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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병윤은 한동안 주민식과 같이 마을 안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돌아다니는 와중에도 둘은 계속해서 대화를 나눴다. 주민식은 한숨을 내쉬며 병윤에게 마치 하소연 하듯 말한다.
“정말이지. 제 여동생이지만 상당히 걱정스럽습니다.”
“왜?”
“저 녀석 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저 녀석은 저를 포함한 형님들과 같이 다니다 결국 선머슴이 되고 말았습니다. 에휴. 저런 녀석을 받아줄 사람이 있겠습니까?”
병윤은 그 말에 쯧쯧거리며 주민식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게 그리도 걱정스럽냐? 어차피 때 되면 다 결혼하게 되는데, 네가 그리 걱정해야할 사항이 아니지 않나?”
“그래서 장교님은 결혼하셨습니까?”
병윤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한다.
“이 자식. 친해졌다고 나에게 막 나가는 것은 아니지?”
“끙. 죄송합니다. 하지만 오죽 답답하면 이런 소리를 하겠습니까?”
“흠흠.”
“치마 입기보다는 바지 입기를 좋아하고, 어릴 때도 같은 마을 여자애들과 놀지 않고, 남정네들과 같이 노는 녀석입니다. 그 때 당시에는 별반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하아... 걱정스럽습니다.”
“뭐 오빠의 심정으로써 이해는 간다만.”
“장교님에게도 어린 여동생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있기는 하지.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
“장교님의 여동생이 제 여동생 미혜처럼 하고 다니면 어쩌실 생각입니까?”
병윤은 그 말에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피식 미소를 짓고는 대답한다.
“그 녀석이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 녀석 마음대로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주민식은 그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표정으로 병윤을 바라보며 말한다.
“허...”
“지금이 식민지 시대도 아닌데, 여동생의 행동을 너무 뭐라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되는데. 물론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해. 여동생만큼은 고생 시키지 않고, 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끙. 그건 장교님의 집안이 여유가 되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집안 형편이 좋으니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정 형편 역시 중요하기는 하지. 그런데 민식아.”
“예. 말씀하십시오.”
“그 미혜라는 아이 말인데. 꼭 타박만 주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타협을 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주민식은 그 말에 ‘으음’ 침음을 흘린다. 물론 병윤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하기야 무조건 타박만 놓으면 여동생이 말을 들을까? 라는 인식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설득보다는 걱정, 근심이 앞섰다.
‘그래도 그렇게 놔두다가는 그 녀석 평생 집에 붙어 살 거야. 가뜩이나 어려운 집안인데 그런 꼴을 둘 수가 없지.’
주민식은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적어도 대화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렇게 둘은 계속 마을의 길을 걸어가며 대화를 나눈다. 그 때, 병윤이 주민식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넌 전쟁이 끝나고, 전역하면 무슨 일을 할 거냐?”
“그거 저번에도 대답하지 않았습니까? 집에서 부모님 따라 농사지으며 생활해야지요.”
“그래?”
병윤은 뜻 모를 미소를 짓는다. 주민식은 그런 병윤의 미소를 보자 얼핏 기대감이 들기도 한다.
‘혹시 개인 친분으로 나 역시 그 쪽으로 들어가는 것 아닌가?’
주민식이 아무리 시골에 사는 청년이라고 하지만 세상 물정은 모르는 순진한 청년은 아니었다. 가끔 읍이나 면에 가면 TV와 신문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것들을 통해서 세상 이야기를 알았다. 그래서 동협 그룹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었다.
해방 후 나타난 최대 규모의 기업, 그 곳에 취직하게 되면 임금은 물론이고, 집도 주고, 자식들 교육비도 절감시키게 만들어준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 곳에 입사하면 인생 핀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그 곳의 대우가 좋은 만큼 그에 걸 맞는 능력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현재 엘리트로 볼 수 있는 대학 졸업생들도 그 곳에 가기 위해 몰리는 실정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비싼 돈 주면서 지식들을 익힌 사람들이 왜 동협 그룹에 매달리는가?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 매달리는 것이라고 주민식은 그렇게 봤다. 하지만 주민식은 마을 어른에게 잠시 글과 산수를 배운 것으로 여기에 들어갈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은 그런 곳에 들어가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전쟁이 터지고, 입영되자마자 만난 사람이 바로 동협 그룹 회장이었다. 힘 있고, 재산 있는 사람들은 위험한 전쟁터에 안 끌려간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진 주민식으로썬 병윤의 존재가 꽤 희귀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같이 다녀보니 주민식은 왜 병윤이 그 그룹의 회장인지 잘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에 잘 배려해주는 것을 볼 때, 이 사람은 믿을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솔직히 주민식은 병윤과 같이 친해지면 그 인연으로 그 곳에 들어갈 수 있을까? 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병윤이 그 것에 대해서 가로막았다. 군대의 인연이 인사의 불공정을 낳으면 안 된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들으니 주민식으로썬 솔직히 실망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주민식은 병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배운 것도 많았고, 또 병윤이 농학에 대해서 어느 정도 깊이를 가지고 있었고, 그 것을 그에게 알려주었기에 주민식은 그 것들을 깊이 들으면서 자기 것으로 소화했다. 그래서 전역만 한다면 주민식은 당장이라도 농사를 지어 집안 형편을 바꿀 생각을 했다.
주민식은 병윤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저 장교님. 만약 전역하시게 되면 우리 둘이 떨어지지 않습니까? 저야 상관이 없지만 제 집안이 조금 문제가 있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양계장 사업을 할 때,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아. 저번에 농사로 이야기를 나누다 나온 그거 말인가? 흠. 그래서 나에게 돈을 조금 꿔 달라?”
“헤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투자입니다. 제 가족들 옷이라도 제대로 입히고, 밥이라도 제대로 먹이고 싶습니다.”
“흠흠. 그렇군. 그럴 계획이라 말이지?”
“헤헤헤...”
주민식은 방실방실 웃으며 병윤을 바라본다. 어느 정도의 비굴함이 섞인 주민식의 표정에 병윤은 피식 웃고는 이내 한 마디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양계장 사업은 네가 주도적으로 할 꺼야?”
그 말에 주민식은 ‘응?’ 의구심을 품는 반응을 한다.
“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네가 그 것을 주도적으로 할 꺼냐고?”
“그럼 제가 안 하면 누가 합니까?”
“네 형들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예.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형님들에게 그 것을 시키란 말입니까? 그럼 전 뭐 먹고 삽니까?”
“흠. 그렇군. 네가 할 일이 있었지. 사실 말이야. 나에게 조금 곤란한 일이 생겼어.”
주민식은 그 말에 풋 웃으며 대답한다.
“천하무적의 장교님에게 곤란한 일이 있습니까?”
“임마. 나도 있기는 있어. 남들에게 내색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 그렇습니까?”
“그래서 말이지. 너 정도라면...”
“제 정도라면 뭐 어떻습니까?”
“조금 다듬으면 왠지 쓸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주민식은 그 말에 ‘으응?’ 이라는 반응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속으로 ‘이 사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말한다. 결국 병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러했다.
“뭐 지금의 너로썬 우리 그룹에 들어오기엔 많이 부족하지.”
그 대답에 주민식은 힘이 자동적으로 빠지며 동시에 짜증을 낸다.
“누구 놀리십니까?”
“워 워. 난 지금의 너라고 말했지. 미래의 너라고 말은 안 했다.”
“응? 그 무슨 말입니까?”
“꽤 유능한 비서가 집안 사정으로 인해 나가서 말이지. 흠흠. 민식아. 전역 후에 뭐 배울 생각은 없냐?”
“그 무슨 소리입니까? 설마...”
주민식은 병윤을 바라보고는 흠칫 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 너도 한 번 큰물에서 놀아봐야지.”
주민식은 그 대답에 속에서 ‘크쿵’하는 천둥소리가 울렸다. 갑작스러운 병윤의 제안에 주민식은 혼란스러웠다. 왜 갑자기 병윤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일까? 주민식은 자동적으로 의문이 나왔다. 그 때, 병윤이 쐐기를 박았다.
“내가 널 키워줄게. 같이 갈래?”
“으으으음... 저... 잠시만...”
주민식이 얼떨떨한 반응을 보이자 병윤은 피식 웃는다.
“그래. 너무 갑작스럽지? 천천히 생각해봐라.”
주민식은 병윤과 같이 집으로 귀가하는 발걸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큰 충격에 빠진 얼굴이었다. 속으로 병윤의 제안에 대해 맹렬히 굴렸다.
‘어쩌면 좋지? 이게 사실인가? 내가 알고 있던 장교님은 이런 분이 아닐 텐데. 서... 설마... 진짜로 내가 장교님 아니 그 곳에 가서 장교님을 보좌하는 것은 아니겠지?’
지금도 맹렬히 나오는 온갖 생각들과 의문들이 주민식의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만큼 병윤의 제안은 혼란스러웠다. 만약 주민식이 기회주의자라면 즉각 병윤의 대답을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주민식은 그런 기회주의적인 면은 약했다. 주민식은 자신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과 의문들을 간신히 잠재우고는 이내 병윤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뒤 한 가지를 물어본다.
“저 장교님. 저에게 왜 그런 말을 했습니까?”
병윤은 그 의문에 피식 웃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왜? 내가 제안한 게 싫어?”
“그건 아니지만. 전 배운 것이...”
“난 뭐 대학 나왔나? 그리고 사람이라는 것이 평생 무식하리라는 법은 없잖아. 내 눈으로 볼 때, 넌 가치가 있는 녀석이다. 처음 볼 때, 그런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 특혜라는 인식이 있거든. 내가 아무리 회사를 좌지우지하는 회장이라고 하지만 회사를 다니고 있는 직원들에게 납득할 만한 행동을 해야 돼. 만약 친분으로 그냥 널 데리고 온다면 회사의 사람들이 널 인정할까?”
“으음...”
“그저 내 눈에 잘 들어 온 녀석이라고 질시하고 다니겠지. 하지만 그들에게 납득할만한 실력을 가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난 너를 관찰하면서 판단했던 것이고. 이제 판단은 어느 정도 끝났고, 내 제안은 끝났어. 그래서 너의 선택은?”
주민식은 그 말에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역시 인생 쉽게 사는 것은 아니군요. 저 장교님.”
“물어봐.”
“장교님은 저를 어떻게 보십니까?”
“적어도 같이 다닐 수 있는 남동생이라고 생각하지.”
“에휴. 그런데 문제는 제 집안 사정이...”
“알아. 교육에 돈이 든다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예...”
“내가 해결해줄게. 그 정도는 나를 따라다니면서 고생한 몫이라고 생각하고 대줘야지.”
주민식은 그 말에 ‘으음’ 침음을 흘리며 병윤을 바라본다. 병윤이 자신을 어떻게 봤는지는 모르지만 주민식은 병윤의 호의를 무시할 만큼 간도 크지 않고, 또 대담하지 않았다. 세상 물정을 적당히 아는 주민식으로썬 이런 상황일 때,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알 수 있었다.
“장교님. 감사합니다. 저... 저 정말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병윤은 그 말에 피식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동시에 병윤의 눈에 예의 그 틀이 떠오른다.
-축하드립니다. 이제 주민식과의 관계가 존경으로 상승하였습니다.-
병윤은 어느 정도 만족했다.
‘이것으로 차후 비서실장 걱정은 덜었군.’
병윤은 마음속으로 진세연이 차지하고 있는 비서실장의 후임으로 주민식을 내정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앉기는 뭐하겠지만 사람이야 키우기 나름이다. 어느 정도 노력과 자금, 시간을 들인다면 그 녀석도 비서실장의 자리에 적합하게 바뀔 것이다.
‘그건 그렇고. 으음...’
병윤도 진세연 비서실장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붙잡아주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러나 병윤은 끝내 그녀의 바램을 뿌리쳤다.
‘그녀와 나는 서로 안 맞아. 현실적인 요소가 크지.’
병윤도 진세연이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디 사랑이 마음만 맞아서 이루어지는 일인가? 사람들은 사랑의 해피 엔딩을 생각하지. 그 이후의 현실은 생각하지 않았다. 병윤은 한 때, 진세연과 같이 산다면 어떨까? 라는 예상을 했다. 하지만 예상을 해본 결과 병윤도 그렇지만 진세연이 안 좋게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바라봤다. 그래서 병윤은 더더욱 씁쓸했다.
‘어차피 그녀의 눈에는 비겁한 변명일 뿐이지. 그녀가 행복하기 위해서라도 나에게 떨어져야 돼.’
병윤은 그렇게 생각한 뒤 한숨을 내쉰다. 주민식은 갑작스레 한숨을 쉬는 병윤의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한다.
‘지금의 내가 그렇게 한심스러워 보이나? 하기야. 한심스러워 보이기는 하겠네. 하지만. 사람의 앞날은 모르는 법. 이 기회를 놓치다가는 매번 두고두고 후회하겠지.’
주민식은 그렇게 결의를 다져간다. 두 사람의 발걸음은 이내 주민식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 마당에 도달했다. 마당의 평상 위에 흥얼거리는 젊은 처자의 모습이 보인다. 바로 주민식이 타박을 줬던 미혜라는 숙녀였다.
주민식은 미혜를 보자마자 ‘끙’ 침음을 흘린다. 아까도 소리를 쳤는데, 치마를 입기는커녕 선머슴처럼 하고 다니는 미혜의 모습에 걱정과 근심이 동시에 들었다. 그 때, 병윤은 미혜의 모습을 보자마자 멍해진다.
‘어? 내가 왜 이러지?’
미혜의 얼굴을 바라본 병윤은 이내 미혜의 전신을 번갈아 바라본다. 미혜는 갑작스러운 병윤의 시선에 흠칫하고는 이내 병윤의 옆에서 자신을 아니꼽게 보는 주민식을 발견하고는 이내 한 마디 말한다.
“오라버니. 저 녀석 누구야?”
털털한 미혜의 말투에 주민식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에 선을 얹고는 미혜에게 한 마디 말한다.
“야. 말조심해라.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어?”
“오라버니 따라서 온 사람이지.”
“에휴. 걱정스럽다. 넌 우리 집안에 찾아온 손님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 싶냐?”
“그래서 저 사람은 누구인데?”
주민식은 ‘에휴.’ 한숨을 내쉬며 이내 자신의 여동생 미혜에게 다가서며 간단히 설명한다.
“이 녀석아. 저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어? 옛날 같았으면 우리들이 절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야. 그리고 저 사람이 뭐야? 저 사람이? 처음 온 손님에게 이 사람 저 사람 하면 기분 나쁘겠어? 안 나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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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병윤에게도 히로인이 생기는 군요. 아 참고로 이 소설은 하렘물 같은 것은 절대로 안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