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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이스라엘을 자극한다고?”
스탈린이 베리야를 보면서 한 소리였다. 베리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준비한 대답을 읊는다.
“예. 그렇습니다. 물론 중동전쟁이 일어난 직후라서 이스라엘이 다시 전쟁을 개시할 형편이 아닙니다만. 그 형편은 차츰 나아지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중동 연맹 국가들의 이스라엘에 대한 혐오감은 극심해질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적대국들 사이에 포위되는 형국입니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을 자극시키는 방법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건드리도록 한다면 이집트가 우리의 영향력에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스탈린은 베리야의 이야기에 자신의 콧수염을 만지더니 이내 한 마디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문제는 수에즈 운하는 영국 것이지 않나?”
“이집트가 그 것을 눈 뜨고 보겠습니까? 물론 본다고 하여도 이집트의 민족주의를 자극하여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시키도록 욕망을 부추긴다면 되지 않겠습니까?”
“흠. 나쁘지는 않군.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차지한다면 아마 영국을 포함한 서유럽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충동질 하겠군.”
“예. 바로 그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자극시킨다는 말인 것 같군. 좋아. 비신스키 외무장관.”
스탈린이 비신스키 외무장관을 부르자 비신스키 외무장관은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한다.
“저를 부르셨습니까? 각하.”
“한 번 이집트 대사에 연락하여 아까 이야기한 방법을 한 번 추진해보게.”
그 말에 비신스키 외무장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알겠습니다. 서기장 각하.”
그에게 지시를 끝낸 스탈린은 다시 베리야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한다.
“동일본은 어떻게 하고 있나?”
“현재 우리 측의 말을 듣는 일본인들을 앞에 내세우며 공산국가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 일본인들에 대한 정보는?”
베리야는 스탈린의 요구에 얼른 자신이 서류를 스탈린에게 건네며 대답한다.
“여기 있습니다.”
스탈린은 서류 뭉치를 살펴본다. 서류는 마치 이력서처럼 되어 있었는데, 그 중 스탈린의 눈에 한 사람이 띈다. 이름은 키릴 문자로 ‘아키라 타케시’였으며 이름 칸 옆 사진에 붉은 별이 새겨진 모자를 쓴 채로 날카로운 눈매와 얇은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다. 딱 보는 순간 매우 기회주의적인 사람처럼 보였다.
그 생김새대로 서류에서 나온 성격상 특징과 이력에 대해서 적혀 있었는데, 원래 일본제국에서 노동운동가로 활동했다고 적혀 있지만 적극적으로 노동자들을 구제한 활동보다는 오히려 노동자들의 돈을 착복한 사실이 있는 꺼림칙하기 그지없는 자였다.
“흠결이 있군.”
그 말에 베리야가 가볍게 대답한다.
“그런 인물일수록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녀석일수록 멋모르고 배신을 하기 마련이지.”
“걱정 마십시오. 그가 배신하지 못하도록 방법을 강구했습니다. 그는 우리 소련에게 있어서 충실한 종이 될 것입니다.”
“그렇군. 흠...”
스탈린은 동 일본 내각 면면을 살펴본다. 조직에는 큰 문제가 없었고, 또 그 조직을 담당하는 사람의 능력 또한 적성에 맞았다. 그런데 그 것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바로 소련에 충성심을 맹세한 사람들이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이다. 스탈린은 동일본의 가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태평양에 진출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부동항을 지녔다. 적어도 서 태평양에서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게 할 수 있다고 스탈린은 기대한다.
스탈린은 연신 서류들을 넘기면서 동일본에 대해 파악한 뒤 이내 서류를 책상 위에 놓는다. 그리고 베리야를 향해 한 마디 말한다.
“동일본 아니 일본인민공화국은 내년 2월에 정식으로 개국하는 것이 적당하겠군.”
“한 번 그 쪽으로 물어봐서 그 쪽이 바라는 길일을 택해 개국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적어도 동 일본을 선에 넣었으니 동아시아에 대해선 별반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겠군. 일단 다른 것은 없지?”
“예. 그렇습니다.”
“이 것으로 이야기를 끝내지.”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스탈린과 두 심복 간의 대화는 이 것으로 끝마친다.
1950년 12월 5일, 병윤은 ‘흠’ 소리를 내며 자신 앞에 앉아 있는 여러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 얼굴 중에 눈에 띄는 사람이 바로 이 마을의 촌장인 방씨 아저씨였다. 방씨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병윤에게 말한다.
“아침부터 휴가를 나온 사람에게 이렇게 찾게 해서 미안하군. 마을에 조금 문제가 생겨서 말이다.”
병윤은 그 말에 잠시 방씨를 바라보다 이내 미소를 짓고는 대답한다.
“무슨 일입니까? 아저씨.”
“너도 소식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나를 따라온 사람들은 이 마을에 유입된 피난민들이다.”
“어제 주아에게 이야기를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흠 그 것 참 잘 됐구나. 문제는...”
“문제는 역시 저 사람들의 생계가 걱정이라는 것입니까?”
“그래. 맞아. 하지만 저 사람들에게 무턱대고 땅을 배분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더냐? 그렇다고 소작농처럼 부리기는 뭐하고.”
“그야 당연하겠지요.”
“많은 고민을 해보았지만 별반 답이 없더구나. 장성환에게 한 번 요청을 해봤지만 그 친구는 그 친구대로 바빠서 말이지.”
“끙. 원래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국회의원인데...”
병윤이 그렇게 말하자 방씨 역시 동감을 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래. 내 말이 그래. 물론 사태가 나아지면 다시 저 사람들을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려 보내는 것이 가장 좋겠지. 하지만 현실은 그리 가볍지가 않아.”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병윤의 직접적인 물음에 방씨는 흠흠 기침을 하고선 이내 이렇게 대답한다.
“내 사위에게 요청을 하는 것은 조금 그렇고, 저 사람들이 농사만 짓던 사람들이라서 과연 방송 일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아무래도 익숙한 일이 적당하겠지. 병윤아. 혹여 수직 농장을 여기에 세울 수 있나?”
“그거야 가능합니다. 현재 수직 농장을 상용화한 지 몇 년은 지났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마을에 유입된 사람들의 수만큼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아저씨의 고충도 공감합니다.”
방씨는 그 말에 밝은 얼굴을 띄며 병윤에게 말한다.
“정말로 수직 농장을 만들어 줄 텐가?”
“솔직히 마을 인구가 별반 없을 때는 수직 농장을 만들든 말든 상관이 없겠지만 인구가 많이 유입이 되었으니 그만큼 땅을 일구어야 하겠지만 그건 그 것대로 시간만 낭비할 뿐이겠지요. 저 역시 어제 주아의 말을 듣고, 마을에 한 번 수직 농장을 세워야 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경영가는 다르구나. 그래. 언제부터 그 수직 농장을 만들 생각이냐?”
“아마 제가 연락하면 내일부터 바로 공사에 들어갈 것입니다. 하지만 수직 농장에서 일을 한다고 하여도 수직 농장의 일과 또 평상시 농사일은 다릅니다.”
“그건 잘 알고 있다. 꽤나 전문적인 것을 요구하니 말이야. 하지만 농한기이고, 또 수직 농장을 건설할 때까지 시간이 있으니 그 때 동안 수직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필요한 공부를 하면 되지 않겠느냐?”
“흠. 아저씨의 바람이 그러하다면 저 역시 마다할 생각이 없겠군요. 문경 시내에 농학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으니 그 곳에서 배우면 될 것입니다.”
그 말에 방씨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병윤에게 말한다.
“고맙구나. 이 마을을 위해 너와 네 가족들이 애를 쓰는구나.”
병윤은 그 말에 하하 웃으면서 대답한다.
“저 역시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마을에 대한 봉사는 마을의 일원으로써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겠지만...”
“일단 아저씨의 요구는 그 것으로 끝입니까?”
“그래. 여기서 손을 더 벌리다가는 내가 양심이 찔리는구나.”
“그 것 참 다행이군요.”
그 후로도 병윤은 방씨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다 이내 마을에 유입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소개를 받고는 잠시 대화하다 그들을 저택 밖으로 배웅한다. 그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거실로 다시 가자 그 곳에는 평상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주민식이 서 있었다. 병윤은 주민식을 보자마자 말한다.
“어때? 편하게 잘 잤어?”
주민식은 그 물음에 영 불편하다는 얼굴로 대답한다.
“역시 고급스러운 집은 제 성정과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호사스러운 방에서 억지로 눈을 붙이려고 했지만 오히려 낯선 곳이라서 그런지 정신이 바짝 긴장이 돼서 잠을 설쳤습니다.”
“그러냐? 다른 손님들은 거기서 잘만 잤는데, 너만 특이한 거 아니야?”
“아마... 그 말이 맞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싱겁기는... 그래서 지금 졸려?”
주민식은 그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한다.
“그건 아닙니다. 오히려 기분은 상쾌합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집에 간다는 생각을 하니 날아갈 것만 같습니다.”
병윤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며 한 마디 말한다.
“그렇군. 여기서 아침밥을 먹고, 이따 10시에 출발하자고. 이 저택에 헬기가 있으니 그걸 타면 될 거야.”
그 말에 주민식은 놀랍다는 얼굴을 지으며 말한다.
“그게 정말입니까? 끙. 개인 헬기를 가진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집에서 급한 일이 있을 때, 사용하는 물건이야. 헬기는 어차피 착륙장을 가리지 않으니 네가 말한 마을 외곽에 세우면 되겠지.”
“예.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곧 식당으로 간다. 거기에는 메리와 상진이가 먼저 밥을 먹고 있었다. 저택에 상주하는 요리사가 두 사람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준 모양이다. 메리는 병윤과 주민식을 보자마자 한 마디 말한다.
“어머. 오셨어요? 도련님?”
“먼저 식사하시고 계셨군요.”
“호호. 상진이가 배고프다고 칭얼거려서. 아 여기 자아...”
메리는 작은 숟가락으로 상진이의 입 안에 떠먹여준다. 병윤은 자신의 조카를 볼 때,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거 완전 왕의 생활이군.’
하지만 동시에 상진이가 어려서 메리의 도움을 받는다고 여기고는 이내 상진이에 대한 생각을 그만둔다. 어차피 나이가 들면 효혜처럼 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병윤은 메리와 잠시 대화를 하다 이내 저택에 상주한 요리사에게 주문을 하고는 재차 주민식과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여기 밥과 군대 밥과 비교하면 어때?”
주민식은 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지으며 대답한다.
“그게 말이라고 합니까? 당연히 여기 밥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장교님은 참으로 신기합니다. 여기에서 이런 음식들을 먹는데, 군대에서 먹는 밥은 완전 개밥이지 않습니까?”
“뭐 그렇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먹을만 해.”
주민식은 그 말에 ‘으엑’ 소리를 낼 정도로 역겨워하며 말한다.
“장교님의 위장이 좋으신 것입니까? 아니면 비위가 좋으신 것입니까?”
“둘 다. 어차피 군대 밥은 살기 위해 먹는 것 아니겠어?”
“제발 맛 좀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민식은 그렇게 말했지만 군대 밥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현재 군대 밥은 찰진 밥에 소금을 묻힌 주먹밥과 물에 된장을 풀어 시래기를 넣은 된장 시래기국, 깍두기, 김치를 포함한 채소들이 대부분이었다. 고기 종류는 간혹 가다 나오지만 그 것들은 대다수 간부 선에서 끝이 난다. 그래서 주민식을 포함한 병사들은 국군에서 제공하는 식단보다는 미군에서 공여 받거나 수입한 C-레이션을 먹는 것이 삶의 행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 C-레이션에 지급된 고기들을 김치와 함께 볶아 먹는 것이 낙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것들 역시 군대 밥에서 으뜸이었지. 시중에서 먹는 밥과는 역시 비교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주민식은 여기서 나온 밥을 먹으면서 군대 밥을 생각하자 절로 얼굴이 찡그러진다.
“그런데 국군에서 장교님 회사가 그 쪽으로 군납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거기서 생산하는 군복들과 장구류, 무기들 같은 것은 우리 회사 쪽에서 만들지.”
“그러면 식품 같은 것도 납품합니까?”
“저번에 말했다시피 C-레이션을 수입하거나 아니면 라이센스의 허락을 받아 자체적으로 만드는 편이다. 그런데 그게 왜?”
“그렇다면 국군의 자체적인 전투식량을 만들 수 있지 않습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가 했다. 민식아. 내가 요리 관련한 업종을 시도해본 적이 있는데 말이야. 그건 나도 안 되더라.”
“끙. 알겠습니다.”
“실망했어?”
“아닙니다. 조금 신기해서 그렇습니다.”
“그래. 밥이나 먹자.”
둘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요리사가 요리를 다 했는지 음식을 들고, 두 사람 앞에 내려다 놓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들, 오늘 아침은 살이 통통하게 오른 랍스터였다. 붉게 변한 껍질 속에 먹음직스럽게 생긴 속살들. 주민식은 그 냄새를 맡자마자 코를 킁킁 거리고는 이내 하나 집고는 입 안에 넣었다.
-사르르...-
속살은 주민식의 혀 주위를 몇 번 왔다 갔다가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르 녹아 내렸다.
‘하아. 이 것이 천국이구나.’
그 이후부터 주민식은 미친 듯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군대 밥에 익숙한 주민식으로썬 이 요리는 다시 한 번 없을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입 안에 들어가면서 아이스크림처럼 녹는 랍스터의 속살들.
그렇게 미친 듯이 먹다보니 랍스터는 금방 껍질만을 남기고 말았다. 주민식은 상당히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어느 정도 배는 찼다. 그 동안 병윤은 천천히 랍스터의 속살을 먹었다.
우아스럽게 먹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격식을 지키며 먹는 병윤의 모습에 주민식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음식들에 익숙해서 저렇게 먹는 거야? 아니면 되도 않는 격식 때문에 저렇게 먹는 거야?’
자신이 알기로 서양에서는 먹는 데에도 예절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병윤이 먹는 모습도 주민식이 들었던 서양 식사 예절을 따라한다고 여겼다.
‘뭐 알아서 먹겠지.’
주민식은 그렇게 생각하며 병윤의 먹는 모습에 대해 관심을 끊었다. 그 이후 여러 요리가 나왔고, 주민식은 그 요리들을 맛보면서 식사를 즐겼다. 그리고 배가 찰 무렵, 병윤이 왜 저렇게 격식을 따지며 먹는지 알 수 있었다.
‘젠장. 급하게 먹으니 배가 부르네. 다음부터는 빨리 먹어선 안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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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층 다 된 우리 병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