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급인생-603화 (603/633)

0603 / 0633 ----------------------------------------------

[3부] 지옥의 한반도

주민식의 가족들은 특히 주민식의 군 생활에 대해 많이들 물어봤다. 하기야 지금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전쟁 상황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걱정과 의문이기도 했다. 주민식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제 보직이 군수장교님 따라다니면서 일 처리하는 것이니 다른 병사들처럼 직접적으로 총을 들고 싸우는 일은 적어요.”

그 말에 주민식의 어머니가 한없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주민식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이 터졌지 않으냐? 비록 네가 있는 곳이 후방이라고 하여도 언제든 전투가 일어날 수 있는데...”

“그야 물론 전투가 일어날 수 있지만 걱정 마세요. 제가 누구 아들입니까? 그리고 솔직히 전쟁도 우리 국군의 승세로 돌아가고 있으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주민식의 어머니는 그 답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한 눈초리였다. 결국 그녀의 시선은 병윤에게 돌아간다. 병윤이 장교이고, 또 주민식과 같이 휴가를 갔다는 사실만으로 병윤과 주민식 간에 어떤 친분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눈치 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민식의 어머니는 자신이 가진 의문을 병윤을 통해 풀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보게. 장교라고 한다니 혹여 전쟁 상황에 대해서 아는 감이 있지 않은가? 우리 아들의 말이 정녕 사실인가?”

병윤은 그 물음 속에 빨리 전쟁이 끝나 평화를 찾기 바라는 감정이 가득 담겨져 있다고 추측하고,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그리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전황이 이리 악화되었다면 주민식이가 여기에 휴가를 왔겠습니까? 사실 전황 속에 휴가도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 대답에 주민식의 가족들은 이해가 가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 때, 주민식의 아버지가 병윤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런데 요즘 제 2 국민역을 실시한다고 떠들어대서 영 걱정스러워. 우리 장남하고, 차남이 갑작스럽게 국민역에 해당된다고 그 관리인가? 그런 사람이 나와서 알렸어.”

병윤은 순간 이것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가 된다.

‘아무래도 국민방위군 법안을 실시하기 이전부터 인력 모으기에 들어가는군.’

병윤은 이 현상이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다가온 것은 처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때, 주민식이 얼굴을 굳히며 병윤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 국민역이라고 한다면... 장교님. 이거 큰 일이지 않습니까?”

그 말에 주민식의 아버지가 깜짝 놀라며 소리친다.

“뭐 큰 일?! 갑작스럽게 무슨 말이냐? 큰일이라니!”

주민식은 아차하고는 이내 자신의 아버지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쓴다.

“저 아버지. 그게 아니고...”

“또 뭐가 아니더냐? 끙.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냐?”

주민식의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주민식은 끙끙 거릴 뿐이었다. 마치 말하고는 싶은데, 말했다가는 더더욱 큰 일이 날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병윤은 그런 주민식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는 이내 자신이 대답하기 시작한다.

“사실 국민역에 대해서 설명을 받았을 때, 전장에 안 끌려가고, 향토방위를 위해 모집된다는 소식을 듣지 않았습니까?”

주민식의 아버지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그렇지. 그 쪽에서는 이 마을을 수호하기 위해 모집한다고, 또 그냥 모집한다면 혹시 전투가 벌어질 때, 다 죽는다고 어디서 훈련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 말에 병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한다.

“예. 그렇지요. 아마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민식이가 큰일이라고 말을 하냐는 이 말이지? 혹시 그 쪽에 뭔가 있는 것 아닌감? 혹여 빨갱이를 잡는다고 나서거나...”

불안에 떠는 주민식의 아버지의 모습에 병윤은 안심을 시키기 위해 사근사근한 말투로 대답한다.

“그런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훈련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빨갱이 잡는다고 출정시키겠습니까? 아마 모집원에게 질문을 던져도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훈련도 안 된 사람들을 데리고, 사람들 목숨 버릴 일 있느냐고 말입니다.”

주민식의 아버지는 그 말에 ‘끙’ 침음을 흘리며 이해를 하지만 눈빛 속에 맺힌 불안을 숨기지 못한 처지였다. 결국 주민식의 아버지는 진지하게 물어본다.

“그럼... 국민역에 해당되는 우리 종식이와 홍식이는 걱정이 없는 건가?”

병윤은 그 질문을 받을 때, 왠지 양심이 찔리는 것을 느꼈다.

‘으음.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그 때, 주민식이 병윤을 보고 한 마디 말을 건다.

“장교님. 어쩌죠? 사실대로 말한다고 하여도 이건...”

병윤은 ‘끙’ 침음을 흘리며 주민식에게 한 마디 말한다.

“에휴. 어쩔 수 없지.”

결국 병윤은 숨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예상했다.

“저 사실은...”

병윤은 국민방위군에 대한 사실을 털어 놓았다. 병윤의 대답에 주민식의 아버지의 얼굴은 시시각각 변하더니 이내 지친 어조로 한 마디 말한다.

“그러니께. 장교님의 말은 우리 종식이와 홍식이가 어떤 곳에 가면 문제가 없는데, 똥 같은 데에 가면 필히 죽어나갈 것이다 이런 말인가?”

“예.”

“끙. 왜 이딴 짓을 나라에서 벌이는 건가?”

“......”

병윤은 그 물음에 이내 침묵하고 말았다. 주민식의 아버지는 그런 병윤을 보고선 한 마디 말한다.

“끙. 자네에게도 말 못할 사정은 있는 것은 알고 있네만. 역시 부당한 것은 있는 거지?”

병윤은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대답한다.

“부당하지 않는 세상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것으로 되었어. 하아. 걱정스럽구먼. 다른 자식들은 몰라도 내 아들들이 그런 곳에 들어가 죽어 나간다면... 으음...”

주민식의 아버지는 생각을 하다 이내 병윤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네 장교이지 않나? 혹여 국민역에 떨어질 사람을 그나마 나은 곳에 떨어지게 할 수는 없는가?”

병윤은 그 말에 잠시 생각을 하다 이렇게 대답한다.

“저 그건...”

그 때, 주민식이 병윤의 허벅지를 붙잡고, 애걸조로 말한다.

“저. 장교님 저 역시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 형님들 형수와 아이들까지 있는 몸입니다.”

‘끙. 미치겠군. 하아. 어쩔 수 없군.’

병윤은 주민식을 바라보며 작게 속삭인다.

“어쩔 수 없이 일단 국민역을 맡는 곳에는 동협 그룹 역시 포함되어 있으니 말이야. 한 두 사람은 괜찮겠지.”

“장교님. 감사합니다.”

“......”

병윤은 씁쓸한 얼굴을 하고는 침묵하고 말았다.

그 이후에도 한동안 국민역 이야기를 하다 이내 다른 주제로 넘어간다. 결국 관심은 병윤에게 쏟아진다.

“그런데 아까 그 헬기는 뭔가?”

주민식의 아버지가 헬기에 관해 병윤에게 묻자 병윤은 이렇게 대답한다.

“제 개인 헬기입니다. 아버지. 아무래도 기차를 타고, 자동차로 그 쪽으로 가기에는 아까운 시간만 소요되고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제 개인 헬기를 통해 왔습니다.”

그 말에 주민식의 아버지는 눈을 껌뻑이며 병윤에게 말한다.

“그런가? 허어... 그런 커다란 새가 개인 소유의 물건이었다니. 그건... 엄청 부자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꼭 그런 것은...”

그 때, 주민식이 끼어들어서 자기 아버지에게 대답한다.

“맞아요. 이 장교님 엄청 부자입니다. 제가 알기론 공장들 몇 개 정도는 보유했다고 들었습니다. 아닙니까?”

“민식아. 어떻게 지금 그런 말을 꺼내 들 때냐?”

“맞지 않습니까? 뭐 부자인 것이 그리 나쁜 일입니까?”

“끙. 저 녀석 집에 돌아간 이후부터 입이 싸졌네.”

주민식의 아버지는 눈을 껌뻑껌뻑 거리며 주민식에게 질문을 한다.

“그래? 허 공장들을 소유했다니. 그럼 설마... 지주 출신인감?”

병윤은 그 물음에 손사레를 치며 대답한다.

“그건 아닙니다. 원래 우리 일가 자체가 소작농이었습니다.”

“소작농 신세에 어떻게 공장들을 소유한단 말인가?”

“하하. 그게 운이 좋아서 말이죠.”

“그렇다면. 설마 친일파는 아니겠지?”

“해외에 나가서 독립군에 들어갔습니다.”

“그래? 으음.”

주민식의 아버지는 고민을 하더니 이내 주민식에게 시선을 둔다. 병윤의 말이 사실이냐고 눈짓을 하는 것 같았다. 주민식은 이에 이렇게 대답한다.

“독립군에 몸을 담았다는 것은 모르겠지만 저 장교님이 독립 운동을 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해방 전에도 중국에 나가서 공장들을 차려 벌은 돈으로 독립운동을 벌이는 조직에 도움을 줬습니다.”

“진짜로?”

“예. 사실 신문이나 TV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여튼 대단한 사람인 것은 확실합니다.”

“난 또 오해를 하고 말았지 않은가? 하여튼 나쁜 사람은 아니다 이 말인감?”

“저를 헬기에 태워서 집까지 보내주신 사람인데 나쁜 사람이겠습니까?”

“그건 아니지. 허참. 귀한 사람이 오셨군.”

병윤은 그 말에 얼굴이 왠지 붉어진다. 그 때,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간다.

“에휴. 춥다.”

방 안에 들어간 젊은 처자는 방 안에 모인 인원들을 바라보다 이내 주민식을 발견하고는 이렇게 대답한다.

“응? 오빠가 왜 여기에 온 거야?”

주민식은 젊은 처자를 보자마자 쯧쯧거리며 한 소리를 내놓는다.

“넌 여자라는 인간이 아직도 바지를 고집하고 그러더냐?”

“바지 입는 게 뭐 어때서?”

“너 때문에 치마만 남고, 남는 바지는 없다.”

“흥. 치마를 팔고, 바지를 사면 되겠네.”

별안간 주민식과 말다툼을 보이는 이 처자의 모습은 단발에 또 예쁘거나 혹은 잘생긴 중성적인 모습이 느껴졌다. 이 처자의 느낌은 여성스러움보다는 남자를 흉내 낸다는 사실이 정확할 정도였다.

병윤은 젊은 처자의 얼굴을 보더니 이렇게 생각한다.

‘예쁜 사람이네.’

그 때, 주민식의 아버지가 주민식을 따라 젊은 처자를 보고 타박을 내놓는다.

“손님도 왔는데, 왜 이리 소란이냐? 또 미혜 넌 또 왜 바지를 입고 그러냐? 그렇게 행동하다 시집이나 가겠어?”

미혜라 불리는 처자는 그 말에 이렇게 대답한다.

“상관 없어요.”

그 대답에 주민식의 아버지는 영 골치라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놓는다.

“미혜야. 앉아봐라. 아. 그리고...”

주민식의 아버지는 병윤에게 눈빛을 보내자 병윤은 눈치를 읽고 이렇게 대답한다.

“가족들끼리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미안하구려.”

병윤은 이내 벌떡 일어서서 방 밖으로 나갔고, 젊은 처자는 병윤을 잠시 쳐다보다 이내 다시 시선을 가족들에게 둔다. 결국 방 안은 주민식의 가족들의 회의 자리로 변했다.

병윤은 바깥에서 마을의 풍경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시간이 날 때까지 잠시 구경하는 것이 좋겠네.”

결국 병윤은 마을을 잠시 산책하기로 마음을 먹다 이내 자신의 안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하필 이런 때에.’

병윤은 핸드폰을 꺼낸 뒤 뚜껑을 열고는 받았다.

“예. 여보세요?”

-회장님이십니까?-

“아. 진세연 중국 총지부장. 무슨 일입니까?”

-소식을 알려드리려고 왔습니다.-

“무슨 큰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현재 국민방위군 법안이 가결되었다고 합니다.-

“휴우. 결국 그렇게 되었군요. 알겠습니다. 국민방위군에 관련된 지시사항을 곽 상무에게 인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핸드폰은 뚝하고 끊어졌다. 병윤은 얼굴을 찡그린 채로 핸드폰을 안주머니에 넣는다.

‘이것으로 신성모 국방부 장관은 끝났군.’

병윤은 국민방위군이 차후 어떤 결과를 나타낼지 이미 예상은 했었다. 그래서 병윤은 몹시 양심에 찔렸다. 분명 막아야 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막지를 못한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쯧. 이번 일을 막는다고 하여도 신성모를 비롯한 일파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무슨 짓을 저지를 인간들이다. 순순히 포기하는 사람들이 아니지. 하지만...’

물론 지금이라도 신성모 일파를 제거하는 방법은 있었다. 다만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한 병윤은 흠칫하고는 이내 자조적인 미소를 짓는다.

‘결국 나도 이런 인간인가 보군.’

병윤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이내 마을 풍경을 바라본다. 마을은 평화롭고, 여유로웠다. 모든 일이 시작되기 이전의 그런 마을의 풍경이었다.

“평화롭기는 평화롭구나.”

정말이지 역설적이었다. 한반도 북부에는 서로 살고자 죽이고자 인간들의 난장판을 벌이는데 여기는 전쟁의 흔적 따위는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병윤은 마을 경치를 구경하다 이내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는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에 병윤은 고개를 뒤로 돌아보니 거기에는 복잡한 얼굴의 주민식이 서 있었다.

“장교님. 여기서 뭐하고 있습니까?”

그 말에 병윤은 간단하게 대답한다.

“그냥 마을 구경을 좀 하고 있었어.”

============================ 작품 후기 ============================

다시 말하지만 병윤은 결코 착하고 정의로운 인간이 아닙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