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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옥의 한반도
일단 동협 그룹 법무대책위원회장 장호영의 동의를 얻은 병윤은 이내 거치는 것 없이 마이크에 입을 대며 말한다.
“지금이라도 근로 이사 선출에 대해 반대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그 말에 자리에 앉은 사람들 모두 조용해진다. 주민식은 마치 회장님의 결정을 기다리는 듯한 태도를 보인 회사의 간부를 보며 이렇게 생각한다.
‘으음. 역시 회사의 회장님이라 그런지 저 대단해 보이는 양반들도 꼼짝을 못하는구나.’
집에서 미혜에 빠져 헤롱헤롱 거렸던 병윤의 모습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절도 있는 카리스마의 모습이었다.
“여기서 반대하시는 분은 없으신 것 같군요. 그럼 이번 건에 대해서 유의해야할 점이나 주장하고 싶은 것은 있습니까?”
그 말에 자리에 앉은 회사 간부들 몇 명이 손을 들었다. 병윤은 그 인원들을 한 사람씩 지목하고는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병윤은 그 인원들이 말한 내용들을 따로 검토한 뒤 마이크에 대고 이야기를 한다.
“차후 미비한 점이나 고칠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 점에 대해서 다시 토의하며 방법을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여기에 반대하시는 분은 없으신 것 같으니 내년 2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러자 임원들은 자동적으로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그 이후에 임원들은 병윤에게 여러 가지 보고와 제안을 한 뒤 회의를 마쳤다. 그렇게 임원들은 다시 자기 일을 하러 회의장에서 나갈 때, 한 사람이 병윤과 이야기를 한다. 바로 동협 건설의 사장인 민상현이었다. 민상현은 연일 폭주하는 업무를 해대는 것을 증명하듯 얼굴이 꽤 피곤해보였다.
“요즘 전쟁으로 인해 폐허 제거 및 기반 재건설의 열풍이 한창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하청업체들을 선정하여 일을 진행하고 있지만 상당히 더디고 있습니다. 정부 쪽에서 쪼아대고, 일에는 진척이 없으니 죽겠습니다.”
병윤은 그 말에 민상현 사장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지금 무엇이 필요합니까?”
“사실 들어오는 돈은 많고, 회수할 돈은 나중에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 회사에 있는 돈이 부족합니다.”
병윤은 잠시 생각했다. 사실 건설업체가 계약을 맺은 뒤 일을 끝내고, 돈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현금을 받으면 상관이 없겠지만 어음을 받을 때가 많았다. 어음은 한 마디로 이 때, 현금 얼마를 주겠다는 증표 같은 것이기 때문에 바로 현금으로 쓸 수 없는 것이다.
민상현 사장의 말에 병윤은 딱 부러지게 대답할 뿐이다.
“건설 회사의 재무제표를 제출해주십시오.”
그 말에 민상현 사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서류들을 즉시 병윤에게 건네준다. 아무래도 이 말을 하기 위해 미리 자료를 준비한 것 같았다. 병윤은 동협 건설 재무제표를 찬찬이 살펴보면서 이내 민상현 사장에게 한 마디 말한다.
“흠 유동자산이 많군요.”
유동자산이란 1년 내에 바로 현금화 할 수 있는 것들을 의미한다. 어음으로 돈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회사에 보유한 현금 반 이상이 하청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병윤은 민상현 사장이 제출한 어음들을 관찰하자 민상현 사장은 침을 꿀꺽 삼키며 병윤을 바라보며 한 마디 말한다.
“유동자산 대다수가 제가 말한 어음들입니다. 현재 우리 쪽과 계약한 업체들의 신뢰는 그리 문제될만한 사항은 아닙니다.”
“흠...”
병윤은 이내 어느 특정한 어음에 시선을 집중하고는 이내 민상현 사장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이 어음들 누가 발급한 거죠?”
민상현 사장이 즉각적으로 대답한다.
“황한실업이라는 곳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병윤은 그 말에 그 어음들을 턱하고 내려놓고는 이내 한 마디 말한다.
“저 없는 사이에 이렇게 사기를 치려는 사람이 있었는지 몰랐군요.”
순간 민상현 사장은 머리끝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병윤의 입에서 ‘사기’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이 황한실업에서 발급한 어음들이 사기어음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한 마디로 부도어음, 즉 지급이 불가능한 어음이 될 가능성이 높은 어음을 의미했다. 병윤은 이내 핸드폰으로 어딘가로 전화한다.
“예. 염 부장. 빨리 이 쪽으로 와주십시오.”
핸드폰으로 염 부장을 부른 병윤은 다시 법무대책위원회장 장호영을 핸드폰으로 부른다. 그런 병윤의 모습에 민상현 사장은 어벙했다. 사실 황한실업에서 동협 그룹 쪽에 내준 어음은 어음 총액의 1할 정도 되었다. 어음 총액이 500만원이니 50만 원을 빼돌린다고 볼 수 있었다. 대외 작전부 염환균 부장과 법무대책위원회 장호영 이사는 병윤의 부름에 재빨리 소환되었다.
염 부장과 장 이사는 갑작스런 병윤의 부름에 이해를 못한 얼굴이었지만 이윽고 병윤은 냉정한 얼굴로 상황을 설명한다.
“현재 동협 건설의 어음 중에 일부로 부도어음으로 처리하는 사기어음들이 적발되었습니다.”
그 말에 장 이사는 화들짝 놀라며 병윤에게 말한다.
“그게 사실입니까?!”
“안타깝지만 사실입니다. 현재 재무제표와 어음들의 발행시기를 살펴보면...”
병윤의 설명은 꽤 차분하고 정돈되어 있었다. 병윤의 설명을 듣는 내내 장 이사와 염 부장, 그리고 민 사장의 얼굴은 어두워진다. 병윤은 장 이사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 황한실업을 사기죄로 옭아맬 수 있도록 장 이사께서 수고해주십시오.”
장 이사는 그 말에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런 일에는 제가 전문이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회사에 이런 개수작을 부리는 인간들을 탈탈 털겠습니다.”
병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시선을 염 부장에게 두고 지시한다.
“그리고 염 부장께서는 황한실업이라는 곳을 조사해서 그 자료들을 장 이사와 민 사장에게 넘기십시오. 그리고 민 사장은 황한실업과의 계약에 충실히 하되 곧바로 혐의가 드러나면 장 이사의 일에 협조해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민 사장은 처음에 그저 병윤에게 그룹 내 현금을 받을 생각으로 청했는데, 갑작스럽게 부도어음 적발에 많이 혼란스러웠다. 병윤은 이내 민 사장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리고 우선 민 사장이 요청하신 것부터 처리해드리겠습니다.”
병윤은 이내 책상 서랍 속에서 어느 한 서류를 꺼내더니 이내 그 서류의 빈칸에 내용을 적고는 마지막에 병윤의 사인과 동시에 엄지에 인주를 묻혀 지장을 찍어내고는 그 서류를 민 사장에게 건네준다. 민 사장은 서류를 바라보면서 병윤에게 한 마디 말한다.
“이건...”
“환전소에 바로 자금을 인출할 수 있는 서류입니다. 환전소 쪽에 이 서류를 보내면 아마 민 사장이 필요하신 금액을 바로 인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리고 미리 환전소에 이야기를 해줄 테니 걱정 마시고, 업무 추진에 노력하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민 사장의 요청을 끝낸 병윤은 세 사람을 다시 물리고는 이내 주민식에게 다가가며 한 마디 말한다.
“어때? 회의를 지켜본 소감이?”
주민식이 머리를 긁적이고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한 마디 말한다.
“저 그게...”
병윤은 그런 그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아직까지 내 뒤를 따라다니면서 아까 말한 일을 도맡아서 하기에는 부족해 보이지?”
“끙. 맞는 말이라서 할 말이 없습니다.”
“일단 휴가 복귀까지는 시간이 남았으니 그 때까지 내 방에서 커피와 코코아를 마시면서 이야기 좀 하다가 가자고.”
“예. 옙!”
주민식은 장군을 따라다니는 부관처럼 병윤을 따라 동협 그룹 회장실 안으로 들어간다. 병윤과 같이 휴가를 나왔을 때처럼 변한 것은 없었다. 단지 혼을 빼놓을 만큼의 미모를 지닌 그 여성이 없을 뿐이다.
아무래도 비서가 없다보니 병윤이 직접 커피와 코코아를 타고는 이내 커피를 주민식 앞에 내놓는다.
“저... 장교님 따라서 매번 이런 일도 해야하는 것이군요.”
“알기는 아는 구나.”
“거대한 기업 그룹의 총수가 직접 타주는 커피라니. 꿈에도 모를 일입니다.”
“아부는 그만 떠고. 마시면 마시는 거고. 안 마시고 싶으면 마시지 마.”
“꼭 그리 이야기를 해야겠습니까? 끙. 휘하 사람들에게 존댓말로 휘어잡았으면서...”
“그럼 민식씨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은 모양이군요. 이러면 좋겠어?”
주민식은 그 말에 얼굴을 긁적이더니 이내 고개를 젓는다.
“그냥 평상시대로 대해주십시오.”
“그게 좋겠지?”
“예. 저한테 그게 편합니다.”
병윤은 피식 웃으며 이내 코코아를 한 잔 마신다. 그러다 이내 병윤의 안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병윤은 미간을 잠시 찌푸리며 핸드폰을 꺼내 통화를 받는다.
“예. 동협 그룹 회장 길병윤입니다.”
-길 중위. 지금 어디에 있나?-
목소리를 들어보니, 현 육군본부 군수사령관 채병덕 중장이었다. 병윤은 채병덕 중장의 말에 ‘음’ 침음을 흘리며 대답한다.
“현재 같이 나온 병사와 같이 휴가 복귀 시점까지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래? 길 중위가 해야할 일들이 산더미 같아서 그러는데...-
“......”
군대에서의 업무를 생각한 병윤은 절로 한숨이 나온다. 역시 군대에서는 극도로 유능하거나 극도로 무능하면 안 되었다. 극도로 유능하면 일감들이 자신에게 쏟아졌고, 극도로 무능하면 매번 주위에 까이면서 퇴출당하기 때문이다. 물론 병윤의 실력이야 극도로 유능하니 이런 전화가 오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몰랐다.
“그 박 중위와 한 소위는...”
-그들이 자네인가? 그들의 능력상 처리할 수 없는 문제야. 하여튼 빨리 마시고, 슬슬 복귀하게. 이번 국민방위군 관련해서 처리해야할 업무가 너무 많아.-
“끙. 알겠습니다.”
병윤은 채병덕 중장과의 연락을 끊고는 한숨을 내쉰다. 주민식은 그런 병윤의 반응을 보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 묻는다.
“아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 소위님과 박 중위님이라고 들었는데. 혹시 군 관련 전화입니까?”
병윤은 한숨을 내쉬며 주민식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 쌓인 일감들이 있다고 빨리 복귀하라고 난리다.”
주민식은 그 말에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허망한 얼굴을 지으며 말한다.
“역시 예상했습니다.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은 것입니까?”
“전장에서 죽음과 공포를 느끼는 병사들보다 낫다고 생각해.”
“......”
결국 병윤과 주민식은 주섬주섬 군에 복귀할 준비를 마친다. 다만 군에 복귀하는 동안에도 병윤은 주민식에게 미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 주민식은 결국 농담조로 병윤에게 이렇게 말한다.
“장교님이라 불리는 것보다 차라리 매형이라고 불리시길 원합니까?”
“그게 낫겠네. 앞으로 날 매형이라 불러.”
“끙...”
아직 미혜랑 결혼하지도 않았는데, 병윤은 주민식에게 자기보고 ‘매형’이라고 부르라고 하고는 군에 복귀했다.
1950년 12월 15일, 주종식과 주홍식은 몸 그대로 소집장을 들고 온 마을 사람들과 같이 차량에 탑승하고는 어딘가로 간다. 그러는 동안 두 형제는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뭔가 알아챈다.
“아니 그러니까 그 백 부대로 배치 받는 인원들은 얼마 없다는 거야?”
주홍식의 물음에 마을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래. 거의 대다수가 청 부대지. 이 두 명은 백 부대로 배치 받는 모양이더라고. TV에서는 이 국민방위군 관련해서 국회에서 엄청 싸우더군.”
“내가 알기론 그냥 예비군처럼 훈련받다 향토 방위군처럼 지낸다고 들었는데.”
마을사람들의 말에 주홍식은 의아한 얼굴이었다. 자신이 받은 혜택이 별반 얻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다만 주종식과 주홍식은 병윤에게 들은 것이 있어서 백 부대가 어떤 곳인지 조금은 알고 있었다. 주홍식이 주종식에게 불안한 얼굴로 한 마디 말한다.
“저. 형님.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저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주종식은 그 말에 주홍식을 제지하며 말한다.
“그리 말하지 마라. 잘못 말하다가는 빨갱이로 몰릴 수 있어.”
“끙...”
주종식과 주홍식은 결국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함구한 채로 마을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들으며 판단하고 있었다.
주종식과 주홍식을 태운 차량은 공터 어딘가로 주차했다. 공터에 모인 차량들로 볼 대, 한 마을 사람들만 끌어들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타 지역 사람들의 모습에 주종식, 주홍식은 자기 마을 사람들과 같이 서 있었다. 그 때, 완장을 차고, 빵모자를 쓴 한 사람이 사람들에게 외친다.
“쳇. 사람들이 이거 밖에 없나? 다들 소집장은 들고 왔지?”
그 말에 마을사람들은 어리둥절하지만 이내 순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빵모자를 쓴 사람은 그 반응에 당연하다는 듯 한 마디 말한다.
“그럼 소집장을 내보게. 일단 접수부터 해야지.”
그 말에 마을 사람들 하나 둘씩 그 사람에게 자신에게 발부된 소집장을 건네준다. 빵모자를 쓴 사람은 ‘흠’ 소리를 내며 소집장을 거두고는 이내 한 마디 말한다.
“백 OOO부대로 떨어진 사람은 저 쪽으로 가라.”
빵모자를 쓴 사람이 엄지로 공터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고, 백 부대에 배치 받은 두 사람은 결국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 공터로 걸어간다. 그리고 빵모자를 슨 사람이 여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말한다.
“그럼 여기에 있는 사람들 전부 다 청 OOO부대로 떨어진 사람들이지? 너희들은 나를 따라와라.”
주종식과 주홍식은 마을사람들과 같이 빵모자를 쓴 사람을 따라다녔다. 얼마간 걷다가 이내 어느 한 건물 안에 도착했는데, 거기에 미리 사람들이 도착했는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빵모자를 쓴 사람은 건물 입구에 서 있는 ‘멸공’이라 새겨진 완장을 찬 사람에게 다가가 자신이 거둔 소집장을 건넨다.
‘멸공’의 완장을 찬 사람이 빵모자를 쓴 사람에게 마음에 안 드는지 한 마디 말한다.
“이게 다야?”
“마을 안 샅샅이 뒤졌습니다. 인원은 그 것 뿐입니다.”
“쯧. 알겠어. 나가봐.”
“예.”
빵모자를 쓴 사람은 이내 다시 할 일을 하러 건물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주홍식과 주종식은 그런 모습에 조금 불안감에 떤다. 시간이 지나면서 줄은 점점 줄어들었고, 이내 두 사람은 건물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었다. 줄 안에 선 사람들은 평상복을 벗고, 신체를 측정한 뒤 이내 몸 크기에 따라 군복과 각종 필요한 물자들을 지급받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건물 안에 서류를 처리하는 군인도 있었지만 기자로 보이는 몇 명이 카메라를 들고 찍으면서 기사를 작성하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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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국민방위군 사태를 시작해야겠지요.