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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적어도 미혜에 대한 병윤의 마음은 확인했다. 집안의 골칫거리가 된 미혜의 혼삿길이 이렇게 열릴 줄은 민식으로썬 꿈에도 몰랐다. 사실 여동생과 상관없이 자신을 키워주겠다는 병윤의 말에 희망에 부풀렸지만 이번에 미혜 건까지 더해서 그 희망은 더더욱 부풀어 올랐다.
‘이것으로 일단 적극적으로 미혜의 혼삿길을 미는 수밖에 없다.’
주민식은 그렇게 확고부동하게 결심하고는 이내 아직도 사랑의 감정에 부끄러워하는 병윤에게 한 마디 말한다.
“흠흠. 사실 그 녀석 혼인 관련해서는...”
그 때, 병윤은 미소를 지으며 주민식의 감정이 섬뜩하게 만드는 대답을 한다.
“알아. 그거 거짓말이지?”
“어... 그... 그건...”
병윤은 피식 웃으며 이내 주민식을 바라보고는 이렇게 대답한다.
“너 얼굴에 티가 다 나. 아까 그녀... 하여튼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눈빛이 조금 흔들리고, 몸도 잠시 떨었거든.”
“끄응. 잊고 있었습니다. 장교님에게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 말입니다.”
“뭐. 그 것뿐만은 아니지. 조금 그... 하여튼 그녀에 대해 대한 너의 태도와 말투를 볼 때...”
“아.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우리 미혜에게 마음을 가지신 것입니까?”
그 말에 병윤의 뺨은 홍조로 물들인다. 명백히 부끄러워하는 순수 청년의 모습을 보이는 병윤을 보자 주민식은 솔직히 말해서 적응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 것 참. 하아.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평상시에 상당히 날카롭다가 왜 미혜 이야기를 하면 부끄러워하고 난리야.’
사실 미혜가 어디가 그렇게 좋은지 주민식으로썬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보기에도 그 녀석은 시집가기 틀린 여자였다. 그런데 그런 녀석에게 빠진 사람이 있다니 세상 오래 살 일이었다. 적어도 언젠가 그 녀석이 시집을 가겠거니 했지만 그 상대가 병윤이라는 점에서 주민식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끙. 내가 알 수가 있나. 하여튼 장교님도 특이 취향인 것은 사실이네. 장교님이 이 때까지 장가를 안 가서 다행이다.’
지금도 암암리에 첩실을 가리는 시기이지만 병윤을 바라보니, 미혜를 차갑게 대해줄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병윤이 미혜에게 있어서 과분한 상대라는 것을 잘 알지만 주민식은 지금 굴러 떨어지는 행운을 뻥 차버릴 정도로 눈치 없지는 않았다.
“저 장교님.”
“왜?”
“제가 한 번 미혜를 그 쪽으로 밀어드리겠습니다.”
병윤은 그 말에 피식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알아서 할 수는 있겠지만 네가 정 그렇게 하고 싶다면야.”
“사실 저 녀석 시집 가기는 틀린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장교님이 그 녀석을 좋아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흠. 집안 돌아가는 모습을 볼 때, 그... 미혜라는 여자가 처한 환경은 잘 알고 있지만...”
병윤은 미혜라는 단어를 내뱉을 때마다 말을 잇지 못한다. 웬만한 상황에 냉정을 유지하는 병윤이 미혜를 생각할 때마다 냉정을 잃어버리는 이런 괴현상에 주민식은 꽤 볼거리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흠흠. 그렇습니까? 혹시 동정으로 그 녀석을 감싸 안는다는 것은 아니겠죠?”
병윤은 그 말에 정곡을 찔렀다는 표정보다는 오히려 이렇게 대답한다.
“확실히 대답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측면은 전혀 없어.”
“그럼 되었습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주민식은 미혜를 병윤에게 밀기로 했다. 집안을 생각해서도 미혜의 미래를 생각해서도 그게 가장 합당한 방법이었다.
주민식은 비밀리에 부모님을 만나서 병윤이 미혜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주민식의 예상대로 주민식의 아버지 주황영이 깜짝 놀란 반응을 내보인다.
“그... 그게 참말이냐?”
“제가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끙. 장교님이 그 녀석에게 빠져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주민식의 어머니 하숙혜가 호들갑을 떠는 말투로 주민식에게 재차 묻는다.
“끙. 우리 미혜에게 빠진 사람도 놀랍지만 미혜의 혼삿길이 이리 열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니까 아버지, 그리고 어머님.”
주민식이 진지한 얼굴을 지으며 입을 떼자 주황영이 진지하게 응답한다.
“그래 말해봐라.”
“전 미혜를 그 사람에게 밀고 싶습니다.”
그 말에 하숙혜가 영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주민식에게 한 가지 묻는다.
“그런데 그 사람 믿을 수 있을까?”
그 말에 주황영이 대신 그녀에게 타박을 준다.
“이 여편네가 왜 그런 말을 해. 지금 우리 미혜 혼인시키는 것이 우선 아냐?”
그 때, 주민식이 하숙혜에게 걱정근심 말라는 말투로 말한다.
“어머니의 걱정은 이해가 갑니다만 장교님에 대해서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 사람 능력도 능력이거니와 배경도 있고, 또 사람됨은 이미 완벽합니다.”
주민식의 그런 말에도 불구하고, 하숙혜는 오히려 조금 걱정스럽다는 얼굴을 보이며 대답한다.
“그런 사람일수록 여자들이 꼬이는 거 아니야? 배경도 있고, 능력도 있고, 사람됨이 보이는 사람에게 시집보낼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그... 그건...”
그 때, 주황영이 하숙혜에게 강하게 타박을 준다.
“아니. 그럼 그 사람에게 우리 미혜를 시집보내지 말자는 거야?”
“저... 그 것이 아니라...”
“됐어! 민식이 저 녀석 우리 집에서 그나마 세상 일에 밝은 사람이야. 그런 녀석이 적극적으로 추천해주는 사람인데. 거기에 미혜에게 장가갈 청년들이 있기나 해? 가뜩이나 전쟁으로 인해 사람도 없는데. 이런 때에 미혜를 시집보내지 않으면 다음에 기회가 올 거 같아?”
조금 이기적이라 볼 수 있는 주황영의 말에 하숙혜는 억지로나마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병윤에 대해 의혹이 강하게 남기는 하지만 그나마 이 집에서 세상일에 가장 밝은 사람이 주민식이었다. 그런 아들이 강력하게 추천해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조금의 의구심을 가졌지만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하숙혜는 주민식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묻는다.
“정말로 그 사람 믿을 수 있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머니. 장교님은 절대 미혜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실 조금 장교님의 반응이 의외였지만 말입니다.”
그 말에 주황영이 궁금하다는 얼굴로 한 마디 묻는다.
“의외?”
“예. 그 녀석에게 반한 사람은 처음입니다. 저런 선머슴에게 누가 장가갈까? 걱정이 앞섰지만 그런 녀석에게 반한 사람이 있다니. 거기에 그 장교님이 미혜에게 빠질 줄은...”
주민식은 병윤이 미혜에게 반한 사실에 대해 아직도 신기해한다. 자신이 평소 생각한 병윤의 인상에서 조금 깬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생각한 병윤은 평소 빈틈을 보이지 않는 철두철미한 면이 보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병윤의 배경은 또 어떻고, 그리고 아직도 자신을 살 떨리게 만드는 외모의 진세연을 비서실장을 부렸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빠지지 않는 사람이 병윤이었고, 자신을 떠나겠다는 말에도 순순히 승낙할 정도인 사람이다.
‘하여튼 깬단 말이야.’
결과적으로 병윤이 미혜에게 반했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자신이 알고 있는 병윤에게 미혜를 시집보내겠다는 것은 백번 천번 만번 찬성이었다. 아니 미혜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무조건 두 사람이 잘 되어야했다.
그 때, 주황영이 주민식에게 한 마디 묻는다.
“그런데 그 병윤이라는 사람 있잖아.”
“예. 말씀하십시오. 아버지.”
“그 사람 정확히 어떤 사람이냐? 단편적으로 독립운동가에 사업가이면서 지금은 장교라고 알고는 있는데 말이야.”
주민식은 그 말에 이내 휴우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대답한다.
“아버지. 조금 긴 이야기가 될 수 있는데, 상관 없습니까?”
“긴 이야기? 왜?”
“그만큼 그 사람을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우리 미혜가 시집갈 사람이 아니더냐? 길어도 듣는 수밖에.”
“알겠습니다. 그럼...”
주민식은 각을 딱 잡고, 병윤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병윤에 대해 술술 설명을 해준다. 주민식의 부모 주황영과 하숙혜는 그 설명을 들을 때마다 입이 점점 벌어졌다. 그만큼 병윤의 행보가 상상을 초월했고, 또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병윤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병윤의 가문도 특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민식의 말처럼 병윤을 설명하는 시간은 꽤 길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휴가를 같이 나온 것입니다.”
주황영이 얼빠진 얼굴로 주민식에게 한 마디 말한다.
“아니 그런 사람이 왜... 우리 미혜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냐?”
하숙혜가 물어봤던 것을 그대로 질문하는 주황영이었지만 주민식도 거기에 대해서 잘 몰랐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 사람이 여자를 가까이 하는 것은 저 역시 보지 못했습니다. 매번 저와 같은 병사들과 그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그 사람을 이렇게 말합니다. 고자라고.”
“엥? 고자?”
그 말에 주황영이 심각하다는 얼굴로 주민식에게 되묻는다.
“아 그 고자가 아니라... 그냥 여자에 대해 관심을 끊는 사람을 보고, 우리들끼리 그 사람을 고자라고 말합니다. 남들처럼 다 하는 호색을 전혀 안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미혜에게 빠진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래? 허어... 그런데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알기로 집안끼리 혼맥을 형성하기 마련인데 말이야.”
“으음 그건 솔직히 저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쪽 집안은 연애결혼을 밀어주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아. 그래? 하여튼 그런 집안에 우리 미혜가 시집보내는 것은 대찬성이다. 솔직히 내 심정으론 누가 되든 미혜를 시집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사람이 미혜와 만나는 것 난 대찬성이다.”
하숙혜 역시 그 말에 동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대단하신 양반이 우리 미혜에게 반했다고 하는데, 우리 미혜의 혼삿길을 위해서라도 무조건 시집보내야지.”
“흠흠. 그래서 말인데...”
주민식은 비밀리에 자신의 부모님에게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운다.
1950년 12월 6일, 병윤은 결국 미혜에게 약속했던 대로 미혜를 헬기에 태워주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마을의 아이들이 미혜에게 엉겨 붙은 것이다. 사실 시골의 아이들이 마을에 살면서 이런 귀중한 기회를 놓칠 리가 있겠는가? 아이들이랑 같이 노는 미혜의 입장 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끙...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왔어.”
병윤은 미혜 뒤에서 자신을 초롱초롱하게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에 조금 골치가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쯧. 둘이서 간만에 연애를 즐기려고...’
병윤은 어디가 아픈 듯 미혜, 그리고 연애를 언급할 때마다 뺨이 붉어진다. 병윤은 속으로 내가 왜 이러지 생각하면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왠지 미혜를 보자마자 자동적으로 얼굴이 붉어진다. 미혜는 그런 병윤의 반응에 오히려 의아함을 느끼며 물어본다.
“그래서 형. 태워줄 거야?”
‘형’이라 불리는 미혜의 말에 병윤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어제 미혜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미혜는 자신을 친한 오빠, 형처럼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런데 미혜의 입장에서 병윤이 마치 친한 형처럼 느껴지는지 병윤을 보고 ‘형’이라 불렀다.
“아. 물론이지. 물론 그렇고말고.”
다행히 마을 아이들이 미혜를 따라와서 다행이었다. 만약 미혜와 병윤 단 둘이서 있었다면 병윤은 부끄러움으로 인해 아무런 말도 못했을 것이다. 병윤은 흠흠 거리며 미혜와 뒤에 따라나오는 아이들을 확인하고는 이내 헬기에 기대 잠시 쉬고 있던 헬기기사를 바라보고는 이야기한다.
“저 기사님.”
헬기기사는 병윤이 부르는 목소리에 바짝 긴장하고는 대답한다.
“예. 말씀하십시오. 회장님.”
“잠시 마을 상공을 회전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병윤에게 고용된 처지인 헬기기사의 대답은 뻔했다.
“잘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파이팅입니다.”
헬기기사의 말에 병윤은 ‘끙’ 침음을 흘린다. 헬기기사가 미혜를 대하는 병윤의 태도에 대해 눈치를 챈 것 같았다. 하기야 헬기기사의 속내론 이런 병윤의 반응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예쁜 여성 앞에서도 냉정히 할 말을 하는 병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선머슴 같은 사람에게 반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헬기기사는 그런 의외의 모습을 보인 병윤을 다시 생각하고는 이내 헬기 안으로 들어가 헬기 헤치를 열도록 한다.
-치이익!-
헬기 헤치가 위에서 바닥으로 천천히 내려가는 모습에 아이들은 절로 ‘우와’ 소리를 낸다. 하기야 시골 마을에서 지낸 아이들의 눈에서 헬기의 존재는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미혜는 헤헤 웃으며 병윤에게 다가오고는 한 마디 말한다.
“저 형. 고마워.”
미혜에게서 작은 온기와 부드러운 살결이 병윤의 몸에 닿는다. 병윤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 때, 마을 아이들 중 하나가 두 사람에게 외친다.
“응?! 아저씨와 누나는 왜 안 와요?”
병윤은 그 말에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이내 한 마디 대답한다.
“이 녀석아! 아저씨라니! 나 아직 장가 안 간 총각이야!”
그 말에 한 아이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보이며 외친다.
“말도 안 돼! 아저씨가 아니라니!”
졸지에 아이들에게 아저씨라 불린 병윤은 ‘끙’ 침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 때, 미혜가 어깨를 두들기며 병윤에게 한 마디 말한다.
“형. 빨리 타자. 어서.”
“어... 응... 그래야지...”
병윤은 미혜와 같이 헬기 헤치 열린 틈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미혜와 같이 좌석에 앉는다. 특별히 미혜에게 창가 있는 자리를 양보해줬다. 미혜는 아이처럼 헬기의 창가 너머 풍경을 보고 아이처럼 좋아한다.
그 때, 헬기에 설치된 스피커폰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아! 아! 이 곳에 탑승해준 승객 여러분께 안내 방송을 합니다. 이 경량형 검은 매에 탑승해주신 여러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제 이 검은 매는 이륙하고, 1시간 동안 상공을 날겠습니다. 이륙합니다.-
검은 매가 서서히 이륙하기 시작한다. 헬기 안을 돌아다니는 마을 아이들은 병윤의 말에 조용히 자리에 앉지만 이륙하면서 느끼는 바뀐 공기에 마을 아이들은 상당히 신기해했다. 그리고 서서히 헬기가 올라가면서 마치 높은 언덕에서 마을 모습을 관찰하는 것처럼 지표면을 바라보는 아이들은 호기심을 느끼며 신기해했다. 그건 미혜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혜 역시 아이들처럼 창가 너머 풍경에 좋아한다. 그런 미혜의 모습을 바라보는 병윤은 얼굴을 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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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손발이 오그라든다. 우욱. 모태솔로인 제가 연애 이야기를 쓰다니. 이게 무슨 말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