻는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지금 사령관이 된 내 작은 형님 있지? 그 형님만 학교를 다녔고, 내 큰 형과 나는 솔직히 가족 일을 거들며 지내왔어.”
주민식은 그 말에 너무나도 놀랐는지 혼란한 상태였다. 마치 상식외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런 얼굴을 할까? 라는 정도로 주민식은 갈피를 못 잡았다. 병윤은 그런 주민식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지금 떵떵 거리고 있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부자인 것 같아? 그건 아니지. 처음에는 나처럼 비루하게 살다가 시기적절하게 터진 운과 노력, 실력으로 극복해나가 그 지위를 선에 얻었지. 그리고 그 후대가 그 사람 기반을 얻어 적절히 갈고 닦아 잘 먹고 잘 살게 된 것이지.”
“그래서 결론은 뭡니까?”
“결론은 간단해. 의지, 실력, 그리고 운.”
“그게 다입니까?”
“의지가 있어도 실력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고, 의지, 그리고 실력이 있다고 하여도 불운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인생이야.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운이겠네.”
“그냥 그거 하나면 끝입니까?”
“그래. 운 좋은 사람에게는 실력이든 의지이든 무슨 방법을 해도 못 이겨. 하늘에서 내려주는 천운은 무슨 일을 하든 뚫을 수가 없지.”
병윤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뭔가 회한에 가득한 얼굴을 한다. 주민식은 그런 얼굴을 보면서 저렇게 위세를 부리는 사람에게도 저런 면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럼 장교 님께서 그렇게 된 것이 전부 운 때문이었습니까?”
“전부는 아니야.”
“예? 아까는 운이 최고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병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대답한다.
“그래. 운이 최고야. 운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지. 그런데 그 운이 있다고 하여도 의지와 노력, 그리고 실력이 없다면 그 운이 만든 기회를 결코 살릴 수 없지.”
“하아. 그 말을 들으니 제가 다 아리송해집니다.”
“너무 어려웠나?”
“그런데 장교님도 그러던 시절이 있었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된 것입니까? 그런 계기라도 있습니까?”
그 말에 병윤은 과거를 더듬다 이내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대답한다.
“그래. 그 모든 시작은 내 누나가 처한 일부터 시작했지. 아까도 말했지만 내 어린 시절은 먹고 살기 바쁘던 시절이었어. 그런 때, 내 누님께서 도시에 나가 일을 하겠다고 한 거야.”
“아...”
“그래. 그 때부터 내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지. 그 때부터 생각했어. 내가 잘하면 내 누님이 이런 결심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야. 그래서 난 이 길을 간 거야.”
“그 지금 보이는 것들을 이룬 길을 말씀입니까?”
병윤은 피식 웃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그 길이 성공만으로 가는 것은 아니지. 지독한 실패와 체념도 같이 보이는 길이었지. 그 길을 가면서 피로감이 쌓일 때도 많았지. 그리고 지금 너와 앉아있는 이 시점에서 내가 만든 것들이 언제 무너질 지도 몰라.”
“허... 그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거대한 강도 막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댐이 무너질 때가 언제인지 아는가? 그 댐에 자그마한 구멍이 났을 때, 그 구멍을 중심으로 균열이 계속 커지면 댐은 붕괴하는 거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주민식은 그 말에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 때, 헬기에 설치된 확성기에서 헬기조종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아. 여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립니다. 원래는 그냥 목적지를 향해 가려고 했는데, 도중에 휴식처를 발견하고는 거기서 잠시 쉬다가 이내 목적지를 향해 가려고 합니다. 이 점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에 헬기 안에 있던 사람들은 웅성대다가 이내 쉬고 간다는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서로 대화를 나눈다. 주민식은 그 소리를 들으며 잠시 생각하다 이내 병윤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휴식처라. 잠시 쉬고 간다니.”
“뭐 어때? 도중 휴식처에서 요깃거리를 사고 먹으면서 돌아다니다 헬기 안으로 가면 되지.”
“상당히 여유가 넘치십니다.”
“나만 따라오라고. 사달라는 거 다 사줄테니 말이야.”
주민식은 그 말에 눈빛을 반짝이며 병윤에게 감격해한다.
“가... 감사합니다. 통 큰 장교님. 역시 저를 배려해주시는 사람은 장교님밖에 없습니다.”
“그냥 남동생 챙기는 것으로 생각해야지. 뭐.”
“헤헤. 형님이라 불러도 되겠습니까?”
“그 것까지는 좀.”
두 사람이 그렇게 대화를 하고 있을 시점에 헬기는 곧 휴식처를 발견하고는 서서히 착륙하기 시작한다. 휴식처에서 완전히 하강한 뒤, 헤치가 열렸고, 곧 안내방송이 들린다.
-아아. 헤치 열어두었으니 순서대로 헬기 밖으로 빠져나가시기 바랍니다. 아 그리고 여기 30분가량 있을 생각이니 그 때까지 안 들어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릅니다. 그러니 알아서 하시길 바랍니다. 이상.-
안내방송이 끝나자 곧바로 헤치에 가까운 좌석에 앉은 사람들부터 일어서서 헤치 밖으로 나갔고, 주민식과 병윤 역시 줄을 따라 헤치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만나는 신선한 공기에 병윤은 청량한 기분을 느낀다.
그 때, 주민식은 무엇이라도 발견했는지 병윤을 바라보고는 한 마디 말한다.
“저래서 휴식처라고 말을 했군요.”
병윤은 주민식의 말에 어느 건물을 발견한다. 건물들은 마치 새로 지은 것처럼 보였다. 다만 휴식처라는 말처럼 따로 주차장도 있었고, 또 여기에 정박한 헬기들이 눈에 띄었다. 건물들이 위치한 곳이 외딴 곳이었지만 이런 헬기 조종사 및 그 헬기에 탑승한 인원들을 배려한 시설인 것 같았다.
‘아. 그렇지. 국회에서 헬기조종사 및 차량운전자를 위한 휴식시설의 설치 법안이 작년에 통과되었지.’
아마 이 휴식처라는 존재는 작년에 통과한 법안에 따라 건설된 시설물인 것 같았다. 병윤은 그렇게 간단히 생각하고는 이내 주민식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여기는 천안같네.”
“예? 그게 정말입니까?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네 눈에 호두과자를 판매한다는 가게가 안 보여?”
“아. 멀리 있지만 잘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래. 원래 호두과자는 천안에서 시작되었지. 그리고 호두과자는 다른 지역에 판매되지 않고, 또 거리를 대충 계산할 때, 여기가 천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또 가장 중요한 증거물이 저기 있잖아. ‘천안 호두과자 전문점’이라고 써져 있잖아.”
“아. 그렇네. 그런데 그냥 ‘천안 호두과자 전문점’이라고 말을 했으면 그냥 여기가 천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뭘 모르네. 야. 서울에 있는 가게의 이름에 부산 양복점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 가게가 위치한 곳이 부산이란 말이냐?”
“끙. 그럴 수도 있겠네요.”
“여기서 더 말을 해주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내가 옹졸해지니 참지. 그냥 호두과자 사다 요깃거리나 하자.”
주민식은 그런 병윤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한다.
‘지금도 충분히 옹졸하지 않았나?’
그렇게 두 사람은 걸으면서 가게에 다가간다. 가게에는 군인들을 포함한 민간인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이 가게가 꽤 명물인 것도 있지만 이 주위에 호두과자를 포함한 요깃거리를 판매하는 곳이 여기라는 점도 있었다.
줄을 기다리며 간신히 호두과자가 담긴 봉투 몇 개를 챙긴 병윤은 봉투 2개를 주민식에게 떠넘긴다. 그리고 통감자를 판매하는 곳에 성큼성큼 걸어간다. 주민식은 그런 병윤의 행동에 소리친다.
“이 정도면 호두과자 많이 먹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또 통감자까지 사는 것이십니까?”
“요즘 나 따라다니면서 많이 배고팠잖아. 그리고 군인은 원래 배고픈 직업이니 이 정도 먹어도 배는 안 찬다고 생각하는데. 넌 어때?”
“아. 그건 인정하겠습니다. 저야 좋습니다.”
결국 주민식은 병윤을 졸졸 따라다니게 되었다. 천안 휴식처에서 판매하는 요깃거리는 호두과자, 통감자뿐만 아니라고 증명하듯 꽤 여러 가지를 판매했다. 잡지와 날짜별 신문까지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병윤은 그런 것들을 구매하며 주민식에게 떠넘긴다. 졸지에 짐꾼이 되어버린 주민식은 속으로 이럴 줄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얻어먹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차후에 병윤이 구매했던 것들 중에는 주민식이 가족들에게 선물용으로 산 물건이 있으니 주민식은 불만을 훌훌 털어버린다.
============================ 작품 후기 ============================
주민식은 왠지 병윤의 비서일을 담당할까? 라는 것이 느껴지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