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597화 (597/633)

0597 / 0633 ----------------------------------------------

[3부] 지옥의 한반도

휴식처를 돌아다니느라 주어진 30분을 다 써버린 병윤과 주민식은 이내 자신들이 탔던 헬기로 돌아간다. 그리고 좌석에 앉자마자 주민식이 병윤에게 한 목소리로 투덜거린다.

“아니 왜 이렇게 많이 사옵니까?”

“그 것들 중에 반은 네 것으로 아는데?”

“끄응. 그래도 들고 가기 불편하지 않겠습니까?”

“엄살은. 뭐 불만이면 네 선물까지 다 주던가? 그 것들까지 다 내가 들고 가지. 그러면 되겠어?”

병윤의 말에 주민식은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절대로 아닙니다. 하하. 제가 오랜만에 휴가를 다녀와서 그런지 실성을 한 모양입니다.”

“그러면 다행이고.”

병윤이 얄밉게 대답을 하자 주민식의 얼굴이 조금 부들 떨리지만 이내 속을 다 잡고 이렇게 생각한다.

‘하기야 나에게 이런 선물용 물건까지 사주는 사람은 보기 힘들지.’

주민식은 오히려 자신에게 이렇게 신경을 써주는 사람은 병윤 밖에 없다고 결론에 이르고는 정신승리의 길을 걸어간다. 주민식의 반응이 잠잠해지자 병윤은 피식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두 형은 들었으니 알고 있는데, 세 여동생은 어떤 사람들이야?”

그 말에 주민식은 병윤의 얼굴을 쓰윽 보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한 녀석은 이미 자랄 대로 다 자란 처녀입니다. 그리고 두 녀석은 아직 어려서 저보고 오빠, 오빠 거리는 녀석들입니다.”

“나랑 비슷하네. 나 역시 어린 여동생이 있거든.”

병윤은 왠지 팔불출이 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여동생 효혜의 이야기를 꺼내든다. 주민식은 왠지 말렸다는 생각이 들었고, 병윤의 이야기에 장단을 맞춰주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헬기는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 동안 헤치를 닫고, 이륙한 뒤 다시 목적지를 향해 날아간다.

대략 20분 정도 날아갔을 때, 헬기는 목적지인 문경 상공을 향한다. 그리고 헬기 안에 설치된 확성기에서 안내 방송이 나온다.

-아. 여기에 집에 갈 사람들은 미리 짐부터 싸십시오. 곧 문경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다시 한 번 방송합니다. 문경에 도착하였으니 여기서 내리실 분은 내리시기 바랍니다.-

잠시 눈을 좀 붙였던 주민식은 안내 방송에 깨고는 한 마디 말한다.

“끙. 조금 눈 좀 붙인다고 했는데, 눈 좀 붙이는 시간에 벌써 목적지에 도착을 하네요. 허참. 기차를 이용할 때보다 헬기를 이용할 때는 금방 금방 시간이 갑니다.”

병윤은 그 말에 한 마디 대답한다.

“그래서 기술발전이 중요한 거 아니냐?”

“예.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기차 타는 것이 꿈이었는데, 지금은 기차보다 더 한 것을 타고, 금방금방 집에 갈 수 있으니. 그런데 이 헬기 자체가 장교님 기업에서 만든 것이라고 들었는데...”

“어 그래. 맞아. 우리 그룹에서 설계하고 양산하지. 그게 뭐 어때서?”

그 말에 주민식은 검지로 뺨을 긁적이며 대답한다.

“신기해서 그렇습니다. 사실 기차나 전차, 전화기, 그 외 기타 기물들은 전부 다 미국을 포함한 외국이나 아니면 일본에서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서도 잘 만들어서 그렇습니다.”

“그 말 날 추켜세워서 아부 떠는 거 아니지?”

“티 났습니까?”

“티 났지. 어서 준비하고, 내리기나 하자고.”

주민식은 ‘예. 예.’ 거리면서 이내 휴식처에서 구입한 물건들을 정리하며 내릴 준비를 한다. 그리고 헬기는 서서히 하강하더니 이내 착륙했고, 헤치가 열린다. 병윤과 주민식 이외에도 문경에서 내릴 사람은 꽤 있었다. 전쟁이 터지기 전만 하여도 문경에 꽤 인구 유입이 많았으니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들 사이에서 두 사람은 줄을 따라 헬기 밖으로 내려갔고, 거기서 자신들을 반겨주는 사람들이 보였다. 바로 진세연 비서실장을 포함한 동협 그룹 임원들이었다. 갑작스러운 아름다운 여성의 등장에 헬기에서 내린 군인들은 눈이 휘둥그러질 정도로 진세연 비서실장을 쳐다보았지만 그녀를 호위하는 기세등등한 경비원들의 분위기에 가만히 바라만 볼 뿐이었다. 진세연 비서실장은 뚜벅뚜벅 걷더니 이내 병윤에게 다가와서 고개를 숙인다.

“이번에 휴가 오신 것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경비원들과 임원들 역시 병윤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병윤은 ‘끙’ 침음을 흘리며 어색해하더니 이내 인사를 받아준다.

“이런. 저를 기다리셨습니까?”

“저희들이 회장님의 사람인데. 회장님을 맞이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죠.”

진서연 비서실장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런데 회장님 뒤에 있는 사람은?”

그 말에 병윤은 갑작스레 주민식의 어깨를 팔로 휘어 감으며 대답한다.

“아아. 군대에서 나를 따라다니는 병사야. 이번에 휴가를 간 김에 같이 신청해서 여기까지 왔어.”

진서연 비서실장은 주민식을 눈 여겨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회장님의 말씀은 알겠습니다. 사람들 눈치가 보이니 장소에 안내하겠습니다.”

결국 병윤과 주민식은 진서연 비서실장과 동협 그룹 임원진들의 안내에 따라 어딘가로 사라졌고,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군인들은 수군거린다.

“저 사람이 그 동협 그룹 회장님이란 말이야?”

“그런 사람이 왜 우리들이랑 같이 다니는 거지?”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신기하네.”

“뭐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겠지.”

“그런데 그 여자 죽이지 않았냐?”

“젠장. 얼굴을 보는 순간 헤롱헤롱 빠져 나간다는 뜻이 무엇인지 알겠다.”

역시 남겨진 군인들의 관심사는 진세연 비서실장뿐이었다. 그들은 진세연 비서실장의 외모를 화제에 올리면서 자기들끼리 갈 길을 간다.

병윤과 주민식이 간 곳은 동협 그룹 소속의 한 휴게실이었다. 주민식은 병윤을 따라다니면서 매번 ‘우와’ 소리를 내며 감탄사를 지어냈다. 그리고 방에 도착했을 때는 주민식은 분위기에 압도되어서 그런지 침묵했다. 자신이 끼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것으로 보였다.

진세연 비서실장은 병윤에게 일감을 건네며 한 마디 말한다.

“일단 이 서류들은 제 권한으로 처리하기가 꽤 벅찬 것이라 빠르게 처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병윤은 그 말에 골치가 조금 썩힌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 말한다.

“오랜만에 휴가를 왔는데. 벌써부터 일감 처리입니까?”

병윤의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진세연 비서실장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대답한다.

“아무튼 부탁드리겠습니다.”

진세연 비서실장의 태도에 병윤은 한숨을 짓고는 이내 진세연 비서실장이 건네준 자료들을 살펴보며 미비점, 그리고 보완점을 써내며 빠르게 서류들을 처리했다. 그리고 처리한 문서들을 다시 진세연 비서실장에게 넘긴다.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진세연 비서실장은 역시라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회장님의 일처리 속도는 언제 봐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 거대한 기업 그룹을 운영하는데 그게 보통입니다.”

“그 말에는 동의합니다.”

주민식은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마치 자신이 별천지에 와 있는 기분을 들었다.

‘장교님은 군대에 있기 전에 저런 일을 했구나. 끙. 역시 믿기 어려워.’

병윤이 이 기업들을 일구어낸 것은 운이 가장 컸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주민식은 조금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군대에서도 그런 능력들을 몇 번 봐왔던 지라 별반 놀랄 것이 없는데. 그런 능력이 여기서 보여지니 조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 주민식이었다.

그 때, 진세연 비서실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병윤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저 그런데. 제 요구사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병윤은 그 물음에 잠시 생각하다 이내 주민식에게 시선을 두고 한 마디 말한다.

“민식아. 조금 미안한데. 밖에 나가 있어라.”

주민식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불감청고소원이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장교님.”

주민식은 소파에 일어나서 성큼성큼 걸으며 방 밖으로 나가 사라졌고, 병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진세연 비서실장에게 한 마디 말한다.

“일단 앉으십시오.”

진세연 비서실장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소파에 살포시 앉았고, 병윤은 그런 그녀를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입을 뗀다.

“사실 요청을 받은 뒤, 중국에 계시는 제 형님과 현재 지부장에 있는 곽조현 상무에게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진세연 비서실장은 병윤의 말에 긴장했는지 침을 꿀꺽 삼킨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행히 두 사람 모두 순순히 허락해주었습니다.”

진세연 비서실장은 그 말에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린다. 그리고 조금 편안해진 얼굴로 병윤을 바라보며 말한다.

“저... 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아닙니다. 비서실장의 부탁인데, 제가 들어주지 않을 수 없잖아요.”

그 말에 진세연은 잠시 침묵하다 이내 조금 슬픈 얼굴로 병윤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저 혹시. 회장님.”

“예. 말씀하십시오. 비서실장님.”

“만약. 제가 다른 사람에게 간다고 하면 회장님은 어떨 것 같습니까?”

진세연 비서실장의 그 말에 병윤의 얼굴은 웃는 낯에서 슬픈 낯으로 변한다.

“그 말씀은. 하아.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비서실장님. 당신의 뜻대로 하십시오.”

진세연 비서실장은 그 말에 조금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절 붙잡거나 하지 않는군요.”

“......”

병윤은 침묵을 선택하자 진세연 비서실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 마디 말한다.

“휴우. 알겠습니다. 제가 봐온 회장님은 자신의 뜻보다 남의 뜻을 존중해주는 사람이었으니 말입니다.”

“무슨 말을 못하겠군요. 하하.”

병윤의 태도에 진세연 비서실장은 결심했다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앞으로도 회장님과 같이 일하겠지만 개인적인 감정은 여기서 접어야겠네요. 어차피 저 역시 가문에 속한 사람이니 말이에요.”

진세연 비서실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이내 병윤이 처리한 서류들을 들고, 소파에서 일어서서 문 밖으로 나가버린다. 병윤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윽고 진세연 비서실장의 기척이 방에서 사라지자 병윤은 허공에 대고 중얼거린다.

“변명은 필요 없겠지. 오랜만에 코코아가 당기는군.”

병윤은 그렇게 말하고는 홀로 소파에서 일어나 코코아를 타기 위해 걸어간다.

병윤은 회사 업무를 어느 정도 처리하고는 주민식과 같이 차량 뒷좌석에 앉고는, 운전기사에게 말해 어디론가 향한다. 주민식은 어두워진 병윤의 표정을 보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저... 장교님. 아니 회장님.”

“어 왜 그래? 그냥 형이라 부르라니까.”

“끙. 그런 호칭으로 감히 부를 수 없는 것 잘 아시지 않습니까?”

“왜 내가 그리 불편해보여?”

주민식은 그 말에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한다.

“저 그게. 사실 장교님의 원래 직업은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런 면을 지금 봤는데. 감히 그런 사람에게 형님 형님 편하게 지낼 수 있겠습니까?”

“왜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데?”

병윤의 물음에 주민식은 한숨을 쉬고 대답한다.

“됐습니다. 조금 얼굴이 불편해보여서 말을 조금 걸었더니 장교님께서는 유들유들하게 넘어가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 뭐 그런 일이 조금 있지. 그런데 민식아. 그런 거에 그리 관심을 두지 마라. 너도 어차피 내 사정을 알게 될 날이 오게 될 테니 말이야.”

“예. 명심하고 있겠습니다.”

병윤은 그 대답을 듣고는 이내 차창 밖 거리를 살펴본다. 그런 병윤의 모습에 주민식은 속으로 생각한다.

‘뭐 복잡한 일이 있겠지.’

주민식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이내 좌석에 머리를 갖다 댄다. 그 때, 창가 너머 거리를 바라보던 병윤이 이내 주민식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한 가지 묻는다.

“민식아. 넌 마을에서 혹여 결혼을 약속한 처자가 있어?”

주민식은 그 물음에 뭔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 그런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글쎄요. 마을에 아는 처자들이 있기는 합니다만 장래를 약속한 처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아니 그냥.”

“그런데 저에게 여자관계를 물어보시니 조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병윤은 그 물음에 태연하게 대답한다.

“원래 남자들끼리 여자에 대해서 입방아를 조금 올릴 수 있지 않겠어?”

그 말에 주민식 역시 할 말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뭐 그런 거야. 이유가 필요해?”

“그럼 역으로 제가 질문을 올리겠습니다. 제가 알기로 장교님은 워낙 다양한 경험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경험 중에서 사랑하는 여자는 있습니까?”

병윤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글쎄... 난 잘 모르겠다. 일을 같이 하다 만난 여자들. 필요할 때 만난 여자들. 하지만 그 여자들 사이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럼. 혹여 장교님의 마을에서 기다리던 처자는 없습니까?”

병윤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있기는 했지. 하지만 그녀는 내 친구와 결혼했어.”

주민식은 그 말에 상당히 불편해하며 대답한다.

“그 것 참 안 되었습니다.”

============================ 작품 후기 ============================

휴우. 어제는 토하고 난리도 아닐 정도로 아팠습니다. 그 때문에 어제 올리지 못한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아 그리고 신작 관련해서는 아직까지 작성하고 있으니 기대해주십시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